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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의 눈물에 호소하는 슬프디 슬픈 영화,<아이 엠 샘>
2002-10-15

■ Story

성인이지만 7살 어린이의 지능을 갖고 있는 정신지체장애인 샘(숀 펜)에겐 딸이 하나 있다. 잘 곳이 필요했던 어떤 여인이 샘과 관계해 낳은 딸, 샘은 딸에게 비틀스의 노래에서 따온 ‘루시’(다코타 패닝)라는 이름을 붙인다. 어머니는 애를 낳자마자 샘을 떠나고 혼자 딸을 키우던 샘에게 위기가 닥친다. 8살이 되면서 샘이 루시를 키울 만한 능력이 있는지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것이다. 법정에서 딸을 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샘은 전화번호부에 난 광고를 보고 유명한 변호사 리타(미셸 파이퍼)를 찾아간다. 돈만 아는 변호사라는 주위 시선을 의식하던 리타는 허세를 부리기 위해 샘을 위한 무료 변론에 나선다.

■ Review

태어나서 하루도 떨어져 있어 본 적 없는 아빠와 딸,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루시가 아빠에게 말한다. “아빠는 왜 다른 아빠들이랑 달라요?” 샘은 이유를 설명할 길이 없다. 정신지체장애로 딸에게 동화책 읽어주는 일도 버거워진 샘은 그저 “미안하다”고 답한다. “괜찮아. 아빠. 괜찮아요. 다른 아빠들은 애들이랑 공원에 같이 가지도 않는걸요.” 어린 딸은 아빠를 위로하고 아빠는 아이처럼 좋아한다. 이것은 기이한 사랑이다. 7살 어린이의 지능을 가진 아빠와 곧 8살이 되는 딸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인공처럼 그들을 갈라놓을 운명을 원망한다. “로미오, 당신은 왜 로미오인가요?”라는 줄리엣의 대사와 “아빠는 왜 다른 아빠들이랑 달라요?”로 시작되는 루시의 말은 가슴 아픈 이별의 전주곡이다. 로미오이기에 맺어질 수 없는 연인처럼 남과 다르기에 샘 역시 딸과 헤어져야 한다.

<아이 엠 샘>은 천생 눈물의 멜로드라마다. 유일한 삶의 희망인 딸을, 오직 지능이 낮다는 이유로 뺏겨야 하는 아버지를 보노라면 제 아무리 목석 같아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걸 피할 길이 없다. 그것은 샘이 착하면 착할수록, 루시가 어른스러우면 어른스러울수록, 둘의 표정이 밝으면 밝을수록 강한 자극이 된다. 비틀스의 노래로 이뤄진 이 영화의 음악이 슬픈 선율이 아닌 것은, 클로즈업과 들고 찍기로 이어지는 촬영이 <어둠 속의 댄서>를 닮은 것은, 정신지체장애인인 샘의 친구들이 코믹한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아이 엠 샘>의 이런 스타일은 <로미오와 줄리엣>과 결정적으로 갈리는 대목이다. <아이 엠 샘>은 사랑을 갈라놓는 잔인한 운명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이 영화가 노리는 정서적 반응은 그보다 훨씬 즉각적이다. 샘이 찾아간 변호사 사무실에서 관객은 서로 아이를 안 맡겠다고 싸우는 부부를 보게 된다. 아이를 귀찮은 짐으로 여기는 세상에서 딸을 되찾기 위한 샘의 분투는 성스러운 광채에 휩싸인다. 그것은 샘의 변호사 리타의 황폐한 가정을 둘러보면 더욱 뚜렷해진다. 남부러울 것 없는 물질적 풍요와 사회적 성취를 이룬 여성이지만 리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샘에게 위안을 구한다. 그녀에게 없는 단 한 가지, 상대를 향한 차고 넘치는 사랑이, 돈도 없고 능력도 없는 가엾은 샘과 루시에겐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변호사 리타의 등장과 더불어 법정드라마의 낯익은 공방전을 펼쳐 보인다. 바로 더스틴 호프만이 아이의 양육권을 위해 싸우던 로버트 벤튼 감독의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다. 하지만 샘은 더스틴 호프만처럼 절박한 연설을 할 수는 없다. 그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의 대사를 외워 법정에 서지만 통하지 않는다. 대신 샘이 관객을 설득하는 방식은 그가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뿐 제대로 사고하지 못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거듭 보여주는 것이다. 식당 종업원은 파란 콩과 노란 옥수수를 나눠달라는 샘의 요구에 난감해 하지만 변호사 리타의 복잡한 주문은 태연히 받아들인다. “그렇게 까다로운 주문을 하면 안 된다”는 리타의 훈계가 쓴웃음을 짓게 한다. 곧이어 계산대 앞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셈을 하는 샘의 모습은 리타뿐 아니라 장애인을 ‘다른’ 존재로 여기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에 찬 항의다. 샘은 너무 더딘 것에 답답해 하는 리타에게 화를 내며 자기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그는 단지 ‘느리다’는 이유로 별종 취급을 받지만, 영화는 리타의 ‘바쁨’을 샘의 ‘느림’과 비교하며 관객의 양심을 찌르는 질문을 던진다. 과연 샘이 느린 것인가? 세상이 너무 빠른 것인가? 어쩌면 리타의 황폐한 가정은 뒤돌아볼 틈 없는 삶의 속도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른다.

그렇게 <아이 엠 샘>은 착하디 착하고 슬프디 슬픈 영화지만 지난해 연말 미국 개봉 당시 평단의 반응은 찬반으로 확고히 갈렸다. 비판자들의 요지는 무엇보다 ‘부끄러운 줄 모르는 멜로드라마라는 점. <시카고 선 타임즈>의 로저 에버트는 샘이 매춘혐의로 경찰서에 갇히는 장면을 예로 들며 단지 매춘부를 따라나섰다는 이유만으로 체포되는 영화 속 설정은 처음 봤다며 조소했고, <살롱닷컴>의 찰스 테일러는 샘 역을 맡은 숀 펜의 연기를 ‘테크닉의 전시’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LA타임스>의 케빈 토머스가 숀 펜과 미셸 파이퍼를 <레인맨>의 더스틴 호프만과 톰 크루즈에 비교하며 강력한 오스카 후보로 지적한 것과 정반대되는 해석이다. 이처럼 극단적으로 상반된 평가는 <어둠 속의 댄서>가 불러온 찬반논쟁을 연상시킨다. 끝없이 즉각적인 동정의 눈물에 호소하는 영화라는 점이 두 영화가 비판받은 이유. 게다가 우피 골드버그 주연의 <코리나 코리나>를 연출했던 감독 제시 넬슨은 라스 폰 트리에처럼 전위적인 감독이 아니니, 다소 야박하다 싶은 평을 들을 만도 하다.

확실히 <아이 엠 샘>은 미학적으로 훌륭한 영화는 아니지만 일단 극장에 들어서면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끊이지 않을 영화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라면 말할 것도 없고, 내게 소중한 무엇인가를 빼앗겼을 때 제대로 항변해 보지 못한 경험이 있는 사람도 눈앞이 흐릿해질 것이다. 세상 그 누구도 떼어놓을 수 없는 아버지와 딸, 샘과 루시는 영영 다시 못 볼 줄 알았던 어떤 사랑의 흔적이기 때문이다.남동철 namd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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