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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VR 영상 콘텐츠 공모대전 ‘VRound’
김현수 2019-03-14

가상세계로 가는 새로운 문이 열렸다

가상현실(VR) 콘텐츠의 제작 개발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었던 2018 VR 영상 콘텐츠 공모대전 ‘VRound’ 수상작이 발표됐다. 결과부터 이야기하면, 3천만원의 상금을 수여하는 대상은 VR 콘텐츠를 처음 만든 대학생으로 구성된 팀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이들이 만든 작품에 대해서는 뒤이어 자세히 소개하겠지만 새로운 매체의 문법을 이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말 그대로 가상세계를 창조하는 작업은 흥미진진한 도전과 실패로 가득 차 있다. 이들이 만들어갈 새로운 뉴미디어 콘텐츠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수상작의 면면을 미리 들여다봤다.

2018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콘텐츠진흥원과 네이버가 공동주관한 VR 영상 콘텐츠 공모대전 ‘VRound’에 230여편의 응모작이 모여들었다. 그중 18편의 수상작을 가려 대상 1팀, 최우수상 3팀, 장려상 14팀에 총 1억4천만원의 상금을 수여했다. 최근 몇몇 단체와 기업 등에서 자체적으로 VR 관련 공모전을 열기는 했으나 이번 행사는 상금 규모나 지원작의 내실 면에서 국내에서 가장 주목할 성과를 이끌어냈다. 지난해 10월 공모를 시작해 1차 기획 심사를 통과한 선정작은 몇달간 제작과정을 거친 다음 지난 2월 19일부터 21일까지 2차 제작 심사를 거쳤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참가자들의 제작과정에 도움이 되기 위해 제작 기간 내에 기획·기술 워크숍을 열어 업계 관계자들에게 다양한 조언을 듣는 시간도 마련했다. 지난 2월 20일부터 22일까지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에서 <가상현실 콘텐츠 체험전>을 열고 일반인이 18편의 후보작을 체험해보고 선정하도록 한 일반인 평가까지 최종 심사에 반영했다. 시네마,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3개 부문으로 나눠 지원한 선정작들은 저마다의 개성을 무기로 VR이라는 새로운 매체의 특징을 발견해가는 과정을 거쳤다.

<블랙 스테이션: 흑역사>

각기 다른 색깔의 작품들

먼저 다큐멘터리 부문에는 기획 의도 자체가 도전적인 기획이 많았다. 완성되지 못한 도시의 건축물이나 폐건물이 보여주는 이미지의 충돌을 360도 실사 영상으로 담아낸 <블랙스테이션: 흑역사>(박군제)는 미디어아트에 가까워 보이는 작품이다. 360도 실사 영상 작업에서 기술적 한계로 제시되던 스티칭(각각의 카메라가 찍은 영상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작업) 제약을 하나의 연출 문법처럼 활용한 점이 특징적이다. 다만 지금은 좀 흔한 연출 기법이 된 탓에 자칫 근사한 배경 이미지를 뽑아내는 선에 그칠 우려가 있다. 한국의 수많은 명소를 배경으로 하는 <양자물리학으로 바라본 서울>(퓨처시네마랩)과 <거장 아티스트의 한국 나들이>(홍익 MR 미디어랩)는 주제가 서로 다르지만 우리가 익히 보고 살아온 장소들을 낯설게 대하게 하는 방식으로 VR 매체의 특징을 활용한다. 예를 들어 <양자물리학으로 바라본 서울>이 타임랩스, 항공촬영, 인포그래픽 등의 요소를 활용해 도시의 밤이 전해주는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면, <거장 아티스트의 한국 나들이>는 우리가 보고 자라온 주변 경관을 특정 화가의 화풍을 적용해 그림처럼 변환해 보여준다. 사진을 그림처럼 바꿔주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보는 이의 시선 확장이라는 VR의 특징을 적극 활용한 작품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눈에 띈다. 사람의 눈으로 쉽게 볼 수 없는 공장 내부의 모습을 다양한 앵글로 찍은 <노병을 위한 나라는 없다>(무인지대)는 360도 실사 영상으로 공장이란 공간을 새롭게 인식하는 데 도움을 준다. <장보고 과학기지를 향하는 쇄빙선 아라온호의 탐험>(아라온)은 남극에 위치한 장보고 과학기지로 향하는 아라온호 주변을 맴돌며 함께 남극으로 떠나는 여정을 체험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이번 공모전의 출품을 준비했던 많은 연출자들이 가장 주목한 VR의 기술적 특징은 아마도 ‘시점숏’이 아닐까 싶다. 대부분의 작품이 시점숏을 어떻게 내러티브에 활용할지를 치열하게 고민했는데 조현병을 소재로 한 반전 멜로 <나만 몰랐던 연애>(나몰연)에서는 일인칭 시점의 나를 주인공으로 설정해 알쏭달쏭한 연애의 한복판에 데려다놓는다. 이뿐 아니라 나를 안드로이드 시점으로 설정한 뒤에 이야기를 펼치는 <대한민국 최초 휴먼 안드로이드>(함동국)도 시점숏을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내세운다. 다만 이 작품들이 다루는 시점숏이 작품 전체를 단조롭게 만들거나 관객을 빨리 지치게 만든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일인칭 시점에서 벗어나 다양한 앵글의 활용에 중점을 둔 실사 기반 작품도 있다. 장르는 다르지만 <호녀전설>(파란오이, 최우수상 수상작)과 <야간수영>(이효림)은 한 가지 시점숏을 고정적으로 쓰지 않고 다양한 앵글로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 엿보인다. 이때 역시 중요한 건 ‘몰입감’이다. 이야기의 한복판으로 관객을 안내한다는 건 물리적으로 가상의 위치에 데려다놓는 기술 외에 마치 게임하듯 관객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이야기 구조를 필수적으로 수반한다는 뜻이다. <호녀전설>은 바로 이러한 필요성을 인터랙티브 요소로 극복하려 한다. 관객이 직접 결정적 순간에 여러 캐릭터의 시점을 골라서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호러 장르의 특성상 다양한 시각적 볼거리를 제공한다.

<장보고 과학기지를 향하는 쇄빙선 아라온호의 탐험>

상상력이 돋보이는 선정작들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애니메이션도 주목할 만하다. 뮤지컬 연극을 VR로 경험하게 한다는 뚜렷한 제작 의도로 만든 <아마드의 소원>(박지혜)은 난민이라는 동시대 이슈를 가족 뮤지컬의 형태로 전달하는 작품이며, <SHAKE UP>(SHAKE UP, 최우수상 수상작)은 소셜 참여형 콘텐츠로 여러 사람이 동시에 접속해 경쟁과 협력을 수반하는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 작품이다. 선정작 가운데 엔터테인먼트의 특징을 극대화한 작품은 <VOID>(김정수, 최우수상 수상작)다. 대상을 수상한 <Empty Your Brain>은 선정작 가운데 관객이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해 즐길 수 있는 인터랙티브 요소가 풍부한 작품이다. 르네 마그리트라는 작가의 작품 세계를 꿰뚫고 있는 안드로이드 복제인간과 함께 4개의 섬을 여행한다는 이야기로, 관객은 ‘모구레토’라는 캐릭터와 함께 길을 걸으면서 작품 세계를 둘러보게 된다.

18편을 모두 소개하지는 못했으나 이 작품들은 모두 한정된 기간에 각자의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그 시행착오가 현재 전세계에서 제작 중인 VR 콘텐츠가 지닌 고민과 결코 동떨어지거나 뒤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들의 다음 프로젝트를 응원하게 만든다. 지난 2월22일 열린 ‘VRound’ 시상식 자리에서 강연 연사로 참여한 샌드박스 이머시브 페스티벌의 체 린 프로그래머는 “VR은 기술과 몰입형 저널리즘, 게임과 교육 등 다양한 분야가 중첩된 영역이다. 그리고 영화와 연극 무대, 미술, 음악, 건축, 무용이 결합한 새로운 예술 형식”이라고 말했다. 이는 VR의 문법을 고민할 때 단순히 실사영화나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등의 한계 안에서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번 공모전의 선정작 면면이 그 무궁무진한 활용 가능성을 증명한다. VR의 가능성에 도전하고 싶다면 3월29일 금요일까지 문화, 체육, 관광분야의 시나리오 지원을 받는 2회 공모전의 문을 두드려보길. 공모전과 관련한 자세한 사항은 접수처(storyum.kr)와 접수 담당자(061-900-6357, silver@kocca.kr)에 문의하면 된다.

사진 한국콘텐츠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