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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주의 드라마톡] ‘재벌집 막내아들’

“손이 더럽혀질까 봐 대충 싼 맛에 쓰고 때 타면 벗어던지는 흰 목장갑.” 순양그룹 오너 일가의 지시라면 거절도 질문도 판단도 하지 않는 미래자산관리팀 팀장 윤현우(송중기)는 자신에 관한 모멸적인 뒷말을 듣고도 눈 하나 까딱 않는다. 해외 비자금을 회수하러 갔다 살해당하는 충성스러운 순양맨의 허무한 삶은 별안간 1987년으로 회귀해 순양가의 막내 진도준(송중기·아역 김강훈)으로 이어진다. 산경 작가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시작이다. 진도준은 귀여운 11살 어린이의 얼굴에 40대 아저씨의 말투로 미래 정보를 활용하고, 순양 창업주 진양철(이성민)은 돈으로 못 사는 서울대 법대 합격증을 안겨드리겠다는 손자에게 홀딱 반한다. 흰 목장갑이 재벌 창업주의 목숨을 구하고 조언하며 인정을 얻는 전개가 짜릿한 한편, 원작과 드라마가 갈리는 지점이 흥미롭다.

순양가의 머슴으로 살다 언젠가 집사가 되기를 꿈꾸던 원작의 윤현우는 두 번째 삶을 머슴의 사고방식을 개조하는 기회로 삼는다. 머슴을 부리는 주인의 마인드, 즉 진양철의 방식을 흡수한 그가 집요한 욕심을 내비칠 때마다 진양철은 자신을 쏙 빼닮은 손자가 대견해 함박웃음이다. 소악당과 노악당이 팽팽하게 거래하는 대화가 압권이고 진양철이 남긴 유언마저 “악당으로 살아”였다. 경제 위기는 기회로, 오로지 이익으로 사고하며 목표를 달성하는 전능감이 원작이 주는 대리만족이었다면, 드라마에는 원작에 없는 진양철의 자서전이 등장한다. 진도준은 윤현우였던 시절, 표지가 너덜거리도록 읽은 자서전의 내용으로 할아버지의 속마음이나 행적을 콕 짚는다. 일종의 예언서 같은 아이템, 하지만 자서전이다. 치부는 윤색하고 자신에게 유리하게 각색된 창업주의 마인드를 자서전으로 세팅했던 순양맨은 과거로 돌아가 어긋나는 지점들을 마주한다. 흰 목장갑은 이제 거절하고, 질문하고, 판단해야 한다.

CHECK POINT

칼을 숨긴 농담, 협박이나 다름없는 농담 외엔 건조한 서술을 이어가는 <재벌집 막내아들>의 원작 소설에서 드물게 웃은 대목이 있다. 진양철 회장의 머리에서 종양을 발견하는 심각한 분위기. 명인대학병원의 우용길 원장이 회장에게 인사하고, 장준혁 교수가 나타나 진료한다. 드라마 <하얀거탑> 패러디구나 하고 넘겼는데, 인용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수회에 걸쳐 장준혁을 순양 의료원으로 스카우트하겠다고 뒤를 캐 약점을 잡으라 지시하는 끈질김에 결국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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