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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들③] <호흡> 권만기 감독 - 항상 딜레마에 매혹된다
송경원 사진 김희언 2018-10-24

“불편하더라도 끝까지 밀고 나간 부분을 좋게 봐주신 게 아닐까 싶다.” 올해 부산영화제 뉴 커런츠상을 수상한 <호흡>의 권만기 감독은 처음부터 걱정이 많았다. <호흡>은 납치에 관계되었던 여인이 시간이 흐른 후 성장한 피해자 소년을 만난 뒤 벌어지는 상황을 다룬 영화다. 끝내 떨쳐버리지 못할 죄의식과 용서의 의미를 더듬는 이 영화는 호흡이 가빠질 만큼 진중한 무게로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솔직히 반응이 좋지 않을 거라고 각오했다. 정확히는 이 이야기를 정면으로 받아들여주거나 반대로 불쾌함을 고스란히 드러낼 수밖에 없을 거라고 예상했다.” 권만기 감독의 말처럼 <호흡>은 긍정이든 부정이든 직선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밖에 없는 영화다. 유괴 피해자인 소년과 다시 만난 가해자의 죄책감은 용서, 그리고 구원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호흡>은 소재가 강렬할 뿐 아니라 연출도 에둘러가지 않는 영화다. 불편할 수 있는 이야기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돌파한다는 점에서 감독의 뚝심이 느껴진다.

하지만 권만기 감독은 거창한 메시지나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기 위해 시작한 이야기는 아니라고 말한다. “처음엔 단순히 유괴라는 소재에 이끌렸다. 정확히는 유괴사건 자체보다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대개 유괴를 소재로 한 영화들은 유괴를 당한 피해자의 입장에서 그리기 마련인데 나는 반대로 피의자의 심리가 궁금했다. 죄를 지은 사람은 그 죄의식을 얼마나 무겁게 짊어지고 살아갈까 하는 의문이 출발이었다. 죄의식과 용서라는 난제는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질문일 따름이다.” 권만기 감독은 그런 의미에서 올해 부산영화제 관객과의 만남은 감독으로서 소중하고 감사한 경험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솔직히 각오를 하고 극장에 들어갔는데 예상보다 관객이 많았고 진지하고 호의적인 질문들이 이어졌다. 감사할 따름이다.” 관객으로 왔을 땐 기를 쓰고 재미있는 영화를 찾아봤다는 권만기 감독은 첫 상영 후 관객의 얼굴을 직접 확인한 다음에야 어느 정도 부담감을 덜어낼 수 있었다고 한다.

끝내 떨쳐버리지 못할 죄의식과 용서의 의미를 더듬는 이 영화는 호흡이 가빠질 만큼 진중한 무게로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진범인 전남편 태규보다 방관자였던 정주가 왜 더 아파하고 힘들어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는 관객 질문을 받고 한편으론 기뻤다. 사실 이해 가지 않는다기보단 동의가 되지 않았던 게 아닐까 싶다. 죄의식의 무게는 사람마다 다르다. 알고도 악을 쉽게 행하는 사람이 있고 작은 과오에도 번민하는 사람이 있다. 감독으로서 그런 딜레마에 매력을 느낀다.” 권만기 감독은 이해와 동의 사이 간극에 괴로워하는 과정이야말로 <호흡>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한편 감정의 큰 폭을 다루고 싶었기에 일부러 유괴를 소재로 고른 만큼 처음부터 이창동 감독의 <밀양>(2007)에 대한 언급을 피해갈 수 없을 거라 각오했다. “유괴, 속죄와 용서라는 소재 때문에 관객도 기시감을 느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야기의 출발부터 시점이 다르다. 이건 죄의식과 용서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죄을 지은 자의 감정, 말하자면 고개 숙인 모습, 뒷모습, 패배감이 이 영화가 보여주고 싶은 어둠의 얼굴이었다.” 감정을 파고들어 구체적인 결론을 내리는 대신 상황을 더듬고 제시한 후 관객 각자의 방식으로 문을 열기 바랐다는 권만기 감독은 내내 영화의 모자람을 부끄러워하면서도 엔딩 장면만큼은 만족감을 표했다. “현장에서 좀더 찍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딱 거기까지가 좋았다. 애초엔 지금보다 컷 수가 훨씬 많은 영화였다. 하지만 현장에서 배우들이 발산하는 긴 호흡을 자르고 싶지 않았다. 숨조차 쉴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인물들이 만나 서로의 숨을 조금이나마 틔워준다는 게 내가 매료된 지점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아버지를 따라 부산 서면, 남포동 일대를 누볐던 권만기 감독은 하루에 비디오 3, 4편을 보는 할리우드 키드로 자랐다. 진로를 고민할 것도 없이 영화과로 간 권만기 감독은 대학 가서야 안심했다고 한다. “고등학생 때는 ‘돌아이’라 불릴 만큼 이상한 아이 취급을 받았는데 대학에 가보니 모두 이상한 사람들뿐이라 너무 안심이 됐다. (웃음) 내가 살아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유일한 일이라 이것 이외에는 다른 일을 생각한 적이 없다.” 물론 현실적인 문제는 늘 압박으로 다가왔다. 영화를 찍기 위해 영화 일과 관계없는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고, 학자금을 갚기 위해 4, 5년간 영화 일을 못한 적도 있었다. 영화에서 떨어져 있을 때가 삶이 가장 피폐해진 시기라고 회상하는 권만기 감독은 결국 영화를 찍기 위해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에 진학했고 이후 한국영화아카데미에 입학했다. 그리고 지금 아니면 절대 못 찍을 소재로 영화를 찍고 싶어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호흡>의 제작을 밀어붙였다. 숨을 쉰다는 일이 살아가기 위한 과정이라면 권만기 감독에게 영화는 곧 숨이다. 어쩌면 <호흡>은 감독으로서의 그런 자의식이 묻어난 결과물인지도 모르겠다. “희망이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음에 가깝다. 인물의 상황도, 감정적인 폭발도 그런 발버둥의 결과다.” 그럼에도 삶을 이어간다는 것, 길게 내뱉고 다음 숨을 들이마신다는 것. 숨 막히는 딜레마 속에서도 권만기 감독은 다음으로 이어지는 한줌의 ‘호흡’을 끝내 놓지 않는다. “무겁고 진지한 영화만 찍겠다는 건 아니다. 당연히 좀더 대중적인 화법으로 상업영화를 찍고 싶다. 다만 그때에도 권만기라는 이름이 기억될 수 있을 만큼 내가 가진 색깔이 드러났으면 한다. <호흡>을 통해 날숨을 내쉬었더니 올해 뉴 커런츠상이란 들숨으로 돌아온 것 같아서 다행이다. 이 호흡의 리듬을 이어나가고 싶다. 가급적 빠른 숨으로. (웃음)”

■ 시놉시스_ 어린 아들을 잃고 홀로 살아가던 여인 정주(윤지혜)는 몸도 마음도 피폐해진 삶을 버텨내고 있는 여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일하는 청소업체에 전과 2범 소년범 민구(김대건)가 입사한다. 정주는 민구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보고 죄책감에 빠진다. 12년 전 전남편이 민구를 유괴할 때 정주는 이를 말리지 못했다. 소년범이 되어 거친 삶을 살고 있는 민구를 보자 정주는 그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괴롭다. 전남편은 공소시효도 끝난 일이라고 하지만 정주의 시선은 계속 민구를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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