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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스48>는 아이돌 지옥을 어떻게 강화시키는가
임수연 2018-07-12

<프로듀스> 시리즈로 돌아보는 한국의 아이돌 산업

<프로듀스48>

지난 2년간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시리즈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가장 큰 변수였다. 최근 한국에서 새롭게 인기를 모은 아이돌은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 같은 대형 소속사 소속이거나, 방탄소년단이거나, 혹은 <프로듀스> 시리즈가 탄생시킨 그룹이다. 혹은 이 방송과 어떻게든 관련되어 있다. 걸그룹 시장에서 트와이스에 이어 높은 앨범 판매량을 기록한 I.O.I 멤버들은 현재 구구단·우주소녀·위키미키·프리스틴 등의 그룹으로 데뷔하거나 청하처럼 솔로로 활동 중이다. <프로듀스101> 시즌2에서는 데뷔하지 못한 연습생도 탄탄한 팬덤을 가진 아이돌이 될 수 있었다. 워너원으로 선발된 황민현을 제외한 뉴이스트 멤버들은 ‘Waiting’의 의미를 담은 뉴이스트W로 활동 중이며, 팬덤 규모의 척도인 앨범 초동 판매량은 각각 20만장, 15만장을 넘겼다. 탈락한 연습생들이 모인 JBJ와 MXM 역시 기대 이상의 성적을 올리고 김사무엘, 정세운 등이 솔로로 데뷔한 상황을 두고 업계에서는 “언젠가 101명 모두 데뷔할 수 있겠다”는 농담도 흘러나온다. JYP엔터테인먼트의 전소미가 트와이스를 탄생시킨 서바이벌 프로그램 Mnet <식스틴>에서 탈락 후 자의로 서바이벌에 도전한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프로듀스> 시리즈는 이른바 중소 기획사 소속이거나 그만큼의 기회도 잡지 못한 개인 연습생에게 주어진 거의 유일한 사다리로 자리잡았다. 자사의 힘으로 별도의 연습생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자본과 기획력이 있는 SM이나 YG엔터테인먼트는 <프로듀스> 시리즈에 굳이 참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럴 형편이 되지 않는 소속사와 연습생은 어떻게든 눈도장을 찍으면 탈락하더라도 추후 활동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프로그램 시작 전에는 서바이벌 출연이 이미 준비 중이던 아이돌 데뷔 계획을 흐트러지게 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프로듀스> 시리즈가 만들어줄 수 있는 캐릭터를 미리 계산하고 스케줄을 짜는 편이 현실적일 수 있다.

<프로듀스101>

‘악마의 편집’의 희생양이 되지 말지어다

이렇게 성공의 기회를 부여하는 대신 <프로듀스> 시리즈는 참가자의 모든 것을 평가하는 엔터테인먼트의 대상으로 만든다. 이들은 부위별로 실시간 외모 평가를 받으며 단기간에 노래와 춤을 외워서 ‘실력픽’이나 ‘성장 캐릭터’가 되는 기회를 노리는 한편, 방송에 비칠 ‘인성’을 매 순간 신경 써야 한다. 이미 명백하게 아이돌로서 실패한 과거가 있을 시 결과는 보다 극단적이다. 사실 앞서 언급한 뉴이스트의 성공은 극히 예외적인 사례였다. <프로듀스101> 시즌1의 허찬미는 소녀시대에서 탈락하고 남녀공학으로 데뷔했다가 실패했다는 안타까운 사연을 갖고 있었지만, 방송 내내 거만한 이미지로만 비쳐지다 최종 생방송 무대조차 가지 못했다. 이후 출연한 또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 <믹스나인>에서도 최종 멤버에 들지 못하며 아직 데뷔도 하지 못했다. 때문에 그동안 시청자로서 서바이벌 방송의 법칙을 학습한 출연자들은 예상 등수를 너무 높게 적었다는 이유로 욕먹지 않도록, 좋은 파트를 가져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다가 ‘악마의 편집’의 희생이 되지 않도록 리스크 관리를 해야 한다. 반대로 안무를 잘 따라오지 못하는 친구를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대인배적 모습을 보여주면 단숨에 ‘인성 갑’으로 추앙받을 수 있다. ‘센터’가 되면 100명 내외의 출연자 중 한번이라도 더 카메라를 받을 수 있고 생존 가능성 또한 높아질 수 있지만, 인성 논란은 피해야 하는 상황에서 출연자들은 극도의 눈치싸움과 스트레스를 감당한다.

<프로듀스48> 출연자 안유진

<프로듀스48> 출연자 미야와키 사쿠라

소비자 앞에서 을이 되는 아이돌

이런 시스템에서 출연자들은 더더욱 을이 되고, 출연자의 데뷔를 결정하는 ‘국민 프로듀서’ 중에는 자신의 권력을 한껏 과시하는 이들이 생겼다. 원래도 극도의 감정 노동을 요구받던 아이돌에게 더한 ‘갑질’을 떳떳하게 해도 된다는 분위기가 심화된 것이다. <프로듀스> 시리즈의 소비자들이 ‘입양’이나 ‘파양’이라는 표현으로 출연자를 응원하고 버리는 행위를 비유하는 현상은 상징적이다. 약간의 순위 하락에 실망하고 감히 ‘징징대는’ 모습을 보인 것이 괘씸하다는 이유로, 큐브엔터테인먼트의 라이관린, 유선호가 아직 방송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소속사 사람들과 놀이공원에 놀러갔다고, 또는 과거에 여자친구와 일본 여행을 간 적이 있다는 이유로 엄청난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 이는 매주 발표되는 순위와도 직결된다. 상황이 보다 좋지 않은 것은 여자 연습생쪽이다. 기본적으로 남자 아이돌의 팬덤은 강다니엘과 박지훈의 ‘일대일 아이컨택’ 영상이 네이버 TV 캐스트에서만 각각 조회 수 1천만건을 돌파할 만큼 적극적이다. 워너원의 하성운이 방송 중 욕설을 했다는 의혹에 반박하기 위해 팬들이 수백만원을 들여 자칭 소리 전문가 배명진 교수에게 음성 분석을 의뢰하기도 한다. 하지만 2년 전 한동철 전 Mnet 국장은 <하이컷>과의 인터뷰에서 “남자들에게 건전한 야동을 만들어주고 싶었다”며 <프로듀스101>을 여자판으로 시작한 이유를 설명한 적이 있다. 인터뷰가 논란이 되자 본래의 의도와 무관한 오해가 생겨 당황스럽고 죄송하다고 해명했지만, <프로듀스101> 이후 여자 아이돌에게 벌어진 일은 오히려 한동철 국장의 말을 뒷받침한다. I.O.I는 데뷔 이후 출연한 예능에서 ‘삼촌팬’을 위한 애교를 쉴 새 없이 보여주고, 강미나는 ‘먹방’을 하지만 그에 비해서는 날씬한 소녀 이미지로 소모됐으며, 김세정은 사인회 자리에서 ‘공갈젖꼭지’를 입에 물어보라는 무례한 요구를 받았다. 디시인사이드 김세정 갤러리에서 김세정에게 줄 선물을 논의할 때 “처음부터 비싼 거 사주면 버릇 나빠진다”는 말이 오간 것은 일부 ‘국민 프로듀서’가 아이돌을 대하는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아이돌에 대한 소비행태는 <프로듀스> 시리즈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은 아이돌 산업 전반에 확산되어왔다.

일본의 여자 아이돌이 국경을 넘어왔을 때 생기는 일

그리고 6월 15일 첫 방송을 한 <프로듀스48>는 한국의 오랜 ‘품평 엔터테인먼트’와 특히 여자 아이돌을 향한 가학이 더한 쪽으로 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방송에는 일본의 톱아이돌 AKB48 혹은 그 산하 그룹으로 활동 중인 39명의 일본인이 출연 중이다. 일본은 좋아하는 아이돌이 귀를 뚫으면 좋아하지 않는 문화가 있고, 아이돌의 연애가 한국에서보다도 더한 죄악으로 받아들여진다. <프로듀스48>에 출연 중이며 최근 AKB48 총선거 1위를 했던 마쓰이 주리나는 선거 이후 보여준 태도가 “싸가지가 없다”는 이유로 범네티즌적인 조롱을 받고 모든 활동을 중단한 상태다. 이런 산업에서 수년간 버텨왔던 기성 아이돌이 “한국 아이돌의 좋은 점을 흡수해서 한 단계 더 레벨업된 아이돌이 되고 싶다”며 <프로듀스> 시리즈에 직접 뛰어든 것이다. “안무를 맞추는 것보다 귀여움이 중요하다”며 극도의 감정 노동을 해왔던 그들은 혹독한 평가로 눈물을 흘린 후 단기간에 실력이 향상되는 ‘성장 캐릭터’의 모습까지 요구받게 되었다. 동시에 한국 연습생들은 “귀엽고 애교 많고 얼마나 팬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정신으로 무장한 일본 아이돌과 경쟁해야 한다. ‘국민 프로듀서’들이 일본쪽 출연자의 가치를 높게 쳐주고 그들이 화제가 될수록, 한국 연습생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무해한 소녀가 되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을 받는다.

일본에서는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던 이들이 한국에서 인기를 얻을 가능성이 열리면서 일부 시청자의 가학적인 소비 성향도 국경을 넘으며 진화하고 있다. 다케우치 미유는 편곡 능력까지 갖추었지만 이런 요소가 아이돌의 매력 포인트가 되지 않는 일본에서는 총선거 순위권에도 들지 못했고, 지바 에리이는 못해도 너무 못하는 이미지 때문에 엉뚱하게 한국에서 화제가 됐다. 안무 습득력이 빠른 혼다 히토미의 매력은 <프로듀스48> 같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성장 캐릭터”로 빛을 보기 유리하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땅에서 성공의 기회를 잡고자 하는 연습생은 결과적으로 ‘반일 감정’을 매 순간 조심하며 ‘우익 논란’이라는 지뢰까지 피해가야 한다. 또한 국적이 일본이라는 이유로 더한 성희롱을 겪기도 한다. 일본 출연자들은 자국의 SNS 콘텐츠 플랫폼 ‘쇼룸 라이브’에서 종종 방송을 해왔는데, 평소 몇 백명 수준이었던 시청자가 <프로듀스48> 이후 만명 이상으로 대폭 늘어났다. 이곳에서 일부 한국인들은 “어차피 알아듣지 못한다”거나 “일본인이라 고소가 안 될 것”이라는 이유로 온갖 음담패설을 당사자에게 직접 쏟아내고 있다.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프로듀스48>의 한 출연자의 이름이 성인 콘텐츠를 다루는 모 사이트를 연상시켜서 더 마음에 든다는 식의 글이 유머처럼 소비되고 있다.

<프로듀스48>

무엇보다 한국은 자국 경기도 아닌데 일본의 월드컵 경기 중계 시청률이 50%가 넘고 그들의 탈락을 기원하는 사람이 넘치는 곳이다. 동시에 ‘김치녀’에 대비되는 ‘스시녀’의 ‘개념’을 찬양하고 발음이 서툴러 “Shy Shy Shy”를 “샤 샤 샤”라고 발음하는 트와이스의 일본인 멤버 사나가 귀엽다며 열광하는 이들도 있다. <프로듀스48>는 일본을 대하는 한국인의 다면적인 요소를 모두 활용한다. 프로그램 시작 전 일부 대중이 방송을 보이콧한 이유였던 ‘반일 감정’을 아예 쇼에 이용한 것이다. 중국인도, 미국인도 우선 한국 연습생으로 분류시키며 ‘한국 vs 일본’ 구도를 부각하고, “한국 분들은 일본에 와서도 인정받는데 일본 사람은 일본을 나가는 순간부터 인정받지 못한다는 현실을 알아버린 것 같아서 분하다고 생각했다”는 미야와키 사쿠라의 발언을 몇번이고 예고 영상으로 노출시키는 식이다. 그러니 조별 미션에서 일본 연습생이 다수 포함된 ‘단발머리 2조’의 이시안이 “시안이와 아이들이 될 것 같다”는 이유로 센터가 되지 못하는 방송이 나간 후 시청자들은 “왜구에 침략당한 이시안”이라면서 ‘임진왜란’에 비유하며 방송을 소비한다. 한편으로는 가장 혹독한 평가를 받은 일본 출연자들 뒤에 ‘모모랜드의 주이’로 비유되는 야마다 노에의 매력을 보여주고, 레벨 테스트 당시 일본어 가사를 거의 외우지 않은 한국인 연습생과 한국어를 열심히 연습한 일본인 연습생을 대비시키며 “한국은 실력, 일본은 성실함과 매력”이라는 프레임도 짠다. 때문에 일본 연습생이 K팝의 노하우를 배우는 데 분노하는 시청자도, 일본 아이돌은 무엇이든 받아줄 수 있을 것 같아 좋다는 시청자도 <프로듀스48>를 소비할 이유가 생긴다. 그리고 이들이 서로를 ‘일빠’와 ‘국뽕’으로 지칭하며 싸우고, 적극적으로 다른 출연자의 ‘논란’을 발굴하며 라이벌을 추락시키키려는 전쟁이 시작되면 방송의 화제성은 더욱 치솟을 것이다.

<프로듀스48> 출연자 장원영.

CJ E&M이 만드는 경쟁 시스템 안에서

<프로듀스> 시리즈가 예능 프로그램의 파급력만큼 완성도 높은 콘텐츠를 보여줬는가에 대해서는 항상 물음표가 붙었다. 애초에 방송이 개개인에게 부여한 캐릭터는 <슈퍼스타K> 시절부터 존재했던 ‘인성 논란’과 ‘성장 캐릭터’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색다른 매력을 발굴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해 분투한 것은 방송의 팬덤이었다. 심지어 그룹명도 시청자 공모로 돌리는 CJ E&M이 자본으로 경쟁 시스템을 만든다는 것 외에 콘텐츠 생산자로서 무엇을 잘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드는 상황에서, 아이돌의 이미지를 만들고 마케팅까지 펼쳐온 소비자는 전보다 더한 권력을 내세운다. 어떤 책임감도 안전장치도 없는 거대 미디어 그룹이 만든 시스템하에 여성의 모든 것을 품평하고, 한일전 오락을 즐기고, 무해하고 상냥한 일본 여성을 향한 판타지를 소비하는 온갖 욕망이 국경을 넘어서서 한데 혼합되고 있다. <프로듀스48>는 글로벌 시장에서 사랑받을 걸그룹 제작을 표방하며 기획됐다. 아이돌 산업의 좋지 않은 것은 모두 집결되고 있는 이 방송에서 ‘글로벌’이 도대체 어떤 의미가 될지, <프로듀스> 시리즈의 여파를 대대적으로 받아온 아이돌 산업에 어떤 후폭풍을 가져올지 사뭇 궁금해지는 진짜 지옥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