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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미디어와 청탁금지법은 영화 마케팅을 어떻게 바꿨나
임수연 2018-07-05

디즈니코리아가 <스타워즈> 팬들에게 사과한 이유는?

사진 백종헌

영화계 홍보가 달라졌다. 기자들 대신 파워블로거나 유튜버가 할리우드 배우들을 만나는 시대가 됐다. CGV가 운영하는 SNS 플랫폼은 언론 매체와 인플루언서 중간의 역할을 한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과 뉴미디어 시장의 급격한 성장이 바꾼 영화계의 풍경을 살펴보았다. 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 업계 관계자들의 목소리도 담았다.

CGV 페이스북에 올라온 <앤트맨과 와스프> 홍보 영상.

요즘 해외 블록버스터영화가 개봉할 무렵 현지 인터뷰를 가장 많이 진행하는 곳은 언론 매체가 아닌 CGV 페이스북이다. 그 배경은 다음과 같다. 2016년 11월 30일부터 시행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하 청탁금지법)은 영화사가 교통 및 숙박비 등이 포함된 취재비용을 부담하는 프레스 행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영화사 입장에서는 마케팅의 일환이 될 수 있고 매체 입장에서는 현지에서 직접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성사됐던 정킷 및 세트 방문 인터뷰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하지만 CGV 페이스북 같은 플랫폼은 언론 매체로 등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청탁금지법과 무관하고, 이들은 고유의 채널을 가진 매체로서 초청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최근 할리우드는 기자 및 평론가와 인플루언서(영향력 있는 개인)의 역할을 구분해 이들 모두를 활용하고 있는 추세인데, 유튜버·인스타그램 스타·파워블로거 등의 인플루언서 역시 정식 기자가 아니기 때문에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행사에 참석할 수 있다. 가령 영화 유튜버의 경우 정킷에 초대되면 영화 자체보다 현장 스케치를 담은 ‘브이로그’ 형태로 콘텐츠를 만들고 간단한 인터뷰를 한다. 박인아 워너브러더스코리아 마케팅팀 차장은 “본사에서 인플루언서 초청을 요청할 경우에는 그들을 보내고, 본사에서 기자 초청을 요청하면 CGV 페이스북 같은 언론이 아닌 매체를 보내고 있다”고 정리했다. 또한 전문 매체 인터뷰가 필요할 경우에는 현지 통신원을 활용하거나 서면·전화 인터뷰로 대체한다.

언론, CGV 페이스북 등 영향력 있는 플랫폼 그리고 인플루언서는 미디어에서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한다. “유튜버 등 인플루언서나 페이스북은 광고로 분류하고 있다”는 영화 홍보사 호호호비치의 이채현 대표의 말처럼 아예 카테고리도 다르다. 영화 홍보사 올댓시네마의 김태주 실장은 “본사에서도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영화의 성격에 따라 매체/인플루언서의 비중을 다르게 둔다. 가볍게 즐기는 오락영화는 인플루언서 마케팅에 치중하는 쪽이고, 영화의 의도나 주제를 파악했을 때 좀더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작품일 경우 매체 인터뷰에 신경 쓴다”고 설명했다. 가령 <킹스맨: 골든 서클>(2017)이 유튜버 ‘영국남자’와 함께 한국 음식을 즐기는 영상을 찍는 것은 전자의 효과를 위한 것이고, <블랙팬서>(2018)의 감독 및 배우들은 후자의 이유로 내한 당시 일부 언론 매체와 일대일 인터뷰를 했다. 염현정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마케팅팀 차장 역시 “가벼운 자리와 무거운 자리는 확실히 구분하고 있다. 이십세기폭스의 경우 프로덕션에 관한 내용에 집중해 접근해야 하는 작품이 많다”고 설명했다. 청탁금지법이 시행되면서 현지 취재는 주로 언론이 아닌 매체 및 인플루언서가 수행하게 됐고, 기사보다는 광고 및 오락 위주의 콘텐츠가 중심이 됐다.

유튜브 ‘영국남자’에 영화 홍보차 출연한 배우들.

유튜브 ‘영국남자’에 영화 홍보차 출연한 배우들.

청탁금지법 시행의 긍정 측면

이러한 변화는 분명 업계에 긍정적인 면도 있다. 영화사 입장에서는 언론 매체가 아닌 플랫폼이 타깃층을 잘 겨냥한 조회 수를 올리는 데 효과가 있는 게 사실이다. 이채현 호호호비치 대표는 “특히 CGV 페이스북은 유입자 수가 많기 때문에 언론 매체를 넘어선 영향력을 끼치고, 멀티플렉스 극장의 공식 채널이어서 주 타깃과 완벽하게 일치하기 때문”에 활용한다고 설명했다. 젊은 관객을 겨냥하고 있다면 더더욱 인플루언서가 활약하는 플랫폼이 중요하다. 이곳의 주 이용층은 누구보다 자신이 본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며 감상을 확산시키는 사람들이다.

기자가 기본적인 취재 지원 이상으로 영화사로부터 ‘대접’을 받는 비용 역시 대폭 절감됐다. 영화사가 기자들에게 호화로운 대접을 해주고, 심리적으로 나쁜 기사는 쓸 수 없게끔 만들어 언론의 제 역할을 다할 수 없게 한다는 비판은 꾸준히, 해외에서도 존재했다. 미국 경제 전문 매체 <마켓워치>에 실린 칼럼, “영화 평론가들이 말하지 않는 10가지”는 “어느 영화 기자는 하와이에서 열렸던 정킷을 미니 휴가로 비유했다. 스튜디오의 호의를 받은 비평가들은 순전히 죄책감 때문에 혹은 LA나 마이애미 등 인기 있는 정킷 지역으로의 다음 공짜 여행을 위해 일부러 리뷰를 좋게 써줄 가능성이 있다”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일부 프레스 정킷은 기자에게 현지 관광 및 아울렛 쇼핑, 식사와 술자리에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인 게 사실이다. 기자가 취재를 통해 기사를 쓰는 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듯 회사측에서 그대로 복사·붙여넣기만 하면 (아주 호의적이고) 그럴듯한 기사를 완성할 수 있는 보도 자료를 바로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방송사 홍보팀 관계자는 “이런 점을 악용해 프레스 정킷을 해외에 나가 푹 쉬고 올 수 있는 기회 정도로 보던 기자의 비위를 더이상 맞추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청탁금지법 시행이 준 선물”이라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인한 언론 매체의 정킷 및 세트 투어 제한은 입법 취지에 정확히 부합한다.

유튜브 채널 보겸TV.

BJ 보겸의 <스타워즈> 비하 논란은 무엇을 보여주나

하지만 기자들의 해외 취재 지원이 정말 부당한 특혜였던가에 대해서는 반박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박인아 차장은 “전보다 나아진 건 잘 모르겠다. 사실 취재 현장에 전문 기자를 보내는 게 더 좋은데 오히려 제약만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김태주 실장은 “홍보 마케팅은 시대에 따라 바뀌게 되어 있고 그 방식이 관객의 취향에 따라 바뀌는 것은 분명 좋은 지점이지만, 영화가 너무 재미만을 찾다보면 아쉬운 부분이 생긴다. 분명 영화의 특성마다 즐길 만한 포인트가 따로 있고, 깊이 있는 해석을 요하는 작품들도 있다. 마케팅이 너무 흥미 위주로만 흘러가면 이를 놓칠 수 있다”고 말했다. 영화계는 성실하게 취재에 임하지 않은 사람들은 업계에서 ‘블랙리스트’로 찍혀 다음에 초대받지 못하는 등 상대적으로 기자 관리가 잘 이루어져왔고, 정킷 및 세트 투어를 갔다 왔다고 해서 해당 매체가 반드시 호의적인 기사만 쓰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할리우드 현지의 영화 전문 매체 <스크린랜트> 역시 “영화 평론가, 스튜디오와 뇌물 수수”를 논한 기사에서 오히려 정킷은 양질의 인터뷰를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정킷이나 세트 투어가 마치 좋은 리뷰를 위해 스튜디오가 기자에게 아첨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현실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 스튜디오는 기사 보도를 원하고 언론은 현장 취재를 원하는데 정킷은 양쪽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식이고, 이는 궁극적으로 관객에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취재비용을 지원받아서 비판적인 기사를 쓰기 어렵다는 기자의 심리적 압박감을 고려해 “최소한 정킷을 갔거나 세트 투어를 했던 기자는 해당 영화가 개봉했을 때 리뷰를 쓸 수 없게끔 하는 내부 방침을 두고 있다”고 부연했다. 무엇보다 영화사가 제공하는 사전 인터뷰 자료나 직접 얼굴을 보지 못하고 이루어지는 전화 및 서면 인터뷰가 현지 인터뷰를 완벽하게 대체할 수는 없다. 현지에 있는 통신원이 모든 정킷과 세트 방문 행사를 책임지다보면 각기 특화된 전문 분야가 있는 기자를 활용할 때 생기는 이점은 포기해야 한다.

과연 언론은 광고 및 오락 위주의 콘텐츠가 해낼 수 없는, 반드시 필요한 정보 제공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홍보·마케팅 업계 전체에 지각변동을 일으켰지만 위험 부담도 있는 SNS 플랫폼과 인플루언서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영화계는 언론의 가치를 무엇을 기준으로 평가할 것인가.

광고로 분류되는 플랫폼들이 공식 행사에 초대를 받으면서 전에 없던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오션스8> 뉴욕 정킷 당시 CGV 페이스북은 단독 인터뷰 자리에서 배우 케이트 블란쳇에게 CGV아트하우스 배급작 <버닝>에 대한 질문을 던졌는데, 이때 나온 배우의 멘트는 CGV아트하우스가 배급한 <버닝>의 홍보를 위한 보도 자료로 배포됐다. 대기업 극장 채널이 같은 계열사의 배급작에 관한 이야기를 워너브러더스의 신작 프로모션 자리에서 묻고 마케팅에 활용한 것이다. 한편 <스타워즈> 홍보영상을 찍었던 BJ 보겸은 10~20대에게 인기는 많지만 논란이 많은 유명인을 섭외할 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안 좋은 사례를 남겼다. 그의 영상에는 “<스타워즈>의 홍보대사보다는 마블의 홍보대사가 되고 싶었는데 강제로 한다”는 무례한 발언이나 성인비디오를 연상시키는 행동 등 부적절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에 네티즌의 항의가 거세지자 디즈니코리아는 직접 페이스북에 사과문을 게시하고 영상을 삭제했다. 디즈니측에 따르면 이는 영화가 아닌 채널 마케팅 담당자의 기획이었지만 영향력 있는 BJ를 잘못 활용하면 전에 없던 유형의 돌발 상황이 영화 마케팅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주는 사례가 됐다. 실제로 이미 “일부 인플루언서들이 선물을 주지 말라든지, 이런 질문은 삼가달라는 가이드를 어기는 일이 발생해서 본사의 홍보 담당자들이 당황하는”(김태주 실장)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래서 위험 요소를 줄일 수 있게끔 홍보·마케팅 담당자들도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김태주 실장은 “영화의 장르나 타깃층에 맞추어 적절한 인플루언서를 선정하고, 리스크가 있는 인물인지 사전에 회의를 거친다”고 말했다. 이채현 대표 역시 “콜라보레이션으로 진행하는 건에 대해서는 계약서를 쓰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명시된 내용대로 처리한다”고 설명했다.

국민권익위원회의 답은 이러하다

청탁금지법 시행과 그로 인한 영화 마케팅의 변화는 언론 윤리와 신뢰성을 검토하게 만들었고, 새로운 플랫폼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리스크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뉴미디어의 성장이 기존 매체의 영향력을 상대적으로 약화시키는 전반의 분위기와도 연관이 있다. 공교롭게도 국민권익위원회 청탁금지해석과는 언론사의 정킷 및 세트 방문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요지의 유권 해석을 내놓았다. “청탁금지법 8조 3항 제6호의 예외 사항(공직자 등의 직무와 관련된 공식적인 행사에서 주최자가 참석자에게 통상적인 범위에서 일률적으로 제공하는 교통, 숙박, 음식물 등의 금품 등)에 해당하는지를 따져야 한다. 행사 성격이나 목적에 비추었을 때 그 분야의 전문 기자로 인정할 만한 사유가 있고, 선정 자체가 공정하고 공개가 되어야 한다. 만약 기자단 전체가 간다고 하면 문제가 없을 수 있지만 특정 기자들만 가게 될 경우 선정 과정의 공정성을 판단해야 한다. 기회가 동등하게 부여되고, 내부의 합리적인 기준으로 대표자를 선정했다면 가능하다. 또한 다른 동일하거나 유사한 행사에서 제공됐을 것으로 예상되는 그런 금품이 맞는지도, 행사가 해외에서 개최되어야만 하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 또한 특별한 이유 없이 특정한 사람에게만 교통·숙박비를 제공했는지도 알아봐야 한다.” 다시 말해 법에 저촉되지 않기 위해서는 언론이 누가 봐도 그 자격이 인정될 만큼의 전문성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니 마케팅계의 변화를 두고 이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겠다. 과연 언론은 광고 및 오락 위주의 콘텐츠가 해낼 수 없는, 반드시 필요한 정보 제공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홍보·마케팅 업계 전체에 지각변동을 일으켰지만 위험 부담도 있는 SNS 플랫폼과 인플루언서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영화계는 언론의 가치를 무엇을 기준으로 평가할 것인가. 이와 같은 영화 마케팅의 변화는 현재 영화산업에 있어서 미디어의 지형과 거대 블록버스터가 지향하는 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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