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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폰
2002-07-23

개봉영화소개

■ Story

잡지사 기자 지원(하지원)은 원조교제에 관한 기사를 썼다가 협박전화에 시달린다. 친구 호정(김유미)과 그녀의 남편 창훈(최우제)은 지원의 딱한 사정을 듣고 방배동에 있는 집을 빌려준다. 협박전화를 피하고자 휴대폰을 바꾸려던 지원은 어느 날 컴퓨터 화면에 뜬 011-9998-6644라는 번호로 전화번호를 바꾼다. 그때부터 걸려오는 정체불명의 전화, 지원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내는 괴전화에 신경이 곤두선다. 아니나다를까 우연히 호정의 어린 딸 영주(은서우)가 지원의 휴대폰을 받고나더니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귀신들린 듯한 영주의 변화를 보며 지원은 휴대폰 번호에 얽힌 곡절을 뒤쫓는다.

■ Review

밤마다 들리는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 <월광>, 옆집에서 치는 피아노 소리라고 믿던 지원은 옆집 아이에게 묻는다. “너 피아노 잘 치더구나.” “예, 무슨 소리예요?” “밤마다 니가 피아노 치지 않았니?” “아니에요. 언니네 집에서 들리던데요.” 누구일까? 눈에 보이지 않는 동거인은 처음엔 지원의 휴대폰 번호를 바꾸게 만들더니 발신자 추적이 안 되는 번호로 거듭 전화를 건다.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소리, 괴전화는 어린아이의 혼을 뺏고 행복이 가득한 집을 뒤흔들기 시작한다. 지원은 유리창에서 생머리를 바닥까지 드리운 창백한 소녀의 모습을 본다. 지금 그녀의 등에 업힌 아이는 사람인가? 귀신인가?

<>은 휴대폰 번호에 깃든 저주를 불러내는 공포영화다. <하피> <찍히면 죽는다> <해변으로 가다> 등 2000년 여름의 난도질 공포영화와 달리 한맺힌 귀신이 긴 생머리를 늘어뜨리고 나오는 <>은 눈을 감지 못하고 죽은 자의 핏발선 분노와 절규에 귀를 기울인다. 이승을 떠도는 원혼을 잠재우는 방법은 오직 하나, 복수, 복수뿐이다. <링> <오디션> <토미에 리플레이> <사국> 등 90년대 후반 일본 공포영화의 단골게스트였던 머리 풀어헤친 귀신은, 실은 60년대 한국 공포영화의 주연이기도 했다. <>은 군데군데 <링>이나 <토미에 리플레이>의 흔적을 드러내지만 그보다 주요하게 이만희 감독의 <마의 계단>을 인용한다. 병원장의 딸과 결혼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 의사가 죽은 애인의 원혼에 시달리는 이야기를 담은 <마의 계단>에서 음산한 분위기로 등장한 목조계단은 <>에서도 살인의 장소로 등장한다.

“고전적 분위기의 호러영화에 매력을 느낀다”는 안병기 감독은 <>에서 60년대 한국 공포영화가 배신과 질투의 멜로드라마에 접붙어 있던 방식을 상기시킨다. 김기영 감독의 <하녀>에서 하녀로 들어온 젊은 여자가 평화로운 가정에 뿌린 불안과 두려움의 씨앗처럼 <>의 드라마는 유부남과 여고생의 치명적인 사랑에서 뻗어나온다. 온통 하얗고 투명하던 가정이 흔들리자 그것을 지키려는 여자의 안간힘이 광기로 돌변한다. 60년대 여성관객은 <하녀>를 보며 여자의 죽음에 안도했고 <마의 계단> <월하의 공동묘지>를 보며 원혼의 복수에 박수를 쳤다고 한다. 2002년 <>의 관객이 사랑을 얻으려는 여고생과 가정을 지키려는 여인 가운데 누구의 편에 설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 지원의 친구인 중산층 주부 호정은 평온하고 화목한 가정이 흔들리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가정을 지키려는 호정의 안간힘은 광기로 변해간다.

△ 지원은 휴대폰 번호에 얽힌 비밀을 추적하며 원혼의 사연을 하나씩 밝혀간다. 귀신들린 아이의 섬뜪한 말과 행동은 마치 <엑소시스트>를 연상시킨다.

<>은 <엑소시스트>를 연상시키는 귀신들린 아이의 행동과 애드거 앨런 포의 단편소설 <검은 고양이>를 참조한 극후반의 반전까지 제법 흥미로운 이야기지만 영화의 리듬은 부드러운 피아노곡에 어울리지 않게 거칠고 투박하다. 안병기 감독은 전작 <가위>처럼 전반부를 관객 놀래키는 효과로 채우고 후반부는 빨리 지나가야 할 설명처럼 찍는 오류를 되풀이한다. <식스 센스>나 <디 아더스>가 반전의 트릭을 만드는 데 기울인 노력 이상으로 유령의 가슴에 따뜻한 피를 공급하는 데 정성을 다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이 놓치고 있는 부분은 쉽게 두드러진다. 원혼을 다룰 때는 원혼의 심장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의 귀신이 쓸데없이 잔인해지고 애꿎은 사람들을 죽이고 필요 이상으로 자주 나오면서 치른 대가는 만만치 않다. <>에는 죽은 자의 슬픔이 배어들 공간이 없다.

공포영화가 ‘억압된 것의 귀환’이라는 로빈 우드의 정의를 되새긴다면 <>은 지금 시대 남성의 내면에 깃든 어떤 두려움을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예쁜 아내와 딸, 삶의 여유까지 갖춘 남자는 유혹의 손길에 흔들린다. 다른 세상으로 탈출하고픈 여고생의 어린 사랑과 남편과 아이를 지키려는 아내의 노력이 한순간 <위험한 정사>의 악녀, 글렌 클로즈를 연상시키는 서슬퍼런 광기로 돌변한다. 결국 남자는 선택한다. 여자들끼리 싸우게 내버려두자고. 그리하여 그 남자는 무서움과 죄의식에서 가뿐히 빠져나간다. 남동철 namd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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