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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하나 섹스>,시가 되려는 야심을 품다.
2002-09-17

■ Story

<서른, 현대의 순교>라는 소제목이 붙은 전반부는 "아무 것도 하지말자. 섹스만 하자"고 말하는 서른살 남자와 여자가 주인공. 자동차와 옷과 돈을 훔쳐 달아나지만 돈에 욕심이 있는 건 아니다. 둘은 남은 돈을 다 쓸 때까지만 살기로 한다. <열아홉, 풍자가 아니면 해탈>이라는 소제목을 붙인 후반부는 열아홉 소년 둘과 한 소녀가 등장한다. 어떤 여자의 집에 들어가 돈과 보석을 훔친 그들은 도주하다 형사와 마주친다.

■ Review

두 차례 등급보류판정을 받고 등급보류 위헌결정을 이끌어낸 영화 <둘 하나 섹스>에는 누드신과 섹스장면이 상당하다. 특히 전반부인 <서른, 현대의 순교>는 섹스장면이 전체의 절반을 넘는다. 의사소통을 남녀의 육체에만 내맡긴듯 전체 대사를 다합쳐도 시나리오 한 쪽을 넘지 않는다. "배고파?" "아니, 아무것도 하지말자." "섹스만?", 또는 "몇살이라고?" "황혼이 보이는 나이." "아, 서른." 이런 선문답같은 몇마디가 대사의 전부다. 이야기를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인과관계를 보여주는 드라마를 배제하고 이미지와 음악으로 분위기를 잡는다. 김수영의 시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이 영화는 산문이 아니라 시가 되려는 야심을 품고 있다. 영화에서 시적 표현이 얼마나 어려운 경지인지 알고 있을 텐데 첫 장편영화를 찍는 이지상 감독은 부담스러워하지 않는다. 16mm필름으로 찍은 저예산 영화라는 한계도 걸림돌이 되지 않는 듯하다.

성긴 이미지로 표현된 드라마의 맥락을 유추해본다면 <서른, 현대의 순교>는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과 유사한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남녀는 서로의 몸에서 낙원을 발견하지만 육체의 천국이 영원할 순 없다. 가진 돈을 다 쓸 때까지 아무 것도 안하고 섹스만 하겠다던 남녀는 그들이 만났던 그곳에서 총을 맞고 피를 흘린다. <열아홉, 풍자가 아니면 해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본드를 불고 단란주점에서 일하며 길에서 헤드스핀을 하는 열아홉 소년소녀가 죄의식없이 강도짓을 하고 도주하다 형사의 총탄에 쓰러진다. 서른살 남녀처럼 섹스만 하다 죽겠다는 자의식은 없지만 아이들의 삶도 황폐하긴 마찬가지다. <둘 하나 섹스>는 사회가 인정하지 않는 길로 질주하다 쓰러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이 영화가 스스로 던진 문제의식을 제대로 소화하고 있는 걸로 보이지는 않는다. 얼핏 고다르의 <네멋대로 해라>를 연상시키지만 무르익지 않은 관념이 충돌하면서 영화는 방향감각을 잃는다. 영화형식에 대한 고민이 순교나 풍자, 해탈 같은 단어가 주는 무게감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탓이다.

<오버 미> <눈물> 등 일련의 실험영화를 거쳐 <하얀방>으로 상업영화무대에 데뷔하는 임창재 감독이 촬영을 맡았으며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의 김중기, <섬>의 서정이 <서른, 현대의 순교>의 남녀로 등장한다. 이지상 감독은 <둘 하나 섹스> 이후 장편영화로 <돈오> <그녀이야기> 등을 연출했으며 이중 <둘 하나 섹스>가 첫 개봉작이다. 남동철 namd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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