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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빅프로젝트⑤] <영웅> 윤제균 감독 - 할리우드 못지않은 라이브로 승부한다
임수연 사진 오계옥 2020-03-12

윤제균 감독은 한 시간 정도 진행된 인터뷰 중 ‘진정성’이라는 단어를 15번 언급했다. 쉽게 덧붙인 표현은 아니다. <댄싱퀸>(2012) 때 함께한 정성화가 공연에 초대해 접하게 된 뮤지컬 <영웅>을 다섯번 봤고, 다섯번 모두 눈물을 흘렸다는 윤제균 감독은 “이 영화를 왜 만들었는지 관객이 진심을 알아봐주지 않을까 하는 믿음”으로 촬영에 임했다. “<국제시장>이 아버지의 이야기였다면, <영웅>에는 어머니와의 이야기가 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영웅>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진심을 다해 만들고 있다.” 뮤지컬을 처음 봤을 때는 안중근 의사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눈물이 났지만, 나중에는 안중근과 조마리아 여사(나문희)의 절절한 드라마에 눈물이 났다는 그는 “<영웅>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와닿는 지점이 달라질 작품”이라고 부연했다.

-뮤지컬 <영웅>을 영화화하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무언가.

=처음엔 안중근 의사와 독립운동가들에게 미안했다. 그분들의 희생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잘 살고 있는데 독립이 되면 유해라도 고국에 뿌려달라는 유언조차 지켜드리지 못한 게 죄송스러웠다. 언젠가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는 작품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주)에이콤의 윤호진 대표는 본인이 창작한 뮤지컬이 영화로 나온다면 정말 잘 만든 작품이기를 누구보다 바란 분이다. 이미 <영웅> 영화화 제안을 여러 번 받은 걸로 아는데, 삼고초려를 해서 설득했다. 딴 건 모르겠고 전세계 시장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만들겠다는 약속은 꼭 지켜드리겠다고, 이 말로 윤호진 대표에게 허락을 받았다.

-뮤지컬을 영화로 옮기면서 생각지 못한 난관에 봉착하기도 했을 텐데.

=<레미제라블>(2012)처럼 라이브 녹음을 하겠다고 선포한 순간, 수많은 고행이 시작됐다. 후시녹음을 했다면 이렇게까지 고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이었다면 절대 라이브 녹음을 해서는 안됐다. 배우들이 인이어를 껴야 하기 때문에 일일이 CG로 지워야 하고, CG 컷이 수천개로 늘어난다. <레미제라블>은 군중 신을 통제 가능한 세트에서 찍었지만, <영웅>을 그렇게 찍으려면 제작비가 500억원 이상 든다. 로케이션 촬영에서 라이브로 노래를 녹음하면 주변의 바람이나 벌레 소리를 다 통제할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만의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라라랜드>(2016)나 <레미제라블> 음향팀과도 얘기를 해봤지만 한국의 기술력으로 충분히 가능하겠다고 판단했다. 이번에 직접 부딪치며 시행착오를 겪은 만큼 앞으로는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누구든지 뮤지컬영화를 만들겠다는 의사가 있다면 그동안 쌓은 노하우를 공유하겠다.

-한정된 무대 위에서 연출하는 뮤지컬과 달리 영화는 훨씬 확장된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

=무대에서는 ‘블라디보스토크’, ‘하얼빈’이라고 간판을 몇개 달면 되지만 영화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안중근 의사가 돌아가시기 직전 1년 동안 주로 블라디보스토크에 있었다.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곳이니 우선 그곳부터 헌팅을 갔는데 전부 관광지가 돼서 촬영을 할 수가 없더라. 국내에서 그린 스크린을 쳐놓고 촬영한 후 CG로 합성하자는 말도 있었는데 그건 리얼리티가 떨어진다. 제작부와 연출부에게 전세계를 뒤져서 1900년대 초 모습을 간직한 곳을 찾으라고 했다. 발트3국에 있는 라트비아가 그 당시 느낌이 남아 있다더라. 직항 비행기도 없고 라트비아어를 아는 스탭도 없어서 현지에서 고생을 많이 했다. 하얼빈 장면은 합천에서 찍었다. 사드 때문에 비자가 안 나오는 상황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국제시장>보다 더 힘들었다. 1950~70년대는 자료라도 많이 남아 있지 1900년대 초는 기록물도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당시엔 자동차가 없어서 자동차 추격 신 같은 것도 못 넣는다.

-초연 때부터 뮤지컬 <영웅>의 주연을 맡았던 정성화가 그대로 주연을 맡았다. 인지도나 티켓 파워를 이유로 다른 배우를 떠올릴 수도 있었을 법한데.

=캐스팅을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다. 계속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이 역할을 다른 배우가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 노래를 잘하는 배우는 많지만 그들이 정성화만큼 잘할 수 있다는 데 확신이 없었다. 단언컨대 정성화보다 이 역할을 잘할 수 있는 배우는 한국에 없다. 그래서 내가 직접 투자자, 스탭들을 설득했다.

-김고은박진주도 노래 잘하기로 유명한 배우다. 각각 조선의 마지막 궁녀 설희와 독립군을 돕는 만둣가게 남매의 동생 마진주를 연기한다.

=그렇게 노래 잘하는 배우들을 캐스팅했더니 회식 때 2차로 노래방에 가면 장난 아니다. (웃음) 내 입장에서는 호사를 누리는 것 같다. 십수만원짜리 티켓을 끊어야 볼 수 있는 정성화의 노래를 눈앞에서 보고, 김고은과 박진주도 진짜…. 이걸 다 영상으로 찍어놨어야 했는데! 내가 보기엔 이 둘은 예능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 <복면가왕> 같은 데 바로 나가도 된다. 박진주는 이미 <복면가왕>에 나가서 가왕급이라는 극찬을 받았는데, 아마 김고은도 <복면가왕> 나갔으면 가왕 됐을 거다. (웃음) 배우들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노래방에 갔는데, 김고은의 노래를 들으면서 “아, 게임 끝났다. 이 영화는 다 됐다”라고 생각했다.

-나문희 선생님도 노래를 하나.

=독창이 있다. 캐스팅하기 전에 알아보니 선생님 딸이 음대를 나왔고 선생님 역시 음악에 조예가 깊으시다더라. 노래도 물론 잘하시고 말이다. 시나리오 리딩할 때 나문희 선생님이 노래하는 대목에서 사람들이 전부 눈물을 흘렸다. 선생님이 전문 가수는 아니지만 결국 노래는 감정을 전달하는 거더라. 기교가 중요한 게 아니란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이토 히로부미 암살 이후 순국까지 1여년을 더 묘사하는 작품이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클라이맥스 이후의 이야기까지 다룬다.

=안중근 의사 관련된 시나리오를 여러 편 봤고 직접 제안받은 것도 있지만, 대부분 암살 장면을 클라이맥스로 삼는다. 그런데 뮤지컬 <영웅>의 절정은 이토 히로부미 암살이 아니다. 그 뒤가 핵심이다. 안중근 의사의 고뇌, 동지들과의 이야기, 어머니와의 관계…. 사실 <영웅>을 하게 된 진짜 이유는 이 부분에 있었다.

<영웅> 촬영현장.

제작 JK필름 / 공동제작 에이콤, CJ엔터테인먼트 / 감독 윤제균 / 출연 정성화, 김고은, 나문희, 조재윤, 배정남, 이현우, 박진주 / 배급 CJ 엔터테인먼트 / 개봉 2020년

•시놉시스

안중근(정성화)과 독립군 동지들은 자작나무 숲에서 손가락을 잘라 동맹을 맺는다. 조선의 마지막 궁녀 설희(김고은)는 적진 한복판에서 목숨을 걸고 정보를 빼오는 독립군 정보원이 된다. 마침내 1909년 10월, 안중근은 하얼빈 역에 도착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일본 법정에서 사형 판결을 받는다. 영화는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준비하던 때부터 죽음을 맞이하던 순간까지, 마지막 1년을 그린다.

•관전 포인트

<영웅>은 <레미제라블>처럼 라이브 녹음을 시도했다. 윤제균 감독은 “세계시장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한국 배우들도 할리우드 못지않게 라이브로 노래하며 연기까지 잘한다”며 배우들의 실력과 노고를 몇번이고 강조했다. “뮤지컬 <영웅> 초연 때부터 안중근을 연기했던 정성화는 물론 김고은과 박진주의 노래 실력이 상당하다. 그들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모습은 극히 일부다. 아마 깜짝 놀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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