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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계①] 근로기준법 개정안 시행 앞둔 영화계의 고민은?
김성훈 2018-07-04

연장근무 아예 불가능하다고요?

지난 6월 25일 CGV명동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최정화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대표가 영화인들에게 주 52시간 근무제를 설명하고 있다.(사진 최정화 PGK 대표)

“촬영이 코앞인데 현장 진행을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가 아프다. 촬영 시간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신은 ‘알바’ 고용도 고려하고 있다.”(A 프로듀서)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환경인 까닭에 시뮬레이션이 안 된다. 그래서 제작비가 얼마나 상승할지 모르겠다.”(B 제작자) “특히 조명감독이 세팅할 수 있는 시간이 짧아져 걱정이 많다.”(C 감독)

근로기준법 개정안 시행을 앞둔 한국영화계에 비상 깜빡이가 켜졌다. 지난 6월 11일 서울 상암동 DMC 첨단산업센터에서 ‘근로기준법 개정안 관련 영화계 현안 설명회’가 열렸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근로기준법 개정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다.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영화 프로듀서와 제작자들이 몰려들었다. 정부를 상대로 퍼붓는 질문 공세를 지켜보면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현재 영화업계에서 얼마나 ‘핫’한지 실감할 수 있었다.

이날 자리에서 나온 질문 하나를 소개하면, 영화 제작 현장에서 촬영 스탭 A씨는 갑자기 비가 내리는 바람에 촬영이 중단돼 동료들과 족구를 했다. 20~30분 만에 비가 그쳐 작업이 재개됐다면 작업이 중단된 직후부터 촬영이 재개되기 전까지 족구를 하면서 보낸 대기시간은 근로시간일까 아닐까. 대기시간이 근로시간에 포함된다는 건 상식인데도, 이런 질문이 나올만큼 근로기준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보였다. 임성환 문화체육관광부 영상콘텐츠산업과장은 “고용노동부는 근로자가 휴식 중이라도 사용자의 지휘나 감독 아래 놓인 상황이라면 근로시간으로 인정된다는 포괄적인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 하지만 개별 업종의 세부적인 상황을 파고들어가면 명쾌하게 규정하기 힘든 경우가 아직 많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의 신중한 설명이 촬영 현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상황을 정리하지 못하는 인상을 주었다는 것이 이날 참석한 많은 프로듀서와 제작자들의 전언이다.

영화산업은 왜 특례업종에서 빠지게 되었나

대체 근로기준법 개정안 내용이 무엇이기에 현재 충무로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되었을까. 개정된 근로기준법의 핵심 내용은 노동시간이 주 52시간으로 단축된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근로자는 앞으로 하루 8시간, 주 5일 동안 노동한다. 휴일근로를 포함한 연장근로가 최대 12시간 주어진다. 주중 40시간과 연장근로 12시간을 합쳐 주 52시간이다. 1주에 최대 68시간 동안 노동을 시킬 수 있었던 기존의 노동 환경에 비하면 무려 16시간이나 단축됐다. 휴일근로 할증률 또한 명확하게 기재됐다. 근로자가 연장근로를 한 경우, 1일 8시간 이내의 휴일근로는 통상 임금의 50% 이상을, 8시간을 초과할 경우에는 통상임금의 100% 이상을 가산해 지급해야 한다. 추가수당과 휴게시간을 조건으로 한 연장근무가 가능해 촬영 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할리우드와 달리 촬영 현장의 주 52시간 근무제는 오로지 한국에만 있는 법이다.

그간 근로기준법이 세 차례 개정(1961년, 1996년)·제정(1997년)되는 동안 ‘영화 제작 및 흥행업’ (지금은 ‘영상·오디오 기록물 제작 및 배급업’이다.-편집자)은 이같은 원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특례업종에 포함되어왔다. 현장에서 근로자 대표와 합의되면 연장근무가 가능했고, 그만큼 휴게시간이 주어지며, 연장근무 수당 또한 근로자에게 지급되었다. 하지만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특례업종이 연장근로의 한도를 적용받지 않고 있어 근로자의 건강과 안전, 공중의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는 까닭에 기존의 특례업종 26개에서 21개를 대폭 제외하기로 했다. 영화 제작 및 흥행업도 21개의 특례 제외업종에 포함됐다. 근로자 대표와 연장근무를 합의해도, 연장근무 수당을 지급해도 노동시간은 하루 8시간, 주 52시간을 넘어선 안 된다.

영화산업의 특례업종 제외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통과된 지난 2월 처음 논의된 내용이 아니다. 2011년 고용노동부가 주관한 ‘근로시간 특례업종별 근로시간 운영실태 및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에 영화 제작 및 흥행업에 대해서 특례업종으로 계속 유지할 필요성이 크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특례업종이 필요 이상으로 과다하게 지정되었다는 문제가 제기되었고, 사업체의 규모가 커질수록 교대제나 시차출근제 같은 방식을 통해 공중의 불편을 해소하거나 업종의 특수성을 극복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던 차다(도동준 영진위 산업정책연구팀 연구원이 작성한 이슈 페이퍼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특례제도 개정과 영화산업’ 참조.-편집자).

그런데 지난 2월 국회가 영화산업을 특례업종에서 제외한 건 tvN <혼술남녀>의 고 이한빛 PD사건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이한빛 PD는 2017년 열악한 방송 노동 환경을 고발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그의 죽음으로 인해 열악한 방송 노동 환경이 큰 화제가 됐었다. 지난 2월 26일 열렸던 임시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강서구병)은 “tvN 이한빛 PD가 사람들이 노동 착취당하는 걸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어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지 않았나. 영상·오디오 기록물 제작 및 배급업과 관련된 직종에서 일어난 일인데 이처럼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불합리한 노동 착취가 일어나는 곳은 특례업종에서 빼는 게 맞지 않나”라고 의견을 냈다. 근로기준법 개정법률안은 그로부터 이틀 뒤인 2월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고, ‘영상·오디오 기록물 제작 및 배급업’에 해당되는 영화산업은 특례업종에서 빠지게 됐다.

지난 6월 11일 서울시 상암동에서 근로기준법 개정안 관련 영화계 현안 설명회가 열렸다.(사진 김성훈)

라인업 선정에 신중해지리라는 예측도

주 52시간 근무제는 기업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시행된다. 300인 이상 사업장은 올해 7월 1일, 50~300인 사업장은 2020년 1월 1일, 5~50인 미만 사업장은 2021년 7월 1일부터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 또 특례업종에서 제외된 21개 업종 중에서 300인 미만의 사업장은 올해 7월1일부터 바로 법이 적용된다. 영화산업의 경우, 촬영 현장 대부분 특례업종 제외에 따른 최대 68시간 근로 환경에 놓이게 됐다. 보통 상업영화는 50~300인 사업장에, 독립영화나 저예산영화는 5~50인 사업장에 해당되니 개정된 근로기준법이 완전히 적용되기까지는 짧게는 1년6개월, 길게는 3년 정도 시간이 남았다는 얘기다.

다른 업종에 비해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는 편이지만, 영화계는 이번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영화산업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단 제작자 입장에선 촬영 기간 증가로 인한 제작비 상승을 우려하고 있다. 제작자 ㄱ씨는 “주 52시간 근무제를 지키게 되면 촬영 회차가 증가하고, 그에 따른 촬영 장비 대여비를 포함한 식비, 장소 섭외비 등 프로덕션 진행비가 덩달아 올라간다”며 “정확한 수치는 아니지만 전체 제작비의 10~20% 정도 상승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되면 제작비 규모가 큰 영화보다 중·저예산 규모의 영화가 더 큰 타격을 입게 될 것 같다”고 예상했다. 제작비 규모가 큰 영화는 어차피 스탭 인건비가 높고, 스탭 숫자가 많으며, 촬영 기간이 길기 때문에 주 52시간 근무제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거라는 판단에서 나온 얘기인데 일리가 있어 보인다. 반대로 독립장편영화나 저예산영화에 적지 않은 부담감을 줄 수 있을 거라는 우려도 있다. 독립영화배급사 인디스토리의 김화범 이사는 “제작비 10억원 미만의 영화가 전체 개봉영화의 70%에 육박한다”면서 작은 영화사에 대한 특례조항 가능성이 있는지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로 확인하기도 했다.

누구도 주 52시간 근무제를 경험해보지 못한 까닭에 투자·배급사들이 라인업을 선정하는 데 더욱 신중해질 거라는 소문도 몇몇 영화인들 사이에서 나돈다. 하지만 이상무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투자제작부문장은 “소문으로 도는 투자 위축은 과한 표현이 아닌가. (웃음) 법이 시행되든 안 되는 투자사 입장에선 좋은 작품이 있다면 안 할 이유가 없으니까”라며 “다만, 투자사 입장에서 현장에서 발생하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좀더 엄격한 프리 프로덕션을 제작사에 요구하는 동시에 스탭의 경력이나 숙련도 같은 노동 생산성을 함께 신경 쓸 수밖에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편으로는 주 52시간 근무제가 개별 스탭의 인건비 하락으로 이어질거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있다. 한 투자사 임원 ㄴ씨는 “하루 8시간 이상 노동을 할 수 없게 되니 스탭들은 추가수당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스탭들이 주 52시간 근무제 이전의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개런티를 요구할 수 있을 것”이라며 “투자·배급사 입장에선 스탭을 해고 할 수 있는 권한을 요구하거나 임금이 낮은 사람만 쓰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개런티가 높은 스탭들은 대우가 좋은 드라마쪽으로 옮겨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영화 인력이 드라마로 유출되면 영화의 완성도가 지금처럼 보장되기 힘들 거라는 논리다. 하지만 비용 증가 원인을 인건비에서 찾는 건 옳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미술팀 스탭 ㅅ씨는 “법이 시행되면서 시스템이 완전히 바뀌는 건데 법 시행 전을 기준으로 제작비가 상승한다고 생각하는 건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얘기”라며 “무엇보다 제작비 상승 원인 중 하나를 인건비에서 찾는 건 여러모로 후진적인 발상”이라고 말했다.

하루 8시간, 주 52시간 노동을 지켜가며 프로덕션을 진행해야 하는 프로듀서 입장에서도 신경 써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곧 촬영을 시작하는 까닭에 개정된 근로기준법에 따라 제작을 진행할 거라는 프로듀서 ㄷ씨는 “스탭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하는 권리라는 점에서 주 52시간 근로제에 크게 공감”하지만 “액션 신, 몹 신 같은 촬영 준비 시간이 많이 필요한 장면을 찍을 때는 고민을 많이 해야 할 거”라고 걱정했다.

촬영 준비 시간이 오래 걸리는 블록버스터나 사극 장르의 경우는 미술팀, 조명팀, 의상팀, 분장팀이 새벽부터 현장에 집합해 촬영을 준비하는 일이 많다. 이들이 준비하는 데 노동 시간을 다 채울 경우 또 다른 스탭이 현장에 투입돼 촬영을 진행하는 진풍경이 펼쳐질 수도 있다. 길영민 JK필름 대표는 “그래서 현장이 유닛제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가령, 규모가 큰 장면을 촬영할 때 오전시간 근무자와 오후시간 근무자로 구분 돼 일을 할 수 있겠다”며 “JK필름은 윤제균 감독의 신작 <귀환> 때부터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도해보려고 한다. 그전에 유닛제를 포함한 여러 시스템을 테스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제작비 규모가 큰 영화를 중심으로 유닛제로 제작이 진행되면 팀별 근로자 숫자가 지금보다 더 늘어날 수 있다. 길 대표는 “그렇게 되면 제작사가 현실적으로 모든 스탭들의 고용을 관리할 수 없게 된다. 근로자의 파견이나 고용을 대행해주는 업체가 생길지도 모른다”며 “새로운 법에 맞춰 현장을 효율적으로만 운영할 수 있다면 추가근무 수당을 주고 연장근로를 하는 것보다 제작 진행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닛제를 현실적으로 도입하기 힘든 중·저예산영화의 경우, 규모가 큰장면 위주로 일용직 근로자를 한시적으로 고용하는 방법도 제기된다. 곧 촬영이 시작되는 한 영화의 제작을 진행하는 프로듀서 ㅅ씨는 “제작비가 넉넉지 않은 영화의 경우 유닛제를 도입하는 게 쉽지 않다”며 “일손이 많이 필요한 장면을 찍을 때만 추가 인력을 한시적으로 고용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 같다. 가령, 일용직 스탭들을 미술팀이나 조명팀의 뒷정리 작업에 투입하면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을 듯”하다고 말했다. 유닛제든, 일용직 근로자 추가 투입이든 업무가 세분화되면 스탭들이 좀더 합리적으로 근무할 수 있게 된다.

선택과 집중이 중요할 때

정해진 시간에 목표 분량을 모두 찍어야 하는 감독이나 촬영감독 또한 선택과 집중에 더 신경 써야 할 분위기다. 영화감독 ㄹ씨는 “장단점이 있다고 본다. 장점은 치밀하게 계산해서 꼭 필요한 장면만 찍어야 한다는 것이고, 단점은 영화라는 업종이 사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필요하지 않은지 100%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더이상 현장에서 새로운 시도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촬영감독 ㅁ씨는 “필터 하나 갈아 끼우는 시간도 아까울 수 있겠다. (웃음) 그래서 촬영부 시스템도 변화가 생길 것 같은데, 가령 촬영 퍼스트는 포커스 풀러로서의 역할에만 집중하고, 퍼스트의 나머지 업무는 그립 팀장이 맡게 되는 시도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저런 고민과 추측이 오가는 상황에서 충무로는 다소 산만하고 혼란스러운 분위기다. 법 시행까지 시간이 남은 만큼 정부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영화계에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할 필요가 있고, 영화계는 주 52시간 근무에 맞는 새로운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10년도 훨씬 전에 ‘148’이라는 숫자가 적힌 영화산업노조 티셔츠를 입고 일한 적 있다. 1은 일주일에 한번은 쉬자, 4는 4대보험 보장하라, 8은 하루 8시간 근무하자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 그런 날이 오긴 할까 궁금했었는데, 맙소사 10년이 지난 지금 현실이 되었다”는 촬영감독 ㅂ씨의 말대로,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은 촬영 현장에서 장시간 노동을 법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노동 시간이 정확하게 정해진 만큼 프로덕션이 톱니바퀴처럼 돌아갈 수 있게 됐고, 좀더 합리적이고 투명한 노동 환경이 갖춰질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이 영화계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지 기대가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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