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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해외 반응③] <필름 코멘트>의 니콜라스 라폴드 - 쉽게 벗어날 수 없다

봉준호 감독은 <설국열차>(2013)에서 커다란 캔버스에 세계를 달리는 종말의 열차로 그림을 그렸다. <옥자>(2017)라는 이야기를 통해서는 우리가 지구와 생태계의 안위에 대해 생각하게끔 유도했다. 그리고 감독은 <기생충>에서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세계 중 가장 좁은 공간인 두 집과 그 주변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러나 <기생충>의 두 집은 지구 하나가 감당해야 충분할 정도로 많은 감정과 혼란을 담고 있다. 봉준호 감독은 주어진 상황에서, 4개의 벽으로 닫힌 공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의 극한을 보여줌으로써 두 집의 층과 구석들을 탐험가의 호기심으로 준비해두었다. 4개의 벽은 관객이 <기생충>을 보는 극장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이 영화가 가진 힘의 일부는 영화를 보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은 뒤 탈출구 없는 확장된 극적 공간에 두 가족과 함께 두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기우의 결정

두 집 중에서 기택(송강호)과 충숙(장혜진), 그리고 이제 성인이 된 기우(최우식)와 기정(박소담)이 사는 곳은 좁디 좁은 반지하 집으로, 창 너머로 길이 보이고 비위생적인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이 좁은 집 때문에 가족들은 서로의 존재를 끊임없이 인지하게 된다. 봉준호 감독은 좁은 집의 물리적 한계를 가족들이 집 구석구석을 휴대폰 신호를 찾아 돌아다니는 장면으로 깔끔하게 설명한다. 돈을 아끼려고 무료 와이파이 신호를 연결하려고 시도한 사람이라면 무척 익숙할 장면이며, 아주 매혹적인 현대의 애원이기도 하다. 손을 높이 올리고, 연결을 바라고, 그 연결이 지속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봉준호 감독은 이 작은 주거공간을 통해 기택의 가족 사이에 끈끈한 유대를 세운다. 상황에 비해 이 가족의 태도는 절박하기보다는 장난스럽게 보인다. 어렵게 아이들을 뒷바라지하는 부모의 모습은 정직한 동시에 유머러스해서 감동을 준다. 이들은 살아가기에 충분한 돈을 벌기 위해 가족 모두가 일해야 한다. 성품이 착한 기우가 과외 자리를 얻기 위해 극한까지 가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피자 박스를 끊임없이 접는 일보다 더 나은 일로 가족을 돕고 싶은 그의 충동은 결국 어느 정도 질문의 여지는 있지만 도덕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선택으로 이끈다. 물론 질문이라는 건 언제나 밖에서 들여다보는 외부자들에게는 쉬운 법이다.

이제 기우의 새 직장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철저한 보안 시스템이 갖춰진 고급스럽고 모던한 그곳은 박 사장(이선균)과 그의 아내 연교(조여정), 10대 딸 다혜(정지소), 어린 아들 다송(정현준)이 사는 집이다. <기생충>에서 봉준호 감독은 박 사장의 집을 보여줄 때 피사계 심도가 깊은 컷을 사용하여 아직 관객이 경험하지 못한 박 사장의 집에 대한 미스터리, 잠재적인 흥미로움과 어떤 공허함을 드러낸다. 박 사장의 집에는 연극적인 면이 있다. 거실이 정원을 향한 모습은 마치 연극 무대 같은데, 이 거실과 정원 디자인은 단순히 삶을 위한 공간을 넘어 가상의 관객이 부유한 사람들의 집이 어떤 모습인지 관람하고 감탄할 수 있도록 건축적으로 고안된 것처럼 보인다. 알려진 것처럼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을 처음에 연극으로 만들 생각을 했다는데, 공간의 비교뿐 아니라 팽팽한 극적 감시 속에서 발전해가는 캐릭터의 심리 변화를 보여주기에도 좋았을 것이다.

나는 공간에 대해 오랫동안 글을 써왔는데, 봉준호 감독이 공간의 분위기를 이용하여 마치 탱고를 추듯이 영화의 플롯을 구성하는 기술의 능숙함에 대해서 꼭 언급하고 싶다. 기택과 그의 가족들이 박 사장 집에 들어가기 위해 그의 환심을 사는 장면은 거부할 수 없을 정도다. 그래서 기택과 그의 가족들이 마침내 박 사장 집에 들어가게 됐을 때, 나를 비롯한 관객은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 지나치게 까다롭고 짜증스럽기까지 한 칸국제영화제 기자 시사회의 관객이었다는 말을 덧붙이는 게 좋겠다(똑같은 일은 같은 날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시사회에서 한번 더 일어났다). 칸국제영화제에서 관객을 쥐락펴락하며 들숨과 날숨까지도 좌지우지하는 영화를 보면서 순수한 즐거움을 느꼈던 건 <토니 에드만>(2016) 이후 처음이었다.

봉준호 감독은 물론 관객을 이야기의 깊은 곳까지 끌어당기고, 관객은 과외 선생과 그의 가족, 그리고 부자들이 사는 집과 집주인 사이의 불협화음에서 오는 불편을 느끼게 된다. 이 과정은 마치 심리치료처럼 관객으로 하여금 그 집을 건축적인 면에서 돌아보게 한다. 박 사장의 집은 접근과 엿보기가 어려운 공간으로, 박 사장 가족은 보여지지 않음으로써 특권을 누린다. 영화에서 보여지지 않는 것은 힘을 갖게 되는데, 이는 영화 후반에 가서야 집 안쪽에 깊이 숨겨져 억눌린 무의식을 물리적으로 묘사한 공간을 통해서 그 최고조를 보여준다. <기생충>을 보던 극장에서 내 옆에 앉아 있던 동료는 엔딩 크레딧이 시작되자마자 큰소리로 “이건 <어스>야”라고 말했다. 지하에 묶인 채 살아가던 사람들이 혼돈을 몰고 오는 이야기, 조던 필 감독(<겟 아웃>)의 두 번째 영화 <어스>를 말한 것이다.

딱 떨어지지 않는 결말인 까닭은

봉준호 감독은 지하에 숨겨진 집을 드러냄으로써 기택에게 그의 가족보다 끔찍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언제나 있다는 것을 영리하게 알려준다. 또한 기택의 가족이 거만하고 부유한 박 사장 가족을 속이려고 했던 계획이 안전하지도 건전하지도 않았다는 걸 드러낸다. 영화의 제목인 <기생충>은 특정한 개인이나 가족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전체적으로 비정상적인 상황, 또는 빈부 격차가 팽배한 세상에서 관계들이 붕괴되는 경향을 표현한 것에 가까워 보인다. 아마도, 기택과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불공평하고 감당하기 힘든 세상과 거래하는 방법을 각자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희생하는 것은 무엇이고 그에 대한 대가는 무엇일까.

이 영화에 대해 심도 있게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우아하고 능수능란하게 내러티브를 새겨넣은 한 장면에 대해서 만큼은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영화의 결말이 가까워지면 폭력적인 장면이 등장한다. 한 캐릭터의 분노가 끓는점에 다다르고 그는 백주에 살인을 저지른다. 이 장면에서 피보다 더욱 분명하게 모두가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었다는 걸 확인시키는 건 캐릭터의 고통스러운 얼굴이다. 한순간에 하나의 삶이 사그라들었고 나머지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났든 안온한 삶을 꿈꾸며 연기했던 거실에서의 눈먼 순간은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한 채 사라지고 잊혀졌다. 이 영화는 딱 떨어지는 결말을 주지 않는다. 풍자적인 면에서도, 완벽하게 계획된 서스펜스에서도 마찬가지다. 봉준호 감독은 관객을 웃게 하고 숨죽이게 하고 놀라 뛰어오르게 했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쉽게 벗어나도록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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