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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어바웃 어 보이
2002-08-20

철없는 사내와 파란만장한 소년,그리고 그들 섬 이야기

■ Story

윌(휴 그랜트)은 아버지가 작곡했던 대히트곡의 인세 수입으로 살아가는 38살의 백수건달이다. 그에게 유일한 사회생활이 있다면 그건 여자들과 즐기는 것. 이마저도 윌의 변덕스런 성격 때문에 두달을 못 버티기 일쑤다. 그가 여성에게 일방적인 결별을 선언할 때 저주와 욕설이 되돌아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우연한 기회에 그는 화끈하게 즐길 수 있되, 헤어질 땐 부담이 없는 여성이 바로 독신모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윌은 독신부모의 모임에서 수지라는 독신모를 꼬시는 데 성공하지만, 이때부터 그의 탄탄대로에 커다란 걸림돌이 등장한다. 피크닉 길에 함께한 마커스(니콜라스 호울트)라는 수지 친구 피오나(토니 콜레트)의 아들이 바로 그 장애물. 윌의 삶은 마커스가 출현하면서 커다란 변화를 겪기 시작한다.

■ Review

“인간은 모두 섬이다.” 윌은 이렇게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TV와 DVD, 그리고 커피메이커가 잘 갖춰져 있는 지금은 굳이 영화를 보려고, 또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군중 속을 헤매지 않아도 되는 ‘섬의 시대’다. 그는 기왕 섬일 바에는 스페인의 이비자섬 같은 낙원이고자 한다. 과연, 그는 아버지가 물려준 넉넉한 유산을 바탕으로 좋은 옷가지와 훌륭한 전자제품과 스포츠카를 갖추고 이 여자에게서 저 여자로 건너뛰는 삶을 반복하고 있다. 뭇 여성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는 점만 빼놓으면 그에게서 무슨 문제를 찾을 수 있을까.

제목에서 쉽게 연상할 수 있듯, <어바웃 어 보이>는 현대 남성이라면 얼마간 앓고 있을 피터팬 신드롬을 소재로 삼은 유쾌한 코미디다. 이 영화에서 철부지 윌의 정신적 성숙을 도와주는 교사는 12살짜리 꼬마 마커스다. 주변 사람들에 대해 자기 키만큼의 책임을 다할 줄 아는 이 꼬마는 엄마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라면, 서투른 뚜쟁이가 되거나 아이들의 팝콘 세례를 받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의젓한 면모도 갖추고 있다. 자연 26년이라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책임감이라는 면에선 마커스가 윌보다 몇뼘은 더 웃자란 듯 보인다.

그런데 방탕하고 이기적이었던 윌이 이 꼬마로부터 인생의 중요한 깨우침을 얻게 된다는 내용이 너무 뻔하고 교훈적일 듯 보인다고? 물론, 이 영화의 재미는 육신의 나이에 비해 정신연령이 달리는 윌과 살아온 세월보다는 훨씬 어른스런 소년 마커스의 뒤바뀐 역할 게임에서 비롯된다. 마커스의 엄마 피오나가 음독자살을 기도한 날, 마커스는 엄마의 행복에 관해 깊은 고민에 빠지지만, 윌의 경우는 좀 다르다. 그는 자신의 아우디 스포츠카를 몰고 피오나를 실은 앰뷸런스를 쫓아가며 이렇게 말한다. “어찌됐건 구급차 뒤에서 쌩쌩 달리는 기분은 환상적이었다”라고.

♣ 아기는 제대로 안을 줄도 모르는 서른여덟 철부지 남자 윌. 가정을 꾸리거나 가족을 책임지는데는 도통 관심없는 대신 TV와 DVD, 오디오에 둘러싸여 자신만의 안락한 섬 안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윌의 모습은 철부지의 치기로만 보이진 않는다.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윌의 행동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그것과 흡사하다. 나와 가까운 누군가를 생각하기보다는 TV를 보느라, 당구를 치느라, CD를 사느라 몇 ‘단위’씩 사용하는 데 너그러운 모습 말이다. 근원적인 외로움을 해결할 방도를 찾기보단 자신을 치장함으로써 이를 달래려 한다는 점에서도 윌의 모습은 어느 정도 보편성을 갖고 있다. 쉴새없이 터져나오는 유머 속에서 갑자기 서늘한 기운을 느꼈다면 그런 탓일 것.

그렇다고 <어바웃 어 보이>가 모든 사람이 일정한 나이가 되면 한 이성에게 정착해서 가정을 이뤄야 한다거나, 매사에 ‘나잇값’을 해야 한다는 등의 ‘꼰대’ 같은 주장을 펼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 영화는 나이를 먹는다고, 세월을 많이 흘려보냈다고 해서 자연히 지혜로워지는 것은 아니라고 얘기할 뿐이다. 그리고 애나 어른이나 현명해지려면 무언가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어른이 돼서도 날아오는 팝콘과 사탕봉지로 얻어맞을지언정, 과감히 기타를 들고 무대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용기는 그중 하나쯤 되지 않을까.

하긴, 그렇게까지 심오하게 받아들이지 않아도 상관없을 듯싶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영화 줄거리만 보고 있어도 흥미진진하니까 말이다. 예컨대 마커스가 자신의 엄마 피오나와 윌을 맺어주려 할 때, ‘에이∼ 그거였어?’라고 단정짓는다면 뒤통수에 통증을 느낄 수도 있다. 윌이 레이첼에게 진실을 털어놓는 장면이나 마커스가 교내 콘서트에 출전하는 대목 등에서도 예측 불가능한 사건이 잇따른다. 이러한 생동감은 기본적으로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의 원작자이기도 한 영국 작가 닉 혼비의 동명 원작소설에서 비롯된 것일 터. 그렇다고 <아메리칸 파이>에서 10대 청춘의 터져나올 듯한 리비도를 밉지 않게 포장했던 웨이츠 형제의 공헌을 무시할 순 없다. 가장 지적인 애니메이션 중 하나인 <개미>의 시나리오를 만들기도 했던 이들 형제는 원작소설의 분위기와 재치있는 대사를 살리면서도 영화적인 표현으로 옮겨낼 수 있게끔 각색 작업을 했고, 연출까지 맡았다. 영국의 네오 포크 계열 가수인 배들리 드론 보이(본명은 데이먼 고)의 경쾌한 음악도 영화의 완급을 조절하는 데 한몫한다.

배우들의 연기 또한 이 영화에 힘을 불어넣었다. 뭐라고 딱 꼬집어 설명하기 힘든 다층적인 모습을 갖고 있는 마커스 역의 아역배우 니콜라스 호울트나 청승맞은 독신모 연기를 뛰어나게 소화한 토니 콜레트의 공헌도 인정되지만, 누가 뭐래도 이 영화의 일등공신은 휴 그랜트다. 예전보다 부쩍 늘어난 잔주름에 안쓰런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자연인 휴 그랜트인지 극중 캐릭터 윌인지 분간되지 않을 정도로 딱 들어맞는 그의 표정을 만나게 된다. 왜 일찌감치 그가 주인공으로 내정됐는지도 쉽게 짐작이 간다. 문석 ssoo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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