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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⑨] 로이 앤더슨 기획전, 근작들과 초기작의 차이 한눈에

프레임을 통한 인간 존재의 전시

로이 앤더슨 감독.

스웨덴을 대표하는 로이 앤더슨 감독은 올해 <영원함에 대하여>라는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스튜디오 24가 제작하는 이 작품은 과작의 감독인 그가 또 한편의 문제적 영화를 내놓을 거라는 기대감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이번에 등장하는 인간은 어떤 모습일까. 희비극적으로 다가올 인간은 어떻게 우리 앞에 서 있을까. 로이 앤더슨의 인물들은 관객 앞에 독백하듯 서 있다. 재투성이가 된 얼굴로 버스에 타고 있거나, 카페에서 느닷없이 과거의 사랑을 읊조린다. 롱숏의 화면으로 전달되는 앤더슨식 장면들은 친숙하면서도(언제나 일상적 공간이 무대다. 침대, 버스, 카페, 술집, 거리 등)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인물들은 흡사 벌거벗겨진 채 던져진 것처럼 보인다).

<10월 5일 토요일>

대표작 <비둘기, 가지에 앉아 존재를 성찰하다>

대표작이자 제71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비둘기, 가지에 앉아 존재를 성찰하다>(2014)는 여러 인물들의 상황이 느슨하게 연결되는, 늙음과 죽음 그리고 박제되고 버려진 존재들에 대한 파노라마다. 술병을 따다가 심장마비로 쓰러지는 사내의 모습이 한 숏으로 제시된다.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 화면 안쪽의 주방에는 아내로 보이는 인물이 있는데, 그는 저녁을 준비하느라 남자가 쓰러진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비극적일 수 있는 장면이지만 대다수의 장면에서 그러하듯이 롱숏의 화면비율로 지켜보기에 희극적인 외관을 띤다. 영화 속에서 주된 인물인 외판원 샘과 조나단은 장난감을 팔러 다니며 여러 해프닝을 보여주는데, 외판원들이 파는 물건만큼이나 고객들의 반응도 기괴하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이 불러일으키는 느낌은 외판원들이 파는 물건의 특별함이나 영화 속에서 특정한 사건이 일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 그 자체에 기인하는 것처럼 보인다. 인물들은 현실에 놓여 있지만 부자연스럽게 던져져 있고, 영화의 시작 부분에 등장하는 박제 전시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인물의 모습처럼 박제된 것을 바라보는 박제된 인간처럼 보인다. 사물과 인간이, 세계와 인간이 서로 닮아 조응하면서 희비극을 일으킨다.

근작들 속에 다분히 깔려 있는 묵시록적인 분위기와 달리 초기작에는 보다 많은 생기가 있었다. 1968년에 선보인 <자전거를 가져오다>는 철학을 전공했던 로이 앤더슨 감독이 영화학교로 들어가 연출한 두 번째 작품이자 단편영화다. 젊은 연인이 아침에 깨어나는 순간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이불 속에서 깨어나고, 우유를 마시고, 짧은 대화를 나누고, 아침을 먹는 아침의 일상을 보여준다. 잦은 클로즈업과 밀착된 카메라는 두 연인 사이의 가까움을 보여주지만 이들의 관계가 무엇인지를 또렷하게 확인시켜주지는 않는다. 1940년대생인 앤더슨의 초기 작품들은 스웨덴의 젊은이들을 다룬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복지국가로 여기는 스웨덴의 기성세대와는 달리 젊은 세대들은 물질의 풍요로움 속에 정신의 빈곤을 느끼는 일이 많았고, 앤더슨의 영화가 이를 자연스럽게 반영하면서 그는 새로운 세대의 정신을 대변하는 작가로 여겨졌다.

<영광의 세계>

<자전거를 가져오다>에 이어 만든 <10월 5일 토요일>(1969)은 40분 정도의 분량으로 채워진 일련의 장면들인데, 젊은 남자의 하루를 따라가면서 그 가운데 드러나는 엄마와의 관계, 여자친구 그리고 여러 인물들의 모습이 느슨하게 전개된다. 같은 해에 만들어진 <스웨덴 러브 스토리>는 <10월 5일 토요일>의 확장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첫 장편 데뷔작인 이 작품은 청춘 세대인 아니카와 퍼의 사랑을 보여준다. 전작 단편들이 보여주듯 남녀 인물 사이의 지배적인 태도는 ‘머뭇거림’이다. 이 머뭇거림은 때로는 불확실성으로, 때로는 두려움으로, 두 사람의 관계 안에 놓인 상냥함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하지만 스웨덴이라는 복지사회의 풍요로움 속에 길을 잃어버린 부모 세대의 둔하고 정체된 현실이 깔리면서, 자동차 수리센터와 냉장고 대리점의 무료한 일상이 영화를 가득 채운다. 로이 앤더슨 감독은 느슨하게 장편들을 선보이면서 사진과 전시 작업들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0년대를 넘어서면서 선보인 <2층에서 들려오는 노래>(2000)는 유럽의 상황을 대변하는 충격적인 일상을 아우르기 시작한다. 해고당한 사무원이 상사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가 복도에서 질질 끌려가는 모습을 보여준다든가, 이민자로 보이는 인물이 길을 물어보다가 폭행을 당하는 장면 등은 잔혹한 현실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다. 은유적으로 보이는 장면도 있다. 사람을 칼로 자르는 마술을 선보이던 마술사는 상자 속에 들어간 남자가 비명을 지르면서 당혹함에 빠지는데, 장면이 바뀌면 상자에 들어갔던 남자는 배에 붕대를 감은 채 진료실로 들어온다. <2층에서 들려오는 노래>는 묵직해지기 시작한 앤더슨의 변곡점이다. 재난적인 상황으로 변해버린 현실을 특유의 유머로 담아내며, 불편한 현실을 다양하게 보여주기 시작한다.

<길리압>

<유, 더 리빙>의 철학적 의미

<유, 더 리빙>(2007)은 젊은 세대의 사랑과 불안 그리고 재난적 현실에 대한 성찰이 유연하게 집약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제목에서 떠올릴 수 있듯 살아가고 있는(죽음의 순간도 포함된) 당신의 장면들을 늘어놓은 이 작품은 매 장면들을 해석하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히게 하지만 끝내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을 수 있기에 우리(관객) 자신을 관통해버린다. 어떠한 정답은 없다. 무수한 상상과 해석의 가능성 속에서 앤더슨의 세계 속에 던져진 인간의 다양한 초상들을 집약적인 롱숏 화면으로 제시한다. 그래서 앤더슨의 영화는 철학적일 수밖에 없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보편적인 통찰을 담아 관객과 인물의 시선이 팽팽하게 부딪히는 순간을 연출하는 과제를 수행하면서, 동시에 투명한 장면들이 관객의 사유를 관통하는 영화적 경험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앤더슨의 세계에서 중심은 숨 막히는 인간의 모습 자체의 투명함을 태연하게 우리 앞에 전시하는 것이다. 우리는 흡사 박제된 세계를 보는 앤더슨 영화 속 인물처럼 박제된 표정으로 이 세계를 지켜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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