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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픽처스] <내가 사는 세상> 최창환 감독, “배우들과 논의하며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김성훈 사진 백종헌 2019-06-21

잘 아는 사이일수록 계약서를 철저하게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호구되기 십상이다. 최창환 감독의 장편 데뷔작 <내가 사는 세상>의 주인공인 민규(곽민규)와 시은(김시은) 두 연인 또한 일은 일대로 하면서 근로계약서 한장을 제대로 쓰지 못해 마음고생이 심하다. <호명인생>(2008), <그림자도 없다>(2011) 같은 단편영화에서 노동문제와 청년실업을 꾸준히 다룬 최창환 감독은 이들의 가난한 연애와 일상을 통해 부당한 노동환경에 노출된 청춘의 현실을 건조하게 그려낸다. 제주도에 이주한 최 감독과 전화통화로 영화에 대한 자세한 얘기를 나누었다.

-전태일재단이 운영하는 ‘아름다운청년 전태일 노동영화제’로부터 연출을 제안받았다고 들었다.

=해마다 고향 대구에서 전태일 대구시민 노동문화제가 열린다. 문화제 기간 동안 대구 오오극장에서 ‘아름다운청년 전태일 노동영화제’가 진행된다. 이 영화제로부터 단편영화 제작 지원을 받으면서 시작된 프로젝트다.

-영화제가 연출을 부탁하면서 특별히 주문한 것은 뭔가.

=특별히 내세운 주문은 없었다. 노동영화제니 노동과 청춘에 관한 이야기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청년실업과 자본주의는 <호명인생> <그림자도 없다> 같은 전작을 관통하는 주제인데.

=그렇다. 노동문제라는 주제를 내세우기보다 이야기를 장르영화로 풀어내려고 했다.

-민규와 시은 모두 아르바이트하고 있는 직장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청춘 커플인데.

=이야기를 처음 구상할 때부터 창작하는 젊은 문화예술인을 주인공으로 설정했다. 디제이가 되는 게 꿈인 민규는, 디제이가 좋아서 7년 동안 대구에서 디제이로 활동했던 나의 자전적인 면모를 많이 반영했다. 시은은 원래 시인 지망생이었는데, 시인 지망생이 등장하는 한국영화가 많아 미대 출신인 미술감독의 권유로 미술 입시학원에서 강사 일을 하는 설정으로 바꾸었다.

-민규를 연기한 곽민규 배우는 어떻게 캐스팅하게 됐나.

=민규씨를 알게 된 건 그가 연출한 단편영화 <홍콩멜로>(2018)를 통해서다. 2, 3년전 한 단편영화제에서 심사를 한 적 있는데 그때 봤던 <홍콩멜로>가 내 취향과 딱 맞아서 너무 좋았다. 그가 주인공으로 출연했던 단편 <당신도 주성치를 좋아하시나요?>(2017)에서 민규씨의 얼굴을 보면서 함께 작업하고 싶었다. 이 영화의 연출을 제안받으면서 시나리오를 보내 같이 작업하자고 요청했다.

-<홍콩멜로>와 <당신도 주성치를 좋아하시나요?>는 김시은 배우도 주인공인데.

=그래서 시은씨가 민규씨와 연인으로 출연하면 좋겠다 싶었는데 처음 시나리오에서는 시은씨 역할이 너무 작아 선뜻 함께하자는 말을 못 꺼냈다. 그러다가 민규씨를 통해 연락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났다. 부산국제영화제에 가서 시나리오를 썼는데 낮에는 배우들을 만나 시나리오를 논의하고 밤에서 숙소에 들어가 시나리오를 쓰면서 시은씨 분량이 지금처럼 늘어났다.

-단편영화로 시작했다가 시나리오를 쓰면서 장편이 됐나보다. (웃음)

=시나리오를 다 쓰고 나니 70, 80분 분량이 돼 프로듀서와 어떻게 할지 논의했다. 프로듀서는 내가 연출을 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얘기했고, 쉽진 않겠지만 도전하기로 했다. 내가 잘 아는 대구에서 찍었던 까닭에 4회차 만에 촬영을 끝낼 수 있었다.

-민규도, 시은도 부당한 노동환경에서 자유롭지 못한 젊은 문화예술인이다.

=내 경험이 많이 반영됐다. 보통 친한 형, 선배 등 인간적인 관계를 맺은 같은 문화 예술인들과 경제활동을 하다보니 임금 미체불 문제에 쉽게 노출된다. 인간적인 관계더라도 표준근로계약서를 쓰는 게 당연한데 한국에서는 그걸 되게 어렵게 생각한다. 계약서 작성을 요구하면 ‘싸가지’ 없는 놈이 되니까. (웃음) 영화를 본 사람 대부분 자신의 얘기라고 생각할 거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인 민규와 시은, 두 남녀가 이별하는 엔딩 신은 다른 선택지가 없었나.

=민규씨는 민규가 시은을 계속 만났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잠깐 하기도 했지만 민규와 시은은 서로 헤어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이별이 사람을 성장하게 하니까. 그 장면 찍을 때가 많이 생각난다. 촬영현장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서 화도 나지만 참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어 민규씨에게 울지 말라고 했는데 편집에서는 민규가 우는 장면을 선택했다.

-현재 제주도에서 살고 있다고 들었는데 제주도로 이주한 이유가 뭔가.

=도시는 살아가는 데 되게 힘들다. 제주도가 너무 좋아 1년에 몇번 여행을 가곤 했다. 제주도로 먼저 이주한 지인이 도시에 있어봐야 힘드니 내려와서 살 것을 권유해 이주하게 됐다. 제주도에서 자그마한 펜션을 운영하고 있다. 펜션 바로 옆에 식당을 운영하는데 지난겨울 일본 라멘을 팔다가 여름을 앞두고 팥빙수 장사를 준비 중이다. (웃음)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되고 제주도에서 찍었던 영화 <파도를 걷는 소년>이 그랬듯이 앞으로도 계속 제주도에서 영화를 찍을 것 같다. 제주도에서 촬영하고 퇴근하면 정말 쉬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차기작은 무엇인가.

=아직 자세한 얘기를 하기는 어렵지만 프로듀서나 촬영감독으로 참여할 것 같다. 연출작은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호금전 스타일의 무협영화가 될 것 같다.

-어떤 이야기일지 궁금하다. (웃음) 영화를 극장에서만 보는 시대는 지났는데 이런 변화를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나.

=세상이 바뀌니까 플랫폼이 다양해지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변화 같다. 플랫폼이 많아지는 변화가 영화감독보다 기획 프로듀서나 제작자가 고민할 일이지만, 좋은 영화를 만들면 플랫폼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아 좋은 것 같다.

● Review_ 민규(곽민규)와 시은(김시은), 오래 사귄 두 연인은 꿈이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가 않다. 디제이가 꿈인 민규는 낮에는 퀵서비스 배달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친한 형 지홍(박지홍)이 운영하는 클럽에서 디제이 공연을 한다. 아티스트가 되려는 시은은 선배 지영(유지영)이 운영하는 미술학원에서 입시반 강사로 일한다. 둘은 표준근로계약서 한장을 쓰지 못해 전전긍긍한다. 월급이 덜 들어온 게 분명한 데도 사장을 찾아가 “월급이 덜 들어온 것 같다”고 불확실하게 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내가 사는 세상>은 생활고에 시달리는 두 연인의 일상과 연애를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새롭고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카메라는 하루를 전투처럼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건조한 흑백 화면으로 담아낸다. 밝지만은 않은 미래가 슬프면서도 이들을 응원하고 싶게 한다.

● 추천평_ 김소미 ‘그들이 사는 세상’을 질투할 겨를도 없는, 청춘과의 가난한 연애 ★★★☆ / 이용철 잘 살란 말밖엔, 음악도 잘하면서 ★★★☆ / 이화정 견고한 세상에 내려앉은 여린 마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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