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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에서 본 영화들②] <더 하우스 댓 잭 빌트> 라스 폰 트리에 감독, “살인자 잭에겐 나의 많은 면이 투영되어 있다”
글·사진 이화정 2018-06-06

라스 폰 트리에는 등장 때마다 영화제 최고의 화제의 인물임에 틀림없다. 2011년 기자회견 중 나치 우호 발언으로 영화제에서 ‘영구제명’을 받은 그가 다시 신작 <더 하우스 댓 잭 빌트>로 올해 칸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됐다. 7년 만의 방문이다. 그사이 <어둠 속의 댄서>(2000)를 함께 작업한 비욕의 미투(#MeToo) 폭로가 이어졌다. 5월 14일 첫 공개자리인 갈라 상영의 큰 박수가 무색하게도, 연쇄살인범 잭(맷 딜런)의 살인 행위를 예술 행위에 비유하는 끊임없는 자기변명과 무차별 살해에 이르러 관객 대량 이탈로 이어졌다. 특히 아동 살해와 시체 유기, 여성의 가슴을 도려내 그걸 장난스럽게 대하는 행위에 불쾌감을 표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영화제 중에 만난 기자들은 “라스 폰 트리에 영화 봤냐”라는 첫인사로 화제를 이어갈 정도였고, 비난의 리뷰가 쏟아졌다. <르몽드>는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라스 폰 트리에는 자신을 예술의 고통을 상기시키고 발생시키는 천재로 연출한다”며 일갈했다. 비난의 한가운데서도 이를 개의치 않는 듯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인터뷰에 응했다. 16일, 영화 해외 세일즈사인 노르디스크 별장에 마련된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간의 맘고생을 알려주듯 건강이 좋지 않아 보였다. 그럼에도 자신의 원칙과 소신에 대한 표현, 시종 미소를 잃지 않으며 전하는 유머러스한 답변으로 볼 때 그 누구도 하지 않는 영화를 만드는 날선 창작자로서 그의 캐릭터는 여전히 건재해 보였다.

-그간 어떻게 지냈나.

=거의 기소까지 될 뻔했다. 근 2년간은 인생이 정체되어 있었다. 5년간 마르세유에서 옥살이를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웃음) 맹세컨대 마르세유에서 옥살이라면 그렇게 즐거운 경험은 아닐 것이다. 모든 상황이 무서웠고 정말 힘들었다. 프랑스는 나와 밀접한 유대관계를 가진 나라였는데, 이 나라 전체가 내게 등을 돌리는 것 같은 기분이더라. 정말 지옥 같았다.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도 너무 힘들었다. 알코올중독 증세가 있어 더 힘들었고, 술을 끊으려고 노력 중이다. 재활센터에 다니고 있지만 칸은 술을 안 마시기엔 너무 힘든 곳이다. (웃음) 누구의 탓도 아닌 모두 내 잘못이다.

-지금은 발언의 자유를 갈구하는 동시에 그 발언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시대에 놓여 있다.

=물론 내가 경솔했다. 같은 이야기를 독일에서 했다면 이렇게까지 일이 커지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는 유대인 수용소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적절치 못한 타이밍에 적절치 못한 발언이었던 건 확실하다. 그럼에도 나는 기자회견장에서의 발언이 이렇게까지 간 게 좀 우습다 싶기도 하다. 어디까지나 표현의 자유가 보호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더더군다나 칸영화제의 모토가 표현의 자유인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웃음)

-이번 작품에서는 연쇄살인자 잭의 이야기를 통해 예술가의 내면을 상징하고 있다. 자전적인 이야기로도 들리는데, 영화제나 관객에게 그 지점이 통했다고 보나.

=많은 연출자들이 관객과 최대한 소통하려고 한다. 많은 시나리오작가들을 고용하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만드는 영화를 볼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작업하지 않는다. 영화를 만들면서 관객을 생각지 않는다. 나는 나 스스로를 관객으로 생각한다. 그것이 내가 작업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나같은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혼자 작업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관객을 배제한다는 말을 했다시피, 더더군다나 이 영화는 광기와 예술의 조합에 대한 당신 스스로의 집착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항상 이런 방식의 연출만 고수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게 영화의 전개가 극한까지 갈 수 있는 비법이기도 하다. 내 가족, 나의 삶에서 나오는 경험의 합이 내 영화에 결국 투영되는 것 같다. 많은 감독들이 본인들의 정점을 찍고 추락하는 것에 두려움을 갖고 있다. 문제는 이때 비싼 집을 사놓고 그 빚을 갚기 위해 관객이 필요하고, 그게 연출의 목표가 된다. 결국 이로 인해 작품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나는 그 덫에 걸리지 않으려 한다. 그래도 이번 영화는 내가 볼 때 20% 정도는 전작들보다 대중적인 것 같다. (웃음)

-잭의 살인을 변명하는 데 글렌 굴드와 윌리엄 블레이크 같은 예술가들이 언급된다. 그들의 작품이 본인에게 상징하는 바는 무엇인가.

=내게 글렌 굴드는 천재이자 괴짜다. 그는 항상 저항하려고 노력했던 예술가다. 연주를 할 때 피아노에서 좀 떨어져 앉는 방식이나, 연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는 모습 등 자신만의 방식이 확고하다. 그 영상을 봤는데 정말 멋지고 매력적이었다. 그 자체로 예술을 상징한다는 생각이 들더라.

-<어둠 속의 댄서>, <멜랑콜리아>(2011), <님포매니악> 시리즈 등 전작의 영상을 콜라주로 보여준다. 살인자 잭이 감독 자신의 반영이라는 점을 연결짓고자 했나.

=그렇다. 그렇게 보이지 않나? 잭에겐 나의 많은 면이 투영되어 있다. 나에게도 이제 점점 그런 의미의 증거로 보인다. ‘예술가들은 현실에서 그들이 하고 싶어 하는 예술만 할 수 있다’는 말을 하기 위해 자료가 필요했다. 잘 알려진 명작들에서 몇몇 장면을 사오려고 했는데 전혀 진척이 안 되더라. 그래서 ‘이게 뭐야’하고 욕을 했다. (웃음) 돈 안 들고 쉽게 할 수 있는 내 작품을 쓰게 된 거다. 실용적인 결정이었고 재밌는 경험이었다.

-영화에서 희생자인 여성이 차 안에서 소리지를 때 잭이 창문 밖을 쳐다보는데, 아무도 반응을 하거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도움을 주지 않는 상황이 지금 사회를 묘사한 거라면 현 사회에 대한 당신의 믿음이 너무 비관적인 것 아닌가.

=사회를 향한 믿음은 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 이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한때 우리는 민주주의의 황금시대에 살았지만 정점에 있을 때 그걸 인지하지 못했고, 지금은 모든 게 무너지고 있는 느낌이다. 일례로 미국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을 보라. 그는 놀라울 정도로 거짓말을 잘하지만 아무도 그걸 눈치채지 못한다. 더 많은 관심을 받기 위해 그의 거짓말은 날이 갈수록 부풀려지고 있다.

-살인마를 예술에 빗대었는데, 예술이 완성되기 위해선 자기 파괴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인가.

=그렇다고 본다. 예술가들은 고통을 즐긴다. 나도 그렇다고 할 수 있나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뭔가를 잘하면 그걸 그만두고 다른 걸 시도하려는 가치관을 지녔다. 인간이 설계된 방식을 거스른다는 점에서 이런 태도가 정말 힘들다.

-현재 어떤 작업을 구상 중인가.

=나한테 즐거운 일을 하려고 한다. <에튀드>(Etudes)라는 제목의 10분짜리 단편영화 시리즈다. 내러티브, 테크닉, 캐릭터 모두 새로운 방식의 작품으로 엄청나게 심플하게, 흑백으로 작업할 생각이다. 프랑스 영화학 교수가 영화의 주제가 될 수 있는 다양한 것들에 대해 써놓은 책이 있다. 작업하는 동안 수년이 걸리겠지만 나눠서 하면 힘들지 않을 것 같다.

-스스로 원칙이 확고한 연출자다. 원칙이나 규칙을 필요로 하는 강박이 있나.

=어릴 때는 없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엄격하게 지키려고 했다. 숙제를 언제까지 할지, 언제 무엇을 할지, 이런 것들 말이다. 일종의 강박장애 같기도 한데, 만약에 어떤 게 똑바로 서 있지 않으면 다음날 방사능 폭탄이 터질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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