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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어보' 이준익 감독 - 인간의 본질은 선택과 행동에 있다
이주현 사진 백종헌 2021-04-07

“어렵게 공부한 걸 얼마나 더 쉽게 전달하느냐가 관건이다. 이번에도 어렵게 공부해 쉽게 쓰려 했다.” 이준익 감독의 말처럼 <자산어보>는 쉽게 즐기고자 하면 쉽게 즐길 수 있는 영화고, 지적으로 즐기고자 하면 한없이 지적으로 파고들 수 있는 영화다. 이 인터뷰는 후자의 관객에게 좀더 유용한 글이 될 것 같다.

-<자산어보>의 시작이 궁금하다. 천주교 박해라는 거대한 시대적 배경, 정약용과 정약전 형제의 이야기, 아니면 <자산어보>라는 책 자체. 어떤 것에 마음이 기울어 <자산어보>를 시작하게 됐나.

=개인주의 시대인 현재에서 조선의 근대를 찾아보자는 동기로 시작했다. 그러려면 거대 사건이 아니라 개인의 근대성에서 찾아내는 게 합당하지 않겠는가. 그게 시작이었다. 그 개인이 한데 모인 게 동학이더라. 그런데 대체 왜 이름을 동학이라 지었을까. 의문을 따라가보니 앞에 서학이 있어서 동학이라 지었더라. 그러면 왜 또 서학이라 지었을까. 그건 앞에 북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조 시대에 박제가의 <북학의>,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나왔다. 북학, 서학, 동학을 통해 개인의 근대성이 소용돌이치면서 근대가 펼쳐지기 시작했구나 싶더라. 그런데 유독 서학에 관심이 갔다. 그러면서 황사영이라는 인물이 눈에 들어왔다. 황사영이 신유박해에 관한 백서를 쓴 토굴이 충북 제천의 베론성지인데, 그곳에서 황사영에 관한 논문을 쓴 여진천 신부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시놉시스를 쓰다보니 내가 준비가 덜 된 느낌이었다. 이 이야기는 일단 덮어놓고, <사도> <동주> <박열>을 찍었고 <변산>에서 미끄덩하고 자빠졌다. 그때 다시 황사영을 생각했는데, 이번엔 황사영이 슥 옆으로 밀려나고 정약전이 훅 들어오더라. 정약전의 <자산어보>를 착 펼치니 거기 창대가 턱 있었다. 아, 창대가 비밀의 열쇠구나. 서학과 관련된 신유박해, 신유박해로부터 파생된 두 가치관인 정약용의 <목민심서>와 정약전의 <자산어보>, 그 사이에 창대가 성장통을 겪으며 서 있다면, 조선의 근대와 시대의 아픔을 한 영화에 담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황사영을 탐구하다보니 정약전이 들어왔다고 했는데, 왜 정약전이었나. 정약전은 정약용에 비해 남긴 책도 적고 관련 연구도 적은 인물이다. 오히려 이런 점에 호기심이 발동했나.

=신유박해 때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삼형제가 고초를 겪는다. 정약종은 순교하고, 둘은 배교해서 유배를 간다. 그런데 왜 정약용은 강진으로 가고 정약전은 흑산으로 갔을까. 강진보다 흑산이 훨씬 형벌이 무거운 사람이 가는 유배지인데. 그건 곧 정약용보다 정약전이 더 위험한 인물이라는 것을 방증하는 게 아닌가. 정약용을 관심 있게 보다가 포기한 건 그의 삶은 적어도 16부작 정도로는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약용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수단으로 정약전이 유효하다고 본 측면이 있는데, 정약용을 직접적으로 그리면 위인의 절대 가치를 미화할 수밖에 없다.

-위인의 가치를 미화하는 영화를 감독님이 만들 리는 없고.

=당연하지. 대신 정약전을 뚜렷하게 그리면 정약용이 저절로 선명해진다. 마찬가지로 정약전을 선명하게 그리는 방법은 창대를 뚜렷하게 그리는 거다. 모든 존재는 상대적 비교 가치 안에서 선명해진다. 영화에서 창대가 <대학>의 첫 구절을 해석하지 못해 답답해하는데, 그 첫 구절은 이렇다. ‘대학지도는 재명명덕하며 재친민하며 재지어지선이니라’(큰 배움의 도는 밝은 덕을 더욱 밝게 함에 있으며 그 덕이 백성과 친하게 함에 있으며 지극한 선에 머물게 함에 있다). 이것이 3강령의 한 대목이고, 8조목은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다. 그런데 우린 앞의 4조목(격물, 치지, 성의, 정심)은 모르고 뒤의 4조목(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만 주로 배웠다. 다시, <목민심서>는 어진 임금 밑에서 백성을 슬기롭게 다스리는 방법에 관한 책으로 이건 사람 공부라 할 수 있다. 정약용은 <목민심서>의 초고를 쓸 때마다 흑산으로 보내 형 정약전에게 자문을 구했는데, 그 <목민심서>는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의 인문서다. 동생이 그런 책을 쓰는데 정약전이 같은 책을 쓰려 했겠나. 정약전은 앞의 4조목에 관한 책을 쓰겠다고 결심했고 그래서 자연과학서인 <자산어보>를 쓴 것 같다. 이건 내 추측이지만. 그러면 격물이 뭐냐. 물건에 격, 가치를 부여하는 거다. <대학>의 실천 덕목 첫 번째가 격물이다. 격물을 소홀히 하면 안된다는 판단을 정약전이 했다고 본다. <자산어보>는 격물을 행한 결실이다.

-앞서 개인의 근대성 이야기를 했는데, 정약전이 <자산어보>를 쓴 것에서 근대성을 본 건가.

=물론 정약용도 근대성의 대변자다. 정약전의 근대성을 보여주는 건 수직 사회를 지향하는 집단주의가 아니라 수평 사회에 대한 사고였다. 수평 사회의 가치관이 <자산어보>에 드러나는데, 사대부 양반(정약전)이 섬에 사는 청년 어부의 이름을 꼬박꼬박 책에 집어넣은 것 자체가 근대성이라고 생각한다. 창대의 이름을 안 넣는다고 누가 뭐라 하겠나. 그런데 정약전은 <자산어보> 서문에 확실하게 밝힌다. 창대의 도움을 받아 책을 썼다고. 본문에도 “창대가 말하기를”이라고 정확하게 적시한다. 그런 것에서 평등의 실천이 읽힌다. 신분의 차이를 없애고 개인적인 가치를 부각시키는 것. 그게 근대성이다.

-창대에게 정약용의 모습을 담으려 한 측면도 있나. 창대는 정약용의 사상을 따르는 데다 영화에 녹여낸 정약용의 한시 <애절양>(갓난아기와 죽은 사람에게까지 부과하는 과도한 군포에 항의하며 자신의 생식기를 도려낸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시)의 이야기도 창대의 시선으로 펼쳐진다.

=<목민심서>의 길을 선택지로 삼은 창대가 종국에 맞닥뜨리는 건 <애절양>일 수밖에 없다. <애절양>처럼 가슴 아픈 현실 세태를 목격한 정약용은 그걸 시로 남겼고, 그렇게 현실에 뿌리내리고 쓴 책이 <목민심서>다. 그리고 정약전은 창대를 보며 동생 정약용이 아니라 조카사위(형 정약현의 딸의 남편)인 황사영을 보지 않았을까. 황사영은 16살에 과거 급제했다. 하지만 조선의 천주교 박해를 중국 성당과 교황청에까지 알리려다 능지처참당했다. 실제로 창대가 정약전을 만났을 때의 나이가 17, 18살로 추정되고, 젊고 총명한 창대에게서 아마도 황사영의 모습을 보지 않았나 싶다. 강진에 있는 동생 정약용에게 애제자 창대를 보냈을 때 정약전의 마음은 또 얼마나 흐뭇했겠나. 정약용은 창대에게 시 한수 들어보자며 자신의 제자 이광회와 시 대결을 시키는데 그때 정약용의 눈빛 또한 애정으로 가득하다. 자신이 존경하던 정약용으로부터 인정의 눈빛을 받은 창대는 감동스러울 수밖에 없고. 마치 황사영이 16살 때 장원급제하고 정조의 손길을 느꼈을 때의 심정과 같지 않았을까. 그래서 창대는 더욱더 <목민심서>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유배 이후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다 보니 정조 시대 서양의 종교와 학문에 매료된 젊은 학자들의 이야기나 천주교 박해 사건 등은 생략된 측면도 있어 보인다.

=더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생략했다. 내가 종교인이 아니어서 그 열망이 적은지도 모르겠다. 이승훈이 조선 최초로 베이징에서 그라몽 신부한테 세례받는 장면도 찍었다. 달시 파켓이 그라몽 신부를 연기했는데 투머치란 생각이 들어 편집 과정에서 뺐다. 당시 종교를 학문으로 접한 성리학자들의 이야기, 진보적 사상을 가진 천재적 인물들, 그 근대적 씨앗을 왜 찍고 싶지 않았겠나. 그런데 재미가 없지 않나. 관객이 어려워하니까. 이 영화엔 다름 아닌 창대가 꼭 필요했다.

-<자산어보>의 문장을 영상으로 옮겨놓은 장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정약전이 느낀 바다 생물에 대한 호기심을 관객도 함께 느끼길 바랐나.

=인물에 몰입하는 과정은 인물의 행동을 쫓아가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사람은 말이 아니라 행동을 쫓아가게 되어 있다. 인간의 본질도 말과 생각에 있는 게 아니라 선택과 행동에 있다. 나쁜 말을 해도 행동이 정의롭다면 그 사람은 정의로운 사람이다. 말과 생각은 너무 정의로운데 행동이 정의롭지 못하면 그 사람은 부정의한 사람이다. 영화 속 정약전의 행동을 살펴보면, 그는 양반인데 뜀박질하고 바다 생물을 직접 만진다. 창대의 배에 함께 올라타 끊임없이 질문한다. 그는 행동한다. 그게 정약전의 본질이다. 그 본질을 관객이 쫓아갔으면 했다.

-영화 후반부 성게 껍질에서 나온 새가 파랑새가 되어 날아가는 장면이 있다. 사리사욕에 눈먼 탐관오리들의 모습이 이 장면 앞뒤로 배치되어 있어 동학농민운동을 염두에 둔 파랑새라는 생각이 들었다.

=19세기에는 여러 민란이 있었고, 1811년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다. 동학 이전의 파랑새를 상징하는 측면도 있고. <애절양>의 현실을 목도한 창대가 훨훨 날아간다면 파랑새가 되지 않겠는가, 이런 마음이 결국 동학농민운동으로 건너간 게 아닌가 했다.

-예산 문제를 떠나 <자산어보>는 컬러보다 흑백이 어울리는 영화라 생각했나.

=그렇다. 동양화과를 나와서 수묵화를 꽤 그렸다. 사군자도 치고, 관념산수, 진경산수도 그려보고. 학교 다닐 때 시늉은 해봤다. 만약 <자산어보>에 흑백영화로서의 미적 성취가 있다면 그건 촬영감독의 몫이다. 해무가 가득한 우이도를 한폭의 수묵화처럼 그려낸 건 이의태 촬영감독이 한 거지 내가 한 게 아니다.

-<동주>가 고요하고 차가운 흑백영화라면 <자산어보>는 밝고 생생한 흑백영화다.

=<동주>는 워낙 저예산영화여서 성능 좋은 카메라를 쓰지 못했다. 그럼에도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가 배경이었기에 어둡고 거칠어도 기술적 문제가 영화에 크게 그릇되지 않다고 봤다. 다만 <자산어보>에는 섬이 있고, 대자연이 있고, 흑산도의 마음 따뜻한 사람들이 있어서 흑백이 가진 미학을 좀더 공격적으로 추구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빛나는 흑백을 찍고자 했다.

-비교적 최근의 시대극인 <사도> <동주> <박열> <자산어보>가 인물의 관계에 오롯이 집중해 이야기를 풀어간다면 초기에 만든 시대극 <황산벌> <왕의 남자> <평양성>은 사건 중심으로 이야기의 판을 크게 벌인다.

=인물 중심이냐 아니냐로 나누는 건 정확하지 않다. <평양성>까지의 전반기는 사건 중심으로 이야기를 만들었고 <소원> 이후의 영화는 사연 중심으로 만들었다. 인물이 사건에 휘말려서 이야기가 진행되느냐, 사건에서 파생된 사연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느냐의 차이다. 사건과 사연의 차이로 내 필모그래피의 전반기와 후반기를 나눌 수 있다. <동주>도 <박열>도 <사도>도 다 두 사람의 사연이 주가 된다. <자산어보> 역시 신유박해라는 하나의 사건으로 시작해 그 이후는 모두 사연으로 풀었다. 나이를 먹으니 사건보다 사연에 더 마음이 쓰인다.

-시대극과 현대극, 어느 게 더 재밌나.

=찍는 건 다 재밌다. 개봉할 때 되면 둘 다 힘들고.

-다음 작품에 대한 힌트를 준다면.

=시나리오 몇개 써놓은 건 있는데, <자산어보>의 결과에 따라 차기작이 결정될 것 같다. 앞 작품의 결과가 늘 다음 작품의 동력으로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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