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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한국영화②] <물괴> 허종호 감독 - 낮은 사람들이 높은 곳을 지켜내는 이야기에 끌렸다
김현수 사진 백종헌 2018-09-19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해괴한 존재, ‘물괴’를 소재로 한 허종호 감독의 신작 <물괴>는 한국 괴수영화의 시대 배경을 조선시대로까지 확장한다. 현대적인 무기도 없고, 과학 기술도 발전하지 못한 조선 땅에서 사람들이 괴수와 벌이는 싸움의 형태란 과연 어떤 모습일까. 혹은 빌딩 숲 도시와는 전혀 다른 조선시대의 경복궁에서 펼쳐지는 괴수와의 싸움은 과연 어떤 시각적 쾌감을 선사할까. 기대 반 우려 반의 시선을 받으며 공개된 <물괴>의 허종호 감독은 과연 어떤 비전을 갖고 이 도전에 합류하게 됐을까. 웬만한 애정과 인내력을 지니지 않고서는 쉽사리 덤빌 수 없었을 것 같은 프로젝트의 지난한 과정에 대해 물었다.

-‘물괴’가 허구의 사건이라 생각했는데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더라. 중종 22년 즈음부터 ‘삽살개 같고 망아지 같은’ 물괴가 궁에 출몰했고 왕이 걱정하여 대비전까지 옮기는 일이 있었다고.

=허담 작가가 어느 날 조선시대에 괴물이 나오는 꿈을 꿨다고 한다. 검색해보고서 정말 물괴가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고, 그래서 시나리오를 썼다고 하더라.

-허담 작가도 처음부터 괴수영화로 가닥을 잡고 시나리오를 써내려 간 것인가.

=처음에는 정치적인 이야기가 도드라지는 사극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장점은 궁을 배경으로 한 괴수영화로 접근했을 때 더 돋보일 것 같았다. 내가 합류해서 캐릭터부터 다시 만들어보자고 덤볐다.

-괴수영화라는 기본적인 틀 외에 <물괴>가 보여줄 수 있는 무기가 무엇이라고 판단했나.

=세 가지 전략이 있었다. 첫 번째로, 물괴의 의미. 역사적으로 물괴가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그 존재 때문에 왕이 궁을 잠시 떠났다? 그렇다면 과연 이게 뭘까? 당시의 어떤 사회적 재난이 물괴라는 이름으로 기록됐을지도 모른다는 상상력. 그리고 두 번째는 물괴의 외형. 물괴는 무조건 공포스러워야 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등장할 것. 실제로 궁에 나타났을 법한 존재여야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조준방이란 공간도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세 번째로 가장 낮은 곳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이 재난에 맞서 왕이 떠난 가장 높은 곳을 지켜내는,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맞서 싸우는 이야기. 이 세 가지가 영화의 방향을 결정하는 핵심이었다.

-물괴의 존재감에 맞서는 전직 내금위장 윤겸(김명민)은 영화의 또 다른 축을 책임진다. 윤겸을 둘러싼 4인방을 캐스팅할 때 가장 고민한 지점은 무엇인가.

=일단 윤겸은 정의로워야 했고, 성한(김인권)은 이런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만들었다. <미래 소년 코난>의 포비 같은 캐릭터다. 또 두 사람은 물괴에 맞서 싸워야 하기에 신체적인 리듬감도 갖춰야 했다. 명이 역의 이혜리는 나이는 어리지만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배우다. 오디션 참가자 중에서 가장 명이에 가까운 배우였다. 명이에 비해 허 선전관이 존재감이 없어 보일지 모르나 허 선전관 역의 최우식 배우는 카메라 앞에서 자기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사람이다. 이들 모두 유사 가족의 모습 그대로 오랫동안 살아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다.

-물괴의 디자인을 만들어나가는 과정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물괴 자체는 무서우면서도 리얼해야 했다. 흔히 괴수를 디자인 할 때 파충류에 상상력을 가미하면 날개 달린 용처럼 판타지 장르의 요소가 되어버린다. 물괴는 은유적으로 당시의 재난과 역경을 반영하면서도 사실적인 기반에서 공포심을 자아내야 했다. 그리고 또 조선시대의 궁궐과 어울려야 했다. 그러다 보니 해태와 비슷한 형태라는 의견도 나오게 됐다.

-어찌됐든 물괴는 압도적인 크기의 거대 괴수는 아니다. 괴수영화 속 괴수는 결국 크기에서 영화의 방향이 결정되기도 하는데.

=모팩의 장성호 대표와 많은 이야기를 했다. 언론 시사회(9월 3일) 직전인 8월 말까지 후반작업을 했으니까 거의 1년 이상 걸린 셈이다. 그리고 <램페이지>나 <고질라>의 거대 괴수처럼 뭔가 초월해버리면 현실감이 떨어져 보이니까, 괴물이 궁 벽을 가볍게 뛰어넘을 정도의 근육을 지닌 존재라는 설정도 중요했다. 궁 안에서 리얼리티를 갖기 위해 생물학적인 시뮬레이션을 오래 거쳤다. 흔히 건축에서는 ‘스케일이 재능이다’라는 표현을 하는데 이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물괴가 등장하게 되는 조준방은 역사적 사실 위에 상상력이 가미된 공간이다.

=시각적인 재미를 느낄 만한 공간이다. 실제로 연산군 시절에 동물원처럼 꾸며놓은, 그와 유사한 공간이 궁에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실록에는 풀어놓은 사냥개 때문에 신하들이 다치기도 했다고 전하고. 세종이 코끼리를 처음 대면해서 벌어진 이야기 등이 모두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바탕으로 자유롭게 상상해봤다. 동물들에게는 감옥 같은 공간이기도 하다. 조준방의 위치로는 경회루 지하도 생각해봤지만 직접적으로 왕권을 상징하는 자리 아래 놓인 지금의 위치가 영화의 메시지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괴수영화에서 물괴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을 어떻게 배치할지도 중요한 고민거리였을 텐데. 물괴의 등장 전후로 영화의 흐름도 바뀌게 된다.

=서사적으로 중간 정도에 등장하게 되는데 물괴를 둘러싼 재난의 여부가 진짜 벌어지는 일이 맞냐며 양 진영이 싸우다가 모두가 물괴라는 재난이 허구라고 믿을 때쯤 등장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사회적 재난에 대처하는 현재의 모습을 봐도, 힘을 합쳐서 해결하면 그만인 상황인데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물괴의 등장 전에는 반드시 그런 이야기가 펼쳐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괴와의 사투를 묘사하는 장면 중 동굴 추격 장면은 가장 인상적인 액션을 보여준다. 마치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에서 볼 법한 추격 장면이었다.

=개인적으로 카체이스 장면을 좋아하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유사한 속도감을 지닌, 4명의 인물이 한데 어우러져 도망가는 장면을 만들고 싶었다. 세트장에서 바닥의 굴곡 정도만 표현해두고 블루매트에서 풀 CG 작업을 거쳐 만들어낸 장면이다. <물괴>를 작업하면서 그동안 한국영화의 CG 기술이 놀랍도록 발전했다는 걸 느꼈다. 수많은 중국영화 제작으로 노하우도 축적했다. 배경과 인물이 닿는 부분이 기술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운데 박진감 넘치는 추격전을 보여주기 위해 원 테이크로 고집해서 보여줬으니. (웃음) 세트장에서 촬영했기 때문에 카메라 움직임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다.

-긴박한 액션을 찍기 위해 김동영 촬영감독과 어떤 의견을 주고받았나.

=그는 감각적인 촬영감독이다. 사극보다는 괴수영화에 방점이 찍혀 있지만 감각적이어야 했다. 괴수의 속도감을 실감나게 그리는 게 목표였다. 윤겸과 성한이 싸울 때의 액션도 사극임에도 안무 같은 액션으로 보여지길 원했다.

-전작 <카운트다운>의 냉혈한 채권추심원 건호(정재영), <성난 변호사>의 속물 변호사 호성(이선균)은 모두 죄의식을 지닌 채 위악적으로 살다가 변화를 겪게 된다. 같은 맥락에서 <물괴>의 윤겸 역시 어떤 죄의식을 갖고 속세를 떠나 산속에서 살던 캐릭터다.

=그런 인물들의 이야기가 더 드라마틱하다고 생각한다. <물괴>는 출발 선상에서부터 박수를 받고 출발한 영화는 아니다. 모두가 반신반의했고 새롭다고도 말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유사 가족이 모여서 그들이 위기를 극복하고 꼭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고 만든 영화다. 다음에는 그린매트 없는 곳에서 배우들과 좀더 에너지를 주고받으면서 만들 수 있는 영화에 도전하고 싶다.

감독이 추천하는 <물괴> 이렇게 보면 더 재밌다!

“이 영화의 장점은 궁을 배경으로 한 괴수영화로 접근한 것이다. 물괴 자체는 무서우면서도 리얼해야 했다. 괴수와 조준방, 궁궐이라는 공간을 유심히 봐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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