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우리' 확장하기③] 난민 이슈를 다룬 영화 15선 Ⅱ
김소미 2018-08-08

‘타자’에서 ‘우리’로

<영원과 하루> Mia Aioniotita Kai Mia Mera

감독 테오 앙겔로풀로스 / 제작국가 그리스 제작연도 1998년

어떤 오후는 평생 삶의 한가운데 박혀 있다. 불치병을 앓는 초로의 시인 알렉산더(브루노 간츠)에겐 젊은 시절에 아내와 함께했던 눈부신 여름날이 그렇다. 병원 입원을 하루 앞두고 정처없이 떠돌던 시인이 신호등 앞에 잠깐 정차한 사이, 대로변에 줄지어 서 있던 알바니아 난민 소년 중 하나가 뛰어와 유리창을 닦아준다. 자신의 유장한 내면 세계를 떠돌다 말고 냉랭한 현실을 마주한 그리스의 시인은 소년이 경찰의 단속을 피할 수 있도록 옆자리를 내어준다. 찰나의 순간 두 사람이 서로의 삶에 불쑥 뛰어드는 것처럼 연출된 이 장면 이후로 알렉산더에겐 얼마 남지 않은 삶 동안 평생 기억하게 될 또 하나의 오후가 생긴다. 90년대 후반에 극심한 내전을 피해 국경을 넘어온 알바니아 난민들을 마주해야 했던 조국에 보내는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의 전령과도 같은 작품이다. 자욱한 안개 속, 소년을 돌려보내려 국경지대로 향한 알렉산더가 철조망에 걸려 있는 시체들의 풍경을 목도한 뒤 아이를 껴안고 다시 되돌아 나오는 장면은 쉽사리 잊기 힘든 감정의 여진을 남긴다. 1998년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다.

<인 디스 월드> In This World

감독 마이클 윈터보텀 / 제작국가 영국 / 제작연도 2002년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의 처절한 밀입국기를 그린로드무비. 모든 장면이 실제 상황인 양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마이클 윈터보텀 감독 특유의 다큐멘터리적 연출력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2003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2002년, 파키스탄 북서부 국경 지역의 샴샤투 난민 캠프. 5만3천여명의 난민이 모여 사는 이곳에서 태어난 소년 자말은 사촌형 에나야트를 따라 목숨을 건 영국행에 동참한다. 이후 영화는 사막과 산을 건너는 지독한 행군의 과정, 수차례 이어지는 검문의 공포, 아이들의 인권을 유린하고 경제적인 착취를 일삼는 부패한 어른들의 악행으로 얼룩진다. 중앙아시아의 화려한 무역 통상로였던 실크로드는 <인 디스 월드>에서 밀입국 알선 일행에 목숨을 내맡긴 난민의 행렬로 채워진다. 윈터보텀 감독은 파키스탄의 실제 난민들을 섭외해 이란, 터키, 이탈리아 등을 거치는 긴 여정을 처절하게 응시한다. 인공조명을 배제한 들고 찍기 방식의 촬영이 날 선 고발과 뜨거운 호소의 두 가지 측면 모두에 제 몫을 해낸다.

<웰컴> Welcome

감독 필립 리오레 / 제작국가 프랑스 / 제작연도 2009년

수천 킬로미터를 횡단해 프랑스에 도착한 17살 이라크 소년 비랄이 있다. 그의 최종 목적지는 여자친구의 가족이 먼저 정착한 영국. 화물칸에 숨어서 밀입국을 시도했던 비랄은, 이산화탄소 농도검사 과정에서 숨을 참는 데 실패해 발각된다. 프랑스에 남게 된 그는 바다를 헤엄쳐 영국으로 갈 결심을 하고, 중년의 수영강사 시몬에게 강습을 부탁한다. 시몬 덕분에 비랄의 프랑스 생활이 비교적 안온한 듯 보여도, 배도 아닌 맨몸으로 한겨울의 도버 해협을 건너는 일이 얼마나 허망한 확률에 기댄 일인지 굳이 덧붙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쓸쓸한 서사로부터 6년 뒤인 2015년, 가족이 탄 배가 전복돼 터키 해안가로 떠내려온 시리아 난민 어린아이의 시신이 전세계에 보도됐다. 비랄이 꿈꾸는 영국마저 브렉시트로 빗장을 걸어 잠근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웰컴>은 다가올 더 큰 비극들을 예측이라도 한 듯 시몬을 섣불리 영웅화하지 않는다. 파도를 가로지르는 청년이 조금이라도 더 쉬이 앞으로 나아가도록 염원의 물살을 보탤 뿐이다.

<디스트릭트 9> District 9

감독 닐 블롬캠프 / 제작국가 남아프리카공화국, 미국, 뉴질랜드, 캐나다 / 제작연도 2009년

1982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불시착해 제9구역에 격리된 외계인들을 새로운 곳으로 대거 이주시키려는 프로젝트가 실행된다. 이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 실제 존재했던 ‘제6구역’에 아주 약간의 상상력만을 더한 결과다. 짐바브웨를 비롯한 주변 국가에서 모여든 불법 이민자들이 격리된 제6구역은 상업시설과 백인들의 거주지를 명목으로 강제철거를 당했다. <디스트릭트 9>이 건네는 진정한 공포는 외계국 관리국 책임자인 비커스가 외계물질에 노출돼 조금씩 변이하는 과정이 아니다. 인간들이 우주선을 강제 개방하고 들어가 처음 목도한 광경. 오랫동안 갇힌 채 극심한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외계인들의 모습은 밀폐된 컨테이너 박스에 잠입해 수일간 질식 직전까지 이동하는 난민의 이미지를 선명하게 환기시킨다. 인도주의를 주장하고, 시혜를 베풀고, 혐오하고, 착취를 행하는 쪽 모두가 인간이다. <디스트릭트 9>은 SF적 여과 장치를 통해 인종차별, 철거민과 불법 이민자의 인권 등 넓은 범주의 난민 문제까지 포괄하는 섬뜩한 우화다.

<유랑하는 사람들> Human Flow

감독 아이웨이웨이 / 제작국가 중국 / 제작연도 2017년

중국 현대시의 대부 아이칭의 아들이자 개념미술가로 이름을 알린 아이웨이웨이 감독의 야심작.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다큐멘터리 <유랑하는 사람들>은 그 자신이 공산주의 정권으로부터 추방당한 예술가로서 난민과 이주민을 향한 공감과 연민을 녹여낸 작품이다. 카메라를 들쳐업고 전세계의 난민들을 담은 이 영화에서 아이웨이웨이는 탁월한 에세이스트의 기질을 발휘한다. 첨예한 정치적 이슈보다는 한 인간이 난민의 조건에 처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관객에게 몸소 느끼도록 주력하는 것이다. <가디언>이 “조금 더 알려질 필요가 있는, 과소평가된 작품”이라 일컬었던 이유 또한 짙어져가는 21세기의 비극을 이처럼 시각적으로 강렬하고 아름답게 전달하는 영화는 드물기 때문은 아닐까. <유랑하는 사람들>의 카메라는 상공으로 높이 떠올라 이전까지 현실의 뉴스 화면이나 다른 극영화가 보여주지 않았던, 거대한 난민의 행렬을 유랑하듯 좇는다. 이 영화의 시간은 오로지 정착지를 갈망하는 이들의 끝없는 움직임을 따라서만 흘러간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