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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해야 할 미국 작가의 탄생을 알리는 영화 '맬컴과 마리'
김소미 2021-02-26

잔혹한 사랑과 경멸의 밤

2월 5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영화 <맬컴과 마리>는 코로나19 팬데믹 중 각본-촬영-편집-상영 과정을 모두 마친 지구상의 첫 번째 사례로 남았다. 모든 일은 2020년 4월부터 8월 사이에 벌어졌다. 원래 배우 젠데이아의 집에서 찍으려 했던 이 프로젝트는 미국 정부의 불허로 잠시 중단되었다가, 사방이 광활한 초원으로 둘러싸인 지금의 로케이션을 발견해 허가 없이 촬영 가능한 조건을 충족하면서 빠르게 진전됐다. 미국의 밀레니얼 감독 샘 레빈슨과 Z세대의 화신인 배우 젠데이아, <테넷>의 배우 존 데이비드 워싱턴을 포함해 총 22명의 크루들은 2주 동안 합숙하며 매일 밤 연인간의 격렬한 사투에 참전했다. 그렇게 지난해 토론토국제영화제 마켓에 등장한 <맬컴과 마리>는 코로나19 시대의 상징적 신작을 획득하려는 배급사들의 전쟁 사이에서 무려 3천만달러(약 333억원)를 제시한 넷플릭스와 손잡았다.

넷플릭스 화제작이 곧 북미 시상식 주요 후보로 연결되는 낯선 시대에서 샘 레빈슨이라는 이름은 한국 관객에게 그보다 더 낯설다. 새로운 작가의 출현에 호기심을 품고 재생버튼을 누른 영화기자는 러닝타임의 절반이 채 지나기도 전에 “죽어가는 사랑의 레퀴엠이자 영화평론가를 위한 부비트랩”이라 정리한 <인디펜던트>의 단평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랑과 영화, 그리고 비평에 대한 잔혹한 해석으로서 <맬컴과 마리>가 품은 야심을 소개한다. 팬데믹 시대에도 젊은 영화 작가들의 기세는 결코 수그러드는 법이 없다는 사실을 함께 느낄 수 있길 바란다.

내밀한 관계의 드라마는 언제나 닫힌 문 너머에서 시작된다. 늘 문제가 되는 것은 이벤트 그 자체가 아니라 귀가 후의 대화들이다. 파티가 끝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싸우는 연인, 그리고 가족의 풍속도는 인류 역사의 한 챕터를 차지하고도 남을 법하다. <맬컴과 마리>의 오프닝 신에서 카메라는 그 현장을 포착하려 어둠 속에 잠긴 빈집에서 주인의 귀가를 기다린다. 저 멀리서 자동차 전조등이 서서히 다가오고, 이어 파티복 차림의 젊은 커플이 세련된 유선형으로 디자인된 현관 복도로 들어선다. “나의 각본과 연출로 완성된 영화가 오늘밤 관객을 뿅 가게 했다”며 여전히 흥분 상태인 영화감독 맬컴(존 데이비드 워싱턴)이 축배를 드는 사이, 지친 기색이 역력한 마리(젠데이아)는 부엌 수납장에서 냄비를 꺼내 물을 받는다. 새벽 2시, 남자 친구를 위해 라면을 아니 맥앤치즈를 만들던 여자의 불편한 심기를 눈치챈 남자는 어리석게도 그녀 주위를 빙빙 맴돌며 더 전적인 호의를 보여달라고 파국에의 시동을 건다.

시사회 무대에서 고등학교 은사까지 언급했던 맬컴은 영화를 함께 준비한 연인의 공로를 가볍게 지나쳐버린 몇 시간 전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닫는다. 1960년대 영화들을 닮은 거친 흑백 화면에서 <얼굴들>(감독 존 카사베츠)이 보이고, 서로를 모독하는 커플의 신랄한 대사에서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라>(감독 마이크 니콜스)가 겹쳐졌다가, 상대는 물론 그의 작품과도 싸워야 하는 예술가의 파트너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경멸>(감독 장 뤽 고다르>의 구도가 떠오른다. 말리부의 고급 빌라에서 ‘어느 날 밤에 생긴 일’은 그렇게 105분간 요동치다가 내일의 태양을 보고야 만다.

리액션 그리고 비평의 전쟁

서로를 할퀸 하고많은 말 중에 남자를 특별히 건드린 건 “평범하다”는 수사다. 다음 질문도 여자를 황당하게 한다. “내 영화가 별로였다고?” 그날 밤 자신을 감쌌던 화려한 조명과 박수갈채를 집에서도 가능한 한 더 길게 누리고 싶은 맬컴은 마리의 불행한 얼굴 때문에 “내 생애 최고의 날”을 만끽할 수 없고, 그것이 그를 정말로 짜증나게 만든다. 적어도 오늘 하룻밤만큼은 자신의 비대해진 나르시시즘을 마리가 사랑해주었음 싶다. 그의 바람과 달리 샘 레빈슨 감독은 내러티브의 주도자를 마리로 설정했다. 여자의 내면에 견고히 적층되어 있던 축축한 불신의 장작은 이날 밤 바싹 말라 기어이 타오르고 만다. 맬컴의 영화가 스무살 무렵 극심한 마약중독을 겪었던 마리 자신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녀는 감사 인사를 말끔히 빼먹은 맬컴의 행동을 무심한 연인의 그것이 아닌 혼자서 온전히 주목을 차지하고 싶은 예술가의 비겁함으로 느낀다.

함께한 시간에 대한 과소평가와 몰이해(“우리가 함께하지 않았어도 이 영화가 특별했을까?”)를 되묻던 애절한 호소는 그래서 어느새 맬컴의 예술적 진정성과 오리지널리티를 조롱하는 차가운 비평으로 그림자를 키워간다(비교의 대상은 스파이크 리와 배리 젠킨스다). 한편 아까 만들어둔 불어터진 맥앤치즈는 적시에 그럴듯한 소품으로 등장한다. 잠깐의 소강 상태에 접어들자 화통한 식성으로 맥앤치즈를 퍼먹기 시작한 남자는 숙고 끝에 회심의 일격을 날린다. “내 영화의 모델은 당신이 아니야! 그건 망상이라고!” 아마도 대부분의 관객이 끝나지 않을 싸움에 휘말려버렸다는 사실을 이 장면에서 눈치챌 것이다.

<맬컴과 마리>에서 우리를 진저리치게 만드는 요소는 무한히 점화와 소강을 반복하는 연인들의 감정 테러가 아니다. 드라마틱한 금요일 밤의 사랑 싸움을 관전하던 관객은 결국 그들이 영락없는 한패라는 사실에 웃게 된다. 서로를 물어뜯을 다음 말들을 곰곰이 생각하던 두 사람을 갑자기 최강의 2인1조로 만드는 건, 새벽녘 온라인에 송출된 <LA 타임스>의 첫 비평이다. 영화 내내 이름 한번 불리는 적 없이 ‘그 여자’로 호명되는 <LA 타임스> 소속 백인 여성 기자는 <맬컴과 마리>에서 비평의 유령이 되어 밤새 커플을 괴롭힌다.

상찬은 조롱하고 비판에는 분개하는 것이 맬컴이 취한 최고의 자존법이라면, 그런 그에게 동조하거나 혹은 경멸할 수밖에 없는 마리의 사정은 물론 조금 더 복잡하다. 흑인감독의 영화에서 흑인이기에 겪는 구조적 문제 따위만을 읽어내는 백인 기자는 그들에게 공동의 적임이 분명하지만, 마리는 한편 여성 기자에게 이상한 연결감과 자매애도 느낀다. 모든 싸움이 끝났다고 생각할 무렵, 마리는 바닥에 드러누워 다시 상념에 잠긴다. “그 여자가 생각하는 감독으로서의 당신 문제점과 내가 느끼는 연인으로서의 당신 문제점이 똑같은건 아닌지 갑자기 궁금해졌어.”

밀레니얼의 감정적 사실주의

하나의 공간, 두개의 피사체, 흑백 화면. 샘 레빈슨 감독과 헝가리 출신 촬영감독 마르셀 레브는 <맬컴과 마리>를 통해 할리우드에서 가장 주목받는 밀레니얼 콤비로 불릴 만하다. 레빈슨 감독과 세 번째 공동 작업에 착수한 마르셀 레브는 대사 위주로 전개되는 연인들의 드라마가 자칫 “무난한 사실주의 연출의 함정”에 빠질까 염려하면서 우선 코닥의 더블-엑스(Double-X) 네거티브필름을 선택해 영화의 질감부터 달리했다. 1960년대 미국 흑백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거친 뉘앙스를 채색한 뒤, 샘 레빈슨 감독은 고전영화의 향수를 덜어내기 위한 방편으로 화려하고 현대적인 카메라 무빙에 초점을 옮겼다. 모로 보아도 이 스타일은 눈길을 빼앗을 정도로 젊고, 대담하고, 우아하다.

하지만 달리 보자면 <맬컴과 마리>의 세팅이 아름답지 않을 이유도 그다지 없다. 젠데이아와 존 데이비드 워싱턴, 캘리포니아 북부 평야에 자리한 구조적인 건축물, 그와 대비되는 바깥의 야생적 들판은 어떤 식으로든 이미지적 경탄을 불러내기 적합한 조합이다. 중요한 것은 샘 레빈슨 감독이 스스로 감정적 사실주의를 지향한다고 말한 바에 힘입어, <맬컴과 마리>의 카메라가 배우의 연기나 대사만큼 분명한 자기 어조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맬컴과 마리>의 카메라는 우리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제3의 화자다. 충동과 아집에 사로잡혀 감정의 터널에 갇힌 연인 대신, 렌즈는 정확하고 현명하게 움직인다. 사방이 유리 미닫이문으로 둘러싸인 거실 공간을 비롯해 곳곳에 외부로 난 창과 문이 강조된 집의 구조도 카메라의 존재감을 돕는다. 영화의 도입부, 집 밖에서 창 안을 들여다보며 미묘한 긴장감이 감도는 남녀 사이를 좌우로 트래킹하던 카메라는, 마카로니 파스타가 끓는 물에 투하되는 순간 냄비 앞으로 점프한다. 그리고 하강하는 파스타 면을 따라가는 듯싶더니 이내 눈꺼풀을 파르르 떨 만큼 화가 난 여자의 얼굴(이때의 대사는 “오늘 좋았어”다)로 상승한다.

존 카사베츠의 카메라가 즉흥과 생략을 숭배했다면 샘 레빈슨의 카메라는 개입을 극대화함으로써 감정을 성취한다. 폭발한 남자가 집 밖으로 뛰쳐나가 씩씩대며 초원을 누빌 때 카메라는 유려한 스테디캠으로 거리를 두고, 더이상 남자를 존경하지 않기로 한 여자의 이탈은 어둠 속에 서 있는 거대한 나무 한 그루와 그 음영을 가만히 응시하는 것으로 처리된다.

횡적 움직임이 강조되기 마련인 실내 공간에서 아이 레벨을 다양화하는 방식도 인상적이다. 서서 싸울 것인가, 앉아서 싸울 것인가, 그리고 마침내 누워서도 싸울 것인가 하는 현실적 사안은 커플의 체력을 빙자해 <맬컴과 마리>에 이미지적 스펙터클도 불어넣는다. <맬컴과 마리>가 지향하는 컨템포러리란 이렇게 과거의 뉴웨이브 영화들이 재현했던 질감 위에 꽉 짜인 구도와 움직임을 설계해 넣는 강박으로 마무리된다. 넘치는 대사와 화려한 촬영의 향연 끝에 샘 레빈슨이 말하는 오늘날의 감정적 사실주의를 다시 되짚어본다. 어쩌면 그것은 과잉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샘과 애슐리

7살에 아역배우 생활을 경험하고 26살에 신랄한 가족 드라마 <어나더 해피 데이>(2011)로 데뷔한 샘 레빈슨은 2018년작 <어쌔신 걸스>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개인정보 해킹의 피해자가 된 네 여성들의 복수극인 <어쌔신 걸스>는 할리우드가 기다렸던 밀레니얼 감독의 이상을 자극했다. 레빈슨의 젊고 예리한 감수성, 감각적인 스타일은 <HBO>의 TV시리즈 <유포리아>(2019)로 이어졌고 비로소 걸맞은 인기도 누리게 됐다.

10대들의 성과 혼란, 범죄로 물든 소셜미디어 세계를 탐구하는 <유포리아>는 셀러브리티 젠데이아를 배우의 지위에 안착시켰다. 파국의 정서, 내밀한 관계가 품은 첨예한 역학을 포착하는 데 능한 그의 각본은 <맬컴과 마리>에서 자전적 경험까지 담으면서 극대화되었다. <어쌔신 걸스> 시사회에서 “1년간 100가지 버전의 편집본을 100번 이상씩 함께 본” 부인이자 프로듀서 애슐리 레빈슨을 언급하지 않았던 그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내 진땀을 흘려야 했다. 애슐리 레빈슨은 다행히 마리처럼 격분하지 않고 의미심장한 한마디만 남겼다. “당신의 모든 과정에 나만큼 중요한 사람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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