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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날드 아저씨에서 중년의 가장까지, <아빠는 예쁘다> 배우 김명국 스토리
이화정 사진 백종헌 2019-11-28

그의 드라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익히 아는 배우’에서 ‘김명국’으로

“오늘 제가 명함을 가지고 오지 않아서…. (웃음)” 스튜디오에 들어선 김명국이 명함 대신 자신을 ‘설명해줄’ 단어들을 한 아름 꺼내놓는다. “네? 한국맞춤양복협회요? 거기 회원이라고요?” 귀를 의심하는 기자의 질문에, “한양여자대학교 실용음악과 내 뮤지컬 강의도 하고,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 홍보대사, 한국힙합문화협회 홍보위원장도 하고 있다. 연극배우협회, 탤런트협회 노조는 기본으로 가입되어 있다. 노조 회비 꼬박박꼬박 낸다. 연기자로 권익을 찾고 발언권을 갖자면 협회, 노조의 보호가 필요하다”고 답한다. 한국맞춤양복협회 회원답게 몸을 감싸듯 꼭 맞는 편안함은 어느 기성복에서도 찾을 수 없다며, 요즘은 사람들이 잘 입지 않는 맞춤양복을 여전히 고집한다는 김명국 배우. 코트를 벗자 보석 달린 셔츠의 커프스단추가 반짝이며 시선을 잡아끈다.

사실 명함과 이름을 따로 꺼내들 필요가 있을까. 배우 김명국은 드라마로, 영화로, 그리고 CF로 대중에게 꽤나 익숙한 사람이다. ‘맥도날드 광고 아저씨’로 불리던 시간들이 있었고,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장군 송희립으로 기억되는 시기도 있었다. 또 누군가는 <약속>의 박신양의 상대파 조폭 두목 정택파 회장 남정택으로 그를 기억한다.

어느 쪽으로 떠올려도, 짙은 쌍꺼풀의 커다란 눈, 강인한 인상의 김명국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배우’다. 그럼에도 그를 ‘김명국’이라는 이름으로 명명하지 않았던 시간을 지나, 이제 김명국은 <아빠는 예쁘다>를 통해 오롯이 주연의 타이틀롤로 자신의 이름을 꺼내든다. 그전과 다른 점은, 기존의 강한 캐릭터와는 정확히 대척점에 있는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것이다. 소주회사 ‘좋데이’에서는 실적을 올리지 못하는 무능한 구성원, 집에 오면 아내와 딸에게 무시당하는 가장. <아빠는 예쁘다>는 만년 과장 덕재가 어느 날 여장클럽 하와이에 가서 여장을 하고 무대에 서면서 자신감을 회복하는 내용을 그린다. “눈초리에 힘을 뺀, 지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사극의 장수 역, 액션물의 형사 역 대신 김명국의 눈망울에 담긴 ‘슬프고 나약한’ 드라마를 읽은 건 <아빠는 예쁘다>의 박수민·김승협 공동감독이었다. “감독님들 말이 내 눈망울이 슬펐다고 하더라. (웃음)” 하지만 ‘맥도날드 광고’ 속 푸근한 인상의 중년 배우를 떠올렸던 두 감독이 맞닥뜨린 건 한창 보디빌딩으로 몸을 만든 중년의 남자였다. “배우는 항상 몸을 만들어야 하니 운동을 꾸준히 하는데, 그땐 더 열심히 운동하던 때였다.” 캐스팅 결정이 나고 감독들이 주문한 요구는 하나였다. “이제 운동하면 안됩니다!” 운동을 멈추고, 밤에는 폭식하면서 김명국은 밤마다 바이어를 만나 술접대를 하고, 지쳐가는 덕재의 몸을 만들어나갔다.

열심히 살아온 당신의 얼굴이 참 예쁘다

중년 가장의 얼굴로 시작한 김명국은 영화에서 두 얼굴을 연기한다. 영업 실적을 올리기 위해 찾은 클럽 하와이. 그곳의 신생 멤버로 ‘꽤나 소질 있다’는 평가를 받는 여장 남자 미란다. <7년 만의 외출>(1955)에서의 마릴린 먼로 분장을 위해 베이스를 꼼꼼히 바르고, 얼굴을 조막만하게 해줄 입체적 셰딩을 하고, 마릴린 먼로의 트레이드마크인 점을 정교하게 찍어낸다. 멀리 거슬러 올라가자면 쓰임새가 없어 여장을 해서라도 배역을 따내는 <투씨>(1983)의 더스틴 호프먼 같은 조금은 투박한 분장이다. 2002년 뮤지컬 <헤어스프레이>에서 존 트래볼타가 했던 트레이시의 엄마 에드나 역할을 한 적 있으니, 여장 연기는 이미 경험한 터다. “평범한 아버지가 여장을 한다면 어떨까. 거기서 오는 어색함을 비주얼로 표현하는 게 과제였다. 정말 예쁘다기보다 ‘열심히 살아온 당신의 얼굴이 참 예쁘다’라는 공감대를 주고 싶었다.”

‘콘테스트에서 1등해 상금 500만원 받아 딸 결혼자금을 마련하겠다’는 명분으로 시작하지만 그 밑바탕에 있는 건 가장으로 살아오다 실추된 어깨, 그걸 세워줄 자존감 회복이었다. “아버지이자 남편이자 가장인 덕재의 마음이 읽히더라. 실제 나에게도 26살 된 딸이 있다. 지금은 해외에서 취업해 떨어져 살고 있는데, 작품하면서 딸 생각이 많이 났다.” 이 작품에만 집중하자는 마음으로 다른 작업은 고사했다. 그렇게 촬영 당시 한달 반을 부산 고시텔에서 기거하면서 촬영했다. “조감독이 첫날 효자손을 선물로 주고 갔다. 혼자 있을 때 등 긁으라고. (웃음)” 비슷한 감정을 줄 수 있는 작품들을 찾아보며 준비를 했다. 돈을 벌고자 스트립 공연을 하는 <풀 몬티>(1997)의 남자들도 연구했다. 그렇게 덕재의 내면에 있는 외로움과 고독을 찾는 시간. 빠듯한 독립영화 촬영은 그에게도 연기를 시작했던 당시의 고생담을 떠올리게 하는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학생 감독들의 작품이라 외적으로 어려움이 컸다. 그런데 연기하는 내내 즐거웠다. 사실 감독들이 일일드라마에 나올 법한 평범한 아버지 역할로 나를 떠올리지는 않는다. 항상 너무 강하다고 생각한다.” 김명국은 덕재의 모습이 자신의 연기에서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 “배우 김명국이 이런 감정의 드라마를 연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돌아보면 배우 김명국의 캐릭터는 언제나 강렬했다. 한 작품에 10명의 장군이 캐스팅됐을 때 존재감을 증명하지 않으면 다음 회차가 보장되지 않는 드라마 시스템에서 김명국이 생각하는 건 자신의 ‘분량’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튀어야 한다. 안 그러면 1회차 끝나고 캐릭터가 없어진다.

그런 경험도 했다. 시청률에 단 1%라도 기여해야 한다.” 살아남기 위한 과장된 연기를 하면서도 그가 지키고자 한 것은 하나였다. 바로 ‘온전히 그 작품 속 인물이 되자’. “‘김명국’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는 전형적인 연기를 하는 대신 각각의 작품 속 캐릭터에 맞게 내면이 바뀌는 연기를 하려고 늘 노력했다.” 서울예술전문대학교(지금의 서울예술대학교) 연극과에서 연기 공부를 하며 연극무대에 서고 배우가 된 그에게 그건 연기 원칙론 같은 것이었다. “사극 속 장군은 다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변별력 없이 똑같이 가는 게 싫었다. 조금씩이라도 캐릭터를 바꿔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김명국이 자신의 이름 대신 그 작품 속 캐릭터로 남게 된 이유다.

<불멸의 이순신>

당장 앞이 아니라, 멀리 보며 산다

김명국이 이렇게 평생 업을 연기로 삼으며 보내온 시간. 시작점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연기 대신 ‘밴드’라는 키워드가 나온다. 그는 그룹 샌드페블스 선배들의 영향을 받으며 팝송을 즐겨 듣고 드럼을 치던 고등학생이었다. “효창동 지하실에 연습실을 차려놓고 만날 라면 끓여 먹으면서 연습했다.” 1983년 대학 2학년 때 5인조 그룹 ‘열두냥서푼’으로 대학가요제에 참가했고, 은상 수상 경력도 그즈음 생겼다. 음악이 중심이 되었던 시간. “대학 입학 면접 때 교수님이 그러셨다. ‘너 드럼 치러 왔지?’” 연극 공부하러 왔다는 그의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타고난 발성으로 연극과 시험에 통과했고, 뒤늦게 연기에 눈을 떴다. “졸업작품으로 <우리 읍내>라는 연극을 하는데 선배 중 한분이 학교도 안 나오고 음악한다고 돌아다니는 나에게 주인공을 시켰다. 주위의 반대가 엄청났었는데, 그 선배가 그러더라. ‘명국이 너는 대기만성형이야. 정말 좋은 배우가 될 거야.’” 돌아보면 밴드 활동을 하면서 리듬감을 익힌 것이 연기의 바탕이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연기는 리듬이다. 상대방과 호흡을 주고받는 리듬. 박자만 맞추는 게 아니라 서로 밀고 당기며 리듬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음악과 같은 사람이 되자’라는 말은 그러니, 작품 안에서 조화를 찾아가는, 그런 배우, 캐릭터가 되자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TV, 스크린 연기를 하면 ‘배신자’라고 치부되고 ‘연극’ ‘무대’에서의 공연이 ‘진짜 연기’라고 생각하던 젊은 시절의 그는 이제 드라마도 영화도 전천후로 오가며 자신을 보여주는 중년의 배우가 되었다. 연극만으로 먹고살 수 없어 생활에 보탬이 되고자 시작한 게 드라마, 영화 연기였다.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자유당 정권 시절 형사로 출연해 사람을 매달아놓고 고문하는 장면을 찍는데 얼굴을 찌르다가 손에 묻은 피(물론 식용색소였다)를 입으로 빨아먹는 애드리브에 고 김종학 감독이 그를 눈여겨보았다. 드라마 <야망의 전설>에서 군인을 취조하는 장면에서는, 취조 전에 계단을 내려올 때 이를 쑤시면서 내려왔다. 이 장면은 그들의 만행이 자신들에게는 특별한 게 아닌, 늘 밥먹고 고문하는 게 일상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사실적인 연기로 작용했다. “촬영 끝나고 나가는데, 조연출이 김명국씨 하고 부르더라. 다음에 더 나와달라고. 석달 연극하고 15만원 받을 때다. 그때 드라마 일당이 하루 21만원이었는데 두번 나오면 더블이 된다. 집사람이 첫아이를 임신해 배부를 때였으니 기저귀 값이 생각나더라.” 그렇게 작은 역할이지만, 그는 늘 그 역할을 살아 있게 만드는 디테일한 애드리브를 만들어냈고, 그게 업계에서 ‘김명국’을 찾는 구실이 되어주었다.

돌아보면 힘든 시절 이야기는 끝이 없다. 김명국이 “리어카 끌고 휴지 팔러도 다니고, 하루 일당으로 노역도 하고, 쓰레기도 치워보고 안 해본 일이 없었다. 너무 힘들어서 쓰레기 끌어안고 운 적도 있다”고 이야기하다가 손사래를 친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휴지 사세요’ 하는 지금 이 순간이 발성 연습이 되어 언젠가 연기를 할 때 도움이 될 거라고.” 2000년 1월 맥도날드 광고로 전 국민에게 얼굴을 알리고, 이제 좀 숨통이 트인다 할 때쯤, 그해 3월 어린 아들이 백혈병 판정을 받고 5년간 투병하다 유명을 달리했다. 그 아픈 시간들을 품고 주저앉지 않고 달려온 김명국의 ‘지금’. 그의 드라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깡패 아니고, 조폭 아니고, 장군 아닌. 내가 가진 감성과 다양한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고 싶다.” 배우로서 그가 꿈꾸는 앞으로의 시간이다. 잘 사냐는 지인의 물음에 그가 들려주었다는 말을 배우 김명국 스토리, 이 기사의 맺음으로 남긴다. “나는 당장 앞은 안 봐. 멀리 보고 살아.”

<네 멋대로 해라>

깡패, 형사. 장군, 얼마나 많았기에?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혜린(고현정)을 취조하던 악덕 형사, 영화 <약속>(1998)에서 조폭 공상두(박신양)의 상대파 정택파 회장 남정택, 드라마 <동네변호사 조들호: 죄와 벌>의 사이비 교주 이재룡,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이순신의 죽음을 지켜보는 장수 송희립. 그리고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에서 복수(양동근)를 쫓아다니던 형사 박정달. 김명국의 필모그래피에서 돋보이는 깡패, 형사, 장군 역은 끝이 없다. “최근에도 지하철을 탔는데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그러더라. ‘네멋 폐인’이라고. 너무 잘 봤다고. (웃음)” 잘 웃고 선한 그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맥도날드 광고의 마음씨 좋은 아빠를 찾아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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