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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④] <조조 래빗> 작품상·여우조연상·각색상 등 6개 부문 후보

‘다르게’ 표현하기

2차대전이 끝날 무렵의 독일 마을, 10살 소년 조조(로만 그리핀 데이비스)는 엄마 로지(스칼렛 요한슨)와 단둘이 살고 있다.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었지만 조조는 아직도 그가 이탈리아 전장에서 싸우고 있다고 믿는다. 아버지를 대신해서 아이의 곁에 머무는 인물은 다름 아닌 ‘히틀러’(타이카 와이티티)다. 감독인 타이카 와이티티가 직접 연기하는 상상 속의 친구에게 조조는 맹목적 믿음을 보인다. 나치즘을 배경으로 한 엉뚱한 코미디 <조조 래빗>은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을 비롯해 여우조연상, 각색상, 편집상, 미술상, 의상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전쟁이란 혼란한 상황을 배경으로 영화는 나치에 감응된 어린이의 첫사랑을 대담하고 기발하게 그린다. 온 가족을 위한 영화란 점에서 기존의 아동영화와 비슷한 색채를 지녔지만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이번 새 작업은 몇 가지 독특한 변주의 지점들을 가지고 있다.

‘호랑이’란 뜻의 이름을 가진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은 영화 제작국 보다는 소비국으로 알려진 뉴질랜드 출신의 연출자다. 마오리족 출신의 아버지와 러시아의 유대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가 만든 <조조 래빗>은 고국에서 만든 영화 <보이>(2010)나 <내 인생 특별한 숲속 여행>(2016)에 더 가까운 질감을 지닌 작품이다. 처음에 할리우드는 뉴질랜드에서 온 미지의 신예에게 기대 반 호기심 반의 시선을 보냈다. 그리고 <토르: 라그나로크>(2017)가 성공한 후에 기대치를 한껏 높였다. 그런 그가 몇년 후 들고 나타난 영화가 바로 <조조 래빗>이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비교적 개인적이며 온건한 소품 형태의 영화로 찾아온 것이다. 이 영화는 크게 야심찬 작품은아니지만 디테일한 면에서 강점을 많이 지니고 있다. 기존의 장르풍 영화가 가진 허점을 재치 있게 비틀기 때문이다. 어쩌면 <조조래빗>을 가장 잘 평가하는 방법은 독립적 예술성보다는 ‘기존의 것을 얼마나 다르게 표현하나’ 하는 데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역사를 다룬 영화는 많다. 특히 2차 세계대전의 에피소드를 다룬 영화는 더 많다. 채플린의 <위대한 독재자>(1940)나 에른스트 루비치의 <사느냐 죽느냐>(1942), 혹은 멜 브룩스의 1983년작 동명 리메이크도 떠오른다. 이 영화들은 모두 전쟁과 파시즘에 반대하는 평화의 메시지를 담는다. 하지만 이처럼 익숙한 기시감을 가진 소재들을 <조조 래빗>은 역이용한다. 특히 ‘히틀러’ 캐릭터 중심으로 영화는 완전한풍자극의 형태를 이룬다. 단언컨대 이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서면서 눈물을 흘리는 관객은 없을 것이다. 이 점이 로베르트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1997)와 이번 영화의 가장 큰 차이다. <조조 래빗>은 무거운 주제를 가볍고 감각적인 편집 방식으로무마시킨다. 그렇게 파토스보다 코미디에 높은 비중을 둔 작품이 완성된다. 나치와 히틀러에 경도된 젊은이들에 대한 관점을 뒤집기 위해서 영화가 사용하는 것은 한마디로 ‘빠른 편집’ 방식이다. 팝적인 세련된 점프컷이 곳곳에 등장한다. 비틀스의 <I Wanna Hold Your Hand>가 들리는 시작부의 리듬은 심각한 상황에서 익숙한 노래를 들려주면서 관객의 심상을 한곳으로 모은다. 그렇게 영화는 코믹한 리듬의 드라마가 된다.

시나리오는 크리스틴 뢰넨스의 소설 <갇힌 하늘>을 토대로 완성되었다. 하지만 영화와 원작의 톤은 다르다. 소설이 감동적이고 공상적이면서 ‘심각하고 진지한 내용’을 담는 반면, 영화는 비교적 유머러스한 아동의 시선에서 진행된다. 그리고 소설의 주인공은 나이가 들지만 영화는 아니다. 아이 시선에서 종료된다. 감독에 따르면 어린 시절 자신이 느꼈던 ‘어른들에 의해 생긴 역사적 증오의 감정’이 동일했다고 한다. 따라서 ‘세뇌된 독일 어린이의 시선’을 소재로 원작이 각색되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유대계 이민자였던 어머니를 보면서 와이티티 감독은 ‘홀로코스트를 바라보는 자식의 시선’이란 동질감을 느꼈던 것이다. 한편 원작자 뢰넨스는 <조조 래빗>의 희극성을 “웃음이 결코 단순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라는 점에서 훌륭하다고 평했다. 놀라거나 깔깔거리는 방식이 아니라, 관객 스스로 웃음을 찾아내는 우회적 웃음 코드가 기발하다는 점에서다.

실제로 <조조 래빗>은 슬랩스틱이나 직접적인 코미디로 관객을 웃기지 않는다. 양심을 간지럽혀서 관객 스스로 웃음 코드를 찾게 한다. 어느 관객이라도 ‘미술’과 ‘의상’에는 일맥상통하게 높은 점수를 줄 것이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보이는 도시의 질감은 흡사 앤더슨의 영화처럼 아름답다. <문라이즈 킹덤>(2012)이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 같은 영화가 차례로 떠오른다. 다만 와이티티는 앤더슨처럼 광적으로 평면적인 디자인을 시도하지는 않는다. 전반적으로 ‘감독의 상상 속 도시’에 더 가까운 배경들이 나열된다. 애니메이션풍이더라도 사실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면에서 어느정도 타협점을 찾은 것 같다. 전체 색감은 반음계 정도 채도를 낮춘 파스텔 톤으로 칠해진다. 그리고 복고풍의 레트로 미학이 최대한 활용된다. 의상 역시 비슷한 톤으로 사실적이지 않다. 처음에 주인공이 입고 등장하는 ‘나치 스쿨’ 유니폼은 영국의 귀족학교 소풍 복장처럼 단정하고, 감독이 직접 입는 ‘히틀러 군복’은 기존의 총통 의상 스타일을 과감히 비튼다. 그리고 로지의 ‘신발’이 지닌 강렬한 색채는 스토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한마디로 비주얼적인 측면에서 유용한 미장센이 많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의 가장 흥미로운 관람 포인트 중 하나로 스칼렛 요한슨의 수상 여부를 들 수 있다. 그녀는 <결혼 이야기>(2019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그리고 <조조 래빗>으로 여우조연상 후보에 동시 지명되었다. 그간 코언 형제, 우디 앨런 등 작가들과 꾸준히 작업한 바 있는 요한슨은 상업영화와 예술영화 전반에 어울리는 다재다능한 배우로 언급되고 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상복은 없는 편이었다. 이번에 그녀가 맡은 두 역할은 크게 공통점이 없지만, 그만큼 다양한 작업이 가능하다는 방증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스칼렛 요한슨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 외적 면모에 있다. 마릴린 먼로처럼 연약하지도, 브리지트 바르도처럼 치명적이지도 않지만 그녀는 독보적 섹시미를 가진 여배우다. 그런 그녀가 ‘다락방에 유대인 소녀를 숨겨두는’ 과감하고 자유로운 운동가의 모습을 보일 때 스토리의 드라마틱한 반전은 배가된다. 부드럽지만 세속적이면서 인류애를 가진 로지 역할에 스칼렛 요한슨만 한 인물은 없는 듯하다.

언뜻 완벽한 어린이영화로 보이는 <조조 래빗>은 이렇듯 어른들을 위한 대담한 코미디영화로 완성된다. 예상 가능하고 빤한 요소들을 비틀어서 다른 자리에 배치한 후,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은 자신이 심은 아이러니의 프로세스가 얼마나 잘 작동하고 있는지를 확인한다. 영화를 감상하는 도중에 느끼는 이상야릇한 거리감은 그런 면에서 감상의 대전제가 될 것이다. 눈앞에 떨어진 폭탄을 보며 놀라는 방식이 아니라, 폭탄을 보여준 뒤 이를 해체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들을 스스로 찾아내며 보면 더 좋을 영화다. 이토록 풍요로운 회전목마의 유혹을 즐기지 않을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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