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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중 LAB2050 정책팀장의 코로나19 시대 정책 제언, "영화인에 대한 직접지원이 필요하다"

프리랜서들을 대상으로 하는 별도의 정책도 필요

그 어느 때보다 머리를 맞대야 할 시기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영화계는 구체적인 피해 사례를 조사하고, 정부 또한 영화진흥위원회를 통해 피해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금융지원이나 스탭 고용 지원 등 여러 방안들이 나오고 있지만 마땅한 해결책 또한 없는 게 사실이다. <씨네21>은 영화산업 밖의 분야별 경제·정책 전문가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88만원 세대>를 포함해 30권 넘는 책을 썼고, 최근 두 번째 소설 <당인리>를 쓴 우석훈 경제학자, 민간경제 싱크탱크인 LAB2050 윤형중 정책팀장, 김영훈 더불어민주당 문화체육관광 수석전문위원, 세 사람이 전무후무한 위기에 처한 한국 영화산업에 대한 처방전을 제시했다.

신속한 지원 가능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대부분의 영역이 피해를 입고 있지만, 이 와중에도 성장하는 산업은 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다. 아직 실적 수치가 나오고 있는 시점이 아니지만, 주식시장에선 벌써부터 반응이 오고 있다. 넷플릭스의 주가는 3월16일 주당 298달러에서 4월16일 427달러까지 무려 43%가 상승했다.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디즈니+, 국내의 웨이브, 티빙, 왓챠플레이 등도 코로나 특수를 누릴 가능성이 높다.

어찌보면 이런 상황이 자연스럽다. 재난으로 인해 경기가 침체돼 전반적인 구매력은 떨어지겠지만,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콘텐츠 소비량은 오히려 늘어날 개연성이 크다. 그렇다면 어디선가 콘텐츠는 계속 만들어지고, 이 업계에 있는 모든 이들이 여전히 잘 지낼 수 있을까. 문제는 그렇지 않다는 데에 있다. 이미 영상 콘텐츠는 방송과 극장 이외에 온라인에서 주로 소비되고 있지만, 새로운 소비문화에 맞는 분배 체계가 구축된 상황은 아니다. 여전히 콘텐츠를 제작하는 영화계는 극장에서 주로 수익을 얻는다. 영화관에서 충분히 상영한 뒤에 잔여적 수익을 얻기 위해 온라인 동영상 업체와 계약을 맺고 콘텐츠를 넘기는 실정이다. 이 변화에 맞게 새로운 시장질서가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에 갑자기 코로나19의 습격이 들이닥쳤다. 대부분의 영화관은 텅 비었고, 제작된 영화의 개봉 일정도 대책 없이 밀리고 있으며 제작 중이던 영화들의 촬영이 대부분 기약 없이 중단된 상태다.

영화계가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재원부터 살피자

불과 두달여 전인 2월15일은 코로나19에 대한 경각심이 상대적으로 낮은 때였다. 당일의 신규 확진자는 없었고, 누적 확진자는 28명이었다. 토요일이던 이날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서 조회된 영화관 관객수는 63만258명이었다. 두달이 지난 4월15일 전국 영화관 관객수는 4만5868명이다. 이 관객수도 그나마 공직선거일로 휴일이었기에 가능한 숫자다. 하루 전인 4월14일 관객수는 1만6137명에 불과했다. 한해 전인 2019년 4월 한달간 영화관 관객수는 1333만8963명이었지만, 올해 4월엔 보름 동안 41만609명에 불과했다. 이 추세면 지난해 대비 영화관 관객수는 94%가 줄어든 셈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 고생하며 준비한 영화를 개봉하기가 조심스럽다는 점이다. 지난 4월1일 정부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발표한 ‘코로나19 관련 업종별 지원방안(관광, 영화, 통신·방송)’을 보면 상반기 상영 예정 영화 75편의 개봉이 연기된 상태다. 다 만들어진 영화의 개봉이 늦춰지는 경우도 다반사지만, 제작 중인 영화는 아예 촬영이 중단돼 현장 스탭들의 소득 자체가 없어지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 영화가 한편 제작되기까지는 여러 업체와 개인들이 다양한 형태로 계약을 맺으며 참여한다. 이중 프리랜서로 참여한 개인 중 고용보험 미가입자거나 구직급여 신청 요건(18개월간 180일 이상 근로)이 안되는 이들은 최소한의 안전망도 없이 무방비 상태에 놓인다.

그렇다면 지금껏 정부는 어떤 대책을 내놨을까. 정부는 영화관이 부담하는 영화발전기금 부과금의 납부를 연말까지 유예했다. 영화인연대회의가 지난 2일 영화발전기금을 연말까지 면제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해둔 상황이지만, 정부는 아직까진 유예 이외의 다른 발표는 하진 않고 있다.

정부는 지난 1일 코로나19로 촬영과 제작이 중단된 영화의 제작 재개를 위해 20여편에 한해 제작지원금을 지원하고, 단기적 실업 상태에 놓은 현장 영화인 400명을 대상으로 재교육을 실시해 직업훈련수당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런 발표를 하면서 영화계에 어느 정도의 예산이 투입될지, 구체적으로 어느 시점까지 어떤 지원이 이뤄질지도 함께 내놓지 못했다. 사실상 실효성 있는 지원을 내놓지 못한 것이다.

예술인을 대상으로 한 긴급자금지원도 미진하기는 마찬가지다. 정부는 4월1일부터 열흘간 신청을 받는 조건으로 예술활동증명과 코로나19로 인한 피해 증명을 한 예술인에게 최대 1천만원을 연금리 1.2%로 대출해주겠다는 발표를 내놨다. 이 대출의 원리금은 3년간 상환해야 하고, 연체 시엔 3%의 금리가 가산된다. 이 대출의 신청기간을 놓친 예술인도 다수일 뿐만이 아니라, 상당수 예술인이 생계 위협에 놓인 상황을 감안하면 부족한 대책일 수밖에 없다.

앞으론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 일단 영화인연대회의가 요구한 대로 영화 분야를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할 필요가 있다. 이 업종에 지정되면 사업주는 고용유지 지원금 등 각종 금융지원을 받을 수 있고, 만일 실업했다고 해도 실업급여의 수급기간과 지급액이 기존보다 확대된다.

여기서 하나 더 추가할 만한 대책은 영화인에 대한 직접지원이다. 코로나19에 대한 각국 정부의 대응을 보면 이전의 경제위기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이른바 외환위기였던 1998년 한국 정부는 은행과 기업에 구제금융이란 이름의 자금을 지원했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 정부와 금융당국은 은행과 기업의 부실채권을 대거 인수했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19 위기에서 각국 정부는 규모와 대상의 차이가 있지만 개인에게 현금을 직접 지급하는 정책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이는 과거 구제금융의 혜택이 일부 대기업과 거대 은행에 한정됐다는 반성적 인식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번 위기의 성격 자체가 이전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당장 경제활동이 멈춰 소득이 끊기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정부의 기업지원과는 별 관계가 없다. 영화 제작사에 금융지원을 한다고 해도 제작이 재개되지 않으면 상당수 영화인의 소득은 여전히 끊기게 된다. 이로 인해 국내에서는 ‘재난기본소득’이란 이름의, 개인에 대한 현금성 수당 지급 논의가 이뤄졌고 정부는 소득 하위 70%를 대상으로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독일, 영국, 미국 등에선 예술인을 포함한 프리랜서들을 대상으로 하는 별도의 정책들도 속속 나오고 있다.

문제는 돈이다. 영화계는 정부에 직접 재정을 투입하라는 요구와 함께 영화계가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재원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앞서 연말까지 납부금 유예 대상이던 영화발전기금이 바로 영화계의 재원이다. 영화진흥위원회가 관리하는 영화발전기금의 경우 전국 영화관에서 받는 부과금의 규모가 연 500억원 수준이고, 다른 운용수입과 지출 등을 감안해 남은 잔액이 2019년 말 기준으로 3384억원이다. 이미 영화계에선 영화제작 지원에만 사용되는 영화발전기금을 영화계 긴급지원의 용도로 전용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19년도 기금현황’ 자료를 보면 이 기금에서 영화제작, 영화유통, 영화인력 양성 등에 매년 500억~600억원 정도가 지출되고 있다. 이 기금의 현행 용도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제25조에서 명시한 ‘한국영화의 창작제작 진흥 관련 지원’이다. 위기 시에 영화계에 대한 지원이 창작과 제작의 기반을 유지하는 것이기에 기존의 용도에서도 벗어나진 않는다. 다만 기존에 쓰지 않았던 방식으로 활용하기 위해선 기획재정부 등 정부의 승인이 필요하다. 새로운 재원을 마련하면 더 좋겠지만, 문화체육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 기획재정부 등이 전향적으로 나선다면 신속한 지원에 나설 수 있다.

이 재난을 잘 넘기면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 쾌거가 전해진 시기가 불과 두달 전이었다. 그사이에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영화계는 천국과 지옥을 모두 다녀온 감정을 공유하고 있을 것이다. 또 다른 <기생충>의 쾌거를 위해서도 한국영화는 이 재난을 잘 넘겨야 한다. 그런 점에서 재난 대책의 목표가 이 재난의 끝까지 영화인 모두가 영화계에 남아 있는 것이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선 영화계뿐 아니라 영화인에 대한 직접지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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