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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서프라이즈
2002-07-03

■ Story

남자친구의 귀국을 앞두고 깜짝 파티를 준비하려던 미령(김민희)은 아버지의 뜻하지 않은 반대에 부딪히 설득할 시간을 벌기 위해 친구 하영(이요원)을 공항에 대신 내보낸다. 하영의 임무는 그 남자(신하균)가 너무 일찍 집에 도착하지 못하도록 붙잡아두는 것. 자신이 누구인지 밝힐 수 없는 상태에서 낯선 남자를 길에 묶어두어야 하는 여자와, 이유도 모른 채 낯선 여자에게 끌려다니게 된 남자의 신경전이 12시간 동안 전개된다.

■ Review

청춘은 사랑만 하기에도 숨가쁘다. 그 어지러운 정열이 이리 튀고 저리 튀는 동안 인간 관계는 얽히고 설키기 십상이다. 바로 로맨틱코미디가 발생하는 지점이다. <서프라이즈>는 90년대 중반까지 한국 영화산업 중흥의 견인차 역할을 하다가 이제는 소강 상태에 들어간 로맨틱코미디 장르를 다시 불러내었다.

이 영화의 모티브는 어떤 텔레비전 광고를 연상시킨다. 친구의 애인에게 ‘필이 꽂힌’ 여자가 친구 몰래 남자의 전화번호를 받아들고 묘한 미소를 짓던 순간은 이후에 여러 대중가요의 가사로 변주되어 나타나기도 했다. 그 CF의 주인공 김민희가 이 영화에도 나오는데, 이번에는 친구에게 애인을 빼앗길 뻔한 위기에 처하는 역할이다.

<서프라이즈>는 로맨틱코미디의 플롯장치를 제법 단단하게 지니고 있다. 로맨틱코미디는 할리우드 장르의 역사로 볼 때 스크루볼 코미디와 강한 친연성을 갖는다. 서로를 오인하는 남녀가 만나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애정관계로 돌입하는 설정이 아마도 그 첫 번째 공식일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의 관계가 원만하게 성사되는 것을 방해하는 어떤 구조적인 요인이 끼어든다. 프랭크 카프라에 뒤이은 하워드 혹스, 프레스턴 스터지스, 조지 스티븐스 같은 스크루볼 코미디의 대가들은 두 남녀의 관계에 성적 갈등이나 사회경제적 갈등을 포진시킴으로써 이 장르를 의미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1990년대에 유행했던 한국의 로맨틱코미디는 사회경제적 갈등보다는 남녀의 성과 결혼제도의 갈등에 주목했다. 여성에게 있어서 연애는 순수하고 낭만적인 것으로 신화화되지만 결혼에 이르자마자 부부의 역할이나 성의 향유를 둘러싸고 곧바로 종속적인 위치로 직행해왔다. 그러나 대중문화에 묘사된 새로운 세대의 여성들은 대등한 입장에서 섹스를 요구하고 결혼의 갈등이 심각해지는 순간 서슴없이 이혼을 제기하는데, 이런 세태가 당시 로맨틱코미디의 주요한 구성 요인이었다.

<서프라이즈>는 한국의 기존 로맨틱코미디보다는 고전적인 스크루볼 코미디의 플롯장치와 새롭게 감지된 젊은층의 이슈 언저리쯤에서 자기의 위치를 결정했다. 하영은 미령의 남자친구 정우를 공항에서 찾아내어 12시간 동안 붙잡고 있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이렇게 해서 만나게 된 남녀는 서로를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신분에 대해 오인까지 하고 있는 상태에서 대인 방어와 밀착 마크를 하며 유쾌한 에피소드를 체험하게 된다. 두 사람 사이에 관심과 애정이 생겨나면서 내러티브의 초점이 바뀌어간다.

‘친구의 애인을 사랑해도 좋을까’라는 관심사 외에도 ‘사회경제적 조건으로부터 자유로운 순수한 사랑’이라는 주제는 <서프라이즈>를 떠받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이다. 요란한 파티를 열 수 있는 커다란 저택과 골프를 즐기는 아버지로 표현되는 부잣집 딸 미령과, 손에 지문이 없어질 만큼 일하랴 손님과 원장의 비위 맞추랴 정신없는 노동계급 하영이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의 박사과정을 마친 유능한 사업가 정우를 두고 과연 경쟁할 수 있을까? 사회구조적인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는 사랑의 가능성에 대해 속삭여주는 것이 로맨틱코미디가 베푸는 팬 서비스일 것이다. 여기에 버르장머리없고 방종한 자식과 고집불통이지만 결국에는 자애로운 면모를 드러내는 아버지는 약방에 감초다.

그런데 영화 <서프라이즈>는 정말로 ‘서프라이즈’한 갈등 해소 장치를 마련해놓는다. 오인이라는 장치를 극대화한 이 아이디어는 재미있다. 문제는 이처럼 메인 플롯에서 일탈한 ‘놀랍고’ 비약적인 갈등 해소가 이 영화에 정말 도움이 되는 것인지 확신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우정과 애정 사이의 고민, 희미하긴 해도 의식적으로 깔아둔 사회경제적 갈등 요소 같은 것들이 내러티브 안에서 긴장감 있게 해소되기를 기다렸을 관객에게, 이 영화가 선택한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절충과 깜짝 쇼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하다. <서프라이즈>가 유도하는 이야기를 쭉 따라온 관객이 정말로 보기를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지문이 없어진 하영의 손을 두고 “무언가를 해낼 손”이라며 자신의 머리 손질을 맡겼던 남자가 잿빛 소녀를 공주로 만들어줄 바로 그 왕자이기를 바라는 걸까, 아니면 그런 판타지가 배반되는 대신 또 다른 왕자와 우정 모두를 안전하게 거머쥐는 착한 신데렐라를 보고 싶어하는 걸까.

이 영화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이야기의 진행 속도다. 주인공의 사랑은 12시간 안에 마무리되는 초고속이지만, 연출과 카메라, 편집의 리듬은 12개월짜리 멜로드라마처럼 보인다. 새로운 감각과 베테랑의 기교를 동시에 필요로 했던 프로덕션의 특성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었을지. 김민희, 공효진은 물론이고 이요원조차도 가부키 배우의 연기 패턴만큼이나 정형화된 테두리에 갇혀 있고, 신하균이 변신의 의지에 걸맞은 캐릭터 구축에 실패한 점도 섭섭하다.

한국에서 로맨틱코미디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TV 미니시리즈라는 형태로 계속 진화중이라는 사실을 제작진이 감안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김소희/영화평론가 cwgod@hanmail.net▶ [Review] 서프라이즈

▶ <서프라이즈> 촬영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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