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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의 배우들③] 시어머니 역 김미경 - 사실적인 어긋남의 순간들
장영엽 사진 백종헌 2019-11-13

“부산에 너무 연기를 잘하는 언니가 있어요.” <82년생 김지영>에서 지영의 시어머니 역 배우를 고심하던 김도영 감독에게 배우 이정은이 건넨 조언이다. 그는 바로 ‘부산의 박정자’라는 별명을 가진 부산 출신의 배우 김미경이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것은 아니고 몇번 작품에서 얼굴 보고 인사를 나눈” 사이인 이정은 배우가 왜 그의 캐스팅을 강력하게 밀었는지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보면 알 수 있다. 지영(정유미)의 남편 대현(공유)의 어머니이자 지영의 시어머니를 연기하는 김미경은 대중매체가 묘사하는 전형적인 시어머니의 모습에서 살짝 비껴나 있다. 명절날 시댁에 갔다가 뒤늦게 온 딸이 가여워 여태껏 고생한 며느리에게 상을 한번 더 봐오라고 말하는 무심함과 줄 서서 겨우 받아온 앞치마를 며느리에게 건네며 “니 꽃무늬 좋아하제”라고 묻는 천진난만함이 공존하는 얼굴. 김미경은 악의가 있어서라기보다 상대방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어긋남의 순간들을 지극히 현실적이고 납득 가능한 방식으로 연기한다.

“4남1녀 집안의 맏이”이자 외할머니, 어머니와 한집에 살아온 경험이 <82년생 김지영>의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김미경은 말한다. “며느리만 네명인 집의 시누이로 살아오다보니 자연스럽게 체감되는 장면이 많았다. 우리 어머니도 평소에 ‘내 같은 시어머니가 어딨노’ 하지만 아무리 잘해준다 해도 딸과 며느리를 똑같이 대하기는 쉽지 않잖나. 한편으로는 어머니 세대가 살아온 삶의 방식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사와 육아를 병행하는 것이 당연했던 어머니 세대의 여성들은 요즘 같으면 살 만한데 젊은 여성들이 역할을 다 못하고 있다고 오해할 수도 있을 거다.” 때문에 80살 노모가 극장에서 며느리와 함께 <82년생 김지영>을 본 뒤 “니 섭섭한 거 있으면 말해라. 앞으로 마음에 안 드는 거 있음 바로바로 얘기하자”라고 얘기했다는 일화를 듣고 김미경은 무척 뿌듯했다고 한다.

김미경은 부산의 유명 극단 가마골의 창단 멤버로 배우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고등학생 때 연극반을 했는데, 부산의 기성 극단에서 활동하던 분들이 연출을 하러 오셨고 그중에는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신태범 선생님이 계셨다.” 신태범 작가는 ‘문학과 연극은 불가분의 관계’라며 김미경에게 문학 공부를 권했고, 그의 영향을 받아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한 김미경은 20살 되던 해부터 바로 기성 극단의 배우로 캐스팅되어 무대에 올랐다. 연극배우 김미경의 별명은 ‘땡크’. 무대에서 파워풀한 연기를 선보인다는 의미에서 그런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부산경남방송 KNN의 ‘리플’ 드라마(시청자들의 인터넷 댓글 참여로 스토리를 완성한 신개념 드라마)에 출연하며 활동 반경을 넓혀가던 김미경은 이창동 감독의 <밀양>에 양장점 주인 역으로 캐스팅되며 영화 관계자들의 눈에 띄기 시작했다. “연극무대에 오래 섰더니 연극 스타일의 연기가 몸에 배어 있었나보다. 그때마다 ‘배우의 정신이, 몸이 그 인물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어야 한다’는 이창동 감독님의 말씀을 떠올렸다.” 이제는 연극인들에게 연극적이지 않다며 욕을 먹고 있다고. “나도 모르는 새 영화인이 되어버린 것 같다”고 김미경은 말했다.

<밀양> 이후 김미경은 영화 <이웃사람> <골든슬럼버>, 드라마 <직장의 신> <너희들은 포위됐다> <낭만닥터 김사부> <쌈, 마이웨이> 등에 출연했다. 매니저 없이 홀로 활동했기 때문에 스스로 운전을 하고 메이크업을 고치며 “유랑극단 단원처럼” 10년 넘게 살아왔다고 한다. <82년생 김지영>에 출연한 이후, 김미경에겐 34년 만에 소속사(디퍼런트 컴퍼니)가 생겼다. 온전히 연기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좋은 건지 알았더라면 진작에 소속사와 함께했을걸 그랬다며 김미경은 웃었다. 그가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역할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닮아 있는 인물이다. “<밀양> 이후 이 세상의 엄마, 이 세상의 할머니 역할은 다 한 것 같고, 배우로서 큰 공부가 되었다. 하지만 누구의 엄마, 할머니를 떠나 50대 여성으로서 나와 닮은 인물을 매체에서 만나보기 어려운 것 같다. 요즘 내 또래 여성들은 만나기만 하면 갱년기 얘기를 한다. 동세대 여성의 다양한 측면을, 연기를 통해 보여줄 수 있는 배우가 되었으면 한다.” <82년생 김지영>과 더불어 최근 극장가에서 만나볼 수 있는 이동은 감독의 영화 <니나 내나>에서, 김미경이 말하는 동세대 여성의 얼굴을 직접 확인해보시라.

●김도영 감독이 말하는 김미경

“지영의 시어머니 역으로 부산 사투리를 하는 배우를 찾고 있었는데, 이정은 선배의 적극 추천으로 김미경 배우를 만났다. 부산 사람 특유의 활기찬 에너지가 있으셨고, 소녀 같은 면이 있으셨다. 이런 분이 지영의 시어머니를 연기한다면 이 역할이 두루 입체적으로 보이겠다는 생각에 캐스팅했다. 정말 좋아하는 장면은 시어머니가 지영에게 앞치마를 건네는 장면이다. 그때 김미경 선배님이 너무나 설레고 아기 같은 표정을 지으신다. ‘이 선물 받고 지영이가 정말 좋아하겠지’하는 표정인데, 그 표정만으로도 인물의 감정을 이해하게 만드시더라. 서울역에서 지영에게 ‘밥 좀 잘 챙겨먹으라’고 이야기하는 장면도 오직 선배님이기 때문에 가능한 감정의 결이었다고 생각한다.”

●필모그래피

영화 2019 <82년생 김지영> <니나 내나> <배심원들> 2018 <암수살인> 2017 <골든슬럼버> 2016 <운동회> 2015 <앨리스: 원더랜드에서 온 소년> <소시민> 2014 <안녕, 루이> 2013 <마트 옆 시장> <대회전> <소원> 2012 <이웃사람> 2007 <밀양> TV 2019 <호텔 델루나> 2017 <명불허전> <쌈, 마이웨이> <피고인> 2016 <낭만닥터 김사부> <딴따라>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2014 <아이언맨> <너희들은 포위됐다> 2013 <직장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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