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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레지던트이블
2002-06-11

시사실/레지던트이블

■ Story

* 21세기, 국가권력보다도 막강한 힘을 자랑하는 ‘엄브렐러’사의 비밀연구소 하이브에서 바이러스 유출사고가 벌어진다. 연구소를 통제하는 슈퍼 컴퓨터 레드 퀸은 즉각 연구소를 봉쇄하고, 감염을 우려하여 모든 직원을 말살한다. 레드 퀸을 재부팅하고 연구소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엄브렐러의 특수부대가 하이브로 잠입한다. 입구를 지키는 보안요원 앨리스(밀라 요보비치)는 특수부대와 함께 레드 퀸을 찾아간다. 레드 퀸이 살포한 신경가스에 노출되었던 앨리스의 기억은 불완전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되살아난다. 앨리스와 특수부대는 레드 퀸에게 접근하여 재부팅에 성공하지만, 방어 시스템 때문에 특수부대 절반이 목숨을 잃는다. 하이브를 빠져나오려던 앨리스 일행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좀비가 된 연구원들과 맞닥뜨린다. 동력을 끄고 재부팅하는 바람에 닫혀 있는 문이 모두 열려 좀비와 연구중이던 기형생물들이 자유의 몸이 된 것이다.

■ Review

<레지던트 이블>의 원작은, 격렬하고 끔찍한 비디오게임이다. 좀비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뜯어먹히는, 소름끼치는 효과음이 등골을 시리게 하는 공포 액션게임. 일본에서의 출시명은 <바이오하자드>, 미국에서는 <레지던트 이블>이었다. 영화로 각색된 <레지던트 이블>은 게임의 설정을 충실하게 따라간다. 테크노 음악이 귀를 자극하고, ‘쿨한’ 느낌의 푸른빛이 감도는 연구소에서 신나게 싸운다. 게임에서 직접 좀비를 쓰러트리는 ‘주체적’인 쾌감은 없지만, <툼 레이더>와 <매트릭스>를 능가하는 여전사의 화끈한 액션을 보는 재미는 최고다.

94년 주드 로 주연의 <쇼핑>으로 데뷔했던 폴 앤더슨은 할리우드 출세작인 <모탈 컴뱃>에 이어 <솔져> <이벤트 호라이즌> 등 일관되게 SF, 액션, 공포를 아우르는 영화만을 만들어왔다. 작가적인 독창성은 없지만, 폴 앤더슨은 <이벤트 호라이즌>처럼 다양한 요소와 주제를 끌어들여 자기만의 터치로 다듬어낸 영화를 만들어낸다. 무엇보다 시각적 쾌감 하나는 분명하다. <이벤트 호라이즌>에 등장하는 중세풍의 우주선이나 <레지던트 이블>의 차갑고 금속성의 미로 같은 느낌을 주는 연구소처럼. 또한 폴 앤더슨이 그려내는 액션은 하드코어 음악처럼 경쾌하게 직선으로 뻗어나간다. 폴 앤더슨이 직접 시나리오를 쓴 <레지던트 이블>은 게임과 유사하게 진행된다. 최초의 목표는 레드 퀸에 접근하는 것이다. 접근하기 위해 약간의 수수께끼 풀이와 액션이 필요하다. 레드 퀸을 재부팅하고 나면, 좀비가 기다린다. 한 가지의 임무가 끝나면 더 어려운 임무가 기다리고 부하들을 물리치면 보스가 등장한다. 한 단계씩 높아지는 액션강도를 폴 앤더슨은 훌륭하게 소화한다.

물론 액션을 업그레이드하는 것만으로 긴장감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폴 앤더슨은 ‘기억’으로 <레지던트 이블>의 드라마에 윤기를 더한다. 첫 장면에서 앨리스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몇 가지 장면들이 어지럽게 머릿속을 떠다닌다. 또 한명의 보안요원 스펜서 역시 기억을 잃었다. 앨리스와 스펜서는 특수부대원과 함께 좀비를 해치우고 다니면서, 조금씩 기억이 살아난다. 하지만 시간순이 아니다. 무작위로, 무언가를 보았을 때 관련된 기억이 떠오른다. 바이러스를 유출시킨 것은 누구일까, 앨리스는 누구를 배신한 것일까, 앨리스와 스펜서의 관계는 무엇일까 등등. 기억이 조금씩 돌아오면서 영화의 방향이 틀어지고, 사람들의 관계가 바뀐다. 적이 동지가 되고 동지가 적이 된다. 그러나 그 기억조차 불완전하다. 모든 기억이 돌아오기 전까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 주인공의 이름이 앨리스인 것은, 그런 이유다. ‘이상한 나라’에 들어온 앨리스. 앨리스는 싸우면서 자신의 기억을 찾고,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려고 애쓴다. 그러나 돌아온 세계는 여전히 ‘이상한 나라’다.

폴 앤더슨은 자신의 세계를 감각적으로 구축한다. 미술감독인 리처드 브리지란드는 선과 공간을 중시하는 일본 건축을 참조하여, <레지던트 이블>에서는 주로 유리와 강철을 이용한 세트를 만들었다. 유리와 거울을 활용한 일종의 착시효과로 미로에 들어온 느낌도 준다. 레드 퀸에 접근하는 통로는 사방이 거울로 되어, 굴절된 백색광선이 정면에서 다가오는 파란 레이저 광선과 대조되어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고립된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어두운 복도를 그림자 하나 안 생길 정도로 캄캄하게 만들었다. 저택의 오래된 시계판에 앨리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든가, 레드퀸의 계산칩이 체스판 모양을 한 것처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상징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극한상황에서 달음질치는 심장박동처럼 격렬한 <레지던트 이블>의 음악은 <미믹> <스크림> 등을 작곡했던 마르코 벨트라미가 맡았고 마릴린 맨슨, 슬립낫, 콜 챔버, 피어 팩토리, 람스타인 등이 참여했다.

<레지던트 이블>은 본분을 알고 있다. 폴 앤더슨은 강도높은 액션과 섬뜩한 이야기를 결합하여 관객을 자극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망설이지도, 과용도 하지 않는다. <레지던트 이블>은 좀비영화에 속하지만, 일반적인 좀비영화의 관습에 집착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좀비가 된다면’이란 일관된 질문도, 가볍게 처리한다. 팔다리가 뜯기고, 내장이 터져나오는 장면 같은 것들도 잘 등장하지 않는다. 대중적인 액션영화에서 허용되는 정도의 ‘고어’에 만족한다. 대신 밀라 요보비치의 액션에는 확실한 방점을 찍는다. 비대칭의 빨간 드레스에 가죽 부츠를 신은 밀라 요보비치의 모습은 환상적이다. 떡 벌어진 어깨도, <레지던트 이블>에서만은 황홀하게 보인다. 벽을 짚고, 가죽 없는 맹견을 걷어찰 때 그녀의 ‘자태’는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김봉석/영화평론가 lotusid@hani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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