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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부도의 날>이 제기한 한국 사회의 시스템 부재
임수연 2018-12-05

1997년의 위기, 국민의 탓이 아니었다

<국가부도의 날>은 패배의 이야기다. 한국은 국제금융 시장에서 신뢰를 잃었고, 한국은행 통화정책팀 한시현(김혜수)의 주장은 매 순간 재정국 차관(조우진)을 비롯한 정부 관료들에게 묵살당하고, 스테인리스 그릇을 만드는 소기업 사장 갑수(허준호)는 미도파백화점과 어음을 매개로 거래를 했다가 파산 위기에 처한다. 이 상황을 미리 예측하고, 환율이 폭등해 주가가 떨어지고 부동산이 폭락할 때 돈을 벌 수 있는 길을 마련한 윤정학(유아인)도 나라가 망하니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처지다.

이중 한시현은 ‘언더독’ 서사에 부합하는, 그래서 모든 관객의 지지를 받는 제1의 주인공이다. 그는 한국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에 대한 외국 투자자들의 의심이 시작되면서 달러가 빠져나가자, 정부가 외환보유고를 투입해서라도 환율 방어에 나선 상황을 지적한다. 아무리 보고서를 올려도 위에서는 주인공의 목소리를 듣지를 않는다. 경제 관료들이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후, 한시현은 다수 해외 투자자들이 부채 상환 만기를 거부하고 투자금을 회수하겠다고 나서면 일주일 후 국가부도가 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는 나라 경제가 위험하다고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재정국 차관은 한시현의 경고를 듣고 국민들에게 이를 알리면 더 큰 혼란이 야기될 수 있으니 시장에 맡기자는 입장이다.

영화는 실제 인물 및 기관과 무관하다는 글로 시작하지만, 당시 재정국 차관 격에 해당하는 자리에 있던 실제 인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바로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의 비리를 눈감아주고 그 대가로 지인의 회사에 투자를 종용한 혐의로 징역 5년2개월을 구형받아 현재 수감 중인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그는 IMF 사태에 책임이 있는 자를 어떻게 다시 요직으로 불러들일 수 있느냐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 시절 장관으로 임용됐고, IMF를 거친 후 얻은 교훈(?)으로 ‘고환율 정책’을 밀어붙이다가 한국 경제를 파탄에 이르게 만든 주범이다. 그가 실무자로서 보고 생각한 바를 기록한 책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에서 1997년 재정경제원이 대외적으로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은 문제가 없다”고 밝혀 논란이 된 것에 “대외신인도 유지를 위해서였다”고 정면 반박한다. 환란에 관해 여러 기관의 위기 경고를 정부가 묵살했다는 논란도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정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여러 전제를 붙이고 대책 마련을 해야 한다는 내용의 많은 보고서가 있었다. 이러한 보고서를 두고 내가 미리 경고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는데 참으로 한심한 일이었다.” 영화로 그대로 가져와도 위화감이 없을, 강만수 전 장관이 영화 속 한시현을 만났더라면 했을 법한 말이다.

재정국 차관이 처음으로 IMF의 구제를 언급했을 때, 한시현은 그건 정답이 아니라며 일본과 미국, 유럽 몇 개국의 국책은행에서 달러를 빌려 급한 외채를 해결한 뒤 정부 자산을 담보로 ABS(자산유동화증권을 일컫는 말로, 미래의 현금흐름을 바탕으로 현재 시점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금융기법의 일종. 우리나라에서는 부실채권의 원활한 처리를 위해 1998년 자산유동화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면서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편집자)를 발행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어떻게든 한국 자체의 힘으로 버틸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IMF가 11개 종금사 부도 처리·금리 12.5%에서 30%로 인상·자본시장 개방·노동시장 유연화 등 납득할 수 없는 협상안을 내놓자 “차라리 모라토리엄을 선언하자”는 파격적인 대안을 마지막 카드로 언급하기도 한다. 한국 경제가 부도났다는 것을 인정해버리면 (IMF 배후에서 지시를 내리고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드는) 미국 역시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하는 처지가 되고, 벼랑 끝 전술은 한국을 ‘그나마’ 유리한 위치로 만들어줄 수 있다는 논리다.

한국 경제를 악화시킨 IMF 처방의 전말

이는 1997년 당시 실제 존재했던 주장이다.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고 IMF의 구제 대신 내부적으로 위기를 극복한 말레이시아, 일방적인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오히려 채무의 30%를 탕감받은 러시아처럼 한국도 다른 선택지를 고려할 수 있었다는 게 근거였다. 혹은 IMF와의 협상을 좀더 유리한 방향으로 유인할 수 있는 길을 고민했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 내부에 심각한 결함이 있어 도래된 결과이기 때문에 IMF의 처방을 받아 시스템 자체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내부결함론’이 주류의 입장이었고, 실무자들은 IMF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를 의아하게 생각한 것은 오히려 해외 전문가들이었다. 1998년 6월 26일 <경향신문>에 따르면, 미국의 박윤식 조지워싱턴국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전경련부설 자유기업센터 주최로 열린 간담회에서 “우리 정부가 국제금융에 대한 전문지식 부재와 조급증으로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 등 국제금융 기관에서 차관을 들여오면서 사상 유례없는 악조건과 차별대우를 받았다. 정부가 서두르지 않고 IMF와 담판을 벌였더라면 이같은 악조건은 피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워싱턴에서 오랫동안 교수 생활을 하면서 IMF의 고위 관계자들과 친분을 쌓아왔던 그는 왜 이게 불리한 협상인지 조목조목 비판했다. “IMF의 통상적인 이자율에 매년 3%의 이자를 추가 부담하게 됐다. 이 추가 부담 이자율은 반년마다 0.5%씩 상승해 최고 5%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IMF 차관 사상 처음으로 적용되는 악성 규정이다.” 박 교수의 주장은 초기 외환위기에 성공적으로 대처했다는 정부 자체 평가를 뒤집는 것으로, 당시 <매일경제> 등의 언론은 그의 주장을 ‘충격 발언’으로 소개했다. 제프리 삭스 미 하버드대 국제발전연구소 소장은 1997년 12월 11일 <파이낸셜 타임스> 기고문에서 “한국의 금융위기에 대한 IMF의 대응은 일관성이 없으며 IMF의 처방이 오히려 한국 경제를 악화시켰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경제학계 자체가 기울어진 논의장이기 때문에 벌어진 결과라는 지적도 있다. 1998년 삼성경제연구소가 발간한 <IMF 사태의 원인과 교훈>에서 이찬근 인천대학교 교수는 “동아시아 외환 금융위기는 내부결함론, IMF 비판론, 외부조건론 등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반면 정작 위기 당사국인 우리나라에서는 내부결함론을 비판 없이 수용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비판했다. “우리 학계의 대응이 편파적인 원인은 무엇보다 미국 유학파 중심의 학계편성, 서울대 출신의 논의 독점 구조 등 그간 우리 학계에 뿌리박힌 사회병리학적인 측면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달러로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은 IMF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 중심의 시스템 개편을 요구할 수 있고, 미국에서 공부한 학자들은 이 논리를 따르게 된다는 분석이다.

지난 20년간 IMF 처방이 최선이 아니었다는, 차라리 모라토리엄 선언이 나았을지 모른다는 가설은 일부 경제학자들에게서 점진적으로 발전됐고, 이에 대한 반박도 있다. 유시민은 자신의 저서 <나의 한국 현대사>에서 이 논쟁을 언급하며 “대한민국은 경제의 해외 의존도가 너무 높으며 핵발전소를 제외하면 국내 에너지원이 거의 없다.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경우 우리 기업은 대외결재를 할 수 없게 된다”고 언급했다. 중요한 것은 극중 한시현의 입을 통해 스크린에 소환된 당시 비주류 입장이 ‘정답’이었는지 여부가 아니다. 이런 길도 있었다는 것을, 어느 쪽이 더 나은지를 일반 시민도 고민해볼 여지가 있는 문제였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IMF가 한국에 내린 처방이 가져온 부작용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조명됐고, 당시 한국에서는 모든 것을 “우리 탓”으로 돌렸고 특히 일반 서민의 과소비를 탓하는 분위기가 노골적이었다. 1998년 2월 23일 <경향신문>에 따르면 서울 시내 초등학교 4, 5, 6학년 학생 600명을 대상으로 ‘IMF 시대 어린이 의식구조’를 조사한 결과, 57.3%가 국민에게 책임이 있다고 응답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17.5%. 정치인은 14.7%. 재벌은 5.7%였다. 또한 IMF를 부른 직접적인 원인으로 87%가 ‘과소비’를 꼽은 점이 눈에 띈다. 지금이야 IMF 금융위기의 원인이 국민 과소비에 있다고 경제 교과서에 실리면 논란이 되지만, 정말 그렇게 가르치던 시절도 있었다.

부재한 시스템, 그 속의 여성

<국가부도의 날>이 주인공을 여성으로 설정한 것은 꽤 아귀가 잘 맞는 설정이다. 아니, 이보다 좋을 수 없는 선택이다. 비주류 입장을 대변하는 캐릭터를 지방대 출신으로, 이른바 ‘흙수저’로 하거나 다른 어떤 가능성을 아무리 떠올려보아도 ‘여성’을 뛰어넘는 장치는 없다. 영화계는 물론 한국 사회 전반적으로 성차별 이슈가 뜨거운 요즘 시대에, “비서인 줄 알았는데”, “계집년”, 급기야 “여자들은 중요한 순간에 이성적인 판단을 못하니까 정부 고위직에 여자가 없는 것이다”라는 말까지 듣는 한시현의 상황은 현실과도 밀착한다. 때문에 <국가부도의 날>을 보고 페미니즘적 의미를 읽어내려는 시도는 전혀 과하지 않을뿐더러 학벌, 지역 등의 영역으로 물 흐르듯 확장될 수 있다. 더군다나 남성 집단이 지배하는 거대 시스템이 무너진 상황에서, 여성 리더가 팀원들에게 “우리가 시스템”이라고 선언하고 팀원들이 든든하게 서포트하는 그림은 정치적인 함의를 갖는다. 이 집단은 리더만 여성인 것이 아니라 성비도 아름다운 ‘1:1’이다. ‘썩은 고인물’ 투성이인 <국가부도의 날>에서 유일하게 제구실을 하는 조직,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은 다양성을 고려해 세팅됐고, 20년 후 한시현을 찾아오는 기획재정부 인물 역시 여성이다. 성별, 학벌, 지역에 좌우되지 않는 고른 인재 채용과 같은 이슈까지 갈 것도 없이, 재정국 차관과 재벌 3세(동하) 등이 하버드대 동문 운운하며 만나는 영화 속 장면만으로도 모든 것이 설명된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가 주목하는 ‘비주류 경제학자들’의 목소리가 ‘여성 캐릭터’와 만나면서 한국영화계에 잔재한 편견을 넘어섰다는 점이다. 충무로에는 아직 여배우 중심 서사가 투자받기 어렵다는 시선이 있지만, 엄성민 작가의 <국가부도의 날> 시나리오는 여러 투자·배급사의 러브콜을 받았다. 개봉 첫날 스코어도 30만여명으로, 초반 기세가 준수한 편이다. 영화 제작자는 여성 캐릭터이기에 ‘비주류 입장’을 더 선명하고 긴장감 있게 그릴 수 있는 아이템을 발견했고, 대중영화로서의 경쟁력을 확보했으며, 당시 학계의 소수의견은 대중문화콘텐츠의 파급력에 힘입어 광범위하게 소개된다. 그리고 <국가부도의 날>의 시도가 성공으로 끝난다면, 더 많은 여성 서사, 더 다양한 인물의 재현을 고민하는 창작자에게 지금보다 유리한 길이 열릴 여지가 생긴다. <국가부도의 날>은 거의 패배의 이야기로 끝날 뻔하다가, 2017년 한시현 팀장을 찾아가 함께할 것을 제안하는 아람과의 조우로 일말의 희망을 품게 한다. <국가부도의 날>이란 영민한 기획이 올해 충무로에 주는 의미도 이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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