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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비평④] 윤형중이 본 <기생충>과 사회경제 정책, 반지하 주거공간을 중심으로

누가 이 사회에 기생하고 있는가?

우리가 사는 삶은 환경과 규범의 산물이다. 환경이 규범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거꾸로 규범이 환경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결국 이 둘이 우리가 사는 모습을 구성해낸다. 영화 <기생충>에서 기택(송강호)네 가족이 거주하는 반지하 집만 해도 그렇다. 기생충의 영어자막을 번역한 달시 파켓은 <중앙일보>과 가진 인터뷰에서 반지하를 “자막에 ‘세미베이스먼트’(semi basement)라고 나갔다. 잘 쓰는 영어는 아니다. 외국에도 반지하 형태는 있지만 한국만큼 사람들이 많이 살진 않는다”고 말했다. 유독 한국에 반지하 형태의 거주공간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오직 가난 때문일까. 가난은 어느 나라에나 있다. 그보다는 남북 대립, 주택 부족이란 환경이, 지하에 주거공간을 허용하는 법규와 지하에 집을 지어 수익을 추구하는 문화가 만연한 반지하 주거공간을 만들어냈다. 사회정책을 연구하는 내게 영화 <기생충>은 반지하 주거공간에 대한 강력한 고발로 보였다.

영화는 분명 시각과 청각만을 자극하는 데도 불구하고, <기생충>을 보면서는 자꾸 킁킁거렸다. 물론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지만, 퀴퀴한 습한 냄새의 기억이 떠올랐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왜 어떤 냄새를 불쾌하게 여길까. 분명 건강을 위협하는 물질에서도 역한 냄새가 나지만 김치나 치즈 등 다른 문화권의 음식 냄새도 불쾌하게 여긴다. 사람의 인식체계 자체가 과학적으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건강에 안 좋을 가능성이 있는 새로운 물질을 경계하라고 우리 몸이 보내는 신호다. 기택네 가족에게서 같은 냄새가 난다는 박 사장(이선균)네의 어린 아들 다송이(정현준)의 말에 기택의 딸 기정(박소담)은 이렇게 규정한다. “이거 반지하 냄새야.” ‘가난에는 냄새가 난다’는 문장은 <기생충>에선, ‘반지하에선 냄새가 난다’로 읽힌다.

반지하 주거공간의 역사

그렇다면 반지하 주거공간은 언제부터 생겨났고, 어떻게 만연하게 되었을까. 2002년 발간된 보고서 ‘지하주거의 실태와 문제점’(홍익옥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을 보면, 유적으로 발견되는 원시시대의 주거 이외에 역사 기록에서 지하 주거에 대한 내용은 찾을 수 없다고 한다. 그나마 남아 있는 기록이 1940년 경성제국대학 위생조사부가 발간한 <토막민의 생활·위생>에 1920년대 초반부터 서울에 토막민들이 급격히 확산돼 사회문제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고, 여기서 ‘토막’이란 땅을 파서 그 위에 세운 집으로 일종의 토굴과 같은 형태다. 주거에 대한 많은 유적과 기록이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남아 있지만, 적어도 그때엔 사람이 지하에 사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는 의미다. 일제시대의 토막도 2층 이상의 건물에 위치한 ‘반지하 주거공간’과는 다르다.

반지하 주거공간의 연원을 살펴보면 의외로 냉전의 역사가 나온다. 1970년 개정된 건축법 제22조의 3에 ‘건축주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용도 및 규모의 건축물을 건축하고자 할 때에는 지하층을 설치하여야 한다’는 규정이 신설됐다. 이는 남북간에 유사시에 지하층을 대피소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 지하공간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 당시에 많았던 주거형태가 하나의 주택에 소유주 가족과 임차인 가족이 함께 사는 ‘다세대거주 단독주택’이었는데, 이때 주인은 1층에 살고 지하층과 2층에 임대를 주는 경우가 흔했고, 한층에서도 방 하나만 따로 임대하는 ‘사글세’도 있었다. ‘다세대거주 단독주택’은 한 가구를 기준으로 설립된 주택이 대부분이라 임대하는 공간에는 부엌, 화장실 등의 기본 시설조차 없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도시에 살 곳을 찾아 지하로 들어갔고, 정부는 이럴 바엔 지하 주거공간을 제도화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법이 개정되어 하나의 건축물에 여러 가구가 거주하는 다세대주택과 다가구주택이 등장한다. 둘은 분류의 차이가 있을 뿐 하나의 건물에 여러 가구가 거주하는 형태다. 1984년 12월 건축법 개정으로 지하층의 요건이 완화됐다. 기존의 지하층은 한층의 3분의 2 이상이 지표면 밑으로 묻혀 있어야 했으나, 규제 완화로 2분의 1 이상만 묻히면 지하층으로 보았다. 이로 인해 기택네 집에 ‘창문’이 생겼다.

그런데 여기서 이런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지하층’ 규제 완화가 필요한 배경이 무엇이었을까. 여기에 ‘주어진 규제 환경에서 최대한의 수익 추구 메커니즘’이 있다. 건축주 입장에서 비용에 큰 차이가 없다면 지하층보다는 한층을 더 높이는 것이 공간 활용에 유리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지하공간을 파고, 그곳을 주거공간으로 매매하거나 임대했다. 그 이유는 당시부터 지금까지의 건축법에서 ‘지하공간’은 거저 주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 다가구주택의 층고는 4층 이하로 규제됐는데, 지하층을 활용하면 사실상 5개 층을 개발할 수 있었다. 가령 ‘지하를 파지 않으면 80개 집만 팔 수 있고, 지하를 파면 100개 집을 팔 수 있다’면 이런 상황에서 어느 기업이 지하를 파지 않겠는가. 비슷한 규제는 현행 법규에도 남아 있다. 현행 건축법 제119조를 보면, ‘용적률을 산정할 때에 지하층의 면적을 연면적에서 제외한다’는 규정이 있다. 즉 지하층은 건물 높이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의미다. 건축 기술의 발달로 지하공간을 개발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가 되었으나, 사람의 삶보단 누군가의 이익이 중요시되지 않는 사회가 되려면 그에 맞는 제도와 정책이 필요하다.

영화 <기생충>은 여러 숙제를 남기기도 했다. 반지하 주거공간의 실태, 거주민의 건강 등의 연구가 학계에 거의 축적되어 있지 않다. 결국 다시 홍인옥 당시 한국도시연구원 책임연구원의 보고서를 인용하면,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 1994년에 다세대 거주가구의 20.1%, 다가구주택 거주가구의 30.2%가 지하층에 거주한다는 발표를 했고, 이를 2000년 다세대주택, 다가구주택 규모에 대입하면 22만 가구가 지하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히고 있다. 당시에 단독주택과 연립주택에도 지하 주거공간이 있었기 때문에 최소 25만 세대로 추정된다고도 덧붙였다. 이 보고서에는 인상적인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설문에 응답한 반지하 거주민 127명 가운데 “3천만원이 생길 경우 어디에 사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74%가 “지상층으로 옮기는 데 사용”하겠다고 답했다. 그다음으로 많은 대답이 “빚 갚는 데 사용”(6.3%), “질병치료에 사용”(3.9%)이었다. 반지하에 대한 정확한 통계나 실태조사는 여전히 미진하다. 주거실태조사를 통해 ‘지하·반지하·옥탑 거주자는 41만8천여 가구에서 59만7천여 가구 사이가 될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법은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

집중호우가 있던 날 기택네 집은 침수가 되고, 하수는 역류한다. 그에 반면 언덕에 있는 박 사장네 집은 아무 피해가 없고, 다음날 오히려 ‘미세먼지’가 없다며 정원에서 파티를 연다. 이 장면에서도 여러 규범과 환경이 보였다. 반지하 주거공간에서 하수가 쉽게 역류하는 이유는 하수도 시설이 묻힌 곳이 그리 깊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부촌이 입지한 언덕에는 각종 상하수도, 전기, 가스 등의 기반시설을 설치하는 데에도 비용이 많이 들고, 운영하는 비용도 더 많이 든다. 특히 상수도의 경우 고지대에 물을 보내기 위해선 ‘가압펌프’가 필요하다. 그런데도 수도요금에서 펌프의 비용은 모두가 분담한다.

사회제도가 오히려 부유층에 유리하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건축주가 주어진 법규에서 최대한의 수익을 추구한 결과로 반지하 주거공간을 만들었다면, 높은 언덕에 집을 짓는 건축주도 법규의 혜택이 있다. 한쪽에서 바라볼 때 다른 한쪽의 절반 이상이 지표에 묻혀 있다면 지하에 해당돼 용적률의 혜택을 받는다. 물론 박 사장네 집을 건축한 남궁현자 선생은 공간을 무한정 늘리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의 세금제도에서 연금저축, 보험료, 기부금, 신용카드 사용액 등의 공제 혜택이 주로 부자들에게 몰리는 것처럼, 부유층과 권력을 가진 자는 사회의 제도와 법규에서도 혜택을 누린다. 마침 <기생충>의 관객수가 730만명을 돌파한 지난 6월 11일, 정부는 기업을 상속할 때 공제 등의 혜택을 주는 제도를 상속받는 자들에게 유리하게 바꾼다고 발표했다. 과연 누가 이 사회에 기생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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