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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밀리언 달러 호텔
2002-05-28

시사실/밀리언 달러 호텔

■ Story

버림받은 부랑자들의 보금자리 LA 밀리언 달러 호텔 옥상에서 화가 이지(팀 로스)가 추락사한다. 이지의 아버지인 유대계 언론 재벌은 자살 스캔들을 막기 위해 FBI요원 스키너(멜 깁슨)에게 살인자 색출을 지시하고, 미디어의 관심은 호텔에 집중된다. 스키너의 수사와 스캔들을 틈타 한몫 잡으려는 투숙객들의 계획이 뒤엉키면서 부랑자들의 착한 심부름꾼 톰톰은 희생양이 될 처지에 몰리고 톰톰의 오랜 구애로 겨우 마음을 연 자폐증적 독서광 엘로이즈(밀라 요보비치)는 그를 구하려 한다.

■ Review 허영의 도시 로스앤젤레스 뒷골목의 밀리언 달러 호텔은, 너무 약해서 가난해서 혹은 용모와 행동이 남달라서 세상에서 떨려나온 자들의 둥지다. 이 지붕 밑에 웅크린 아웃사이더들의 속내를 파악하는 데에 베를린 천사 다미엘의 독심술은 필요치 않다. <밀리언 달러 호텔>의 투숙객들은 모두 할리우드영화의 상투어로 익숙한, 알아보기 쉬운 몸짓으로 욕망과 콤플렉스를 쏟아낸다. 리버풀 사투리로 비틀스의 숨은 멤버임을 주장하는 사내, 심오한 경구를 설파하는 인디언, 독서에 중독된 자폐증 매춘부, 배냇짓을 하며 어린아이 같은 질문을 던지는 순진한 청년 등등. 게다가 한 투숙객의 죽음이 공동체에 일으킨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호텔을 방문하는 해결사는 스스로의 액션영웅 이미지를- 떨떠름한 표정으로- 비꼬는 멜 깁슨이다.

<밀리언 달러 호텔>은 보헤미안의 삶을 택한 재벌 2세의 추락사 배후를 추적하는 미스터리로 기둥을 세우지만, 플롯보다 괴짜 인물과 그들을 둘러싼 공기의 묘사에 훨씬 관심이 많다. 캐릭터도 워낙 캐리커처에 가까워 결국 분위기 조성을 돕는 소품에 그친다. “난 안 죽어.” “왜?” “나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픽션이니까”와 같은 대화를 주고받는 인물에 감정을 이입하기란 쉽지 않다. 궁극적으로 남는 것은 사색과 환상, 풍자와 블랙유머가 한데 고여 있는 인공호수 같은 공간, 밀리언 달러 호텔 자체다.

장르의 습관과 예술영화의 자의식이 불편한 자세로 동숙하는 그곳에서 빔 벤더스는 <베를린 천사의 시>나 <이 세상 끝까지>처럼 삶을 예찬하는 명상록을 쓰는 데에 자족했고 실제로 그 에세이의 몇몇 삽화는 아름답다. 그러나 추리물로서도 순애보로서도 자극이 약한 <밀리언 달러 호텔>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운드트랙 앨범보다 늦게 배급망을 타는 고역을 치러야 했다. 김혜리 verme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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