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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가가린’, 가장 그늘진 자리에 깃드는 무한의 꿈
김예솔비 2022-12-21

유리(알세니 바틸리)는 파리의 근교에 위치한 가가린 공동주택단지에 살고 있다. 시설이 낡고 낙후된 가가린에서의 생활은 순탄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유리는 “가가린은 영원할 것”이라 믿으며 친구 우삼, 디아나(리나 쿠드리)와 함께 건물을 보수하고 살 만한 곳으로 만들려 애쓴다. 유리에게 가가린은 집이자 가족이고, 웃음과 사랑이 머무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전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주택단지는 철거가 예정되고 주민들은 가가린을 떠난다.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유리만이 남아 남몰래 건물의 파수꾼이 된다. 폐허가 된 건물과 소년은 외로움이라는 형상으로 닮았다.

사라질 운명에 처한 마을과 이를 지키려는 소년. 둘 사이에는 또 하나의 교차점이 있다. 바로 ‘우주’다. 절묘하게도 유리와 가가린이라는 이름을 합치면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이 된다. 가가린 단지의 옥상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우주를 동경했던 소년 유리는 이제 단지 내부에 자신만의 우주 정거장을 건설하려 한다. 철거가 예정된 황폐한 건물은 유리의 상상 속에서 미지의 세계를 유영하는 우주선이 된다. 우주를 향한 유리의 순수한 선망과 공동체를 수호하려는 간절한 마음이 만나 영화에 비상한 환상을 불러들인 것일 테다. 남루하고 볼품없는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우주처럼 광활한 분량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세계라는 것. <가가린>이 우리에게 전송하는 전복과 희망의 코드다. 영화는 흑인과 집시, 도시 빈민과 같은 변방의 존재들이 함께 모여 사는 터전과 그것의 상실에 대해서, 이성이 아닌 SF적인 환상을 통해 호소한다. 파니 리에타르, 제레미 투루일 두 감독이 함께 동명의 단편영화를 발전시킨 장편 데뷔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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