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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인썸니아
2002-08-13

■ Story

LA경찰국의 강력계 형사 윌 도머(알 파치노)와 햅(마틴 도노반)은 여고생 살인사건의 수사 지원을 위해 알래스카로 향한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윌과 햅의 부정을 캐고 있는 내사과의 손길을 잠시 피하려는 것. 알래스카에 도착한 날 밤, 윌은 내사과에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햅과 다툰다. 다음 날 피해자의 가방을 찾는다는 라디오 방송으로 범인을 유인한 윌과 경찰들은 해변 근처의 오두막에서 잠복하다가 용의자를 발견한다. 짙은 안개 속에서 용의자를 쫓던 윌은 그림자를 발견하고 총을 쏘지만 맞은 것은 햅이다. 윌을 원망하며 햅이 죽자, 윌은 자신이 고의로 쏜 것은 아닌지 자책한다. 일단 용의자가 쏜 총에 죽은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지방 경찰인 엘리(힐러리 스웽크)가 햅 사망사건의 수사를 맡는다. 그뒤, 해가 지지 않는 백야와 자책감 때문에 연일 잠을 이루지 못하던 윌에게 낯선 목소리의 전화가 걸려온다. 윌이 햅을 쏘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남자는 윌에게 타협을 하자고 제안한다.

■ Review

좋은 경찰은 수사하느라 잠을 못 자고, 나쁜 경찰은 가책 때문에 잠들지 못한다.’ 명언을 남긴 윌도, 자신이 가책때문에 잠들지 못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안개 속에서 파트너를 쏘아죽인 뒤, 윌는 결코 잠들지 못한다. 그러나 가책은, 과연 그날부터 시작된 것일까? 서두에 등장하는, 섬유에 뿌려지는 핏방울과 그것을 닦아내려는 빠른 손놀림은, 윌의 가책이 이미 오래전에 시작되었음을 알려준다. 언제나 정의의 편이라고 믿어왔던,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믿었던 윌은 결코 어둠 속에 숨을 수 없는 백야의 땅 알래스카에서 가책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린다.

윌이 묵고 있는 호텔 여주인의 말처럼, 알래스카에 사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태어났거나, 무언가에서 도망쳐온 사람들’이다. 거칠고 도발적인 10대들의 유일한 꿈은 이곳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도망쳐온 사람들은 잠들지 못하는 나날을 보낸다. 그 사이란 없다. 아니 가능하기는 하다. 비열하게 타인을 이용하고, 휘두르면서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 추리소설 작가이며, 지방경찰 정도는 쉽게 다룰 수 있다고 믿는 월터 핀치가 그런 인간이다. 월터는 뻔뻔스럽게 윌에게 타협책을 제시한다. ‘사람은 너무 쉽게 죽는다’며,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들끼리 도와야 한다며. 결코 잠들지 못하는 윌은 악마의 손길을 뿌리칠 수 있을까?

♣ 윌은 시체를 훑어보는 것만으로 살인사건의 정황을 알아채는 베테랑 형사다(왼쪽부터 첫번째). 그러나 용의자를 추격하는 과정에서 동료를 쏘면서, 그의 고통스런 불면이 시작된다(두번째).♣ 추리소설 작가인 월터 핀치는 경찰의 머리 꼭대기에서 사건을 추무르려 한다(세번째). 알래스카 지방 경찰인 엘리는 추격전 중의 경찰 사망사건을 조사하면서 존경하는 선배인 윌의 비리를 캐게 된다(네번째)

95년 노르웨이에서 만들어진 동명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인썸니아>는 정공법으로 승부한다. 가책에 시달리는 불면증의 형사, 그의 마음속으로만 들어간다. 그가 괴로워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그는 자신의 가책을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관객의 관심은 사건의 미스터리나 해결이 아니라 윌의 마음이다. 쏟아지는 햇빛 아래에서, 어떻게 그는 떳떳해질 수 있을 것인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시간을 엮어놓으며 관객을 퍼즐의 황홀경에 몰아넣은 <메멘토>와 달리, <인썸니아>는 철저하게 심리에 집중한다. 시간의 미로가 아니라, 마음의 미로에서 관객을 끌고 당긴다.

언뜻 보기에는 다르지만, <메멘토>와 <인썸니아>는 무척 닮아 있는 영화다. <인썸니아>의 제작자인 스티븐 소더버그의 지적은 정확하다. “<인썸니아>는 <메멘토>와 같은 부류의 작품이다. 둘 다 우리를 중심 인물의 경험 속으로 끌어들이는 매우 주관적인 영화이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는 <메멘토>에서 우리가 주인공의 관점에 서게 했던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윌 도머의 머릿속에 우리를 넣어버린다. 그런 경험을 하는 관객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흥분을 느낄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야기의 시작부터, 치밀하게 복선을 깔아놓는다. 잘된 스릴러물이 그렇듯, 모든 것은 이미 예정되어 있다. 수사 보고서를 완성했다며 서명을 받으러온 엘리에게 ‘자신의 이름을 걸고 사실 확인을 철저하게 하라’며 되돌려보내는 윌의 모습에서 그의 미래를 짐작할 수 있다. 월터 핀치는 모든 것이 ‘실수’였다며, 자신의 범죄를 고백한다. 모든 고백이 끝나고, ‘당신은 어땠지?’라고 물을 때 우리는 그의 됨됨이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모든 것을 감추고 윌이 LA로 돌아간다면 그의 미래가 어떨 것인지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관객과의 완벽한 게임을 공정하게 주선한다. <인썸니아>를 볼 때는 가능한 모든 대사와 사람들의 행동을 기억해놓아야 한다. 그 기억에 비례하여, <인썸니아>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메멘토>와 <인썸니아>를 만든 크리스토퍼 놀란은 스릴러 장르가 무엇인지, 위기에 놓인 인간들의 영혼의 흔들림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메멘토>만큼 특출한 아이디어가 돋보이지 않는다 해도, <인썸니아>는 최상의 스릴러물이다. 연출, 촬영, 연기 어느 하나 흠잡을 데가 없다. 윌 도머의 마음에 한번 들어가기만 하면, 모든 것은 일사천리로 흘러간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경찰. 악마는 영혼을 팔라고 꼬드기고, 몸과 마음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윌의 상황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장면은, 월터를 쫓아 떠내려가는 통나무를 건너뛰다가 물에 빠질 때다. 사악한 월터는 잘도 건너가지만, 자신의 무게에 짓눌리는 윌은 풍덩 빠져버린다. 그리고 올라오지 못한다. 빛이 저기에 있는데, 흘러가는 통나무를 비집고 올라갈 수가 없다. 그게 바로 윌이 놓인 상황이다. 모든 상황은 끝났다. 과거는 지나갔고, 남은 것은 미래다. 통나무 밑에 갇힌 채 가책을 안고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태양 아래 자신의 죄를 고백할 것인가. <인썸니아>는 마치 수사의 참회록 같은 느낌을 준다. 한때의 유혹에 시달렸지만, 결국은 돌아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참회하는 정결한 기도.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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