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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은의 논픽션 다이어리] 결혼과 이혼 사이

첫 번째 부부, 외출했던 남자는 부인 명의 카드로 124만원짜리 명품 운동화를 사서 룰루랄라 귀가한다. 가장으로서 생활을 책임지는 부인이 과도한 소비를 지적하자 남자는 화를 낸다. 두 번째 부부, 남자는 툭 하면 짜증을 내며 ‘X발’, ‘죽인다’, ‘돌빡’ 같은 말을 내뱉는다. 권위적인 성격의 그는 자신의 문제를 부인 탓으로 돌리는 궤변에도 능하다. 세 번째 부부, 시부모로 인한 갈등과 남편의 폭언 때문에 부인은 몹시 지쳐 있다. 하지만 남자는 말한다. “저는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게 꿈이거든요.” 네 번째 부부, 서로 신경을 긁는 대화 끝에 싸움이 벌어지자 불안해진 아기가 울며 엄마에게 매달린다. 남자는 한탄한다. “아이는 너무 예쁜데, 우리 인생은 거지 같아요.”

<결혼과 이혼 사이>는 ‘네이트판 결시친(결혼/시집/친정)’ 게시판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관찰 예능이다. 돈, 육아, 시부모, 성격 차이 등 결혼 생활의 주된 갈등 요소가 담겨 있고 차라리 연기라면 다행이겠다 싶을 만큼 살벌한 장면도 펼쳐진다. 부부마다 문제의 성격은 다르지만, 그중에서도 심각한 것은 자신의 아내에게 수시로 목소리를 높이며 폭력성을 숨기지 않는 남자들의 태도다. 가정에 대한 자신의 책임감과 기여를 강조하는 이들은 유독 배우자에 대한 존중만은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이 가장 뼈아프게 드러내는 지점은 여성이 출산과 육아로 경제력을 잃고 가사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할 때, 결혼이란 얼마나 위험하고 불공정한 계약이 되느냐다. 물론 이러한 사실을 알기 위해 꼭 타인의 사생활을 관람해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쩌면 계약을 무사히 해지하는 데 이 방송의 쓸모가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구경꾼으로서의 죄책감을 희석하려 애쓸 뿐이다.

CHECK POINT

요즘 ‘결혼과 이혼 사이’에 놓인 부부가 등장하는 또 하나의 예능 프로그램은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이다. 산후우울증과 독박육아, 가사노동에 시달리는 안무가 배윤정과 남편 서경환의 일상을 지켜본 오은영 박사는 이들의 소통이 어긋나는 지점을 짚어내는 한편 갈등의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남편의 육아와 가사노동 분담을 전제로, 업무를 집에 가져오지 말고 일하는 방식을 바꿔서 가족과 함께하는 일상에 집중하라는 것이 그의 조언이다. 물론 조언보다 중요한 것은 실천 여부겠지만, 관계의 문제가 심각할수록 전문가의 역할은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