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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릴로 & 스티치
2002-07-16

■ Story

머나먼 외계행성 투로에서 사고뭉치 괴물이 태어난다. 일명 실험생명체 626호. 총탄이나 화력에 강한 저항력을 갖고 있으며, 두뇌 회전도

빠르고 힘도 센 이 괴물은 손에 닿는 것은 무엇이든 파괴하는 본능을 지녔다. 626호는 우주연방 총사령관의 결단에 따라 외딴 사막행성으로

방출될 운명에 처하지만, 이송 도중 탈출해 지구의 하와이에 떨어진다. 동물보호소에 실려간 626호는 강아지를 입양하려던 소녀 릴로의 눈에

띄어, 스티치라는 이름을 얻고 릴로의 가족이 된다. 언니 나니와 단둘이 사는 왕따 소녀 릴로는 스티치를 정성껏 보살피려 하지만, 스티치의

사나운 성격과 돌출행동 때문에 애를 먹는다. 덕분에 실직자가 된 나니에게는 릴로를 부양할 능력을 의심하는 사회복지사가 따라붙고, 투로 행성에서는

문제아 스티치를 생포하기 위해 그의 조물주와 지구과학자를 지구로 파견한다.

■ Review

알라딘과 자스민 공주가 마법 양탄자를 타고 하늘을 난다. 로맨틱한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는가 싶은 순간, 피카추의 사악한 버전인 듯한 파란 괴물 하나가 휘리릭 지나가며 훼방을 놓는다. 이번엔 미녀와 야수가 다정히 춤을 추고 있다. 그런데 그들 머리 위로 샹들리에가 떨어진다. 아까 그 녀석 짓이다. 바다 한가운데서는 인어공주가 아름다운 자태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런데 누가 머리 위로 물을 쏟아부어 스타일을 구긴다. 또 그 녀석이다. <릴로와 스티치>의 트레일러에 첫 등장한 스티치는 그렇게 심히 수상쩍은 행동들로, 디즈니가에 전례없는 떠들썩한 악동 탄생을 예고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맞아? <릴로와 스티치>를 본 이들이 경악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부드러운 미소의 미키 마우스, 모자란 듯하지만 귀여운 구피를 필두로,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착하고 예쁘고 활기차고 감상적이며 언제나 행복한 친구들이었다. 선한 자와 악한 자가 외형에서부터 극명하게 드러났고, 스토리는 단선적이고 주제는 판에 박은 듯 일정하다는 한계를 보이곤 했다. <릴로와 스티치>는 그 모든 스테레오 타입을 한방에 물리치겠다는 야심을 펼친다. 예고편의 컨셉을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타들 골탕먹이기 시리즈로 정한 것도 그런 과단성과 자신감의 발로인 것이다.

<릴로와 스티치>에는 착하기만 하거나 악하기만 한 캐릭터가 없다. 초반엔 대부분이 ‘악’ 또는 ‘어둠’에 가까운 캐릭터로 묘사되는데, 주인공도 예외는 아니다. 스티치는 축복 대신 저주를 안고 태어난 실험 생명체로, ‘불량품’이자 ‘실패작’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 유일한 본능은 ‘파괴’ 욕구뿐이다. 릴로도 마찬가지다. 부모없이 언니와 자란 릴로는 때때로 포악해지는 탓에 친구가 없다. 따돌리는 친구들을 혼내주기 위해 부두인형을 만들고, 엘비스의 노래를 들으며 죽는 게 소원인 다소 염세적인 꼬마. 이들이 조금씩 변화하는 것은 닮아 있는 서로를 발견하면서부터. 릴로는 ‘오하나’(가족)의 꿈을 향한 험난한 여정에 뛰어들고, 스티치는 자신의 파괴 본능에 저항한다. 미운 오리새끼의 개과천선 또는 환골탈태. 그것은 그들이 백조의 고귀한 혈통을 타고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못나고 부족한 자신을 내치지 않을 가족을 만났기 때문이다.

<릴로와 스티치>는 기본적으로는 기존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패러디하고 있지만, 설정과 장면 일부는 우리에게 익숙한 할리우드 실사영화들을 연상시킨다. 스티치와 그 조물주를 심판하는 은하계 공화국 법정장면과 다종다양한 우주선이 비행하고 전투하는 장면에서는 <스타워즈>가 오버랩되고, 한 가지 프로그램만 입력된 인공생명체 스티치가 릴로의 가족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많은 부작용을 보이는 설정은 를 연상시킨다. 릴로의 집안을 수시로 드나들며 감시하던 검은 양복과 검은 선글라스의 사회복지사 버블스도 낯이 익을 터. “당신, 낯이 익군요.” “CIA에 있을 때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가 지구로 날아온 우주공화국 총사령관(외계인!)과 나누는 대화가 결정적인 힌트다. 바로 <맨 인 블랙>을 빼닮은 것이다. 이 밖에 스티치가 릴로의 방에 미니어처 도시를 만들어놓고 부수고 밟아버리는 장면은 <고질라>의 깜찍한 패러디다.

<릴로와 스티치>가 특별한 또 다른 이유는 그림체에 있다. 작업에 참여한 애니메이터들은 <덤보> <밤비> 시절의 부드러운 선과 수채화 배경을 수십년 만에 부활시켰다. “무게중심이 하단에 실린 삼각형 체형”을 기본 컨셉으로, 모난 데 없이 동글동글하게 그려낸 캐릭터, 하와이의 자연을 옮겨놓은 듯 선명하고 싱그러운 느낌의 수채화 배경, 자연풍광과 폭발장면의 디테일을 살린 CG 시각효과 등 서로 어울릴 법하지 않은 요소들이 모여 ‘오하나’의 미덕을 발휘하고 있다. <릴로와 스티치>는 궁극적으로 ‘가족애’라는 디즈니표 테마를 공유하고 있지만, 그것에 다다르는 화술과 매너는 판이한, 변종 애니메이션이다. 불량스럽지만, 그래서 더 사랑스럽다. 박은영 cine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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