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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맨③] 마틴 스코시즈 영화 세계를 둘러싼 몇 가지 키워드
김현수 2019-11-20

킬러도 구원이 되나요

<비열한 거리>

시작하자마자 대서사시라는 말이 어울릴 기나긴 스토리와 인물관계가 쏟아져 나오는 <아이리시맨>을 보면서 기시감이 드는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전작을 떠올린다거나 혹은 레퍼런스로 활용됐을 고전영화 리스트를 즉각 작성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적어도 2번 이상은 봐야 제대로 윤곽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리시맨>을 보다가 길을 잃지 말라고 영화의 지도에 이정표가 될 몇 가지 키워드를 꼽아봤다. 여기 모아놓은 키워드가 결코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영화 세계 전부를 대변할 수는 없다. 그래도 방향과 목적이 같다면 충분히 공감할 만한 키워드다.

<아이리시맨>

구원

마틴 스코시즈 감독은 영화의 주인공을 쉽게 죽음으로 내몰지 않는다. 여성혐오와 인종차별을 일삼거나 혹은 망상증 환자가 주인공일지라도 자기파괴적인 결말로 내몰지 않는 이유는 그의 영화가 인간의 구원에 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일례로 삼류 도박꾼과 양아치 친구들의 뒷골목 일상을 극사실적으로 보여주는 두 번째 연출작 <비열한 거리>는 “네가 지은 죄를 교회에서 속죄하지 말아라. 거리와 집에서 속죄해라. 그외에 행해지는 것은 모두 허튼소리다”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주인공 찰리(하비 카이텔)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면서도 교회에 들르거나 평상시에도 축복을 주는 성직자의 제스처를 따라 한다거나 과거에 성직자로부터 받았던 가르침을 되새기며 산다. 그에겐 늘 챙겨야 할 또라이 같은 도박꾼 친구가 있고 간질을 앓는 여자친구가 있으며 이 모든 걸 탐탁지 않게 여기는 마피아 삼촌도 있지만 그 누구 하나 포기하지도 실망시키고 싶지도 않아 한다. 그의 인생은 그의 주변 사람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이상적인 상황을 좇는다. 이 영화의 결말은 <택시 드라이버>에서 자신이 시궁창에 빠진 소녀를 구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 착각하는 트래비스(로버트 드니로)의 최후와 닮았다. 그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는다. 스코시즈 감독은 또 <좋은 친구들>의 내부고발자 헨리(레이 리오타)의 마지막을 보여주는 엔딩에서 죽은 그의 절친 토미(조 페시)의 총격 장면 환상 신을 추가함으로써 홀로 살아남은 헨리의 죄의식을 확인 사살하듯 보여주기도 한다. 스코시즈 감독은 <비열한 거리> <좋은 친구들>에 이어 라스베이거스를 쥐고 흔들던 마피아 조직의 검은돈의 실체와 탐욕을 다룬 <카지노>까지 묶어서 ‘거리 영화 3부작’이라 일컬은 적이 있는데 그 이유는 3편의 영화가 결국 “인간에게는 구원의 여지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의 영화는 항상 구원의 문턱에 놓인 인간들에게 흥미진진한 여지를 남긴다. 어려서부터 성직자가 꿈이었던 마틴 스코시즈 감독은 속죄와 구원이라는 종교적인 고민을 영화를 통해 쏟아냈다. 그것은 자신의 청년기를 일기장처럼 기록했던 <비열한 거리>에도, 주변 모두에게 상처를 줬던 가학적인 남자의 목소리를 앞세운 <분노의 주먹>에도, 한 여자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평생 가슴에 묻어둔 채 살아가는 남자의 뒷모습으로 끝을 맺는 <순수의 시대>에도 담겨 있다. 구원이란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전체 필모그래피를 경유하는 주제이기도 하고, 특히 <택시 드라이버> <분노의 주먹>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을 집필한 폴 슈레이더 감독 역시 유사한 주제를 탐구하는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도 두 감독의 공통된 관심사를 읽을 수 있다. 사실 마틴 스코시즈 감독은 다큐멘터리를 비롯해 인간의 삶의 무게를 도발적으로 질문하는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과 신의 부재에 관한 <사일런스> 같은 종교영화도 지속적으로 만들고 있다. 물론 신과 범죄를 소재로 삼는 그의 영화 여정의 종착점은 언제나 인간이다. 구원이란 키워드가 <아이리시맨>의 엔딩을 이해하는 데 약간의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카지노>

신념

<아이리시맨>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 개개인의 원동력은 각기 다를 것이나 프랭크 시런(로버트 드니로)의 시선에서 그를 사로잡는 인물들, 이를테면 전미운수노조 ‘팀스터스’의 노조위원장 지미 호파(알 파치노)나 범죄자 집단의 우두머리 격인 러셀 버팔리노(조 페시)는 목적은 같으나 태도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 프랭크가 둘 사이에서 어떤 갈등을 겪고 선택하게 되는지를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지미 호파는 <카지노>에서 고집불통 마초 완벽주의자로 등장한 에이스(로버트 드니로)를 떠올리게 한다. 마틴 스코시즈 감독은 당시 에이스란 인물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신념을 가지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정신적인 성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누군가 신념을 가졌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반드시 정신적 성장을 이루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미 호파라는 인물의 뿌리가 어디에서 기인했는가를 따져 묻는다면 에이스뿐만 아니라 그의 영화 속 수많은 캐릭터가 일거에 소환되어야 한다. 그의 영화는 또 신념을 지키는 자의 얼굴에 주목하는 편인데 늙어가는 황혼기의 주인공(<카지노> <순수의 시대>)의 주름살과 흰머리를 보여줌으로써 신념의 세월, 나아가 구원의 여지를 영화적으로 드러낸다. 왜 스코시즈 감독은 노년의 배우들과 CG의 힘을 빌려가면서까지 <아이리시맨>을 만들어야 했을까. 그에겐 나이든 지금의 배우들의 얼굴이 그만큼 중요했기 때문이다. 앞서 스코시즈 감독의 말을 이어서 소개하자면 그는 이런 말도 남겼다. “정신적인 성장이란 자신을 넘어서서 생각할 줄 아는 것이다.”

<좋은 친구들>

뉴욕

언급하기가 새삼스럽지만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영화는 대부분 배경이 뉴욕이다.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초기작 몇편과 소재와 장르상 뉴욕에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이야기의 영화를 제외하면 <비열한 거리>의 리틀 이탈리아, <택시 드라이버>의 웨스트사이드, <좋은 친구들>의 브루클린,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맨해튼을 비롯해서 <순수의 시대>와 <갱스 오브 뉴욕>이 보여준 19세기 근대 뉴욕의 풍경까지 한 도시 구석구석을 집요하게 파헤친다. 인간이 결코 만족할 수 없는 탐욕의 세계 라스베이거스를 배경으로 하는 <카지노>를 만든 이후, 결국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조던 벨포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함께 탐욕이란 키워드를 들고 뉴욕으로 돌아온 것만 봐도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집요한 뉴욕 사랑을 들여다볼 수 있다. 뉴욕이란 도시가 지닌 지역적 속성, 나아가 미국 사회의 근원에 대해 묻는 시도는 대부분 아일랜드나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의 삶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도 특징이다. <아이리시맨> 역시 제목 그대로 이민자들의 도시, 뉴욕에 발붙이고 살아가려던 퇴역군인 프랭크가 어떻게 범죄의 길로 들어서며, 과연 어떤 신념을 갖고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스코시즈 감독이 나고 자란 뉴욕은 한때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범죄도시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세계 금융의 중심부이며 여전히 수많은 욕망이 뒤엉켜진 채 살아가는 도시다. 낭만보다는 현실의 뉴욕이, 중심보다는 주변의 뉴욕이 그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아이리시맨>

실화

마틴 스코시즈 감독은 실화나 실존 인물, 소설에서 많은 영향을 받아 영화를 만들었다. 대표적으로 미국 복서 제이크 라모타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만든 <분노의 주먹>이나 작가 찰스 하이엄의 논픽션을 바탕으로 실존 인물인 억만장자 하워드 휴스의 생애를 다룬 <에비에이터>, 14대 달라이 라마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쿤둔>, 주식중개인 조던 벨포트의 이야기를 다룬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등은 모두 이들이 이뤄낸 결과의 가치에 주목하는 영화이다. 월터 테비스 작가의 동명 소설이자 <허슬러>의 후속작인 <컬러 오브 머니>, 카잔차키스 소설이 원작인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에디스 워턴 작가에게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안겨줬던 동명 소설이 원작인 <순수의 시대>, 작가 조 코널리의 의학 소설이 원작인 <비상 근무>, 허버트 애즈버리의 논픽션이 원작인 <갱스 오브 뉴욕>, 데니스 루헤인의 <살인자들의 섬>이 원작인 <셔터 아일랜드> 등은 스코시즈 감독이 뉴욕이란 굴레에서 한껏 벗어나 만든 영화들이다. 물론 범죄자들에 관한 이야기 역시 니콜라스 필레기 작가의 논픽션 <와이즈 가이>와 <라스베이거스의 사랑과 영광>이 바탕이 되어 각각 <좋은 친구들>과 <카지노>가 완성됐다. <아이리시맨> 역시 찰스 브랜튼의 논픽션 <아이 허드 유 페인트 하우시스>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이번 영화는 그의 각색 계보에서 실존 인물과 범죄 야사 모두를 놓치기 싫어했던 감독의 의지가 투영된 결과 아닐까 싶다. 영화의 원제는 특별한 타이포그래피를 이용해서 영화에 두어 차례 등장한다. 물론 스코시즈 감독은 “범죄는 하나의 맥락에 지나지 않을 뿐”이란 말을 한 적 있다.

<카지노>

트래킹숏

마틴 스코시즈 감독에게는 캐릭터나 상황을 전달할 때 즐겨 쓰는 전달법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롱테이크로 찍는 트래킹숏이다. 그런 장면에서는 카메라가 인물의 동선을 바짝 뒤쫓으며 영화의 공간 속으로 인물과 함께 쑤욱 들어가는 느낌을 연출한다. <비열한 거리>에서 찰리가 스트립바에 들어서서 무대 위로 난입해 춤을 추기까기의 과정을 보여주는 신과 <좋은 친구들>에서 헨리가 줄이 길게 늘어선 술집의 뒷문으로 들어가 애인과 함께 무대 안쪽에 특별석을 만들어 앉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신이 대표적이다. 물론 <갱스 오브 뉴욕>이나 <휴고>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대부분의 영화에서 한 차례씩 이를 활용했다. 그 카메라워크에는 공간의 풍부한 정보뿐만 아니라 캐릭터에 내재된 삶의 태도가 담겨 있다. 맥락은 유사하지만 <비열한 거리>의 찰리와 <좋은 친구들>의 헨리가 술집에 들어서는 태도는 세상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갱스터가 되고자 하는 강한 열망과 주변 사람들이 보내는 열광이 이들을 지상낙원으로 올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연출이다. <아이리시맨>은 아예 그의 전매특허나 다름없는 트래킹숏으로 영화의 시작을 연다. 스코시즈 감독의 연출 특징으로 슬로모션과 안무에 가까운 액션, 개성 강한 팝음악의 접목도 빼놓을 수 없는데 이들 역시 <아이리시맨>에 모두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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