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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들①] <보희와 녹양> 안주영 감독 - 외롭지 않은 아이들의 세계
임수연 사진 김희언 2018-10-24

“동기들 반응? 영화가 귀엽다더라. (웃음)” 영화를 연출한 안주영 감독의 말처럼, <보희와 녹양>은 올해 부산영화제에 초청된 한국영화아카데미 제작영화 5편(<보희와 녹양> <호흡> <아워바디> <마왕의 딸, 이리샤> <눈물>) 중 가장 밝고 착한 작품이다. 하지만 캐릭터의 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희와 녹양> 역시 절대 가볍지 않은 고민이 녹아 있다. 단편 <옆구르기>(2014), <할머니와 돼지머리>(2016) 등을 연출한 후 안주영 감독이 만든 첫 장편영화 <보회와 녹양>은 권만기 감독의 <호흡>과 함께 ‘한국영화의 오늘-비전’부문 KTH상을 수상했다.

-마른 체구에 섬세한 성격의 보희는 흔히 말하는 ‘남성성’에서 벗어난 캐릭터다. 여자인 녹양쪽에서 보희를 이끌어줄 때가 많다.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기존 성 역할대로 행동하라고 강요받지 않나. 나 역시 성격이 좀 털털한 편인데, 남자 같은 행동을 한다며 교정을 받곤 했다. 팔자로 걷지 말라든지 다리를 벌리면 안된다든지 하는 말을 들으면서 말이다. 도대체 여자는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은 누가 정하는 걸까. 또래 남자들을 봐도 감수성이 풍부한 친구들은 어릴 때 놀림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궁금증이 계속 머릿속에 쌓여 있었고, 성 역할을 뒤집은 중학생 남녀 캐릭터가 만나면 어떤 시너지가 날까 궁금해서 <보희와 녹양>을 시작하게 됐다. 안지호와 김주아 두 배우는 원래 보회와 녹양 같은 성격을 갖고 있더라. 굳이 성 역할을 뒤집어서 행동하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캐릭터를 이해했다.

-‘보희’와 ‘녹양’이란 이름은 어떻게 지었나. ‘보희’는 이름 때문에 친구들에게 ‘보지’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보희’는 영어 단어 ‘보이’를 한국어로 바꿔 만든 것이다. 소년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편견을 뒤집는 아이러니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이름 때문에 주변에서 놀림을 받던 보희는 후반부로 가면 일부러 자신을 바꾸려고 하지 않고 그대로 인정하게 된다. ‘녹양’은 짐 자무시의 <브로큰 플라워>(2005)의 한 등장인물의 이름 ‘선그린’을 한국식으로 바꾼 것이다. 빌 머레이가 “내가 너의 아이를 배고 낳아서 키우고 있다”라는 편지를 받은 후 예전 애인들을 찾아다니는데, 중간에 꽃집에 잠깐 들렀다가 만난 아가씨의 이름이다. 보이지 않는 친절함을 베푸는 그 캐릭터가 이상하게 뇌리에 남더라.

-중학생 때는 남녀가 붙어 있으면 당연히 사귄다고들 생각한다. 보희와 녹양 역시 주변으로부터 그런 의심을 받지만, 기본적으로 그냥 친구 사이다.

=어떤 분들은 말도 안 된다고 반응하더라. 혹은 나도 보희 같은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하는 여자 관객도 있다. 왜 남녀가 가까이 지내면 중학생까지도 이성 관계로 엮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나 역시 보희 같은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반영된 설정이다. (그래도 녹양쪽에서 약간 ‘심쿵’한 것 같은 장면이 등장하긴 하는데?) 녹양은 보희보다 좀더 성숙한 느낌이 있으니까, 마음 한구석에서는 보희를 좋아하는 마음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본인도 인지하지 못한 그런 상태로.

-실제 연기한 배우들의 반응은 어땠나.

=애들은 그냥 많이 티격태격했다. 주로 보희가 녹양에게 “야, 너 똑바로 해!” 식으로 혼나는 느낌? 그러다가 금방 화해하고. 정말 그 나이대 보희와 녹양 같은 배우들이었다. 보희와 녹양이 친구 이상으로 발전할 가능성 같은 건 물어보지도 않더라. (웃음)

-영화 중반 침대에서 성욱이 보희를 애인으로 착각하는 장면이나, 후반부에 등장하는 어떤 반전 때문에 감독님이 보희의 성 정체성을 열어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봤다. 보희의 성격과 전혀 무관하게 해본 가정이다.

=여러 가지로 오해할 수 있는 구석이 많긴 하지만 일단 이 영화에서는 보희가 이성애자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성욱의 캐릭터가 보희의 아빠를 대신하는 느낌이 있고, 보희는 아직 남자수염이 따갑다는 것을 거의 느껴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 식의 의미를 주려고 한 장면이었다. 얘기한 대로 소위 여성스럽다고 하는 성격이 성 정체성과 연결되는 것도 아니고.

-녹양은 직접 카메라를 들고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찍는 ‘감독’이다. 본인이 반영된 캐릭터인가. 또한 마지막에 녹양이 찍은 영화가 등장하는데 어떤 느낌을 주고 싶었는지 궁금하다.

=녹양 캐릭터에 내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사실 나는 보희쪽에 더 가깝다. 엄밀히 말하면 극중 대사에서처럼 어릴 때 “녹양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렇게까지 씩씩하고 당찬 캐릭터가 부러웠다. 그리고 사람들은 친구가 카메라로 무언가를 찍는 걸 알아도 나중에 실제로 봤을 때 굉장히 색다른 기분을 받지 않나. 당시에는 얘가 하는 이 행동을 무심하게 넘겼다가 그것을 영상으로 보게 됐을 때, “이게 이렇게 시작된 거였지”라는 느낌을 상기시켜주고 싶었다.

-보희는 녹양과 함께 아빠의 흔적을 찾아나가는 여정에서 어른들의 세계를 만난다. 특히 성욱으로 대표되는 어른들과의 관계는 확장된 가족으로 보이기도 한다.

=대안 가족의 이미지를 의도한 것은 아니다. 대안 가족 역시 언제든지 와해할 수 있다. 다만 보희와 녹양 같은 아이들이 외롭지 않게 도와줄 수 있는 사람에 대해 그리고 싶었다. 지금 그들의 옆에 있는 사람이 중요하다.

-그동안 영화를 공부하면서 영향을 받은 작품은.

=이렇게 밝고 유쾌한 영화를 찍기는 했지만 원래는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1980) 같은 장르영화를 좋아했다. 코언 형제의 <위대한 레보스키>(1998)는 코미디적인 요소도 있고 거기 나오는 인물들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좋아한다. 그래서 앞으로 장르적인 작품을 하고 싶다. <보희와 녹양>처럼 드라마 형식의 작품을 좀더 밀도 있게 만들고 싶은 마음도 있다.

■ 시놉시스_ 엄마와 사는 보희(안지호)와 할머니와 사는 녹양(김주아)은 같은 병원에서 태어난 ‘불알친구’다. 중학생 남녀가 친하게 지내면 사귀는 관계로 오해하는 시선도 있지만, 그들은 그냥 친구 사이다. 보희는 엄마가 어떤 남자와 사귄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부터 새아빠가 생길 것 같아 불안하다. 혹시 엄마가 재혼이라도 하게 되면 집을 나와 배다른 누나 남희와 함께 살겠다고 다짐한다. 그런데 오랜만에 남희를 찾아간 날 보희는 얼떨결에 누나와 동거 중인 백수 성욱(서현우)과 안면을 트게 되고, 친아빠가 살아 있다는 단서를 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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