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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⑥] 우수상 당선자 조현나 - 영화평론이라는 모험을 향하여
송경원 사진 최성열 2019-08-21

순수한 의미에서 진정 신인이다. 조현나 당선자는 “영화 전공자도 아니고 영화평론 쓰기를 본격적으로 배워본 적도 없는 자신이 당선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고” 했다. 거꾸로 그렇기에 그의 글은 이론적인 틀이나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신선한 관점에서 출발한다. 온전히 텍스트 안으로 파고들어가 자신이 발견한 것들에 집중하는 조현나 당선자의 글은 쉬우면서도 색깔이 분명하다. 모르는 걸 섣불리 아는 체하는 글이 난무하는 요즘 이렇게 정직하고 쉽고 성실한 글을, 앞으로의 활동이 더 궁금한 필자를 소개할 수 있어 다행이다.

-축하한다. 당선 전화를 받았을 때 수화기 너머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던데.

=기대를 전혀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좀 필요했다. 공모전에 글을 내본 게 처음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200자 원고지 50매 분량의 영화비평을 써본 게 처음이다. 영화평론을 하고 싶다고 마음먹고 지난해 가을부터 준비했다. 이번 공모전도 주변 지인들의 권유로 경험 삼아 한번 응모해본 거였다. 원고 제출하는 방식이라고 익혀보자는 정도의 심정이었기 때문에 당선 전화를 받았을 때 보이스피싱은 아닌가 하고 의심했다. (웃음)

-영화비평 쓰기를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였다는 게 놀랍다.

=홍익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잠시 편집디자인 일을 하다가, 매체 미학 쪽에 관심이 생겨 현재 동대학 미학과 대학원에 재학중이다. 평소 영화 보는 걸 좋아하고 평론도 즐겨 읽어왔다. 영화를 보는 것과는 또 다른, 독자적인 재미가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봤다. 취미삼아 왓챠에 단평을 남기는 정도였는데 언젠가부터 좀더 긴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숭례문학당에서 영화 글쓰기 수업도 듣고 혼자 습작도 하면서 조금씩 배워가고 있는 단계다. 주변 선생님이 목표를 잡는 게 중요하다며 <씨네21>에 한번 글을 써보라고 권해서 감독론을 처음 써봤다. 지난해 가을 무렵부터 시작해서 대략 한달 정도 이 글에만 매달렸다. 이후로도 여러 번 고쳐 썼고. 오랜 시간 공들여 고쳐가며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걸 모두 짜내 완성한 글이라 뿌듯하면서도 한편으론 스스로 모자람을 알기에 부끄럽다.

-당선된 원고는 기존 이론에 기대지 않고 자기가 본 것을 정직하게 말한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평론이란 분야는 낯설겠지만 글쓰기 자체는 익숙한 느낌이다.

=대학원에서 논문을 쓰고 있으니 글쓰기가 낯설진 않다. 다만 논문은 배우고 익힌 걸 정리하는, 공부하는 느낌에 가깝다면 영화평론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기분이다. 대학원이 학자로서의 이론 공부라면 평론은 내 언어로 풀어낸다는 희열이 있다. 영화를 볼 때 세부적인 것에 집중하는 편이다. 거기서 의미를 찾고 다른 사람의 의견과 비교해 나가는 과정이 재미있다. 비유하자면 모험가가 되어 새로운 영역을 발견하고 지도를 그려나가는 기분이다.

-‘모험’이라는 표현이 와닿는다. 영화비평이 “나침반 하나 없이 사막을 걷는 일과 같다”고 표현했던 평론가도 있다. 막상 평론을 쓴다고 해도 혼자 질문하고 답을 내기는 쉽지 않을 텐데.

=아트하우스 모모 등에서 강의를 몇 차례 들은 적 있다. 그 밖엔 영화평론모임에서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 피드백을 받으며 배우고 격려를 받기도 했다. 모임이름이 ‘씨네22’다. (웃음) 처음엔 어디까지나 취미 영역이었는데 할수록 점점 마음이 커져서 이번 도전으로 이어졌다. 글을 쓸 땐 가능한 한 영화 자체에 집중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전공자가 아니라 이론적인 내용을 잘 모르는 것도 있지만 답은 항상 영화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안에서 발견한 질문을 바깥으로 끄집어내어 확장하는 게 첫 번째 목표다.

-이론비평으로 마틴 맥도나 감독의 <쓰리 빌보드>, 작품비평으로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해피엔드>를 골랐다.

=<쓰리 빌보드>는 개봉이 지난 후 뒤늦게 봤다. 영화 자체도 만족스러웠지만 결말이, 특히 엔딩이 인상적이었다. 장르적인 재미도 있었지만 주목해야 할 건 연대 그 자체라고 생각하고 거기서부터 시작했다. 마틴 맥도나 감독은 비슷한 이야기와 구조를 반복하는데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지만 내겐 흥미롭게 다가왔다. <해피엔드>는 작품비평을 할 영화를 한참을 고르지 못하고 있다가 프리미어 상영으로 조금 일찍 보고 이거다 싶었다. 영화가 끝난 뒤에 질문이 계속 이어지는 종류의 영화라고 생각한다. 각기 다른 질문들을 하나로 연결시키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편의 글이 완성됐다.

-어떤 영화를 주로 보나? 또 어떤 영화를 보고 나면 글이 쓰고 싶어지는지.

=영화를 가리진 않는다. 장르, 감독 가리지 않고 되는대로 최대한 다양하게 보고자 하는 편이다. 다만 보고나서 글이 쓰고 싶어지는 영화들은 확실히 있는 것 같다. 영화 안에서 이야기를 깔끔하게 마무리 짓지 않고 관객에게 질문을 던져주는, 영화관 바깥까지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는 영화에 끌린다. 예로 들자면 아녜스 바르다나 에드워드 양,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을 좋아한다. 최근 한국영화 중에는 <미성년>을 인상 깊게 봤다. 김윤석 배우가 연출을 맡았다고 했을 때 다소 편견이 있었다. 중견배우가 메가폰을 잡아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건 아닌지 의심했는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본인은 판을 깔아주고 아이들의 시선으로 불륜에 대해 풀어가는 게 흥미로웠다. 나의 섣부른 예측을 기분 좋게 배신하는 영화들을 좋아한다.

-앞으로 어떤 평론으로 독자들과 만나고 싶나.

=말하고자 하는 바를 분명하게 밝히고 논지를 힘 있게 끌고 가는, 단단한 글쓰기를 하고자 한다. 이제까진 내가 쓰고 싶은 영화로 어떻게 보면 편식을 해왔는데 지금부터는 배우는 자세로 지평을 넓혀나가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자신을 믿고 선명한 색깔이 있는 글쓰기가 필요하다. 다소 논란이 생기더라도 자기 의견을 분명하게 밝히는, 논쟁적인 글이 항상 재미있다. 예를 들면 남다은 평론가의 글을 보며 ‘이렇게 선명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적 있다. 우선은 다른 이들의 의견을 널리 살펴보고 아무도 하지 않은 지점을 발견한 뒤 친숙한 나의 언어로 풀어내고자 한다. 독자들이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영화평론의 위기는 매해 거론된다. 특히 다양한 매체를 통해 ‘말하는 평론’이 자리 잡으면서 글로 풀어내는 평론의 입지가 점점 좁아져가는 게 사실이다.

=그게 흐름이라면 나는 거꾸로 걸어온 사람이다. 왓챠에 단상을 올리는 걸로 시작해 할 말이 점점 많아지고 더 깊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져 글쓰기를 시작했다. 편집과 출판쪽 경험을 바탕으로 말하자면 종이책이 언젠가 없어질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해도 일정 수요는 항상 유지될 것이라 생각한다. 책이라는 개념이 있는 한 종이책을 사고 싶어 하는 이들은 언제나 존재한다. 평론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시장이 작아질 순 있지만 여전히 원하는 사람들이 일정하게 존재할 것이다.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고 본다. 적어도 나에겐 긴 글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필요하다.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

=일단 무사히 졸업하고. (웃음) 막연하지만 비평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오랫동안 이어졌으면 좋겠다. 이번에 당선을 기대하지 않았던 건 경험 부족이었던 것도 있지만 후회하지 않을 만큼 지금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를 쏟아부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도 그 감각을 잃지 않고 매번 후회를 남기지 않을 만큼 전력으로 글을 쓰고자 한다. 혹시라도 느슨해질 것 같으면 오늘 내게 주어진 이 감사한 기회를 기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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