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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마로나> 안카 다미안 감독 인터뷰 - 반려견에게 '지금, 여기'에 충실한 삶의 자세 배웠다
송경원 2020-06-26

사진제공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안카 다미안은 지금 유럽에서 주목해야 할 감독 중 한명이다.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연극영화아카데미에서 영화 촬영을 전공한 그는 2008년 장편 극영화 데뷔작 <크로싱 데이트>에 이어 첫 장편애니메이션 <크롤릭: 나의 저승길 이야기>(2011)로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대상을 수상하며 독특한 작품 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신작 <환상의 마로나>는 2019년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BIAF) 장편부문 대상과 관객상을 수상했고, 안카 다미안은 이 인연으로 올해 BIAF 포스터를 직접 그리기도 했다. 공감의 힘으로 다른 존재를 상상하고 상상력의 힘으로 자유분방한 세계를 그려나가는 그에게 애니메이션의 매력, 그리고 개와 행복의 의미에 대해 물었다.

-영화를 전공했고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연출을 하다가 애니메이션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스스로 시각예술가라고 생각한다. 고등학교에서도 미술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영화의 표현 방식으로서 애니메이션을 활용하는 건 자연스러웠다. 2009년에 <크룰릭: 나의 저승길 이야기>로 첫 장편애니메이션 작업을 시작했다. 처음엔 다큐 드라마로 만들려고 했는데 준비 작업을 하던 중 크룰릭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승에서 전하는 이야기를 표현하는 데 애니메이션이 가장 좋은 수단이 될 것 같았다. 현실의 표면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그 의미까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은 내 생각을 더 잘 드러낼 수 있는 효과적인 시각언어다. <크룰릭: 나의 저승길 이야기>는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상영된 뒤, 전세계에서 35개가 넘는 상을 받았고 마침내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안시 크리스털상도 받았다. 첫 장편애니메이션으로서는 대단한 성과를 이뤘다고 생각한다.

-이후 연출한 <매직 마운틴>(2015)은 아담 야체크 빈클레르의 전기를 담은 다큐애니메이션이다. 영역을 넘나들며 활동 중인데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그리고 애니메이션은 어떤 차이가 있나.

=사실 어떤 기법이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이야기에 필요한 기법을 찾아내는 게 관건이다. <매직 마운틴>도 <크룰릭: 나의 저승 이야기>와 비슷한 분위기의 영화다.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죽음에 비추어서 삶이란 어떤 것인지 들여다본다. 애니메이션이라는 수단을 활용하면 이야기가 더욱 다층적으로 쌓여 좀더 깊게 접근할 수 있는 것 같다. 특히 내 생각과 잠재의식 속에 있는 이야기를 온전히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있어 애니메이션이란 스토리텔링의 문법을 재창조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영화적 도구다.

-<환상의 마로나>의 시나리오는 아들인 앙헬 다미안이 썼다. 거리의 유기견을 임시보호한 경험에서 출발한 이야기라고 들었는데, 아들이 시나리오를 맡게 된 과정과 이야기를 구체화시킨 과정이 궁금하다.

=최초의 아이디어는 2014년 구해낸 강아지 마로나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마로나는 지금도 살아 있다. 당시 <매직 마운틴>을 작업 중이었기 때문에 시나리오를 쓸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앙헬이 <환상의 마로나> 작업에 합류하게 되었다. 내가 실제로 만났던 사람들을 바탕으로 어떤 인물들을 창조해내고 어떤 에피소드로 전개할지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물론 앙헬 본인의 상상력을 발휘해 덧붙인 부분도 있다. 영화에 대한 나의 비전과 앙헬이 각본가로서 혼자 작업한 과정이 완벽하게 예술적 공생관계를 이룬, 환상적인 협업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잘 알기에 아주 완벽한 파트너였다. 앙헬이 처음으로 시나리오를 쓴 작품이 이 영화여서 정말 기쁘다.

-개의 시점에서 상상하는 상황과 그에 맞는 대사들이 무척 깊이 있고 흥미롭다. 가령 마로나가 마놀의 곁을 떠날 때 불행의 냄새를 맡는 상황은 개의 입장에서 가능한 접근인 것 같다. 디테일한 아이디어는 주로 어디서 얻었나.

=나도 반려견을 키운다. 개와 함께 산책하던 중에 우연히 마로나를 만났다. 이런 인연들에 감사한다. 반려견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비언어적 의사소통 방식과 ‘지금, 여기’에 충실한 삶의 자세, 그리고 좋지 않은 일을 용서해주고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태도 등 말이다. 개들은 말은 못하지만 낌새를 알아차리는 능력이 사람보다 더 뛰어나다. 사람들의 독특한 분위기를 포착하거나 특성을 잘 감지한다.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안다는 점이 특히 사랑스럽다.

-유럽을 대표하는 그래픽노블 작가 중 한 사람인 브레흐트 에번스가 그림을 맡았다.

=브레흐트 에번스는 이 프로젝트에서 캐릭터 디자이너와 비주얼 컨설턴트를 맡았다. 그의 그림체는 분명히 현실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해 작품에 반영한다. 특히 그는 색채를 독특한 방식으로 사용하는 귀한 작가다. 그의 작품이 정말 마음에 들어서 영화 작업을 함께하자고 제안했더니 흔쾌히 수락했다. 당시 브레흐트는 자신의 책 <Les Rigoles(The City of Belgium)>를 작업 중이어서 배경과 부수적인 작업을 다른 아티스트들과 협업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고, 덕분에 훌륭한 아티스트인 이나 토르스텐센과 사라 마체티가 함께할 수 있었다.

-전반적인 작화의 핵심은 ‘감각의 형상화’ 같다. 마로나가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들이 환상과 뒤섞여 표현된다. 가령 몽글몽글한 기분일 때는 자유로운 선들이 흩어지고 충만한 행복을 느낄 때 마놀의 좁은 방 안이 우주가 되기도 한다.

=마놀의 지붕 바깥에는 하늘이 있고 춤추는 순간 벽이 사라지거나 뒤로 물러나는 덕분에 우리는 밤하늘의 별을 마주할 수 있다. 그걸 그대로 그렸다. 인간의 관점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건 어딘지 답답하다. 우리가 눈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보다 우리 주변의 구성요소는 훨씬 풍성하다. 행복으로 충만할 때 그 감정의 에너지는 육체 바깥으로 흘러넘쳐 더 많은 것을 전달해준다. 우리는 무한한 우주의 관점에서 작은 알갱이에 불과하기에 더 큰 관점으로 세상을 담아내고 싶다.

-마로나의 눈앞에 펼쳐지는 거리의 풍경은 개의 시선이면서 동시에 함께한 인간들의 세계이기도 하다. 마놀의 손에 들려서 거리를 돌아다닐 때, 이스트반의 차에 탔을 때, 그리고 솔랑주의 집에서 산책을 할 때 전부 다르다.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공간, 그러니까 자신만의 섬을 가지고 있다. 마놀의 집과 그의 주변은 아이들의 꿈에서 영감을 받았다.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완전히 주관적인 공간이다. 본질적으로 시에 가깝다. 선형적 관점이 주관적 관점으로 대체된 세계, 다시 말해 형식이 곧 내면의 반영인 세계다. 영화 속의 공간은 선형 원근법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 하나의 도시 안에도 여러 관점이 있기 마련이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섞거나 겹쳐두었다. 대신 색채 대비는 매우 뚜렷하게 가져갔다. 색은 순수하기 때문이다. 반면 이스트반의 집은 규칙과 제약의 공간이다. 그것은 청소년기를 상징한다. 매우 경직되고 기하학적인 공간은 물리적으로 평탄하며, 빠져나갈 길이 없고, 모든 요소들이 이 좁은 선을 따른다. 솔랑주의 집은 마놀의 자유로움과 이스트반의 딱딱함 사이에 있다.

-마로나의 테마곡 <Happiness(Is A Small Thing)>는 가슴을 울린다. 작은 것이 소중하다는 테마는 식상할 법도 하건만 개의 시선에서 행복을 이야기하니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가사는 루마니아 시인 엘레나 블라다레아누가 썼다. 나의 의도에 대한 긴 이야기를 나눴고, 얼마 뒤 그는 영화의 심장을 관통하는 이 간단하면서도 감동적인 시를 선물했다.

-당신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개는 어떤 존재인가.

=미래에 저당 잡히거나 과거에 매몰되지 않고 현재를 사는 것. 말로는 쉽지만 인간으로서 성취하긴 매우 어렵다. 하지만 개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그들이 너무도 당연한 듯 ‘이곳과 지금’을 살아간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들은 나의 선생님이다. 개들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가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 직접 몸으로 알려주기 위해 기꺼이 우리 곁에 머무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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