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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CJ그룹 이미경 부회장이 처음으로 밝히는 <기생충>의 아카데미 캠페인 전략
장영엽 김성훈 2021-04-13

“한국과 글로벌 시장 사이에 접점 만드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이죠”

영화 <바리케이드> 촬영장 방문. 사진제공 CJ그룹

-지난 3월 23일 아카데미 영화박물관 개관을 기념해 열린 버추얼 투어 및 기자간담회에 안내자로 참석하셨습니다.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가 LA 중심부에 영화 박물관을 개관하는 건 어떤 의미와 가치가있습니까.

=1927년 아카데미 창립 이래부터 영화 박물관 개관은 오랜 숙원이었습니다. 미국 영화 사업의 본고장이라고 불리우는 할리우드에 영화의 역사를 기록할만한 박물관이 없었다는 것이 굉장히 아쉬운 일이었지요. 박물관의 공사부터 시작해 완성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한 명의 영화인으로서 매우 기뻤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개관이 미뤄진 건 아쉽지만, 가상 프로그램을 통해서 전 세계 관객들을 한번에 만날 수 있게 돼 벅차고 기쁜 마음입니다. 영화 박물관을 통해 앞으로 영화는 단순히 사람들이 보는 것에 그치는, 소비하는 문화가 아니라 하나의 역사가 될 것입니다.

-미국 아카데미 영화 박물관 부의장으로서 어떤 업무를 맡고 계시는지요. 어떤 계기로 부의장을 맡게 되셨나요.

=어느새 이사회 멤버로 활동한지 2년이 다 되어가네요. 이사회 멤버로서 가장 의미 있는 점은 여러 훌륭한 문화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콘텐츠를 세계에알리는 것을 제 미션으로 삼아왔습니다. 아카데미 영화 박물관의 일원이 된 이후 아시아 영화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알릴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이야 자부할 수 있지만, 2019년 아카데미 영화 박물관 이사진으로 합류하고 부의장으로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 영화의 위상이 글로벌 영화계에서 그만큼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인정, 그것이 바로 계기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100년간 한국영화를 위해 힘써준 감독님들과 제작자, 배우, 스텝 모든 분들의 덕분이며, 저는 그들의 목소리를 영화 박물관에도 담아낼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영화 박물관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아끼는 전시실이나 소장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가상 기자간담회를 통해서 보셨겠지만, 어느 공간 하나도 아카데미의 역사와 숨결이 담기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박물관의 공사 과정부터 지켜봐 온 사람으로서 ‘스피어’(Sphere, 박물관 중앙의통로로 빛과 그림자로 이루어진 공간. 어둠에 해당되는 공간에 영화관과 전시공간들이 있다-편집자)에 들어설 때부터 영화 박물관의 명성과 위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압도되면서 마치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죠. 그 모습이 영화와도 닮아 있다고 느꼈습니다. 영화도 제각기 다른 세상을 가지고 있어 영화를 시작할 때는 왠지 새로운 세계에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잖아요.

-지난 2019년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의 이사진이 되셨습니다. 최근 아카데미에 다양성에 대한 요구가 거세졌는데요. 여성, 아시아인으로서 아카데미의 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계실 것 같습니다.

=아카데미상은 공식적으로는 할리우드 영화를 대표하는 ‘로컬 영화제’이지만, 한편으로는 실질적으로 미국을 넘어 전세계 ‘상업영화계’의 좌표를 그리는 영향력을 발휘해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수 년간 할리우드의 지형이 급격히 변화했습니다. 문화적 다양성이 중요해지고, 할리우드 영화의 수요처로서 글로벌 시장의 비중도 커졌습니다. 또한 미투 이슈의 부각을 포함해 남성 중심의 산업구조에 대한 변화의 목소리도 그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이처럼 아카데미는 급격하고 총체적인 변화에 적응하고 영화계의 현실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하는 상황일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와 같은 여성이자 아시아계 출신 영화인의 역할이 중요해진 셈이지요. 아카데미상이 지금 시대의 상업영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면 저는 할리우드를 포함한 전세계 영화산업이 좀 더 건강한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도록 거기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야 할 것입니다. 그동안 아카데미 이사회 일원으로서 여러 인력들과 교류하며 아시아 영화를 조금이라도 널리 알리는데 집중해 왔고, 앞으로도 한국영화를 포함한 아시아 영화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그 진가가 시장 내에서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전도사 역할을 할 생각입니다.

드림웍스 SKG 스티븐 스필버그(맨 오른쪽)와 제프리 캐천버그(맨 왼쪽). 사진제공 CJ그룹

-CJ 또한 설립된지 26년이 됐습니다. 지난 1995년 당시 제일제당이 드림웍스에 3억 달러를 투자하면서 아시아 배급권(일본 제외)을 따낸 건 할리우드에 대한 국내 기업의 첫 직접 투자라는 점에서 대단했습니다. CJ 그룹 매출의 몇십 프로에 달하는 자금을 투자했던 이유가 문화, 특히 영화 사업에 대한 비전과 확신 그리고 의지를 가졌기 때문으로 알고 있는데 당시 문화 사업에 대한 가능성과 미래를 보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아시다시피 CJ는 제일제당이라는 식품 회사로 사업을 처음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재현 회장과 저는 단순 식문화 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리드하는 문화 콘텐츠 비즈니스로 확장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어린 시절부터 할아버지이신 선대 이병철 회장님으로부터 “문화가 없으면 나라도 없다”는 가르침으로 인해 문화의 중요성에 대해 누구보다 깊이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미국 유학 당시 헐리우드 기반의 눈부시게 발달한 영화산업과 풍부한 문화콘텐츠를 접하면서 우리도 콘텐츠 생산자가 되어 글로벌 시장에서 주류의 위치에 서서 문화적 다양성에 기여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고, 이 모든 경험들이 밑거름이 되어 문화 사업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1995년 4월 제일제당은 드림웍스에 3억 달러를 투자하는 2대 주주로 참여해 아시아 지역의 판권을 보유하며 영화배급, 마케팅, 영상 관련 기술 등 할리우드의 노하우를 지원 받기로 합의했습니다. 당시 할리우드의 여러 스튜디오들 중에서 드림웍스의 어떤 점 때문에 파트너로서 적합하다고 판단하셨습니까.

=당시의 투자가 CJ 문화사업의 첫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체 자산 규모가 1조원에 불과한 때 그 정도 규모의 투자는 회사의 명운을 건 큰 결정이었고, 파트너 선택에도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드림웍스를 파트너로 적합하다고 판단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겠지만, 가장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은 스티븐 스필버그, 제프리 카젠버그, 데이비드 게펜, 이 세 사람의 창립 멤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당시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직접 마주 앉아 저희의 비전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들로부터 영화 산업뿐만 아니라 TV, 음악 등 전반적인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시스템과 구조를 배울 수 있었고 CJ를 다방면으로 키워 나가야겠다는 자극을 받았습니다. 특히 그들이 말하길 엔터테인먼트사업은 ‘피플 비지니스(People Business)’이기에 언제나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견지하기를 강조하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그들의 업에 대한 진정성과 가치관 역시 결정적인 이유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후 1998년 CJ CGV 강변이 개관하면서 멀티플렉스 시대가 열렸고, CGV는 한국 최대의 멀티플렉스 체인이 되었는데요. 당시 멀티플렉스를 만들어야겠다고 판단한 이유가 뭔가요.

=미국 유학시절,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멀티플렉스에 가서 하루종일 여러 편의 영화를 보며 천국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어 오브 드래곤>(1985, 감독 마이클 치미노), <레이디호크>(1985, 감독 리처드 도너), <열정>(1985, 감독 조엘 슈마허), <플래시댄스>(1983, 감독 애드리안 라인) 등 그때 봤던 작품들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때 한국에 돌아가면 이런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습니다.

드림웍스에 투자하고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시작하면서 이재현 회장은 영화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인프라, 콘텐츠, 관객 수요기반 등 이 세가지 요소가 유기적으로 맞물려 동시에 성장해야 영화 시장의 지속적인 양적 질적 진화가 가능하다고 했고, 이를 위해서는 멀티플렉스를 만들어 산업의 규모를 키워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당시 관객의 잠재 수요는 풍부했기 때문에, 콘텐츠 투자와 극장 인프라 확대로 시장 확대를 견인하는 전략을 펼쳤습니다. 이러한 전략들이 시너지를 내며 한국 영화 산업의 기반을 다지는 데 있어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이 외에도 정부의 육성 정책을 비롯해 여러 노력들이 서로 맞아 떨어져 지금과 같이 전세계에서 관객들이 영화를 가장 많이 보고 퀄리티 높은 콘텐츠가 생산되는 나라가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은 하루아침에 거둔 성과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CJ엔터테인먼트가 처음 설립된 1995년 이후 지금까지 26년 동안 CJ는 해외 시장을 개척하려고 끊임없이 시도해왔습니다. 모두가 내수 시장에 집중하고 있었을 때 CJ가 처음부터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린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국은 문화 산업 관점에서 여러모로 특수한 나라입니다. 개발도상국의 입장에서 보면 예전 우리가 할리우드 영화나 팝송을 접하며 느끼던 세련되고 선진화된 문화적 경험을 제공하는 나라고, 미국이나 유럽같이 일찌감치 문화 비즈니스가 발달한 곳에는 오랫동안 정체된 문화적 환경에 새로운 상상력과 양질의 콘텐츠로 신선한 자극을 제공합니다. 이것은 아마도 한류가 오랜 세월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점점 확대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고, 한국의 경제적 산업적 성장의 맥락과도 그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한국의 문화적 특성을 고려한다면, 콘텐츠 사업을 가지고 글로벌 시장으로 무대를 확장하는 것은 우리 문화의 고유한 특성과 강점을 적절히 활용하는 길이고, 그 성장과 진화의 일정 단계에서 필수적인 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우수한 인력은 많은데 이들이 활동할 시장이 상대적으로 너무 좁은 한국의 인구학적, 지정학적 특수성을 고려하면 해외시장을 향한 꿈은 몽상이나 막연한 이상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이고 필수적인 과제입니다. 좀 더 추상적이고 본질적인 차원에서 이야기를 하자면, 미국영화를 보고 미국영화 감독의 가르침을 공부하며 자란 한국 영화인이 한국어라는 낯선 언어로 영화를 만들어 아카데미상을 받고 역으로 미국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듯이 문화는 교류하고 충돌하고 이식하는 와중에 건강하게 진화하는 유기체 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양한 문화적 주체가 제대로 힘을 갖추어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문화적 다양성이 중요한 것입니다. 단순히 한국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우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 목소리를 전달할 것인가가 보다 중요한 소명으로 느껴졌습니다.

-“언젠가 아시아인 모두가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한국 음악을 듣는 게 일상이 되는 날을 보고 싶습니다”라는 말씀을 하신 적 있는데, 그때 그 바람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씨네21>이 95년 5월에 창간해 26주년을 맞았고, CJ는 그보다 한달 전에 드림웍스에 투자하면서 영화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우연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씨네21>은 당시 문화적인 요구 속에서 최초의 영화 주간지를 창간했을 터인데, CJ도 비슷한 맥락에서 오랫동안 품었던 꿈을 현실화 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씨네21>과 같은 매체들이 지난 26년간 영화 담론을 풍부하게 만들어 내면서 영화 관객의 저변을 넓히고 그 수준을 높이는 일을 해왔다면, CJ는 극장 인프라를 만들고 창작자와 콘텐츠에 투자해서 그 수요를 충족시키고 생태계 전체를 확대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이를테면, 그동안 <씨네21>과 CJ는 같은 목적을 위해 다른 방식으로 달려온 셈이고, 글로벌 시장에서 찬사를 보내는 지금과 같은 자랑스러운 한국영화계는 이러한 다양한 노력들이 모두 힘을 합쳐 성장하고 진화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26년 전에 한국의 독특한 경제적, 사회문화적 흐름 속에서 영화를 비롯한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시작해 그동안 한국의 문화적인 개성을 확인하고 이를 강점으로 키워내는 데 중점을 두었다면, 이제는 눈을 본격적으로 밖으로 돌려 글로벌 시장의 문화적 요구와 변화에 답하며 의미 있는 성취가 있을때까지 힘을 쏟아야 할 것입니다.

BBC TV시리즈 <리틀 드러머 걸> 런던 촬영장 방문, 배우 마이클 섀넌과 박찬욱 감독(왼쪽부터). 사진제공 CJ그룹

-<기생충>의 오스카 캠페인 과정에 대해서도 여쭙고 싶습니다. CJ는 <기생충>의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직후부터 오스카 캠페인을 준비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오스카 레이스를 성공적으로 치르기위해 어떤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셨습니까.

=칸 영화제 첫 상영을 마치자마자 현지의 뜨거운 반응을 확인하고 기회를 놓치면 안되겠다는 직관적인 판단이 들었습니다. 시상식이 열리기 전에 당시 출장 온 경영진, 책임자들을 모아 아카데미의 꿈을 도전하자는 생각을 전달하였고, 그 자리에서 TF를 꾸리는 계획이 만들어졌습니다. 이후 이재현 회장을 필두로 CJ 관련 조직들이 전체에서 아카데미에 도전하기 위한 레이스에 본격적으로 돌입했습니다. 다소 무모하게 여겨질 수 있는 상황에서 CJ가 수립한 아카데미 캠페인 전략은 크게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레이스 초반에 리소스를 집중 투입하여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었습니다. 미국 할리우드 스튜디오는 ‘아카데미 캠페인’이 연 단위로 벌어지며 전담 팀이 존재하는 등 대규모 예산, 강력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프라와 경험이 부족한 한국영화가 최초로 아카데미 캠페인 경쟁에 나선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이에 CJ는 초반에 프로모션 비용을 예상 흥행성적과 관계없이 과감하게 투입하기로 결정하고 적어도 초반만큼은 메이저 스튜디오급 규모로 마케팅을 전개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영화가 좋아도 존재감 없이 사라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는 초반에 영화 팬들이 볼 만한 전문 매체나 권위있는 뉴스 매체를 활용해 봉준호 감독이라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대세감을 만들어내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메인스트림 경쟁작들처럼 LA 곳곳에 빌보드를 내걸고 비싼 매체에 광고하는데 끼어들기 어려웠기 때문에 봉준호 감독의 매력을 알리는데 집중했습니다. 그래서 본격적인 어워드 시즌이 시작되기 전인 여름부터 봉준호 감독님을 전담할 최고의 헐리웃 실력자를 붙였습니다. 봉준호 감독이 불러일으키는 신선함과 호감 덕분에 이러한 전략은 레이스 중반에 이르러 승기를 잡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셋째, <기생충>이 아웃사이더 외국어 영화에서 헐리웃 인사이더들이 사랑하고 인정하는 영화로 자리매김하도록 저명 인사들을 대상으로 LA CGV에서 수차례 프라이빗 스크리닝을 하며 한국 음식도 함께 나누고, 한국 영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런 시사와 네트워킹 파티를 통해서 기예르모 델 토로, 알 파치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숀 펜, 마이클 만 등등 헐리웃의 기둥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저명인사 수십명 수백명과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자연스럽게 업계 내에 <기생충>에 대한 소문이 퍼지도록 했습니다. 이 영화를 입소문내 줄 수 있는 인플루언서급 인사들을 모아 영화를 열심히 보여주고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기생충>이 아무리 훌륭해도 다른 외국어 영화와 마찬가지로 8,000명이 넘는 아카데미상 투표인단 중 상당수가 아예 보지 않은 상태로 투표한다면 영화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질 수도 있으니, 할리우드에서 입소문을 내줄 만한 유력인사들을 가능한 한 많이 불러 끊임없이 시사회를 열고 오감으로 생소한 한국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한국음식도 대접했습니다. 90세가 다 돼 가는 퀸시 존스도 휠체어를 타고 LA에 있는 CGV에 와서 이 영화를 봤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이 영화에 대해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프라이빗한 시사회도 계속 열어 자연스럽게 업계 내에 <기생충>에 대한 소문이 퍼지도록 했습니다. 우리의 노력 중 어떤 것이 수상에 기여했는지 알 수 없지만,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임하는 <기생충>의 악조건에서 나온 전략이 다문화주의와 마케팅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시대적인 조건과 맞물려 오히려 기대 이상의 확산 효과를 만들어 낸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기생충>이라는 영화의 위대함과 봉준호 감독이 지닌 매력이 이 모든 일을 시도할 수 있게 한 전제조건이었습니다. 이 모든 공로는, 반년 동안 살인적인 일정을 기적적으로 소화해 낸 봉준호 감독을 포함해 같은 기간 함께 고생한 송강호 배우 등에게 돌아가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두의 노력으로 만들어 낸 기적이었습니다.

-한국영화의 IP를 확보하는데 관심이 있던 과거와 달리 <기생충> 이후에는 한국 감독이나 프로듀서들에 대한 할리우드의 관심이 높아진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예전에는 흥미로운 컨셉이나 스토리를 확보하는 정도의 관점에서 한국영화 판권을 구매했다면, <기생충> 아카데미 수상을 계기로 한국 영화인들이 성숙시켜 온 프로덕션의 높은 퀄리티가 널리 알려지고, 한국영화만이 가진 독특한 개성에 대해 매력을 느끼면서, 그 경험과 재능 자체를 활용하고 싶어지니 그 생태계에서 활동해 온 창작자들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한국 영화인들은 <기생충>처럼 여러 장르가 혼합된 형식에 익숙하지만, 할리우드에서는 이러한 밀도 높은 하이브리드 장르 영화가 신기하고 자신들이 쉽게 모방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이는 듯 합니다. 이러한 스토리를 쓸 수 있는 작가나 감독을 한국에서 찾아 나서는 식이죠. 한국영화계가 오랜 세월 양적으로 질적으로 성장하며 만들어 낸 성취가 빛을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 기사는 <[단독] CJ그룹 이미경 부회장, "할리우드 제작자들, 한국 감독 소개해달라는 요청 늘었다">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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