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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토리> 민규동 감독 - 위안부 영화가 아니라 동시대성의 여성영화여야 했다
이화정 사진 오계옥 2018-06-20

“이번 영화는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갔다.” 위안부 문제를 조명하는 <허스토리>의 연출 곳곳에 민규동 감독의 낮고 힘 있는 한마디가 지지대가 되어주었음이 틀림없다. <허스토리>는 1992년부터 6년간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오가며 피해 사실을 증언한 위안부 할머니들, 그 23번의 기나긴 재판의 기록이다. 위안부 소재를 통해 예상하는 지점에서 벗어나, 이 영화는 어느 한명을 영웅으로 만들지도, 어떤 승리의 환호를 안겨주지도, 피해 사실을 노골적으로 가시화하지도, 인정의 호소로 눈물을 강요하지도 않는, 감독의 말대로라면 ‘상업화된 문법에서 벗어난’ 영화다. 과감하게도 그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착취당했던 우리의 역사이자, 이후 다시 여성이라는 이유로 보호받지 못하고 숨어 살아야 했던 우리의 현재, 그 각각의 ‘그녀들의’ 이야기를 둘러싼 오해와 이해, 그리고 변화의 시간을 치우침 없이 담아내는 강수를 둔다. 주연 대부분이 여성만으로 구성된 이 ‘낯선’ 현장은 데뷔작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1999)부터 끊임없이 사회의 소수자, 약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고자 했던 민규동 감독이 그리던 이상적 현장에 한발 다가간 시도였다. 감독 데뷔 20년에 한층 강단 있는 목소리, 마음이 움직이는 영화로 돌아온 민규동 감독을 만났다.

-최근 <귀향>(2016), <아이 캔 스피크>(2017) 등 위안부 소재의 영화가 개봉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오래전부터 기획한 걸로 알고 있는데, 영화의 시작점은 어디서부터였나.

=3부작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구상해왔다. 10년 전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2008) 직후에 1944년 남태평양 배경의 이야기를 쓰려다가 한번 좌절한 경험이 있다. <간신>(2015) 전에는 그 이후의 이야기인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일제강점기 34년11개월간 자행된 친일파의 반민족행위를 처벌하려고 제헌국회에 설치되었던 특별기구) 관련 시나리오를 준비하기도 했다. 지지난해 가을경에 자료 조사를 하던 중 할머니들을 도운 지금 영화 속 문정숙(김희애)의 흔적을 발견하고 할머니들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이야기로 시점을 바꾸었다. 왜 우리는 위안부 이야기를 힘들어하고, 다 안다고 생각할까. 충분히 이야기되지 않았음에도 너무 많이 이야기된 것 같은 피로감만 남아 있다. 좀더 내가 대입되는 이야기를 만들어보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시선의 방향을 잡고 나서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자료 조사를 많이 했고, 캐스팅도 순조로웠다.

-90년대 있었던 관부 재판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이 한층 더 부각된다.

=당시는 위안부와 정신대가 다르다는 것에 대한 인지도가 낮은 시절이었다. 영화에서도 서귀순 할머니(문숙)가 자신은 정신대가 아니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가족들에게 욕먹고 주변에서 손가락질당하고 그런 시선 안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셨다. 위안부들의 증언집이 5권이나 나왔는데 초판이 다 팔리지 않았다. 차이가 그거구나 싶더라. 홀로코스트의 경우 프레모 레비처럼 홀로코스트를 직접 증언하는 글, 영화, 책이 상당히 많다. 위안부 문제야말로 ‘아시아의 홀로코스트’인데 정작 우리에겐 그 기록이 전무하다. 피해자들이 문맹인 경우도 많고, 전쟁을 겪으며 많이 죽었고, 여러 이유로 기록을 남기기가 불가능한 상황이 된 거다. 일본을 미워하기 전에 우리 사회가 피해자들을 품어주지도 않았다. 이 영화가 ‘위안부 영화’라는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것도 아직 많이 만들어지지 않아서다. 훨씬 더 많이 만들어졌다면 법정 드라마, 여성영화라고 규정됐을 거다. 뒤에 만들어질 영화에 좀더 필요한 시선, 어떠한 영역을 넓혀주는 역할을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피해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을 향한 한국, 일본 재판부의 차별적인 시선에 맞서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결국 지금의 여성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과 다르지 않다고 느껴진다. 여성을 향한 영화 속 상황과 대사를 통해 동시대적인 접점을 보여주고 있다.

=나 자신이 위안부 운동의 삶을 살아온 것도 아니고 그러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그렇다면 하나의 영화로 만들어질 가치가 있어야 그게 더 큰 힘이 되고 의미가 있을 텐데, 프로파간다적인 영화가 아닌 여성영화여야 된다고 생각했다. 감독이 남자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주 흠결이 없는 여성영화여야 했다. 그 시선이 영화에서 제일 중요한 지점이자 나한테 노골적인 의도였다. 결국 동시대성의 문제인데 지금 왜 이 영화를 만들까에 대해 질문했다. 지금 동시대성의 접점은 ‘여성영화’였다. 그들 모두 여성이었고 위안부가 아니어도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문턱, 선입견은 지금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위안부 소재의 영화에서 논란이 되었던 지점 중 하나가 플래시백으로 피해 장면을 부각시키는 부분이다. 자극적으로 재연된 장면으로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장치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온전히 현재의 이야기, 23번의 재판을 통해 극을 전개시키는 데서 영화의 힘을 얻어가는 구성을 택했다.

=한창 남태평양 배경의 시나리오를 작업하면서, 이런 소재의 영화를 만들 때 의도와 달리 내가 오해를 받으면 어떤 지점이 될까, 시선에 대한 고민을 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운동의 역사를 보면 초창기 전 국민적 공분을 찾아내기 위해 누구나 다 민족주의적인 호소를 했다. 꽃다운 처녀들이 힘이 약해서 희생당했다는 논리였는데, 민족의 공분을 사는 데 성공했다. 그 맥락이 지나가면서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문제로 철학적 각성, 여성주의 관점의 운동이 자리잡았다. 개별 여성들의 아픔은 추상적인 역사적 희생으로 치유되지 않는다. 너무 다양한 삶의 형태로 남았고 각 여성들이 남성 권력에 의해 성폭력당했다는 핵심적인 사안이 있었다. 이 영화가 가지고 가고자 하는 핵심도 결국 개별 여성들의 이야기에 있었다.

-배정길 할머니(김해숙)와 지금 세대인 여중생들의 만남에서 설교도 호소도 없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학생들이 할머니를 향해 “할머니 예뻐요”라는 말만을 반복하는데, 오히려 마음을 움직인다. 연출 곳곳에서 눈물을 최대한 배제하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눈물을 강요해서 얻고자 하는 게 뭘까를 생각해보고, 노골적인 신파로는 가지 말자, 본질이 안 보이니 경계하려 애썼다. 평상시 같으면 이 지점에서 더 나아가야 하는데 나름 절제하려고 애썼다. 편집점을 보면 그래서 울음이 터지기 직전에서 장면이 전환되는 부분이 많다. 촬영 중에는 김해숙 선생님이 너무 감정을 이입해서 컷만 하면 눈물을 많이 흘리셨다. 참아달라고 말씀드려도 매순간 할머니의 마음으로 돌아가시고, 감정이 북받치는 상황이 반복됐다. 장례식장 장면에서도 상황이 슬프니 오히려 울지 말자고 말씀드렸는데도 어김없이 눈물을 흘리셔서 지적을 했더니 보다 못한 김희애씨가 ‘슬퍼서 우는 게 무슨 잘못이냐’고 나를 야단치더라. (웃음)

-6년 동안 할머니들의 재판을 앞장서서 이끌어가는 원고단 단장 문정숙은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실제 피해자들의 재판을 이끈 김문숙 회장이 모티브가 됐다. 여행사를 경영했고 자식이 다섯 있었다, 할머니들 재판을 지원하면서 사비로 20억원 정도의 돈을 쓰고 그러면서 재산을 다 탕진하고. 지금은 굉장히 가난하게 사시더라. 지난해 여름 찾아갔을 때도 더운 날씨에 에어컨도 없어 딸한테 사달라고 하니, 따님이 ‘무슨 에어컨이냐 선풍기 사라’며 야단치시더라. 그래서 선풍기 한대 사드리고 왔다. (웃음) 그런데도 자신의 선택에 전혀 후회 안 하시고 박물관에서 아이들한테 그때 기록들 설명해주시고 그러면서 지내신다. 부산 여성의 전화에서 상담도 하고, 관련 책도 7권을 쓰셨다. 어느 순간 인생이 작은 각도로 크게 달라지신 건데, 투신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 그분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반영웅적인 영웅, 영화적인 인물이라 생각했고 이분의 삶이 문정숙 캐릭터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지점이 됐다. 아직 영화를 안 보셨는데, 보시면 또 ‘이건 내가 안 그랬어’ 지적하실 수도 있어서, 그러면 나도, 김희애씨처럼 안 생기셨는데, 김희애씨 캐스팅했다고 말하려 한다. (웃음)

-영화가 위안부를 대하는 ‘우리의 시선’이라고 볼 때 문정숙의 변화의 지점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 안에서 각 세대를 대표하는 적은 분량의 여성 캐릭터들도 부각되고 각자 성장의 시선을 얻게 된다.

=영화 전체는 문정숙 캐릭터의 성장을 따라간다. 처음 ‘기생관광’문제가 불거지자 최 팀장에게 책임을 씌우려 하지만 결국 자신의 잘못이라고 인정한다. 할머니들을 통해서 더 많은 걸 받았다는 걸 말한다. 문정숙의 처음 마음은 “이겨야 할매들 분이 풀리죠”라고 할 정도로 반드시 이겨서 할머니들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했지만, 차츰 세상은 안 바뀌는구나, 우리가 바뀌어야 하는구나를 알아가는 사람이다. 누구나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을 지겠다는 마음이 들기까지가 쉽지는 않다. 그 어려움을 일본에 요구하는 걸 보여주는 거다. 영화 속 문정숙의 딸(이설)은 할머니가 왜 그런지 모르다가 점차 알아가고 이해하게 되는데, 바로 지금의 관객의 모습을 대변한다. 또 간사(이유영)로 들어와서 지금은 할머니들을 위한 전사로 살고 있는 모습을 통해 정대협 초기 모습도 보여주려 했다.

-남성 캐릭터의 배치는 어떻게 했나. 피해자인 위안부를 향한 사회의 차별적 시선을 보여주는 택시 기사부터 변호사(김준한), 배정길 할머니의 아들(최병모) 등 다양하게 구성된다.

=1차적인 남성 권력을 대변하는 몇 가지 시선들이 있다. 위안부 여성들이 겪는 피해로 죄책감과 수치심이 있다. 정절을 잃었다는 공격으로 수치심을 강요하고, 친구들을 배신해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씌운다. 택시 기사들을 통해 그런 지점을 보여주었다. 물론 남녀 대결을 명징하게 대립구도로 놓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여성적인 주체가 일을 하느라 가정을 잘 돌보지 못하고, 또 그 때문에 발목 잡힐 수 있는 여성의 문제를 뚫고 나가서 다음 세대에 전달함으로써 딸이 그다음을 잇는, 여성으로의 이해와 연대라는 것이 맥락상 중요한 화두라고 생각했다. 남성 권력의 도움 없이 문제를 헤쳐나갈 것. 그런 도움이 있다면 자신의 자리에서 전문성을 갖고 자기 역할을 잘하는 변호사 정도만 캐릭터로 두었다. 변호사도 여성으로 할까 하다가 그러면 너무 내 욕심을 차리는 것 같아서 당시를 반영하는 걸로 했다. 변호사 역할에서는 남성성을 100% 제거하겠다 생각했고 그런 배우를 캐스팅했다. 배우에게도 어떤 경우에도 남성성을 드러내지 말고 변호사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연기해야 한다는 포지셔닝을 요구했다.

-할머니들 각자의 캐릭터를 통해 피해의 양상을 세분화한다. 단순한 ‘피해자 이미지’를 넘어 이해 못할 지점들도 그린다. 가령 일본에 피해를 입은 끔찍한 기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입을 모아 일본 군가를 부르기도 한다.

=증언들을 보다보면 인상적인 부분이, 피해자가 너무 도덕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비난을 한다. 그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했던 사람들이 있다. 창기 출신으로 돈을 벌기 위해 그곳에 갔다면 위안부 담론에서 빼야 할까. 처녀다, 창기다, 가 아니라 착취당한 피해자로서의 질문은 똑같다. 모두 인권이 뺏긴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착취를 당한 사람들이다. 영화에서 문정숙이 일종의 포주 역할을 했던 할머니(박정자)를 향해 “그렇게 살면 좋냐”고 비난하다가 4~5년 흐른 후 다시 만나 “당신도 피해자였군요”라는 말을 한다. 그렇게 시선의 입체감을 찾아간다. 할머니들이 일본 군가를 부르는 장면 역시 이상할 수 있는데 한편으로는 할머니들을 이해하는 요소다. 그들이 부를 수 있는 노래가 그것밖에 없다는 것, 뜻도 모르고 군가를 부르는 게 그들의 삶이었다. 피해자는 이래야 한다는 피해자상으로 규정할 수 없는 이런 디테일들을 담는 게 나한테는 중요한 지점이었다.

-혼자 딸을 키우는 문정숙에게 구구절절 전사를 부여하지 않는다. 특히 첫 장면, 부산 여성경제인연합회 회의에서의 강단 있는 캐릭터 묘사를 통해 여성 캐릭터의 독립성을 확고하게 부각시킨다.

=문정숙의 남편에 대한 질문들은 시나리오 과정에서도 있어왔다. 그럴 때마다 “난 관심이 안 생기네” 하고 말했다. (웃음) 배우가 전사를 물어볼 때는 ‘사별’했다고 답했다. 남편의 흔적이 지금 그녀의 삶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특히 부산 지역을 보면 한국영화에 부산 남자에 대한 재현은 많은데 상대적으로 여성은 그려지지 않는다. 자존심이 세고 자립하려는 마음도 강하고 한번 추진하면 물러서기 싫어하고 성격이 화통한 것이 특징이다. 부산 여성들의 비타협적인 인물의 이미지를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을 만들 때 많이 가져왔다. 문정숙과 오랜 동료이자 부산 여성경제인연합회의 회원인 신 사장(김선영), 두 동년배의 연대가 중요하다고 봤다. 남성 연대의 카르텔만큼이나 여성 약자들의 연대를 보여주고 싶었다.

-데뷔작인 단편영화가 동성애를 소재로 한 <허스토리>(1995)였고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에서도 그 이야기를 확장해 상업영화 시장에서 파장을 일으켰다. 위안부 소재의 이야기를 그리면서 지금 다시 그 제목을 꺼내든 이유가 궁금하다.

=그 당시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을 읽었을 때 너무 충격적이었다. 한국 사회의 여성이 억압 속에 살고 있지만 산업화가 일찍 진행된 서구 사회에 대한 판타지가 있었다. 그런데 그 책을 보면서 그곳도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 70년대 여성주의자들이 찾아낸 ‘허스토리’(herstory)라는 단어를 그때 첫 단편 제목으로 썼고 이후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는 그 이야기를 확장해서 만들었다. 이번 영화를 하면서 ‘히스토리가 아니라 허스토리입니다’라는 문구를 쓴 건 영화가 그들을 위안부로 바라보기보다 여성으로 바라볼 때 더 이해의 폭이 깊어진다 생각했고, 영화의 핵심적인 시선이 관통된다 싶었다. 이 제목이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데 23년의 시간이 걸렸구나 싶다.

-위안부를 소재로 한 다른 작품도 준비하고 있었는데, 앞으로 또 다른 어떤 영화를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하고 싶은 영화는 많다. SF 장르도 만들고 싶고. 또 위안부를 소재로 했던 다른 프로젝트는, 남자 전쟁영화는 끊임없이 만들어지는데 왜 여자주인공 전쟁영화는 보기 싫어 할까, 하는 생각으로부터 출발했다. 피해자의 이미지가 아니라 생존자로 그린다면 약간의 다른 시선, 다른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위안부는 폭력의 이미지 하나만 떠올린다. 그를 통해 전쟁을 겪으며 잃게 되는 인간성 상실이라는 더 큰 경험을 이야기하고 싶다. 쉽지 않은 이야기고 충분히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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