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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에이리언3'에서 '나를 찾아줘'까지, '맹크'에 영향 준 데이비드 핀처의 세계
김소미 2020-12-04

아메리칸드림

농담처럼 시작하자면 <맹크>는 <에이리언3>(1992)가 데이비드 핀처에게 안겨준 트라우마 치유의 마지막 과정처럼 보였다. 30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에이리언3>로 데뷔한 그는 20세기 폭스사의 나이 지긋한 중역들에게 후반작업 편집권을 빼앗긴 채 자기 영화를 부정해야 하는 아픔으로 커리어를 열지 않았던가. 21살에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저커버그를 거쳐, 25살에 황금기 시절의 할리우드 스튜디오를 등에 업고 <시민 케인>을 만든 오슨 웰스(그리고 ‘로즈버드’를 품은 채 미국의 마천루에 오른 찰스 포스터 케인)를 택한 것은 그래서 어쩐지 애틋할 정도다. 다만 여기에는 핀처 자신만큼 아버지의 페르소나도 뚜렷하다.

오슨 웰스의 그림자처럼 등을 맞댄 인물인 시나리오작가 허먼 J. 맹키위츠의 이야기가 <맹크>의 본령이기 때문이다. <시민 케인>의 시절에 극장에서 유년기를 보낸 잭 핀처와 그런 아버지 밑에서 영화감독이 될 것을 강력히 지원받으며 일찍이 맹키위츠의 존재를 자각했던 데이비드 핀처. 성실한 계승자로 자라난 아들은 저널리스트인 아버지가 은퇴할 무렵에 맹키위츠에 관한 시나리오를 써보면 어떻겠냐고 자신이 받았던 독려를 돌려준다. 1997년부터 영화화를 꿈꿨으나 당대 정치사를 복잡하게 품고 있는 고전적 스토리를 흑백 화면으로 고집한 프로젝트에 투자가 될 리 만무했다. TV시리즈 <하우스 오브 카드>(2013), <마인드 헌터>(2017),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러브, 데스, 로봇>까지 성공적으로 마친 뒤에야 그는 마지막 카드로 <맹크>를 내밀 수 있었다. 2003년 타계한 잭 핀처와 데이비드 핀처 부자의 아메리칸드림을 실현한 건 할리우드 스튜디오가 아니라 넷플릭스였다.

원작 혹은 실화와 줄타는 법

그는 작가(writer)가 아닌 작가(Auteur)다. 오리지널 스토리의 정체성을 담보해야만 창작자로서 무게감을 가지는 듯한 세태에서 비껴서서, 자신만의 개성적 스타일에 집중한 감독이 핀처다. 그는 시나리오 작가 에런 소킨의 도약에 일조했고, 익히 알려진 대로 척 팔라닉(<파이트 클럽>), 로버트 그레이스미스(<조디악>), F. 스콧 피츠제럴드(<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스티그 라르손(<밀레니엄> 시리즈), 길리언 플린(<나를 찾아줘>) 같은 작가들을 스크린으로 초대했다.

그동안의 영화화가 방대한 이야기를 ‘얼마나 잘 압축할 것인가’ 하는 문제, 그러니까 스릴러 장르의 시간 제한 안에서 서사를 얼마나 유려하게 춤추게 할 것인가의 고민이었다면 이번엔 다르다. <시민 케인>이라는 거대한 판본 앞에서 잭 핀처와 데이비드 핀처, 그리고 시나리오작가 에릭 로스(<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어떻게 최대한 원작의 뒤편으로 갈 것인가를 고민했다. <소셜 네트워크>(2010)를 발표한 후 핀처는 특히 실화의 이야기화를 두고 <라쇼몽>(감독 구로사와 아키라)에 비유한 바 있다. 한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른 증언을 하는 인물들의 진실 싸움인 <라쇼몽>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건 번민과 모순이 가득한 현실의 상태를 영화 속에 펼쳐놓는 것이다.

<패닉룸>

정신분열의 네트워킹

핀처의 영화는 심리적 대립을 이루는 두쌍의 마주보기, 이들의 격렬한 대립을 통해 구동된다.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의 단순한 갈등이라기엔 두 대상이 지닌 속성의 중첩과 대조, 의미 체계가 꽤 정확하게 닫혀 있다. <파이트 클럽>(1999)의 소심한 주인공(에드워드 노턴)과 날라리 타일러 더든(브래드 피트)이 보여주는 자아분열을 필두로, <세븐>(1995)의 형사(브래드 피트)와 살인마(케빈 스페이시), <패닉룸>(2002)의 이혼한 여자(조디 포스터)와 집에 들이닥치는 (전남편을 포함한) 낯선 남자들, <소셜 네트워크>의 아웃사이더 마크 저커버그(제시 아이젠버그)와 하버드의 인사이더들, 그리고 <나를 찾아줘>(2014)에서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부부는 결국 비밀리에 남아야 마땅할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고 이상한 공생의 순간을 만들어낸다. 먼 옛날 할리우드와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핀처가 다룬 사회는 폐쇄적인 그들만의 리그였던 터라 인물들의 신경증적 상태는 더욱 자유를 얻는다.

<소셜 네트워크>

<맹크>의 경우 “너무 많은 돈과 지나치게 거대한 자아들의 공동 작업”(대중문화잡지 <벌처>)인 영화 만들기에서 감독과 작가에게 부과된 강제적 협력에 방점이 찍혀 있다. 고기능성 알코올 의존증 환자인 맹키위츠를 위해 술병에 진정제를 잔뜩 넣어 보내는 웰스와 짐짓 유순하게 응수하지만 얌전한 각색자가 될 마음은 애초에 없었던 맹키위츠는 서로를 해치면서 돕는 관계다. 오스카와 평단의 적절한 보상이 없었더라면 핀처가 2020년에 “웰스와 맹키위츠는 서로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관계”(<벌처>)라고 표현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폭력과 강박의 나날

강도, 살인, 수사, 정치, 알고리즘, 싸우기, 단추나 폭탄 만들기, 그리고 시나리오 쓰기에 이르기까지. 지나치게 몰두하는 사람들의 노이로제가 데이비드 핀처의 영화에 즐거운 긴장과 피로를 일으킨다. 핀처의 정서적 테마가 강박과 집착에 가깝다면 이를 가시화하는 건 폭력이다. <맹크>에는 <세븐>과 <조디악>(2007)처럼 연쇄살인이 없는 대신 나치가 벌이는 유대인 학살의 소식이 흉흉하게 떠돈다. 부드럽게 처리된 흑백 화면과 맞물려, <맹크>속의 폭력성은 핀처의 다른 영화들과 비교하면 지극히 간접적인 방식으로 처리되지만 오늘날의 현실과 겹쳐 보인다는 점에서 여전히 강력하다. 폭력과 부조리 속에서 점점 더 광기의 온도를 높여가는 핀처 영화 속 캐릭터를 곧 시대정신과 직업윤리의 결합으로 치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세븐>의 형사, <조디악>과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2011)의 기자, <소셜 네트워크>의 프로그램 개발자, <나를 찾아줘>의 텔레비전 스타에 더해 <맹크>의 시나리오작가는 역사의 파고가 큰 시대에서 어렵게 도덕의 꽁무니를 좇는 인물이다. 시대의 엄혹함만큼 뜨겁게 미화될 수도 있었던 인물을 핀처는 적당히 차갑게, 그리고 생각보다 희망차게 마무리하면서 그다움을 보여준다.

<파이트 클럽>

보이스 오버와 교차편집의 이중주

분열된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데이비드 핀처는 스토리 또한 다중으로 나누어서 제시하길 즐긴다. 애용하는 도구는 보이스 오버와 교차편집이다. <나를 찾아줘>의 내레이션은 누구를 믿을 것인가 하는 믿음의 시험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의 보이스 오버는 데이지(케이트 블란쳇)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벤자민과 갓난아이가 된 벤자민의 말년을 기억하는 데이지의 서사가 보완되는 순간을 이끌어낸다.

<파이트 클럽> <소셜 네트워크>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에서처럼, 제각기 떨어져 있는 인물들 각자의 스토리가 교차편집을 통해 별개로 지속되면서 다중 플롯의 묘미를 만들어내는 것도 데이비드 핀처 영화의 대표적인 내러티브 스타일이다. <시민 케인>을 써내려가는 중인 맹키위츠의 현재와 미디어 재벌 곁에서 정치적 격동을 몸소 맞이했던 과거의 교차는 <소셜 네트워크>가 다루는 저커버그의 시간과도 비슷하다. 페이스북으로 막 성공세를 맛보기 시작한 시기와 소송대에 올라 자신의 비인간성을 지목받는 시기가 공존하며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다. <소셜 네트워크>가 유려한 짜깁기로 플래시백을 사용하지 않은 것과 달리 <맹크>는 맹키위츠가 써내려가는 시나리오의 일부처럼, 장면 전환을 타이포그래피로 표현하면서 맹키위츠의 심리적 역동을 ‘플래시백’이라는 서사 기법으로 못 박는다.

테크니션, 그리고 스타일리스트

동시대 영화계의 테크니션들을 열거한다면 가장 앞줄의 어디쯤에 핀처가 있을 것이다. <패닉룸>에서 땀 흘리며 대치 중인 등장인물들을 벗어나 어느새 혼자 집 안을 날아다니고 있던 카메라가 대표적이다. 하나의 숏이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이미지의 한계를 돌파하려는 노력은 오슨 웰스에게 딥 포커스를, 데이비드 핀처에게 CG 트래킹 숏을 불러냈다. 어지러운 복도와 계단, 겹겹의 문과 창문을 거슬러 카메라가 홀로 인물들의 동태를 살피는 <패닉룸>의 트래킹 숏은 분명 화려한 만큼 효과적이었다. 그러니 <맹크>는 “UCLA 아카이브나 마틴 스코시즈의 지하실에서 발굴-복원된”(<인디와이어>) 영화처럼 보이길 바랐다는 감독의 바람을 성취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기술만 남겨두고 많은 것들을 버려야 하는 작업에 가까웠을 테다.

<맹크>의 고전적 질감은 최신 기술로 최상의 화질-음질을 뽑아낸 다음, 예상보다 훨씬 길어진 후반작업 기간을 거쳐 화면에 스크래치와 담배 자국을 내고, 사운드를 저하시키는 작업이었다. 인위적인 손상을 입힘으로써 어떤 이미지, 어떤 사운드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각인시키는 것에 가깝다. 이를테면 핀처는 트래킹 숏을 통해 전지적으로 존재하는 카메라를 자각시키는 것만큼이나 프레임 자체의 물질성을 과시하곤 했던 감독이다. <파이트 클럽>과 <세븐>에서 관객을 놀리듯 번쩍이며 삽입된 싱글 프레임 필름 컷은 <맹크>에서 화면 상단 귀퉁이에 반짝거리는 릴 체인지 서클로 이어진다. 릴 체인지의 순간에는 일부러 사운드가 살짝 튀도록 만들었는데, 이 작은 파열음을 두고 핀처는 “너무나 아름답고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소리”라며 대책 없는 영화 중독자의 낭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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