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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③] <1917> 작품상·감독상·각본상 등 10개 부문 후보

전쟁의 심연을 담아내다

전쟁이 한창이던 1917년 4월 6일, 서부전선의 영국군 병사 스코필드(조지 매케이)와 블레이크(딘 찰스 채프먼)는 중대한 임무를 부여받는다. 독일군의 함정에 빠진 데본셔 연대의 매켄지 중령(베네딕트 컴버배치)에게 공격 중지 명령을 전달하게 된 것이다. 통신망이 전부 끊긴 상태에서 1600명의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스코필드와 블레이크는 전쟁터를 가로지르기 시작한다. 두 병사의 목숨을 건 질주를 그린 영화 <1917>은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감독상 등 10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화제가 되었다. <1917>을 네 가지 키워드로 살펴봤다.

샘 멘데스

<1917>은 데뷔작 <아메리칸 뷰티>로 할리우드를 휩쓴 감독 샘 멘데스의 8번째 장편영화다. 미국 중산층의 겉과 속을 비극적이면서도 냉소적으로 포착한 <아메리칸 뷰티>부터, 대공황 시기 마피아의 부정(父情)을 그린 <로드 투 퍼디션>과 걸프전의 비하인드를 풍자적으로 담아낸 <자헤드: 그들만의 전쟁>(이하 <자헤드>)을 지나, 가족에 대한 상반된 접근법을 보여줬던 <레볼루셔너리 로드>와 <어웨이 위 고>, 호평받았던 <007 스카이폴>과 그러지 못했던 <007 스펙터>까지, 본인만의 색채가 확고하다고 할 순 없지만 어느 장르에서든 무난한 만듦새를 보여준 샘 멘데스가 전쟁영화 <1917>로 돌아온 것이다.

<1917>은 여러모로 멘데스에게 특별한 작업이었다. 그의 할아버지가 전쟁에서 겪은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은 영화이면서, 동시에 그가 각본가로 참여한 최초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1917>이 주목받는 지점은 영화 전체가 하나의 롱테이크숏처럼 보이도록 만든 원숏 영화라는 점이다. 컷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연출법은 본래 연극 연출가였던 멘데스에게 더없이 잘 어울리는 기법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는 인터넷 매체 <복스>와의 인터뷰에서 “커팅 없이 리듬과 속도와 템포를 판단해야 했는데, 그게 바로 극장에서 항상 하는 일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원숏 영화라는 것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멀게는 앨프리드 히치콕의 <로프>가 있었고, 가깝게는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의 <버드맨>이 있다. 차이가 있다면 <1917>은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전쟁영화라는 것이다. 그러한 기법을 선택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멘데스는 관객이 전쟁이라는 상황에 대해 보다 깊이 몰입하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1917년 4월 6일이라는 전쟁의 특정한 ‘순간’을 극장 안의 관객이 실시간처럼 느끼면서 감정적으로 몰두하는 것, 그것이 멘데스가 <1917>을 통해 얻고자 한 것이었다.

로저 디킨스

유려한 롱테이크를 구현하기 위해 멘데스는 <자헤드> <레볼루셔너리 로드> <007 스카이폴>을 함께한 촬영감독 로저 디킨스를 선택했다. 디킨스는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더 브레이브> 등 코언 형제의 여러 영화들에서 빛과 그림자, 움직임과 정지의 간극을 섬세하게 잡아낸 것으로 가장 유명하지만, 멘데스가 원했던 것은 어쩌면 그가 드니 빌뇌브 감독과 함께한 장면들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예컨대 <프리즈너스>의 차갑도록 숨막히는 감각,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의 1인칭 슈팅 게임을 하는 듯한 생동감 같은 것들 말이다. <1917>에 대한 흔한 반응 중 하나인 ‘비디오게임 같다’라는 감상처럼, <1917>은 관객의 몰입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다.

시작부터 끝까지 주인공들의 질주를 뒤따라가는 <1917>의 카메라는 프레임 안에 전쟁의 참상을 함께 담아낸다. 거대한 참호, 여기저기 널려 있는 군인과 민간인의 시체, 아군과 적군의 미묘한 경계가 만들어내는 긴장, 갑작스러운 습격과 죽음, 불타오르는 교회와 넘쳐흐르는 강물 등 영화는 전쟁의 여러 상황들을 중단 없이 담아내며 2시간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흐름 속에 포착하고자 한다. ‘하나의 흐름’이라는 원신 원테이크 효과를 위해 트래킹숏과 360도 회전숏을 주로 사용했다. 인물들을 뒤쫓는 트래킹숏은 현장감을 강조했고, 숏-리버스숏과 설정숏을 대신하는 360도 회전숏은 인물과 배경을 감싸안으며 현재성을 유지했다. 그 과정에서 영화장비 제조사 아리(ARRI)의 트리니티(Trinity) 시스템을 활용해 보다 유연하게 카메라를 움직일 수 있었다. 하나의 연극처럼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동선을 위해 6개월의 리허설이 필요했던 만큼 영화를 보는 내내 만든 이들의 치열한 준비와 노력이 돋보인다. 공들여 기획했을 클라이맥스의 특정 신들이 특히 그렇다. “<1917>은 <자헤드> 이후 샘 멘데스의 가장 야심차고 열정적인 작품”이라는 <가디언>의 피터 브래드쇼의 말에 공감하게 되는 순간이다. 로저 디킨스 같은 풍부한 경험과 뛰어난 감각을 지닌 시네마토그래퍼가 아니었다면 이같은 기교의 효과는 반감됐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14번의 노미네이트 후에 2018년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블레이드 러너 2049>로 촬영상을 수상한 디킨스는 올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917>로 두 번째 촬영상 수상이 유력하게 점쳐지고 있다.

조지 매케이

에린 무어 장군 역의 콜린 퍼스나 매켄지 중령 역의 베네딕트 컴버배치 등 쟁쟁한 스타 배우들이 영화 홍보 과정에서 언급되고 있지만, 사실 <1917>은 조지 매케이와 딘 찰스 채프먼 두명의 20대 배우가 이끌어가는 영화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 토멘 바라테온 역을 맡았던 딘 찰스 채프먼도 그렇지만, 조지 매케이는 국내 관객에게 꽤나 낯설 얼굴이다. 1992년 영국에서 태어난 매케이는 2003년 <피터팬>으로 배우 생활을 시작한 뒤 <선샤인 온 리스> <캡틴 판타스틱> <더 시크릿 하우스> 등의 영화에 출연하며 커리어를 쌓아왔다. 일견 연약해 보이면서도 깊은 눈빛과 지적인 매력을 지닌 매케이는 세 차례에 걸친 오디션 끝에 합격한 <1917>에서 고난의 시간을 겪는 젊은 군인 스코필드를 무난히 소화했다. 비록 여러 주요 영화상에서 연기 부문 후보로 이름을 올리진 못했지만, <1917>의 흥행과 함께 향후 그를 보다 다양한 영화에서 볼 가능성이 높아졌다.

비판적 반응

<1917>은 영화계 동료들과 관객, 평단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으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요 부문 프런트 러너로 부상하고 있지만, 비판적 반응도 존재한다. 이를테면 <뉴요커>의 리처드 브로디는 <1917>의 인상적인 이미지들을 보여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시퀀스들이 캐릭터의 내면세계를 대신한 것을 꼬집으며, 그런 구성이 결국 플롯과 캐릭터를 희생시켰다고 비판했다. <필름 코멘트>의 조너선 롬니 또한 <1917>이 전쟁의 공포를 충격적으로 구체화하려는 시도를 미심쩍게 여기며, 주인공들을 단순히 관객의 아바타 정도로 느껴지게 만드는 영화적 몰입감이 불만스러웠다고 말했다. 요컨대 <1917>은 전쟁 중의 인물들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과정 자체를 뛰어난 촬영과 기술로 담아내 나름의 시각적 성취를 이루었으나, 전쟁이라는 소재를 영화화할 때 수반되는 다른 요소와 주제들에 대해 다소 피상적으로 접근했다는 점에선 아쉬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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