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ovie > 무비가이드 > 씨네21 리뷰
[Review] 파이
2002-07-09

■ Story

‘세상은 모두 숫자로 표현될 수 있고 이해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천재적인 수학자 맥스는 아파트에 틀어박혀 오로지 연구에만 몰두한다. 최근 10년간 매달린 연구는 ‘질서가 있는 혼란’인 주식시장의 기본 메커니즘을 구성하는 숫자들의 질서와 규칙을 발견하는 것이다. 맥스의 연구성과를 이용하려는 월 스트리트의 금융회사에서는 끊임없이 맥스에게 접근을 시도한다. 속세에 전혀 관심이 없는 맥스는, 우연히 만난 유대인에게 히브리어의 단어에 숨겨진 숫자가 있다는 말을 듣는다. 영감을 얻고 연구를 거듭하던 맥스는 마침내 숫자의 ‘진실’에 도달한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금융회사와 유대인들은 맥스를 뒤쫓으며 협박과 폭행을 가한다.

■ Review

<파이>의 장르를 굳이 설명하자면, ‘수학스릴러’ 정도가 적당할 것이다. 어렸을 때 맥스는 절대로 보지 말라던 태양을 봤다. 그리고 한동안 실명했다. ‘금지된 지식.’ 세상에는 그런 것이 있다. 세상은 숫자로 표현될 수 있다는 맥스의 신념은, 곧 ‘세상의 근원은 숫자’라는 깨달음으로 바뀐다. 맥스는 ‘금지된 지식’을 파고들어가, 마침내 정점에 도달한다. 그의 스승이 한때 도달할 뻔했지만, 두려움에 기피했던 비전(秘傳)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지식을 소유한 자는, 결국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게 마련이다. 고통과 광기, 그리고 자만과 독선으로 치닫던 맥스는 스스로 천형을 내린다.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맥스의 지독한 깨달음의 과정을, 분열증에 시달리는 듯한 영상으로 심오하게 그려낸다.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파이>는 야심적이다. 난해한 숫자와 공식을 나열하면서도 날렵하게 흘러가는 <파이>는 내용보다 형식적인 면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흑백영화인 <파이>는 장면들마다, 분위기에 따라 명암이 분명하다. “대부분의 흑백영화는 결국 회색으로 남지만 우리는 검은 색이거나 흰색인 영화를 원했다”는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흑백 반전 필름’을 이용하여 “사진만큼이나 풍부한 스타일”의 영상을 만들어냈다. 또한 <파이>에는 맥스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장면들이 무척 많다. 고립되어 자기만의 세계에 파묻혀 지내다가, 세상의 협잡에 휘말려드는 맥스의 어지러운 마음을 표현하는 갖가지 효과가 등장한다. 몸에 카메라를 부착하여 맥스의 움직임을 그대로 전해주거나(sonori-cam), 카메라 렌즈 앞에 파문을 일으키고(heat-cam), 영화 전체에 진동효과를 주는(vibrator-cam) 방법으로 행동은 물론 마음까지 형식과 조응시킨다. 이런 효과는 <레퀴엠>이 더욱 자극적이지만, <파이>만큼 모든 면에서 조화를 이루어내진 못했다.

<파이>는 저예산영화의 트레이드마크인 도발, 실험, 파격 등등을 확실하게 갖춘 수작이다. <파이>와 <레퀴엠>의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장래 할리우드의 ‘어둠’에 속한 명실상부한 작가가 될 것이 분명하다.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