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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는 디즈니, 우리는 우리만의 길을 간다”
2001-03-23

드림웍스 공동대표 제프리 카첸버그 인터뷰

<쉬렉>의 주요 시퀀스 시사를 마친 2월15일 늦은 오후, 소강의실 크기쯤 되는 PDI 스튜디오 영상실에서는 투어의 마지막 순서로 제프리

카첸버그와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교실도 아니고, 형식적일 필요가 없지 않냐”고 입을 연 카첸버그는, 10명 좀 넘는 취재진에게 “난 물지도

않고, 오늘 샤워도 했으니 가까이 와도 된다”며 편하게 둘러앉자고 장난스레 말을 건넸다. 카첸버그는 <인어공주>에서 <라이온킹>까지, 쇠락했던

디즈니의 장편애니메이션에 활기를 불어넣으며 애니메이션 왕국 디즈니의 새 중흥기를 이끈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파라마운트영화사의 중역으로

재직중이던 84년 월트 디즈니의 사장으로 스카우트된 뒤, <귀여운 여인>(프리티 우먼) 등 실사영화와 89년 <인어공주>를 필두로 한 일련의

애니메이션 흥행작들을 제작했다. 94년 마이클 아이스너 회장과의 불화로 디즈니를 떠나기 전까지, <알라딘> <라이온킹> 등으로 애니메이션

사상 최고의 성공을 기록하며 애니메이션계의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기도 했다. 디즈니를 나와 드림웍스라는 새 보금자리를 마련한 지 어느덧

7년째. 카첸버그는 <개미>와 <이집트 왕자>의 상승세를 거쳐 <엘 도라도>의 실패를 감수하고, <치킨 런>의 성공을 신작 <쉬렉>으로

이어가기 위한 준비에 한창이다.

우연히 애니메이션에 발을 들여놨지만 지금은 마스터로 꼽히는데, 애니메이션을 계속해온 이유는? 또 요즘 3D를 중심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애니메이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1984년에 시작했으니 20년 가까이 하고 있는 셈인데, 디즈니에 들어갈 때부터도 난 애니메이션 학도는 아니었다. 그냥 ‘일’의 영역이었지.

물론 결국 사랑에 빠지고, 이른바 ‘미친 열정’이 됐지만. 그래서 드림웍스를 시작하고 싶었고,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만들고 싶었고. 요즘

애니메이션에서 일어나는 진화로 말하자면, 나에게는 혁명이다. 지난 몇년 사이 변화의 정도가 정말 놀라울 정도니까. 한번 돌아볼 때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첨단의 아이디어를 실제로 전달하는 능력을 보게 된다. <개미> 이후 2년 만인 <쉬렉>만 해도 컴퓨터애니메이션에서 성역이라

여겼던 것들, 액체, 유동체를 사실적으로 보이도록 하는 게 가능할까 하고 꿈꿨던 것들을 이뤄내는 걸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우유가 쏟아지는

장면을 봤나. 우리에게 그건 기적이다. 2∼3년 전만 해도 가능하지 않았던 일이다. PDI 인력들은 독특한 재능을 가지고 있고, 지금껏

누구도 해보지 않은 뭔가를 해내는 개척자들이다. 하지만 기술은 지금 이 순간의 기술일 뿐이다. 여기에서 한나절 보내며 <터스커>를 작업하는

걸 보면, <터스커>가 <쉬렉>을 또다시 놀라운 방식으로 뛰어넘는 것을 목격하게 되니까. 애니메이션은 관객을 이제껏 보지 못한 세계로 데려가는

데 절대적으로 빠르다.

6년간 4편의 애니메이션을 제작해서 3편이 성공을 거뒀는데, 그 이유가 뭐라고 보나.

관객의 변화가 중요하다. 디즈니는 하나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고, 그것은 독특하다. 하지만 그들의 감성을 따라가려고 애쓰는 것은 이런 창조의

세계에서 별로 보람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에게 애니메이션은 창조적인 도전이고, 비즈니스의 기회이고, 꼭 해야 하는 일이다. 우리는 우리만의

길을 가야 하는데, 관객도 뭔가 신선한 것, 새로운 것을 찾는 시점이 온 것이다. <쉬렉>도 지금껏 보지 못했던 것을 보여주고자 한 작품이다.

워너브러더스, 20세기폭스 등 다른 영화사들도 장편애니메이션 시장에 진출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유독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이

관객을 사로잡은 이유가 뭘까. 세련됐지만 아이들이 이해하기에는 난해한 유머라든가, 선악의 이분법적 고정관념을 비켜간다든가,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이

보여주는 전략이 있을 것 같은데.

아직 미숙한 회사를 규정하는 것은 생산물 자체지 부대요소들이 아니다. <인어공주>도 어떤 브랜드네임은 아니었다. 물론 결국 일종의 브랜드네임이

됐지만, 그건 일련의 작품들 이후였다. 난 84년부터 디즈니에 있었는데, 그렇게 된 건 <라이온킹>까지 3∼4편의 영화가 잇따라 성공을

거둔 94년 전후에 이르러서다. 하지만 드림웍스처럼 미숙한 회사의 경우, 설사 픽사처럼 큰 성공을 거뒀다 할 지라도 그런 브랜드네임을 쌓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우리가 만드는 작품은 좀더 절충적일 수 있다. 작품들도 각각 다른 창작집단에서 나오지 않나. 아드만 애니메이션은 그 자체로

독특한 것이고, 난 그걸 드림웍스 안에 가둬두고 싶지 않다. 아드만은 아드만인 채로가 좋다. PDI도 서서히 자신의 독특한 브랜드를 만들기

시작하고 있고, 우리가 하는 전통적인 애니메이션도 시간이 흐르면서 관객이 뭔가 전에 본 적 없는 새로운 것을 기대하게 만드는 이름을 다지길

바란다. 지난 4∼5년간 딱히 브랜드란 것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디즈니에서도 브랜드란 의미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본

적 없었다. 그저 훌륭한 영화를 만들어야지 하고 생각했으니까.

성인 취향의 애니메이션을 지향하나.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가, 계속해서 추구하는 것이 작품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이를 수 있는 것이란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가족 관객에게 ?? 경험을 전하면서 동시에 모든 이들을 즐거운 방식으로 끌어들이는 것. 아주 어려운 일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디즈니의

엄청난 성공에도 불구하고, 10대들은 절대, 결코 그들의 애니메이션을 보러 오지 않았으니까. 12∼25살 정도의 관객은 거의 없었고, 그들

중 극소수만 로빈 윌리엄스가 목소리를 연기한 것 때문에 <알라딘>을 보러온 정도다. 명백히 블록버스터고, 애니메이션의 <타이타닉>이라 할

만한 <라이온킹>도 그들을 끌어들이진 못했다. 어쩌다 온 경우는 있었겠지만, 일부러 찾아서 보진 않는다. <쉬렉>의 경우, 실제 16∼20살의

관객에게 보여줬던 적이 있는데 다들 놀라워했다. 가족 관객과 전혀 다른 식으로 본 것이다. 6∼8살짜리 아이들은 쿵후, 불 뿜는 용, 육체적인

개그 등을 보고 웃지만, 10대들은 자신들이 성장해온 문화에 대한 장난스런 경의를 보며 웃는다. 그게 그들에겐 통하니까. 모든 컨벤션을

속속 뒤집으면서 인물들이 아주 풍부하고 복합적으로 살아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 교묘함 속에는 여러 하위텍스트가 들어 있고, 십대 관객에게는

그게 쿨해 보이는 것이다. 기존 애니메이션들은 그렇지 않았으니까.

LA=황혜림 기자 blauex@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