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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의 가족 구성원들
이화정 2018-08-09

진짜로 있을지도 몰라, 가족

<어느 가족>

<아무도 모른다>(2004)로부터 <어느 가족>(2018)에 이르기까지 14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가족 서사 속에서 가족은 모양이 제각각이지만 모두 하나같이 때론 징그럽고, 그럼에도 내다버릴 수 없는 존재로 자리한다. 부자지간으로 일관하는 이야기 같았지만 어느새 할머니에서 엄마로 이어지는 <어느 가족>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고레에다 영화 속 가족들을 소환해보았다.

가족을 감싸안는 포근함 할머니

할머니는 늘 고레에다 가족의 버팀목이었다. 고지식한 아버지의 아내였고, 변변히 자리잡지 못한 못 미더운 아들들의 어머니였고, 손자를 예뻐하던 푹신한 스펀지 같은 존재였다. 부자가 괜한 신경전을 벌일 때도 어머니는 언제나 한 귀로 흘리며 집안에서 바지런히 몸을 움직이는 생활인이었다. 그런 할머니가 <어느 가족>에서는 죽는다. <아무도 모른다>부터 시작된 고레에다 가족 연작에서 ‘직접적’으로 할머니의 죽음을 맞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에서는 부모 대신 세 자매를 키운 할머니지만 영화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출발한다. <걸어도 걸어도>(2008)에서도 할머니는 죽지만, 그건 아들 료타(아베 히로시)가 애증 관계에 있던 아버지의 훗날 벌어질 죽음을 언급하며 “어머니도 결국 (그렇게 바라던) 아들이 모는 차에 태워드리지 못했다”고 언급한 정도였다. 이때의 죽음은 ‘언젠가 우리 부모도 돌아가시겠지’ 정도의, 상상하기는 싫지만 다가올 막연한 슬픔에 불과했다. 그런데 <어느 가족>의 할머니 하츠에가 가족들이 가장 행복했던 추억을 쌓으러 간 바닷가에서, 그 추억이 될 모래를 검버섯이 피어오른 늙은 팔에 덮던 순간에는 직접적인 사망의 충격, 상실이 뒤따라온다.

고레에다 감독은 어느 날 밖에서 식사를 하고 헤어지던 엄마의 멀어져가던 등을 보고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걸어도 걸어도>를 만들었다고 한다. 매 영화에서 할아버지가 다른 배우로 등장했던 것과 달리 고레에다의 할머니는 언제나 기키 기린이었다는 점, 그녀가 해를 거듭할수록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는 애잔함은 고레에다 가족 서사 속 하나의 히스토리가 된다.

그리운 그림자 할아버지

<걸어도 걸어도>

고레에다 가족의 할아버지는 늘 가족과 거리를 둔다. 고지식하고, 체면이 앞선다. <걸어도 걸어도>의 첫 장면, 딸이 산책 나가는 아버지 쿄헤이(하라다 요시오)에게 우 심부름을 시키려 하자 엄마 토시코(기키 기린)는 손사래를 친다. “한번 원장은 영원한 원장이야.” 동네 의원 원장으로 평생을 지내온 그는, 위독한 환자의 호출에도 이제는 역부족이라고 말해야 하지만 가족에게만은 체면을 지키려고 한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의 할아버지(하라다 요시오)는 생활력 없는 남편과 헤어지고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온 딸이 못내 애처롭다. 딸의 살림에 도움이 되려고 ‘가루칸’(가고시마 전통떡)을 만들어 팔려고 하는데 많이 팔려면 전통적인 흰색이 아닌, 곧 개통되는 사쿠라 신칸센 컨셉에 맞춰 핑크색으로 해보라는 친구의 권유를 받는다. 하지만 “핑크는 절대 안 돼!”라는 것이 고지식한 그의 신념이다. <태풍이 지나가고>(2016)에서 언급되는 죽은 할아버지는 가족들에게 애증의 대상이다. 누나는 늘 파친코로 돈을 날려, 이웃에 돈을 빌리러 다니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고, 그런 아버지와 ‘붕어빵’인 남동생마저 못마땅하다. 그렇게 늘 공격의 여지가 있던 집안의 할아버지는 한편으로는 손자의 ‘땡땡이’에 적극 협조하는 인정 많은 할아버지(<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이자, 아들의 의붓아들이 될 아이에게 몰래 용돈을 주는 인심 좋은 할아버지(<걸어도 걸어도>)이며, 데면데면하던 아들의 첫 소설 출간 소식에 “엄청난 가치가 있는 거”라며 동네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다니는 그런 아버지(<태풍이 지나가고>)였다. <후지TV> 드라마 <고잉 마이 홈>(2012)에서 아버지(나쓰야기 이사오)의 장례식 후 그제야 밀려오는 슬픔은 자전적 이야기를 다룬 에세이 <걷는 듯 천천히>에서 아버지의 까슬한 수염을 그리워하던 감독 자신의 모습과 꼭 닮아 있다.

꿈을 좇는 철없는 남자 아버지

<태풍이 지나가고>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의 아버지 켄지(오다기리 조). 아이가 둘 있는 가장이지만 인디밴드의 꿈을 좇으며 ‘학생처럼’ 살아가는 켄지는 아들에게 “세상에는 쓸모없는 것도 필요하지. 전부 의미 있는 것만 있어봐. 숨막혀서 못 살지”라고, 참 잘도 말한다. 그러니 아들이 대뜸 “전부 쓸모없는 것만 있어도 안 되잖아” 하고 항변하는 거다. 켄지 말처럼 고레에다 영화 속 아버지들은 하나같이, 본인 말대로는 ‘대기만성형’이자, 가족들이 보기엔 ‘이상만 좇는 사람’이다. 그러니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온천장에서 일하던 아버지는 자식들을 등진 잔인한 사람이지만, 남들에게는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아무도 모른다>에서 의붓아버지들은 모두 아이들을 외면하는 남자이다. <걸어도 걸어도>의 료타는 의사되기를 강요하는 아버지의 바람 대신 그림 복원사가 됐는데, 지금은 일자리가 없어서 곤란함에도 아내에게 “우리 집엔 비밀로 해줘”라며 상황을 모면하는 데에만 힘쓴다. <태풍이 지나가고>의 료타(아베 히로시)는 흥신소에서 남의 뒤를 캐 돈을 벌고, 그 돈은 경륜으로 탕진하고, 쓰려는 소설은 진척이 없는 한심한 인생. 전 부인의 표현대로라면 “아빠 행세”만 하고 싶을 뿐 매달 지급한다던 양육비를 낼 돈조차 없다.

진짜 아버지들과 달리 <어느 가족>의 ‘만들어진’ 아버지가 오히려 더 이상적인 아버지를 보여준다. 무학인 쇼타와 가장 닮은 건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에서 바뀐 아들을 키우던 전파사 주인 유다이(릴리 프랭키)다. 잘나가는 대기업에 다니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소홀히 하는 또 다른 아버지 료타(후쿠야마 마사하루)를 향해 유다이는 “애들은 시간이에요. 아버지란 일도 다른 사람은 못하죠”라고 말한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 뒤바뀐 아이 둘은 시간을 들여 놀아주는 유다이와 더 친밀해지는데, 그렇게 그들이 친해지는데 걸린 시간은 6개월. <어느 가족>에서 유리(사사키 미유)가 가족과 함께 린으로 살아가길 원했던 그 행복했던 6개월과 같은 기간이다.

가족의 현실적인 기반 어머니

<어느 가족>

<태풍이 지나가고>의 무낭한 전남편 로타가 재혼하려는 전 부인에게 “사랑이 아니잖아”라고 말하자, 아내는 “사랑만으로 살 순 없어 어른은”이라고 되돌려준다. 고레에다의 가족 서사 안에서 아내들은 ‘자주’ 능력 없는 남편들을 다그치고 돌봐주는 존재로 등장한다. 누나는 “아버지가 착실히 일했다면 엄마도 연립주택에서 벗어났을 텐데”라고 말하지만, 그건 가정법에 불과하고 현실의 아버지들은 늘 엄마의 속을 썩였다. 아버지들이 아버지로서 존경받길 원하고, 혈연을 고민하는 동안 엄마들의 마음은 달랐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 유다이의 아내 유카리(마키 요코)는 “피가 연결되니 아니니 따지는 건 아이와 연결되지 않은 남자들의 생각”이라고 말한다. 그건 료타를 길러준 새어머니 노부코(후부키 준)도 마찬가지다. “피로 연결이 안 됐어도 같이 살다보면 정도 들고 닮아가지…. 나는 그런 마음으로 너희들을 키웠는데”라고 말한다.

현실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어느 가족>에서 할머니의 죽음 이후부터 가족이 함께했던 동화 같은 전말이 뉴스에나 나오는 극악한 현실이 되듯, 고레에다 영화가 그리는 사건들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아무도 모른다>는 친엄마가 차남의 시체를 벽장에 유기하고, 이후 남겨진 아이들을 떠맡은 장남이 막내를 다시 유기한 후 밝혀진 끔찍한 실화가 배경이다. 물놀이 사고로 아들을 잃은 <걸어도 걸어도>, 병원에서 바뀐 아이를 6년이나 길렀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상황 역시 소소할 수 없는 현실의 모습이다. <어느 가족>의 노부요(안도 사쿠라)는 그 피할 수 없는 운명 속에서 이미 죽은 할머니로 인해 감상에 빠지는 남편과 달리 죽음은 “어쩔 수 없”는 것이자 “순리대로 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돈 드는 장례식 대신 “외로운 할머니 곁에 좀더 있어드리”는 걸 택하는 현실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자신의 행복을 위해 아이들을 등진 <아무도 모른다>와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무책임해 보여 때로 원망을 사는 엄마들과 달리 <어느 가족>의 노부요는 해고될 상황에서도 아이를 선택한다. 유괴범이냐는 경찰의 심문에 “버린 걸 주운 겁니다”라고 말하는 그녀의 얼굴을 영화는 정면으로 응시한다. 늘 어머니들의 눈물을 옆에서 담던 고레에다 감독의 변화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희망의 증거 아이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그렇게 이 모든 현실의 벽 앞에서도 고레에다의 아이들은 성장한다. 못난 부모처럼 되지 않으려 노력할 만큼 철이 들었고 시크하다. <아무도 모른다>에서 어린 유키(시미즈 모모코)의 죽음. 아이들은 유키가 처음 집에 들어올 때 몸을 숨겼던 트렁크에 유키의 사체를 넣으려 한다. 유키의 몸이 들어가지 않자 그 의식을 도와주던 소녀는 말한다. “키가 컸구나 유키.” 아이들은 6개월 만에도 자라는 존재이자, 때로 어른보다 현명하다. <세 번째 살인>(2017)에서 사키에(히로세 스즈)는 엄마의 밥을 차려주고, 엄마의 위법을 꾸짖는 철 든 존재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의 형제가 가고시마와 후쿠시마에서 떨어져 사는 건 이혼한 부모를 걱정해서다. 형 코이치(마에다 고키)는 아무 맛도 없다던 가루칸의 맛을 알게 되고, 형제의 키도 부쩍 자란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 동생이 기억하는 장녀 사치(아야세 하루카)는 매일 밤 부부싸움을 하는 엄마를 “몇번이나 위로해”주던, 일찍 철이 든 아이였다. 그런 사치가 15년 만에 가족을 버리고 집 나간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들었을 때, 장례식에 가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이 일견 수긍이 간다. 그때 떠오른 건 고레에다의 가족영화의 출발점인 <아무도 모른다>의 둘째 딸 교코(기타우라 아유)였다. 엄마가 남자친구를 따라 집을 나가고 남겨진 4명의 이부자매. 장남 아키라(야기라 유야)가 책임감과 절망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사이, 교코 역시 상처받고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온다고 하던 엄마가 끝내 돌아오지 않았을 때, 실수로 엄마의 매니큐어를 쏟았던 일을 상기하며 “내가 못되게 굴어서 그런가?” 하고 곱씹어 자신을 자책하던 소녀는 동생을 잃고 난 후 어떻게 성장했을까.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사치처럼, 훗날 소식이 끊겼던 엄마의 부고를 접한다면, 교코 역시 선뜻 엄마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큰언니는 결국 이복동생 스즈(히로세 스즈)에게 함께 살자고 손을 내민다. 부모 대신 자기가 건사하던 다른 동생들에게처럼, 스즈에게도 가족들이 나누던 매실주의 맛을 알려주며, 그렇게 함께 살아간다. 고레에다가 아이들을 통해 보는 빛, 희망의 모습이기도 하다.

<아무도 모른다>

고레에다 사단? 그의 단골 배우들

기키 기린_ 고레에다 영화 속 영원한 할머니. <걸어도 걸어도>에선 물놀이 사고로 아들을 잃은 아픔을 간직했지만, 가족 몰래 파친코장에도 가고, <블루라이트 요코하마>도 들으며 슬픔을 삭이는 토시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 바뀐 아이를 둔 미도리(오노 마치코)의 친엄마 리코로, “어쩐지 안 닮아 보이더라”며 염장을 지르다가 딸을 위로해주는 엄마,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서 이혼한 딸을 다독여주던 엄마로, <태풍이 지나가고>에선 남편과 사별하고 못 미더운 아들을 둔 요시코로,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는 코다가 7주기에 참석한 이모할머니로, <어느 가족>에서는 만들어진 가족의 구심점이 되는 하츠에로 출연한다.

아베 히로시_ <걸어도 걸어도> <태풍이 지나가고>의 아버지 료타, TV 드라마 <고잉 마이 홈>에서의 아버지로 고레에다 가족 서사 속 가장 전형적인 남성을 연기.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선 형 코이치의 담임 선생님으로 출연한다.

릴리 프랭키_ 고레에다 영화 속 또 하나의 아버지 이미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 냉정한 아버지 료타와는 사뭇 다른 따뜻한 심성을 가진 아버지. 그 이미지가 <어느 가족>의 아버지 쇼타와 꼭 닮았다. <태풍이 지나가고>에서는 흥신소 소장으로,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는 바다고양이 식당의 정 많은 주인으로 분한다.

유_ <아무도 모른다>에서 아이들을 버리고 집을 나간 엄마. “제멋대로인 건 혼자 떠나버린 네 아빠야. 난 행복해지면 안 돼?”라고 아들을 향해 되묻던 엄마는 <걸어도 걸어도>에서 딸 지나미로 출연, 가정에 헌신하는 엄마와 달리 고레에다의 남성들을 다그치는 ‘누나’ 역할을 한다(드라마 <고잉 마이 홈>에서도 료타의 누나다).

하라다 요시오_ <걸어도 걸어도>의 할아버지. 동네의원 원장으로 고레에다 가족 서사 속 꼬장꼬장한 할아버지의 표본. 이후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서는 할아버지의 동료로 등장해 조언을 해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가세 료_ <아무도 모른다>의 아이들에게 유통기한이 지나긴 했지만 편의점 음식을 챙겨준 아이들의 숨은 조력자인 편의점 직원은, <아무도 모른다>의 후일담 같은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 둘째 요시노(나가사와 마사미)의 회사 과장으로 등장해 그녀의 흔들리는 마음을 잡아준다.

마키 요코_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 유다이의 아내로, 피를 나누지 않았지만 이어진 가족의 가치를 설파하던 현명하고 강단 있던 유카리. <태풍이 지나가고>의 아내 쿄코로 등장해, 감성적인 전남편과 달리 이성적인 엄마 역할을 수행해낸다.

마에다 오시로_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서 철없는 아버지를 챙겨주던 류노스케. 훌쩍 자라서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는 언니 집에서 살게 된 스즈의 동네 친구이자 그녀를 좋아하는 사춘기 소년으로 등장. 스즈에게 벚꽃터널을 보여주는 낭만적인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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