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2
[경기영상위원회②] <담쟁이> 한제이 감독, 배우 우미화·이연·김보민 - 우리 그냥 '가족'하면 안 될까요?
김소미 사진 백종헌 2019-10-24

배우 이연·우미화·김보민, 한제이 감독(왼쪽부터).

경기 인디시네마의 다양성영화 제작투자지원작인 한제이 감독의 데뷔작 <담쟁이>는 서로 사랑하는 두 여성의 일상을 그리면서 이들이 응당 누려야 할 행복의 권리에 대해 말한다. 40대 은수(우미화)와 20대 예원(이연), 그리고 은수의 9살 조카 수민(김보민)은 한집에서 산다. 소소한 매일의 기쁨을 누리고 싶은 이들은 “사회의 제도와 인식 때문에 가족구성원이 될 수 없는”(배우 우미화) 아픔 속에서도 서로를 지키는 중이다. 성소수자의 차별과 소외를 주로 개인의 영역에서 질문했던 한국 퀴어영화의 경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담쟁이>는 세 여성이 이룬 대안 가족의 미래가 더욱 자유롭기를 염원하는 작품이다. “마지막 촬영날, 이제는 매일 볼 수 없다는 사실에 헤어지는 게 너무나 아쉬울”(한제이 감독) 만큼 편안하고 끈끈한 호흡을 보여준 <담쟁이>팀을 만났다.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는.

=한제이_단국대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졸업작품을 준비하던 중에 <담쟁이>의 몇몇 장면을 떠올렸다. 영화의 첫 장면에 김보민 배우가 연기한 수민이 등장하는데, 수민이에게 키다리 아저씨를 만들어주고 싶다는 게 처음 구상 단계에서의 심정이었다. 그런데 그게 왜 꼭 아저씨여야 할까, 여성이 될 수는 없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여기에 동성 부부가 응급실에 갔을 때 서로의 보호자로 공식적인 인정을 받지 못해서 면회를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던 내 인상을 반영해 <담쟁이>를 완성했다.

-그동안 한국에서 대안 가족으로서 생활적인 고민을 제시한 퀴어영화는 드물었다.

한제이_연인이 처음 사랑을 느껴서 한명은 자신의 정체성을 모르다가 상대로 인해 서서히 깨닫게 되는 플롯이 많다. 이제는 대부분이 아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그들이 이미 부부처럼 살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사례에 관해선 왜 아무도 이야기를 하지 않나 싶었다. <담쟁이>가 가족에 대해 재정의를 할 수 있는 영화면 좋겠다.

-주로 연극계에서 활동한 우미화 배우와 신인 이연 배우의 조합이 흥미롭다. 시나리오에서 어떤 매력을 느꼈나.

=우미화_시나리오를 단숨에 읽었다. 아프지만 담담하고 따뜻한 이야기였다. 성소수자든 누구든 일상에서 소소하게 행복을 누릴 수 있어야 하지않나. 사랑과 가족에 관한, 특별하지만 특별하지 않은 우리의 이야기라고 느꼈다.

=이연_극중 예원은 감정 표현을 숨기지 않는 편이다.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스킨십을 하려고 한다거나 표현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다. 나 역시 사랑할 때 직진하는 편이라 더 공감이 갔다. <담쟁이>는 여러 퀴어영화들과 비교해서 특히 현실적이고 꾸밈이 없어서 좋았다. 사실적인 묘사 덕분에 캐릭터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우미화_맞다. 그냥 마음이 훅 가버렸다. “저 사람들이 그냥 같이 살면 안 되나? 왜 사회가 저들을 못살게 하지?” 그런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영화다.

-초등학생인 수민, 20대인 예원, 40대인 은수와 현재 30대인 감독까지 세대가 다른 여성들이 나란히 앉아 대안 가족을 말하는 광경이 흥미롭다. 촬영현장 분위기도 화기애애했을 것 같은데.

=김보민_연이 언니와 친하게 지내고 맨날 노는 게 즐거웠다. 특히 똥침…! (웃음)

이연_미안해, 이제 안 그럴게! 수민은 은수의 조카지만, 성격상 예원이 좀더 수민을 챙기게 되는 면이 있다. 수민의 엄마가 되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뭉클했다. 은수와의 관계에 있어선 초반에 걱정이 되기도 했다. 연인 사이의 ‘섬싱’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이미 열심히 사랑하면서 일상을 꾸리는 커플을 연기해야 하다보니 심리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거리를 좁혀야 했다. 아무래도 실제로 나이 차가나기도 하고 큰 선배님이라….

우미화_나 나이 얼마 안 먹었어! (일동 웃음)

이연_그래서 감독님이 데이트비를 10만원이나 쥐어주고 가까워질 기회를 자주 마련해줬다. 둘이 영화 보고 아귀찜 먹고, 같이 서점 들러서 책도 사고, 길상사에서 산책도 했다. 어느 순간 잘 보니까 선배와 내가 비슷한 모습이 있더라. 무의식적으로 취하는 포즈 같은 것들이 닮아서 신기했다.

우미화_성남에서 4일 정도를 이동 없이 쭉 찍은 적이 있는데, 그렇게 한 공간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다 보니 어느새 ‘우리 진짜 가족 같다’ 싶은 느낌이 찾아왔다. 셋이서 바다 보러 가는 장면을 촬영할 땐 모래사장에 앉아서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좋았다. 그리고 마지막 촬영 전날이었나, 가수 우효의 <민들레>라는 노래를 듣는데 첫 소절이 “우리 손잡을까요”라서 울어버렸다. 우리 영화에도 은수가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 예원의 손을 잡지 못하는 장면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손잡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싶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던 것 같다.

-경기영상위원회의 지원을 받으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한제이_단순히 자금을 지원해주는 데에 끝나지 않고 로케이션 헌팅이나 후반작업 업체 선정에 있어서 실질적인 도움을 많이 받았다. 물적, 인적으로 다방면에 걸쳐 지원이 있었기에 첫 영화를 만드는 내게는 큰 격려가 됐다.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