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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하치 이야기
2002-06-25

■ Story

1924년 1월. 도쿄의 대학교수 우에노 선생(나카다이 다쓰야)의 집에 태어난 지 두달된 아키다견 한 마리가 선물로 온다. 우에노 선생은 강아지의 다리가 8자라서 여덟을 의미하는 ‘하치’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외동딸 치즈코(이시노 마코)가 갑자기 결혼하는 바람에 하치를 자식처럼 맡아 키우게 된다. 매일같이 우에노 선생을 역에 배웅하고 저녁때면 마중을 나가는 충견 하치. 그러나 우에노 선생은 강의 중 뇌출혈로 급사하게 되고, 주인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하치는 매일 저녁 시부야역에서 우에노 선생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 Review

개에 관한 감동적인 이야기는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도 늘 있어왔다. 굳이 플란다스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에도 민담 속에 등장하는 충견들에서부터 최근의 백구에 이르기까지 숱한 이야기들이 있다. 지능이 높을 뿐 아니라 인간에 대한 정을 간직하고 표현하는 데 인색할 줄을 모르는 개들은 여러 일화들을 통해 인간의 귀감이 되고 그것이 바로 개가 다른 동물들과 다르게 생각되는 이유일 것이다.

<하치 이야기>는 그중에서도 기다림을 주제로 하고 있다. 주인과 1년5개월 동안 나눈 정을 10년의 기다림으로 죽을 때까지 간직하는 하치는 인간처럼 합리적으로 망각하고 슬픔을 잊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여운어린 감동을 선사하는 이야깃거리다.

다만 영화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이 영화는 동물과 인간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 가장 크게 부각시켜야 할 교감의 문제를 다소 소홀히 다루고 있다. 하치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 부인이 서운해한다든가, 벼룩을 잡아준 뒤 하치와 탕 속에 들어가 같이 목욕을 한다는 등의 코믹한 설정 몇개가 제스처처럼 제시되는 것 이외에 우에노 선생과 하치의 개인적인 우정이 세심하게 다루어지지는 않는다. 에피소드들은 얽혀가면서 감정을 상승시키는 대신 계속해서 병렬적으로 이어질 뿐이고 그 호흡도 너무 짧게 끊어진다. 그래서 이 작품을 위해 어마어마한 액수를 들여 건설한 1930년대 시부야역의 세트는 그다지 인상 깊게 각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늙고 병든 하치가 마침내 기다림에 지쳐 역 앞 눈밭 위에 자는 듯이 누워 있고 그 곁을 무심히 지나는 사람들을 조용히 비추는 장면은 아름다워서 슬픈지 슬퍼서 아름다운지 모를 느낌을 자아낸다. 그 어떤 감정이나 기억도 언젠가는 증발시켜버릴 수 있는 인간에게 끝까지 변하지 않는 그 무언가가 있다는 증거는 참으로 큰 위안이 아닐 수 없다. 뒤늦게 찾아온 1987년작의 <하치 이야기>는 괜한 너스레나 눈물짜내기 작전없이 찬찬하고 솔직하게 그런 증거와 위안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손원평/ 자유기고가 thumbnail@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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