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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최고의 한국영화들①] <씨네21> 편집부가 선정한 2010년대 한국영화 베스트10
송경원 김소미 이주현 2020-03-12

시대의 고민 혹은 거대한 전환

<씨네21>은 2020년을 맞아 오늘 한국영화의 위치를 확인하고 다시금 정확한 좌표 설정을 시도하고자 한다. 2010년대 우리를 뒤흔든 10편의 영화를 선정함에 있어 몇 가지 기준이 있었다. 내적, 그리고 미학적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2010년대 한국영화사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를 첫 번째 기준으로 세웠다. 이를 위해 최소한의 원칙을 한 가지 두었다. 한명의 감독이 만든 영화는 반드시 한 작품만 꼽았다는 것이다. 더불어 다큐멘터리, 독립영화 등 가능한 한 다채로운 장르와 특성을 포괄하고 안배해 언급하고자 노력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나고 보니 유독 중요했고 아름다웠던 영화들, 지난 10년을 설명해줄 10편의 영화를 소개한다.

1위 <기생충>

감독 봉준호 / 2019년

믿기 힘든 일이지만 봉준호 감독은 <씨네21> 연말 결산에서 한번도 1위를 한 적이 없다. 2000년 <플란다스의 개>는 5위권 밖에 이름이 언급되는 정도에 그쳤고 당시 획기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 2003년 <살인의 추억>도 <지구를 지켜라!>에 밀려 2위에 머물렀다. 이유는 단순했다. 평단의 사랑을 받는 영화는 대개 압도적인 마스터피스이거나 영화언어의 과감한 확장을 시도하거나 둘 중 하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 또한 인식의 한계를 유발하는 편향성의 결과임을 뒤늦게 자각한다. <지구를 지켜라!>가 ‘한국영화의 한계를 돌파하는 비약의 순간’으로 기억될 때 <살인의 추억>은 ‘배우, 감독, 관객이 모두 만족할 영화’라는 안전한 상찬에 머물렀다. 흔히 말하는 작가의 예술적 성취와 장르의 대중화법 사이에서 봉준호는 절묘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였고, 반응은 거기까지였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지금 되돌아보니 결국 살아남은 자는 봉준호다. 우리는 이제야 봉준호의 지난 시간들이 균형을 맞추는 작업이 아니라 자신의 언어를 발견하는 시간이었음을 깨닫는다. 상업적으로 의미 있는 성취를 거둔 <괴물>(2006)과 미학적인 면에 집중한 <마더>(2009)를 거친 후 봉준호는 한동안 우리 앞에서 사라졌다. 정확히는 <설국열차> <옥자> 등 한국영화의 카테고리를 벗어나 글로벌 프로젝트의 한복판에서 활약했다. 심지어 그때도 봉준호는 할리우드나 유럽의 제작 시스템에 편입된 존재가 아니라 그저 봉준호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다다른 <기생충>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하지만 모두가 공감할 만한 ‘봉준호 영화’가 되었다. 국내외 흥행은 물론 평단에서의 단편적인 반응만 모아도 이 영화는 한국영화 100년에 기록될 족적을 남기는 중이다. 우리는 지금 칸국제영화제를 필두로 한 여러 시상식은 물론 <필름 코멘트> <인디와이어> <카이에 뒤 시네마> 등 각종 영화 전문지에서 단 한편의 한국영화에 열광하는 생소한 풍경을 목격하고 있다. <기생충>을 설명하고자 하는 무수한 언어 중에서 ‘봉준호 장르’라는 말처럼 이 영화의 본질을 정확히 짚고 있는 표현도 없을 것이다. 감독이 멸종되어가는 한국영화에서, 결국 최종 승리자는 봉준호다._송경원 기자

2위 <>

감독 이창동 / 2010년

선정에 이견이 없었다. 이창동 감독의 <>는 2010년 <씨네21>이 뽑은 올해의 한국영화 1위, 올해의 시나리오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2010년대 한국영화를 돌아볼 때 <>가 남긴 고요하고 홀연한 궤적을 떠올리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데뷔작 <초록물고기>(1997) 이후 <박하사탕>(1999), <오아시스>(2002), <밀양>(2007)을 거쳐 나타난 <>는 이창동 감독이 2010년대 서두에 내놓은 최종장 같았다. 영화는 경기도 변두리에 사는 노인 미자(윤정희)가 시를 배우며 삶에 서린 고귀함을 확인하고, 동시에 가족이 저지른 악행을 속죄하는 과정을 한줄 한줄 꾹꾹 눌러 써내려간다. 일상의 안개를 걷어내고 한국 사회의 고통스러운 징후를 서사화했던 이창동 감독의 리얼리즘은 특히 <>에서 세심하고 서정적인 방식으로 집약되었다. 2020년에 <>를 돌이켜볼 때 우리는 새삼 지난 시절에 대한 감독의 근심과 한숨을 확인하게 된다. 시를 잊은 시대, 죄가 넘쳐나는 시대, 그리고 그 죄를 방조하거나 전가하는 나날의 반복. 영화는 치매를 앓는 미자의 시 쓰기를 통해 타락한 현실에서는 좀처럼 도드라지지 않는 윤리와 아름다움의 영역을 건져올린다. 이처럼 감독의 영화 중 표면적으로 가장 조용하고 사소한 세계에서 출발했으나 그 종착지는 높고 비상한 <>는 “각본의 포맷이 아니라 소설 같은 형식이어서” 영화진흥위원회 심사에서 각본 부문 0점을 받은 뒤 이윽고 제63회 칸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다. 정부 주도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출몰하기 시작한 이 무렵 <>가 불러일으킨 정치적 함의는 지금도 여전히 무거우며, 영화는 외부의 압력을 넘어서는 자생적 힘으로 세상에 응답했다.

한편 <만무방>(1994) 이후 스크린을 떠났다가 이창동 감독의 호출에 다시 돌아온 배우 윤정희는 2019년에 뒤늦은 투병 소식을 알려왔다. 이제 <>는 배우 윤정희가 스스로와 일부분 닮은 캐릭터를 입은 채 마지막으로 자신을 불태운 작품으로 기억될 숙명도 떠안았다. 슬프고도 기묘한 방식으로 끊임없이 공명하는 영화다. 그리고 <> 이후 가장 최신의 이창동 감독은 <버닝>(2018)으로 이 시대를 버텨낸 감상을 다시금 전해왔다. 시 쓰는 노인과 소설 쓰는 청춘을 그린 두 작품은 신기하리만치 이질적인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칸국제영화제를 비롯한 해외 비평가들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호평과 달리 국내의 반응은 <>보다 조금 엇갈리는 모양새다. <>의 성전에서 내려와 <버닝>의 바닥으로 파고든 감독의 좌절과 결기를, 2020년대를 통과하며 조금 더 지켜보고 싶어진다._김소미 기자

3위 <아가씨>

감독 박찬욱 / 2016년

봉준호의 <기생충> 이전에 박찬욱의 <올드보이>(2003)가 있었다. 해외 영화인들과 대화할 때 박찬욱과 <올드보이>는 한국영화로 향하는 입구이자 출구 같은 이름이었다. <기생충>의 등장으로 이 모든 것이 과거형이 되었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기생충>이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에 호명되기 이전, 한국영화 100년사의 근거리에는 늘 박찬욱의 존재가 있었다. 그 사실을 상기하며 <아가씨>의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박찬욱 감독이 2010년대에 만든 영화는 영국에서 만든 TV시리즈 <리틀 드러머 걸>을 제외하고, <스토커>(2013)와 <아가씨>(2016) 두편이다. 박찬욱 감독은 <박쥐>(2009) 이후 할리우드에서 <스토커>를 찍었고, 할리우드에서 돌아와선 사라 워터스의 소설 <핑거스미스>를 원작으로 한 <아가씨>를 만들었다. 애초 <스토커>와 <아가씨> 사이에 얘기되는 여러 프로젝트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아가씨>를 2016년에 내놓은 건 운명 같은 느낌마저 든다. 그해 한국에선 여성 혐오에 맞선 페미니즘 운동이 뜨겁게 확산되었고, 여전히 한국 상업영화에서 퀴어영화는 미답의 영역으로 남아 있던 희귀 장르였기 때문이다. 적어도 국내에선 부산행 열차에 좀비가 탑승한 것보다 대자본과 스타 배우가 투입된 퀴어물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더 놀라운 일이 아니었나 싶다.

<아가씨>의 의미는 한국 상업영화의 장르적 지평을 넓혔다는 데에만 있지 않다. 제69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상영작 <아가씨>는 박찬욱 영화의 진화를 보여주는 지표 같은 작품이다. <아가씨>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 <스토커>에서 이어지는 여성 성장 3부작 혹은 <복수는 나의 것>(2002),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2005)로 이어지는 복수 시리즈에도 포함할 수 있는 작품이다. 두 여성 숙희와 히데코의 복수를 경유한 러브 스토리는 전에 없는 짜릿함과 해방감을 안겨주었고, 대담하고 관능적인 이미지에선 거장의 여유와 야심을 읽을 수 있었다. 한편 2016년 한국영화는 대풍년이었다. <아가씨> <곡성> <비밀은 없다> <부산행> <아수라> <우리들>이 동시개봉한 해였는데, 2016년 <씨네21>이 선정한 올해의 영화, 올해의 감독, 올해의 여자배우(김민희), 올해의 신인여자배우(김태리), 올해의 제작자(임승용), 올해의 촬영감독(정정훈)까지 5개 부문을 <아가씨>가 싹쓸이했다. <올드보이> 때부터 손발을 맞춰온 정정훈 촬영감독, 류성희 미술감독, 조상경 의상감독 등 박찬욱 사단이 함께한 작품인 만큼 촬영, 미술, 의상 등 프로덕션 각 분야에서도 최고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다. 류성희 미술감독은 이 영화로 칸국제영화제의 기술상인 벌컨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고, 여기에 영화가 만들어낸 강력한 팬덤까지, <아가씨>는 2010년대 박찬욱 영화의 가장 특별한 영화로 기억되기 충분하다._이주현 기자

4위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감독 홍상수 / 2015년

아마 ‘감독마다 한 작품을 고른다’는 기준이 아니었다면 홍상수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개봉일 기준으로 2010년 <옥희의 영화>와 <하하하>, 2011년 <북촌방향>, 2012년 <다른 나라에서>, 2013년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2014년 <자유의 언덕>, 2016년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2017년 <밤의 해변에서 혼자>와 <그 후>, 2018년 <풀잎들>, 2019년 <강변호텔>까지 홍상수의 모든 영화들에 고른 지지가 이어졌다. 2010년대에 홍상수 감독이 끼친 영향에 대해선 별다른 설명이 필요치 않다. 이렇게 그의 필모그래피를 한번 읊는 것만으로 한국영화의 역사, 그 한축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꾸준히, 동시에 매번 새로운 방식으로 영화의 영토를 넓혀온 작가는 오직 홍상수뿐이다. 홍상수 영화에 대해 지지가 흩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그가 걸어온 시네아스트의 길을 증명해준다. 그중에서도 왜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인가. 홍상수 미학의 대중적 인지를 고려했다면 <북촌방향>이 첫손가락에 꼽힐 것이고, 솔직하고 투명한 영화 세계를 반영한 것으로는 <밤의 해변에서 혼자>만 한 영화가 없다. <씨네21>에서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에 주목한 건 2010년대 변화의 시작을 알린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계속 세계를 확장해나갈 작가를 두고 정의내리는 건 의미 없는 작업이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연출한 영화를 기준으로 하자면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이른바 전환점이라 할 만하다. 맞고 틀리는 건 의미 없다. 변하지 않는 건 그가 언제나 변화해왔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작가 홍상수는 언제나 우리 곁에서 ‘오늘’을 산다._송경원 기자

5위 <비밀은 없다>

감독 이경미 / 2015년

<비밀은 없다>는 여전히 논란의 영화다. 누군가는 마땅히 <씨네21>다운 선택이라 할 것이고 누군가는 의외의 선정이라 할 것이다. 선거를 앞두고 국회의원의 딸 민진(신지훈)이 어느 날 밤 갑자기 사라진다. 딸을 찾으려는 엄마 연홍(손예진)은 남편 종찬(김주혁)과 딸의 친구 미옥(김소희)을 중심으로 모두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얼핏 줄거리만 보아서는 범죄 스릴러에 가족드라마가 결합된 형태처럼 보이지만 이경미 영화의 여자들은 순진한 듯 웃으며 그러나 영리하게 그물망을 빠져나간다. 이야기를 지배하는 정서, 캐릭터와 디테일에 깃든 감수성, 혼란스러운 숏의 배치 등에 이르기까지 CJ엔터테인먼트가 배급한 영화 중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대담하고 불균질하다. <비밀은 없다>는 대중영화에서 기대하기 어려운 과잉과 도취가 장면화 과정에서, 이야기의 길목에서 불쑥불쑥 솟아나는 영화다. 그래서 반갑고 소중하다. 이경미 감독은 장르의 무대로 정치판을 끌어들인 뒤, 남성 중심의 기성세계에서 ‘미쳐버린’ 여자들, 청소년들, 소수자들이 어떻게 길길이 날뛰는지를 의도적으로 전시한다. 친절하지만 안일한 스토리텔링을 거부하고, 모든 장면에서 악을 쓰거나 혹은 귓속말을 한다. 그것이 이경미 감독이 영화의 친구로서 관객을 존중하고 우대하는 방식이다. 2010년대의 한 가운데에 불시착해 기획영화의 홍수 속에 돌을 던지는 작품. 우리는 이렇게 관객을 시험하며 돌진하는 감독이 더 많이, 더 자주 필요하다. 최근 2년 사이 독립영화계를 중심으로 여성감독의 약진이 두드러진 데에는 이경미가 선두에서 보여준 용기와 뚝심의 영향을 간과할 수 없다._김소미 기자

6위 <황해>

감독 나홍진 / 2010년

“나홍진의 영화는 어둡고 무거운 기운들이 덩어리져 있다.” <카이에 뒤 시네마>의 평론가 뱅상 말로사는 나홍진 감독의 <곡성>을 극찬하며 이렇게 말했다. 장면마다 해석 불가능한 기운들이 넘쳐나는 나홍진의 영화야말로 ‘한국영화’ 하면 떠오르는 들끓는 에너지를 대표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감독들이 쏟아져나온 2000년대 초반과 달리 감독이 영화의 얼굴이 되는 사례가 줄어들고 있는 게 2010년대 한국영화의 현실 중 하나다. 굳이 세대를 구분하자면 나홍진은 이를테면 2000년대의 끝자락에 속해 있는 감독인 동시에 2010년대 제일 앞단에 서 있는 작가 중 한명이다. 2008년 데뷔작인 <추격자>는 빼어난 장르영화로서 쉽게 잊기 힘든 긴장감을 선사했다. 2016년 세 번째 장편영화 <곡성>은 개봉 전부터 ‘무시무시한’ 영화로 입소문이 났고 나홍진이라는 묵직한 존재감을 증명했다. 하지만 <씨네21>이 주목하고 선정한 영화는 나홍진의 두 번째 영화인 <황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황해>는 거대하고 위대한 실패작이다. 데뷔작에서는 그나마 장르라는 틀 안에서 억제되었던 작가적 야심이 두 번째 영화에선 (전작의 상업적인 성공 덕분에) 완연하게 해방될 기회를 마련했다. <황해>는 대형 배급사의 시스템 안에서 만들어졌지만 시스템의 통제를 벗어나 감독의 색깔을 온전히 드러낸 희귀한 사례로 기억될 만하다. 불편하고 불친절하며 불균질한, 그래서 더욱 매혹적인 과잉의 이미지들. 156분에 이르는 길들여지지 않은 영화는 그렇게 완성됐고, 세상은 나홍진의 위력을 실감했다._송경원 기자

7위 <벌새>

감독 김보라 / 2018년

2010년대 가장 높이 그리고 멀리 비상한 독립영화는 김보라 감독의 <벌새>다. 국내외 영화제 45관왕이라는 타이틀이 말해주듯 <벌새>는 국내에서는 물론 해외에서도 고루 지지받았다. 또한 독립 극영화가 10만 관객을 돌파하는 게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도 14만여명의 관객을 불러모으며 평단뿐 아니라 관객에게도 사랑받았다. 의심의 여지없이 <기생충>과 함께 2019년 최고의 영화로 회자된 작품이 <벌새>다. <씨네21>이 선정한 10편의 2010년대 베스트 한국영화 중 데뷔작으로 이름을 올린 감독은 김보라 감독이 유일하다는 것도 특기할 만하다. 봉준호, 이창동, 박찬욱, 홍상수, 류승완, 나홍진 등 200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한국영화를 떠받쳐온 이름들과 나란히 김보라 감독의 이름이 언급되었다는 점에서도 <벌새>의 힘을 느낄 수 있다. 또한 10명의 감독 중 여성감독은 단 두명인데, 바로 <비밀은 없다>의 이경미 감독과 <벌새>의 김보라 감독이다. <우리들>의 윤가은 감독, <소공녀>의 전고운 감독 등이 2010년대 중후반 새로운 세대와 공명하는 영화를 만들어 사랑받았고, 2019년에 이르러선 이옥섭 감독의 <메기>, 한가람 감독의 <아워 바디> 등 다양한 색채의 여성 서사가 속속 당도했다. 2019년은 독립영화뿐 아니라 상업영화 진영에서도 여성감독들의 활약이 두드러진 해인데, <벌새>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최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시간이 흘러 <벌새>가 어떠한 평가를 받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2020년을 막 맞이한 현시점에서 독립영화계의 아이돌이 된 김보라 감독과 <벌새>는 근래 독립영화계의 최고로 빛나는 결실이라 할 수 있다._이주현 기자

8위 <부당거래>

감독 류승완 / 2010년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이후 10년간 류승완 감독은 액션 키드로서의 장기와 키치적 정서를 특별하게 배합한 영화들을 만들었다. 개성으로 무장한 캐릭터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뚝심과 거친 에너지로 넘실대는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피도 눈물도 없이> <아라한 장풍대작전> <짝패> 같은 영화들 말이다. <부당거래> 이후의 영화는 이전과 확실한 차이를 보인다. 영화의 외적 규모만 보더라도, <베를린> <베테랑> <군함도>에는 이전과는 비교도 안되게 많은 제작비가 투입됐다. <부당거래>는 류승완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변곡점이 되는 영화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부당거래>를 기점으로 투박한 에너지는 세련되게 정제되었고, 아쉬움으로 지적받았던 스토리는 탄탄하고 정교하게 자리 잡았다. 무엇보다 <부당거래>가 2010년대 한국 상업영화에 끼친 영향력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부당거래> 이후 경찰, 검찰, 조폭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범죄영화, 한국 사회의 부패와 부조리를 폭로하는 이야기가 유행처럼 만들어졌다. <신세계>와 <내부자들> 모두 <부당거래>의 영향력 아래 놓인 영화들이다._이주현 기자

9위 <두 개의 문>

감독 김일란, 홍지유 / 2012년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흐른다 한들 <두개의 문>에 삽입된 용산참사 현장 장면을 똑바로 응시할 수 있을까. 철거민들을 향한 한겨울의 물대포. 불붙은 망루. 여기 사람이 있다는 외침. 진압 작전을 펼치는 경찰. 2009년 1월20일 용산 남일당 건물 옥상에선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목숨을 잃었다. 김일란, 홍지유 감독의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은 용산참사의 현장에 없었던 이들을 현장으로 이끌고, 법정에 없었던 이들을 법정으로 데리고 들어가 사실의 조각들을 기워 진실에 접근한다. 그 과정에서 인용된 경찰 특공대원의 시선과 말은 국가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분법을 허문다. <두 개의 문>은 질문하고 사유하는 다큐멘터리다. 김일란, 홍지유, 이혁상 감독은 현실을 직시하는 액티비스트로서의 역할과 시대와 호흡하는 예술가로서의 역할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며 <두 개의 문>과 그 후속작 <공동정범>(2017)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다큐멘터리라는 장르가 얼마나 지적인 텍스트이며 얼마나 용감한 예술인지를 증명한다. 2010년대 한국 다큐멘터리의 질적•양적 성장은 <두 개의 문>과 결코 무관할 수 없다._이주현 기자

10위 <부산행>

감독 연상호 / 2016년

<부산행>이 10위에 들어간 걸 보고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분명 이 영화는 마스터피스는 아니다. 완성도의 흠결도 얼마든지 지적할 수 있고 주제적으로 낡은 구석도 감출 수 없다. 그럼에도 이 모든 단점들이 <부산행>의 성취를 가리진 못한다. 이제는 식상해져버린 좀비 장르를 가져와 문자 그대로 ‘한국적’으로 변용한 이 영화는 장르의 끝자락에서 독자적인 방식으로 외연을 넓혔다. <부산행>의 흥행은 상업적인 성공 이상의 의미가 있다. <취화선> <올드보이> 등 2000년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몇몇 영화가 있었던 것처럼 <부산행>은 해외에서 2010년대 후반의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장르영화의 이미지를 새롭게 구축했기 때문이다. 컨셉이 분명한 장르영화로서 해외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는 점도 남다르다. 무엇보다 <돼지의 왕>(2011), <사이비>(2013) 등을 통해 독특하고 확고한 작품 세계를 선보인 연상호 감독의 날카로운 비전은 실사영화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다. 이 영화는 분명 과소평가되었다._송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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