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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세 미키오> <영화의 맨살> <꽁치가 먹고 싶습니다> 번역가 박창학 인터뷰
장영엽 사진 최성열 2018-06-14

작사가이자 영화연구자 박창학, 예술의 뒤편에서

오즈 야스지로의 산문집 <꽁치가 먹고 싶습니다>를 읽다가 역자의 이름에서 눈을 멈췄다. 옮긴 이 박창학. 가수 윤상의 음반을 소장하고 있는 이라면, 또는 한국 뮤지션의 노래를 들을 때 크레딧을 꼼꼼히 챙겨보는 독자라면 그의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박창학은 <달리기> <사랑이란> 등 윤상을 대표하는 거의 모든 곡의 가사를 썼으며 김동률, 윤종신, 장혜진, 강수지, 정재일 등과 함께 작업한 작사가다. 담백하지만 긴 여운과 문학적이면서도 서정적인 표현으로 써내려간 그의 가사는 많은 뮤지션들에게 사랑받았다. 윤상은 “내 음악의 절반은 박창학”이라고 말할 정도로 깊은 신뢰를 보였으며 김동률은 인터뷰를 통해 “작사는 대한민국에서 박창학과 이적, 이 두 사람이 제일 신뢰가 간다”고 말한 바 있다.

작사가 박창학이 오랫동안 일본에서 영화이론을 공부한 영화연구자이기도 하다는 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그는 1995년부터 10여년간 와세다대학 문학부에서 영화 이론을 전공했다. 기타노 다케시로 석사 논문을 쓰고, 박사 과정에서 마스무라 야스조를 연구한 박창학은 유학생 시절 <씨네21>의 도쿄 통신원으로 일본영화계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2000년대 중반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작사 활동과 더불어 비정기적으로 일본영화와 예술에 관한 서적을 한국어로 옮기는 일을 시작했다. 일본 감독 나루세 미키오에 대한 해외 필자들의 글을 엮은 <나루세 미키오>와 일본의 저명한 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의 영화비평선 <영화의 맨살>, 하스미 시게히코의 저술서 <나쓰메 소세키론>, 오즈 야스지로의 <꽁치가 먹고 싶습니다> 등이 박창학이 참여한 작품이다. 그렇게 그는 오랫동안 영화의 곁에 머물고 있었다. 영화학자이자 영화서적 번역가로서의 박창학에 대해 좀더 알고 싶었다. 그와의 만남을 청했다.

-최근 류이치 사카모토 특별전 <LIFE, LIFE>에서 아티스트 토크 행사의 일본어 통역을 맡았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자서전 <류이치 사카모토,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에 그에 대한 애정 어린 글을 싣기도 했는데, 류이치 사카모토와의 인연이 궁금하다.

=남미 음악을 본격적으로 좋아하기 전까지 가장 빠져 있었던 뮤지션이 류이치 사카모토다. 내가 일방적으로 그분의 팬이다. (웃음) 음악하는 친구들을 알다보니 이런저런 계기로 류이치 사카모토가 내한했을 때 일본어 통역을 맡은 적이 몇번 있다. 그때마다 인사는 했지만 길게 대화를 나눈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에서 영화를 공부했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행사가 끝난 뒤에도 계속 영화 이야기를 나누길 원하시더라. 선생님과 좋아하는 영화감독이 비슷하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과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에 대한 얘기를 했다.

-그동안 영화학도 박창학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바가 없다.

=본격적으로 영화를 좋아하게 된 건 대학교 1, 2학년 때쯤이다. 우연히 <영화에 대하여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그 책에서 김홍준 감독이 ‘80년대 세계영화 100선’을 소개했는데, 목록에 있는 영화를 찾아보던 도중 타르코프스키의 작품을 알게 되며 영화에 눈을 떴다. 나는 만약 외계인에게 지구의 영화를 소개할 일이 생긴다면 타르코프스키의 작품을 가장 먼저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영화를 통해 시도할 수 있는 예술의 무한한 가능성을 그의 영화가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본으로의 유학을 결심했던 당시에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으로 재직 중이었다. 생업을 그만두고 해외로 유학을 떠나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일했던 몇년은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바빴던 시기다. 아침 7시30분부터 종일 수업을 하다가 퇴근해서는 벽제에 있는 녹음실로 향했다. 윤상이 음악 작업을 많이 할 때였다(두 사람은 고등학교 동창이자 학창 시절 ‘페이퍼 모드’라는 밴드를 결성해 함께 활동했다.-편집자). 녹음을 마치면 나는 다시 학교로 출근하는 패턴이 반복됐다. 그렇게 3년이 흘렀는데 이러다가 영영 교사를 그만두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교사를 오래할 생각은 없었다. 일을 그만두면서 부모님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은 유학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로 유학을 갈까 고민하다가 일본을 선택했다. 당시 영화를 보며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었던 데다 류이치 사카모토 등 일본 뮤지션에 대한 관심도 많았기 때문이다. 또 유학 준비를 하다가 와세다대학에 영화를 만들지 않고 이론만 전문으로 배우는 학과가 있다는 걸 알게 돼 지원하게 되었다.

-음악으로 유학을 갈 생각은 안 해봤나.

=전혀. 내가 작곡에 관심이 많았다면 음악 유학을 생각해봤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퍼포머로서 음악을 하는 데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뮤지션이 곡을 만들면 컨셉을 잡고 가사를 붙이는 게 즐거웠다. 그 당시에 내가 가장 관심을 두고 있었던 건 영화였다.

-와세다에서 박사과정 중 영화 서적을 번역하게 된 계기는.

=이모션북스의 임재철 대표 덕분이다. 그분의 연락을 받고 <나루세 미키오>에 역자로 참여하게 되었다. 이 책은 산세바스티안영화제에서 나루세 미키오 특별전 당시 발매한 프로그램북을 기반으로 하는데, 나는 글을 기고한 일본 평론가들의 글을 번역했다.

-일본의 저명한 영화/문학 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와 인연이 깊다. <나루세 미키오>부터 <영화의 맨살> <나쓰메 소세키론>까지 국내 출간한 하스미 시게히코의 저서 세권을 번역했다.

=처음 일본에 갔을 때는 하도 그의 이름을 자주 들어서 우리 과에 있는 선배인 줄 알았다. (좌중 폭소) 하스미 시게히코는 예술을 공부하는 일본의 학생들에게 귀감이 되는 평자다. 무엇보다 그의 글을 보면 거기에 언급한 영화를 찾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자신이 애정하는 영화가 왜 좋은지를 멋진 언어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하스미 시게히코의 글은 어떤 경지에 올라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스미 시게히코의 문장을 번역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을 거다. 그의 문장은 쉼표를 자주 쓰는 만연체에 가까운 글이다.

=어려웠다. 하스미 시게히코의 글은 프랑스 문학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반영하고 있다. 말하자면 일본어를 프랑스어처럼 쓸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글이 하스미 시게히코의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읽는 사람은 따라가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그러한 그의 독특한 문체를 쉬운 말로 바꿔 쓰기 시작하면 그건 더이상 하스미 시게히코의 문장이 아니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그의 글을 옮길 때에는 최대한 직역에 가깝게 번역하려고 했다. 쉼표를 최대한 살렸고, 한국말에 없는 사역, 수동 표현을 썼다면 가능한 한 그대로 옮기고 싶었다. 번역가로서 그런 입장을 고수하다보니 <영화의 맨살> 같은 경우에는 “한국 독자들이 읽다가 욕한다”며 임재철 대표님이 수정을 많이 했다. 그래서 100% 내가 옮긴 작품이라고 말하기 머쓱하기도 하다.

-오즈 야스지로의 글을 번역하는 작업은 어땠나. <꽁치가 먹고 싶습니다>에 수록된 글 중에는 일기가 많다. 아무래도 평론집보다는 옮기기 수월했을 듯 하다.

=그렇지 않다. 오즈 야스지로의 글이 지금까지 옮긴 책을 통틀어 가장 번역이 어려웠다. 하스미 시게히코의 글은 번역자로서의 내가 어떤 입장을 취할지가 문제였다. 그런데 오즈의 글은 나 자신도 이해를 못하겠는 문장이 너무 많았다. 오즈의 글에는 고유명사가 정말 많이 나온다. 예를 들어 ‘푸른 하늘’이라는 단어가 책에 나온다. 이걸 어떤 맥락에서 썼나 싶어 찾다보니 교토 어디에 있는 굉장히 유명한 과자집에서 만든 양갱 이름이더라. 그런 고유명사를 찾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인터넷 시대가 아니었다면 <꽁치가 먹고 싶습니다>는 번역할 수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작사가로서 가장 먼저 쓴 가사가 궁금하다.

=윤상이 당시 데뷔 앨범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앨범을 내면 자기가 작곡한 곡의 가사는 네가 쓰라고 나에게 얘기하곤 했었다. 하지만 윤상의 매니저들은 당연히 아무 경력이 없는 나보다 박주연 작사가에게 가사를 받고 싶어 했다. 그러다가 윤상이 강수지의 데뷔 앨범에 들어갈 두곡을 작곡했다. <보랏빛 향기>의 가사는 강수지에게 맡길 테니, <꿈은 어디에>는 네가 한번 써보라고 하더라. 그렇게 작사가로 일을 시작하게 됐다.

-처음부터 작사를 계속할 생각은 아니었다고 들었다.

=가사를 쓰는 게 재미는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작업할 생각은 없었고, 윤상이 만들 앨범에 힘을 보태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보니 어느새 작사는 지금까지 내가 해온 일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어 있더라. 내 이름을 걸고 하는 일인 이상 사람들에게 ‘이 가사는 좀 다른데? 아, 역시 박창학이구나’라는 평가를 듣고 싶었다. 윤상과 가장 많은 작업을 했지만, 그와의 협업 안에서도 어떻게 작사가로서 나의 틀을 확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트랙 순서대로 단어를 받아서 이야기가 연결되는 윤상의 6집 《그땐 몰랐던 일들》은 그런 고민의 결과다.

-“시 같은 가사와 드라마 같은 가사가 있다. 내가 쓰는 가사는 드라마에 가깝다”고 말한 적이 있다.

=시와 산문의 차이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다. 나는 똑같은 얘기를 남들과 전혀 다른 시각으로 표현해주는 게 시라고 생각한다. 노래 가사는 전부 내 얘기같이 들리면서도 마지막까지 듣게 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가사는 하나의 드라마를 조금씩 잘라서 보여주는 것과 같은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10부작 드라마 중 4부의 10분가량에 등장하는 남자주인공의 기분을 먼저 보여주는 거지.

-가장 아끼는 가사를 물어봐도 되나.

=윤상 6집에 수록된 <영원 속에>와 정재일의 <주섬주섬>. <영원 속에>는 방금 얘기한 가사의 드라마가 마음에 드는 작품이다. <주섬주섬>은 가사를 먼저 쓰고 거기에 곡을 붙인 첫 작품이다. 나의 가사에 곡이 붙으니 전혀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감동이 있더라.

-작사와 번역은 음악과 글이라는 예술의 형태를 옮기는 이의 해석과 시각이 반영된다는 점에서 비슷한 점이 있는 듯하다.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다. 제로의 상태에서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어내기보다, 이미 만들어진 무언가에 새로운 의미를 붙이는 과정이 나에게는 흥미롭게 느껴진다. 작사를 할 때에도 내가 먼저 가사를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예술 작업의 전면에 나서기보다, 한발 뒤로 물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뭔가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계속하고 싶다.

박창학의 영화음악 베스트5

“음악 자체로서의 완성도나 호불호를 떠나 영화음악으로서 얼마나 영화에 기여하고 있는지가 나에겐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고 박창학은 말한다. 그가 고심 끝에 <씨네21>에 보내온 ‘영화음악 베스트5’를 소개한다.

1.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희생>(1986)

이 작품에서는 <마태수난곡>이 테마로 흐른다. 바흐의 음악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좋은 예.

2. 레오스 카락스 <나쁜 피>(1986)

알렉스(드니 라방)의 자동응답기가 작동할 때, 음성을 남겨달라는 메시지 대신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의 <로미오와 줄리엣> 서곡이 흘러나온다. 극중 몇번의 자동응답기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었기에 나 역시 한동안 통화 배경음으로 이 음악을 썼던 기억이 난다.

3. 기타노 다케시 <3-4x10월>(1990)

이 작품은 영화음악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러한 선택이 너무나 적절했기에 더 빛나는 작품이다. 솔직히 영화에서 음악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음악 때문에 영화 감상에 방해가 되는 작품도 많다고 생각한다. 기타노 다케시의 이 작품은 음악이 없어 오히려 강한 인상을 준다는 점을 깨닫게 해준 첫 영화다.

4. ‘본 시리즈’의 엔딩 테마

어디선가 모비의 <Extreme Ways>를 들을 때마다 자동적으로 ‘제이슨 본’ 영화를 떠올리게 된다. 이 곡처럼 테마음악이 영화 자체로 이해되는 사례도 흥미로운 체험이라고 생각한다.

5. 카를로스 사우라의 <탱고>(1998)

음악으로서의 사운드트랙을 사랑하게 된 작품이다. <탱고> 이외에도 조 라이트의 <어톤먼트>(2007), 엘비오 소토의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1976) O.S.T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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