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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영영
2002-06-11

시사실/ 단편 셋

■ Story

개구리가 성가시게 울어젖히는 시골. 부엌으로 내려선 할머니는 가마솥에서 따뜻한 물을 퍼서 정성스럽게 머리를 감아 말리고 얼굴을 꼼꼼하게 매만진다. 방에는 아들의 시신이 창백하게 누워 있다. 할머니는 자신을 단장하던 것과 똑같이 세심한 몸짓으로 아들의 주검을 구석구석 닦는다. 녹음 속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가오며 웃는 아들의 영상이 잠시 떠오르고 다시 사라진다. 괘종시계가 여섯번을 울리자, 할머니는 추를 잡아 시계를 멈춘다.

■ Review

크로노스의 낫은 잔인하고 가차없다. 종종 소중한 것들과 고통을 맞바꾸고 총총히 사라지지는 시간의 힘을 이길 자는 없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숨이 멎은 아들의 입가에 귀를 갖다대고, 창백한 사지를 헛되이 쓸어주기를 그치지 않는다. 마치 야속한 시간을 되돌려보겠다는 듯이, 한때 따스한 피가 돌던 뼈와 살점들을 한없이 닦고 어루만지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시계추를 붙드는 주름진 손은 시끄러운 뻐꾸기며 벌레소리들도 멎게 한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을 지배하는 물리법칙은 그 순간 잠시 흐려진다. 세상이 정적 속으로 빠져들 때, 카메라는 정지한 시계바늘을 비춘다. 길 ‘永’자를 두번 겹쳐쓴 제목처럼 오래오래. 대사 한마디 없지만 소리와 영상만으로도 집중하게 하는 힘이 있다. 황선우 jiv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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