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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감독조합③] 최동훈 감독이 <1987>의 장준환 감독에게 묻다
김현수 사진 최성열 2018-12-27

이 이야기는 내가 해야겠다는 확신이 있었다

최동훈, 장준환 감독(왼쪽부터).

“<1987>을 만들고 가장 행복한 한해를 보냈습니다.” 12월 12일 메가박스 코엑스 10관에서 한국영화감독조합이 주최한 ‘제18회 디렉터스컷 어워즈 한국 영화감독이 뽑은 올해의 영화 스페셜 토크: 감독이 감독에게 묻다’ <1987>편의 진행을 맡은 최동훈 감독은 <지구를 지켜라!>(2003),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2013)에 이어 세 번째 장편영화를 만든 장준환 감독을 “한국에서 가장 이상한 영화감독”이라고 소개했다. 충무로의 천재 감독이란 소리를 들으면서도 준비하던 많은 프로젝트가 엎어지곤 했던 장준환 감독은 “2015년 말, 김경찬 작가로부터 <1987>의 초고를 받고 몇달에 걸쳐” 각색 작업을 하던 순간을 회고하며 토크를 시작했다. “‘충무로에 1987년 6월 항쟁에 관한 시나리오가 돈다’는 소문을 듣자마자 ‘올 게 왔다’고 생각했다”라는 최동훈 감독은 “장준환 감독이 만든다기에 이상한 조합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 박찬욱 감독은 심성이 착한데 <복수는 나의 것>에서 아킬레스건을 잘라 복수하고, 나도 도박을 전혀 모르는데 <타짜>를 만들었으니 어쩌면 운동권 학생이 아니었던 장준환과 1987년의 조합은 가장 적합한 만남이 아닐까” 기대했다고 한다. “<1987>의 시나리오가 지닌 동력은 무엇이었나?”라는 최동훈 감독의 질문에 장준환 감독은 “1987년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조금만 행동이 엇나갔더라면 이어지지 않았을 것 같은 절묘한 긴장감을 지닌 사실에 놀라면서 시나리오를 봤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정권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도 신경이 쓰였지만 “박 처장(김윤석)이라는 악의 축을 뼈대에 놓고 수많은 인물들이 부딪치고 결국에는 온 국민이 광장에 나오는 이야기가 매력적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이야기와 형식이 맞아떨어진다는 점을 언급하며 연출 계기를 소개한 장 감독은, 서울 신촌에 위치한 이한열 열사 기념관을 찾아가 이한열 열사의 유품과 옷가지를 보던 때도 회상했다. “부모가 되고 보니 사회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다음 세대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줄 것인가, 이 이야기는 내가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당시 초고를 받아 든 그는 고민 끝에 “언론사에 관한 내용이 부각된 점, 후반부 연희(김태리)의 이야기가 급하게 진행되는 점” 등의 초고 내용을 보완하는 각색 작업에 돌입했다. 각색 과정에서는 영화의 방향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1987년의 상황이 요즘 관객에게 생경하게 다가가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있었다.” 두 감독 모두 이한열 열사 노제의 운구 행렬을 실제로 봤던 세대지만 요즘 관객과의 소통 지점을 고민했음을 강조했다.

<1987>

영화의 초반부 스타일에 관해 최동훈 감독이 “<1987>은 전통적인 내러티브 방식이 아니다. ‘땡전뉴스’로 시작해서 박종철 열사의 죽음, 임진각에서 보고받는 박 처장으로 이어지는 첫 번째 시퀀스를 보자마자 볼만하다는 기대감이 들었다”고 하자, 이러한 박처장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초반부 진행에 대해 장준환 감독은 “당시 장세동을 만나서 사건 보고가 아니라 간첩 잡는 이야기를 한다. 박 처장이 정권으로부터 얼마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고, 또 얼마나 많은 일을 해왔는지를 포함해서 관객으로 하여금 어떻게 저럴 수 있는가, 이입하게 만드는 도입부가 절묘했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 시퀀스를 촬영하던 때에 “꼴통 같은 최 검사(하정우)가 부검 명령서에 사인하지 않아서 첫 번째 균열이 간다. 그때 벌써 김윤석과 하정우의 연기가 다른 지점에서 움직이고 있는데 취조받는 학생을 최 검사가 종이로 때리는 장면은 계획된 촬영이었냐”라고 최동훈 감독이 묻자, 장준환 감독은 “선물처럼 촬영하다가 이어진 컷이었다”고 답했다. “원래는 학생 반응을 쪼개 찍으려고 했다가 손에 든 종이가 찢어지는 순간이 너무 재미있어서 편집 없이 썼다. 배우들이 워낙 좋으니까 이른바 따고 들어가지 않아도 화면이 꾸밈없이 꽉 채워지는 것 같았다.” 오슨 웰스 감독이 말한, ‘감독은 우연을 창조하는 사람이다’라는 말을 최동훈 감독이 인용하자, 장준환 감독은 배우 하정우가 최 검사를 “생태교란종”으로 해석하고 연기하던 때의 비하인드도 들려줬다. “그가 남영동 촬영 장면에서 씹던 껌을 차 앞유리에 뱉는 신을 촬영하던 날이었다. 사전에 말도 없이 껌을 씹으며 촬영하기에 나는 모니터를 보면서 대체 왜 껌을 씹고 있지? 생태교란을 넘어서 나까지 교란하는 건가, 싶었는데 그 순간 껌을 뱉는 장면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래서 만들어진 장면이다”라고 설명했다. <1987>에서는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장면이 많았다는 장준환 감독은 원래는 거의 콘티대로 찍는다면서 “<지구를 지켜라!>는 95% 정도는 콘티대로 찍었지만 이번 영화는 달랐다”는 점을 언급했다. “예전에는 마스터숏도 찍지 않고 카메라 한대로 무식하게 컷을 이어 붙여가면서 작업했는데 자연스러움을 어떻게 화면에 담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 보니 배우들에게 시나리오의 핵심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자유롭게 연기하도록 뒀다.” 이에 최동훈 감독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1997)에서 잭 니콜슨과 연기한 헬렌 헌트의 사연을 소개했다. “누군가 그녀에게 연기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자, 그녀가 ‘드라마를 위해 말하는 대사는 앉아서 연습하고 자신의 캐릭터를 위해 말하는 대사는 서서 연습해라’라고 말했다”는 거다. 시나리오를 해석하는 배우의 유연성을 언급한 일화였다. 최동훈 감독은 “이 영화의 신의 한수가 있다면 최 검사의 변화다. 마치 처음에는 치안본부를 향한 자존심 대결처럼 가다가 영안실 앞에서 유족을 만난 이후의 변화, 기자에게 중요한 정보를 주고 드라마에서는 물러나는 점이 좋았다”고 덧붙였다. 장준환 감독은 시나리오 각색 과정에서 “최 검사가 영화 전체를 끌고 가야 재미있을 것 같다는 충고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1987년의 이야기는 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결합되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1987>은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 이야기가 섞여 있다. 박종철 열사의 죽음으로 시작된 스릴러적 요소가 담긴 수사 드라마의 맥락이 있고, 연희와 이한열 열사(강동원)를 중심으로 한 후반부 이야기가 있다. 둘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이어져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로 만들어낼지를 고민하는 과정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카메라워크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장준환 감독은 “전반부는 다큐멘터리나 뉴스 화면처럼 과감한 줌, 굉장히 얕은 심도로 포커스가 나가는 장면도 넣었다”면서 관객이 뉴스를 보듯이 따라가길 바랐다고. “연희의 이야기로 넘어가면서 심도도 깊어지고 색감도 달라진다”며 촬영상의 특징을 짚어줬다.

이날 토크의 마무리로 관객은 장준환 감독에게 작품 세계를 아우르는 아버지의 죽음에 관한 질문, 선호하는 장르에 관한 질문 등을 던졌다. “반골 기질이 담긴 <지구를 지켜라!>에 자신의 본질이 담겨 있음을 언급한 그는 “<1987>을 만드는 과정에서 실제 유족들이 영화를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한 부담이 컸다”고 말했다. 특히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가 아직도 <1987>을 보지 못하고 계속해서 아들의 죽음에 관해 알리는 투사로서의 삶을 살고 있음을 이야기할 때는 격해진 감정을 추스르며 잠시 울먹이기도 했다. “돌 굴리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완성해나가겠다”는 장준환 감독의 다짐과 함께, 올해 디렉터스컷 어워즈에서 그에게 감독상의 영예를 안겨준 <1987>에 관한 토크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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