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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AF에서 만난 영화인들①] <어나더 데이 오브 라이프> 다미안 네노프 감독, "한곡의 음악에 몰입하듯 이야기의 리듬에 빨려들기를"
송경원 사진 최성열 2018-10-31

BIAF2018 개막작이자 올해 칸국제영화제에 공식초청되기도 한 <어나더 데이 오브 라이프>(감독 다미안 네노프, 라울 데 라 푸엔테)는 종군기자 리처드 카푸스친스키의 동명 자서전을 영상으로 옮긴 작품이다.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가 결합한 형식이나 전장을 무대로 한 주제 때문에 자연스럽게 아리 폴만 감독의 <바시르와 왈츠를>(2008)이 연상된다. 하지만 이 영화는 특정 작품의 그늘 아래 있다기보다는 공동 연출을 맡은 다미안 네노프 감독의 단편 <분노의 질주>(2010)의 연장선에 있는 영화에 가깝다. 개막식 참석을 위해 생애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는 네노프 감독은 비행기에서 내린 지 3시간도 되지 않아 인터뷰를 시작했다. 긴 비행의 피로도 잊은 채 열띤 설명을 이어가는 모습에서 진실을 전하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리처드 카푸스친스키의 그림자가 언뜻언뜻 보였다.

-단편 <분노의 질주>를 통해 국내 애니메이션 팬들 사이에서 인지도가 꽤 있다.

=<분노의 질주>가 아카데미 시상식 단편부문에 노미네이트되고 안시국제애니메이션 특별 부문에서 수상하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덕분에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만족스러운 작업으로 기억되는 것 같다. (웃음) 장편 데뷔작인 <어나더 데이 오브 라이프>도 기본적으론 <분노의 질주>의 연장선에 있는 작업이다. 단편을 보고 스페인의 라울 데 라 푸엔테 감독이 함께 작업해보자고 제안해와서 시작했다.

-1975년 앙골라내전을 배경으로 현장을 누비는 종군 기자 리처드 카푸스친스키의 자서전을 영상으로 옮겼다.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가 섞인 독특한 형식이다.

=나도 제안을 받기 전까진 앙골라내전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리처드 카푸스친스키의 다른 책은 여러 권 읽어봤다. 그는 폴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 중 한명이고 그의 책들은 10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될 뿐 아니라 학교에서도 가르친다. 학창 시절 그의 책을 읽으며 늘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종군 기자인데도 사실을 건조하게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본인의 경험을 매우 시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리처드 카푸스친스키의 책에는 현실을 이미지로 바꾸는 마법적인 심상이 들어 있다. 라울 감독으로부터 애니메이션 파트를 맡아달라는 제안이 왔을 때 흔쾌히 합류할 수 있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리처드 카푸스친스키의 책은 이미 시네마틱하다. 아무것도 결정된 건 없었지만 애니메이션과 실사의 하이브리드로 간다는 컨셉이 그 감성을 영상으로 옮길 최적의 방식이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시적이라는 표현이 적절한 것 같다. <어나더 데이 오브 라이프>는 화자가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에 방점을 찍고 환상과 현실이 뒤섞이는 지점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카푸스친스키의 글은 구체적인 묘사보다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방식이다. 또한 서구 중심의 시선이 아니라 보편적인 휴머니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앙골라내전에 대해선 전혀 몰랐지만 책을 읽을수록 그것이 국지적인 내전에 대한 고발이라기보다는 그 안에서 황폐화 되어가는 인간 정신에 대한 탐구라고 느껴졌다. 카푸스친스키가 이 책을 마지막으로 전업 작가로 정착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40년전에 있었던 끔찍한 내전이 우크라이나, 시리아 등 지구촌 곳곳에서 지금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거시적으로 보면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과 그로 인한 변화를 통해 전쟁, 그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다.

-여느 하이브리드 영화처럼 환상은 애니메이션, 인터뷰는 실사처럼 기계적으로 구분하지 않았다는 점이 특이하다.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 파트를 나눈 기준이 있나.

=기본적으로 애니메이션이 리처드 카푸스친스키의 시점에서 메인 서사를 담당하고 나머지 인터뷰는 실사나 푸티지 영상으로 간다는 게 뼈대였다. 하지만 50 대 50으로 분량을 구분하진 않았다.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비율보다 중요한 건 애니메이션과 실사로 전환되는 지점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만드는 작업이었다. 실사 영상을 먼저 찍어 놓고 애니메이션으로 전환하는 로토스코핑과의 가장 큰 차이가 거기에 있다.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대로 따로 그리고 편집에서 연결점을 찾아나갔다. 해당 장면에서 어떤 영상이 더 효과적인가가 유일한 기준이었다. 기능적인 선택이 아닌 본능적인 흐름에 가깝다.

-애니메이션을 꼭 환상적인 표현으로만 쓰진 않는다. 가령 주민들이 춤추는 장면이 처음엔 애니메이션으로 나왔다가 똑같은 상황을 실사로 반복한다. 표현 방식의 의미를 일일이 찾다가 어느새 구분을 포기하고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되는 것 같다.

=고맙다. 그게 유일한 의도였다! (웃음) 형식적으로는 하이브리드지만 그 부분을 가시적으로 드러내고 싶진 않았다. 이건 전쟁, 액션, 애니메이션, 실사를 음악으로 봉합한 영화다. 마치 한곡의 음악에 몰입하는 것처럼 이야기의 리듬에 빨려들어가길 바랐다. 물론 애니메이션은 아무리 사실적인 묘사를 해도 결국 픽션이라는 인상을 남기고, 다큐멘터리 영상은 거짓을 말할 때도 사실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건물이 무너져내리거나 침대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인물의 주관적인 감각과 환상 등 애니메이션으로 했을 때 더 효과적인 부분은 당연히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했다. 감정, 내면의 고뇌 등을 인상주의적인 기법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걸 공식처럼 나눠 적용하고 싶진 않았다. ‘애니메이션스러움’이란 편견을 깨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최종적으로는 양쪽을 다 준비해놓고 편집 과정에서 해당 장면의 감정을 더 잘 구현할 수 있는 쪽으로 선택했다.

-감정의 이미지화라는 측면에서 전작인 <분노의 질주>와 연결된다. <분노의 질주>에선 전쟁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분노라는 하나의 감정적 덩어리로 표현했다.

=스타일은 거의 비슷하다. <분노의 질주>는 증오의 야수적 발현, 폭발, 소멸이라고 할 수 있다. ‘왜’가 없어지고 야수성만 남는 이야기다. 2차 세계대전 중 런던에서의 공중전을 찍은 사진에서 영감을 얻었다. 하늘에 그어진 비행기 연기가 마치 인간이 낸 흉터처럼 보였다. 카툰 스타일을 보여주되 이야기는 현실적으로 접근하고 싶었다. ‘그린다’는 것 빼고는 제작 공정도 실사영화와 다를 것 없다. 첫 장편인 이번 작업도 스케일을 제외하곤 다 똑같았다. 단편은 혼자 작업했는데 이번엔 고작 500여명의 인원이 더 늘었을 뿐이다. (웃음) 기본적인 원칙은 최대한 사실적으로, 소수의 애니메이션 팬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많은 관객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드는 거였다.

-당신에게 애니메이션은 목적이 아닌 수단인 것 같다.

=물론 나는 애니메이션 감독이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은 하나의 언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이야기다.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하는지가 첫 번째다. 어릴 적 아카데미시상식에 오른 한 단편애니메이션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혼자서 이런 작업을 해서 아카데미까지 갈 수 있다면 나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필름 스쿨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했고, 여기까지 왔다. 현재는 내가 직접 애니메이팅을 하는 시간보다 이야기를 찾고 전체적인 연출을 하는 시간이 더 길다.

<어나더 데이 오브 라이프>는 어떤 작품?

전설적인 종군 기자 리처드 카푸스친스키의 동명 자서전을 옳긴 작품. 1975년 앙골라내전을 3개월간 따라다니며 자신의 눈에 비친 전쟁의 실상을 기록했다. 카푸스친스키의 주관적인 감각과 전쟁의 객관적인 기록을 조화롭게 서술하는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 기법을 활용하여 관객을 전장의 한복판으로 초대한다. 단편 <분노의 질주>로 이름을 알린 다미안 네노프가 애니메이션 파트를, <미네리타>(2013)로 스페인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라울 데라 푸엔테 감독이 다큐멘터리 파트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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